저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그게 클래식인지, 락인지, 힙합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될 수 있으면 많은 음악을 들어볼려고 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지금 읽고 계신 이 글도 그 이야기가 되겠네요) 비록 좋지 않은 필력이고, 좁은 음악 식견이지만 디스플레이를 넘어 제가 느낀 기분을 같이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좋겠네요!
제가 이번에 리뷰할 음반은 레드벨벳의 정규 2집 <Perfect Velvet> 입니다. 나온지 하루도 되지 않았으니, 아주 따끈따끈한 신보죠.
잘 아시겠지만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레드벨벳은 2가지 컨셉을 가진 아티스트입니다. 한가지가 레드고, 한가지가 벨벳이죠. 흔히 레드는 상당히 강렬한 색채의 사운드를 보여주고, 벨벳은 부드럽고 몽환적인 사운드를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차이가 남아있습니다. 대부분의 레드 컨셉의 곡들은 실제 악기의 사운드를 주축으로 소리의 벽을 쌓고 있습니다. 정규 1집 <The Red> 에서 특히 그런 면모를 잘 보여줬죠. (물론 <The Red Summer> 같은 예외도 있어보입니다만..) 벨벳은 반대입니다. 대부분의 벨벳 곡들이 미니멀한 신디사운드를 주축으로 해서, 필연적으로 빌 사운드를 백보컬로 채우려는 시도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번 음반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벨벳 컨셉입니다.
(물론 모든 레드벨벳의 음반들을 이런 이분법으로 나누는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이미 정규 1집 <The Red> 의 마지막 트랙 <Cool World> 가 벨벳 스러운 성향을 다분히 보여주었습니다.)
정규 1집 <The Red>의 커버
이제 본격적으로 음반 이야기를 해 보아야 겠네요!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직 3번 정도밖에 들어보지 않았지만) 저는 이 새로운 음반을 벨벳 컨셉의 화룡점정을 찍음과 동시에 새로운 스케치를 한 음반이라 평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 점이 용의 눈일지 혹은 아직은 비늘일지, 이 새로운 스케치가 실제로 어떻게 완성 될지 그런건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이 음반은 레드벨벳의 지금까지의 컨셉을 충실히 보여주면서, 동시에 새 부분을 드러냈습니다.
우선은, 어떤 부분이 화룡점정이 되었는가 살펴보아야 겠네요.
https://youtu.be/6uJf2IT2Zh8
타이틀곡 <Peek a boo>의 링크입니다. 미니멀한 신디사이저 사운드를 베이스로 해서, 리듬 앤 블루스 풍의 백보컬들로 화음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신디사이저는 간소화되었음에도 보컬이 비었을 때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실 레드벨벳의 대부분의 신디사이저 음악이 그렇습니다. 신디사이저로 리듬감을 만들고, 베이스, 높은 음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죠. 그리고 그 사이를 다름아닌 리듬 앤 블루스 풍의 보컬로 채워냅니다. 레드벨벳의 음악을 단순한 신스 팝으로 정의하기가 애매한 이유가 대략 여기에 있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새어갔네요. 피카부의 경우에는 아주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앞선 작품들에서 시도된 실험들이 결실을 만들어 낸게 아닌가 싶습니다. 미니멀한 신디 사운드 사이에 보컬로 벽을 만드는 것은 <Russian Roulette> 에서도 시도되었습니다. 코러스에서 보컬을 빼버리고 신디만으로 끌어가는 파격적 시도는 다름아닌 전작 <The Red Summer>의 <Zoo> 에서 시도되었죠. 이러한 시도에 리듬 앤 블루스 풍의 보컬과 트랩 풍의 빠른 비트가 첨가되어 <Peek a boo> 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화룡점정입니다. 이제 (앞으로의 음악에 영향을 줄지 안줄지는 모르겠지만) 이 음반에서 나타난 레드벨벳의 새 면모에 대해서 살펴봐야겠죠. 제가 생각하는 레드벨벳의 새로운 면모는 두가지입니다. 베이퍼웨이브와, 힙합이 그것이죠.
아마도 이런 사진을 보신적이 계실겁니다. 이는 21세기 힙스터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베이퍼웨이브 라는 문화의 일부입니다. 베이퍼웨이브는 한편으로는 복잡하고, 한편으로는 복잡하지 않은 문화인데, 아주 짧게 요약하자면 의도적으로 비꼰 80~90년대의 향수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베이퍼웨이브를 전부 설명할 수 없겠습니다만..
아무튼 베이퍼웨이브 음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원본을 상당히 많이 재편집 한단겁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재편집이 되겠습니다만, 대부분이 낮고 느린 음으로 대체됩니다. 그리고 안개처럼 흐릿한 음들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기계음을 집어넣기도 하고요. 흔히 '힙하다' 라고 말하는 음악들을 들어보면, 대부분 베이퍼웨이브와 관련이 있습니다.
분명히 신흥 강자로 떠오른지 꽤 된 장르입니다만, 아직 아이돌 중에서 이를 적극 차용한 아티스트는 (제가 아는한으론)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쓴 아이돌 아티스트는 레드벨벳이 최초일 듯 싶네요. (다만, 레드벨벳의 이 시도는 최초가 아니었습니다. <빨간 맛> 의 저음 기계음이 베이퍼웨이브 적이라는 말이 있어왔습니다.)
예를 한번 들어보죠, 우선 <Attaboy> 입니다. 의도적으로 편집된 저음으로 비트를 만들었습니다. <Perfect 10>의 경우도 살펴봅시다. 느릿느릿하고 흐릿한 사운드로 배경을 만들어놓았는데, 그 방식이 베이퍼웨이브적이라 할 만 합니다.
그리고 2번째 새로운 면모라 할 만한 부분, 힙합이 어떻게 녹아 들어가있나 살펴보아야겠네요. 만약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레베럽이라면, 힙합 비트를 차용한 시도는 사실 새롭지 않으실겁니다. 정규 1집 7번 트랙 <Time Slip> 에서 이미 힙합 비트와 유사한 사운드론을 차용했죠. 이번에는 좀 더 과감합니다.
<Look>, <I Just> 같은 곡에서 빠른 하이햇을 필두로 한 트랩 비트를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Attaboy> 는 할렘 가의 힙합을 추구한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런 힙합을 지칭하는 단어가 있었는데, 갑자기 기억이 나질 않네요.)
물론 조금은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About Love>는 좋은 트랙이지만, 저 위치에 있기에는 앨범의 분위기를 해치게 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니멀한 피아노 반주와 함께 인트로에 들어가는 발라드인 이 곡은, 실험의 결과물로 가득한 앨범의 9번째에 위치해있습니다. 8번째 트랙이 <Perfect 10> 고, 10번 트랙이 <두 번째 데이트> 인데, 전자와 후자 모두 실제의 악기 사운드와는 큰 차이가 있는 신디 사운드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낀 <About Love> 는 피아노 반주와 현악기들이 사용된, 실제의 악기 사운드 그 자체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트랙에서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결과적으로 총평을 하자면, 레드벨벳 음반의 지금까지의 많은 시도들이 새로운 결과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도가 다시 있었습니다. 아마 이 새로운 시도들이 앞으로 레드벨벳의 음악에 적으나 많으나 영향을 주겠죠. 정규 1집 <The Red> 때도 그랬습니다만, SM이 해온 어떤 일련의 시도들이 다시금 어떤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신디사이저 운용에 있어서는 정말 높은 지점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 좋은 필력도 아니었는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 새로 배워가실 건 없는 글이었겠지만, 그래도 <Perfect Velvet> 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길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제 취향인 킹덤 컴은 설명이 없네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