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ct(사실) + fiction(가공) = faction 사실만 쓰는 것이 아니다. 허구의 요소가 강한 드라마다. 건국대 역사학자 김기덕 교수는 사극은 역사를 가지고 스토리텔링하는 것이라 했다. 역사는 스토리텔링의 보고다.
하지만 적어도 있는 사실을 왜곡하는 드라마는 스토리텔링이 아니다. 역사를 스토리화한다는 것은 있는 사실에 살을 붙인다는 것이지, 사실을 마음대로 조작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와 대중매체에서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는 이러한 모습은 엄연한 날조이고 역사 왜곡이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가 서술 돼 있다. 삼국사기에서 백제 부분은 신라, 고구려 분량의 반 정도이다. 또한 고려 김부식이 전해 오는 얘기를 몇 백년 후에 서술한 것일 뿐이다. 조선왕조 기록처럼 당대 당시 실시간 기록이 아니다. 삼국시대 기록은 기록 자체가 정확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다. 따라서 오류도 많으며 증명이 불가한 구전 역사일 뿐이다.
바로 그래서 일본서기 등 여타 사서를 통한 교차 검증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있는 기록조차도 왜곡하는 작태는 도대체 무엇인가. 지금까지 역사학자들이 피땀으로 이루어낸 상당한 연구와 고고학적 증거와 사료적 증거는 모두 무시하고 역사의 문화상품화를 진행해도 좋다는 말인가. 삼국사기에서 책계왕과 계왕의 경우, 즉위하고 죽은 게 기록의 거의 전부다. 하지만 이러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빈약함은 근초고왕 시대에 접어들면서 비약적으로 호전된다.
초라한 분량의 내친 자식의 기록이 역사의 기준이 아니다. 고증자체를 논한다는 게 무의미하다. 그 분량에서 근초고왕에 대한 기록은 몇 페이지도 안 될 것이다.
근초고왕의 업적을 알고 싶다면 이희진의 '전쟁의 발견'이나 '근초고왕을 고백하다'를 독파하자. 이도학의 '살아있는 백제사'도 양호하고, 임길채의 '매몰된 백제 역사를 복원한다!'를 독파할 만한 인내심과 분석력을 갖추고 있다면 아주 좋다. 이도저도 안된다면 엔하위키에 작성중인 '근초고왕' 항목을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근초고왕의 기록이 부족하다는 것은 비겁한 변명이다. 광개토왕과 비교해보자, 광개토왕 휘하에서 활동한 장수들의 이름이 하나라도 남아있던가? 그들이 한 대사는 하나라도 남아있던가? 근초고왕은 있다. 일본서기의 왜곡된 기록을 수정한다면, 근초고왕의 남방경략만 조명해도 30부작 드라마는 충분히 완성할 수 있다. 근데 드라마는 그걸 고작 두세 화로 넘겨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어느 사극도 고증에 충실한 대한민국 사극은 없다.
이 점은 인정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사극은 원래 고증이 상당부분 허술하니까. 근데 대한민국 사극이 잘못된 거지 사극이라는 장르 자체의 문제인가?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대하사극은 고증을 해야 하고 일반 사극, 퓨전 사극은 고증을 안 해도 되나? 이중 잣대를 같은 사극에 들이대면 안 된다. 고증이 완벽한 사극을 원한다면 모든 사극에 고증을 요구해야하고 아니라면 드라마를 보는 기준을 이중으로 하면 안 된다. 대하사극은 분량만 긴 걸 말하는 거지 고증과 무관하다.
시청자들은 그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라 해도, 당연히 고증이 완벽한 사극을 요구한다. 스토리가 뛰어난데 고증까지 완벽하다면 이것이 바로 금상첨화가 아닌가. 하지만 퓨전 사극과 트렌디 사극은 애시당초 기획 단계에서 그 배경과 시대상을 가져온 것이지, 허구의 인물을 내세우고 허구의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므로 스토리 자체가 그 저변에 허구성을 전제하고 있다. 시청자는 그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속아주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대하사극 근초고왕은 엄연히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드라마의 소재로 내세우고 있다. 따라서 스토리의 전개 과정이 그러한 역사적 사실에 최대한 충실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스토리의 아귀가 역사적 사실과 무리 없이 맞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이미 그 스토리부터가 막장 드라마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럴 바에는 의복을 현대의 것으로 입혀놓고 근초고왕의 업적을 더욱 즐겁게, 더욱 흥미롭게, 더욱 사실대로 재현하라. 차라리 양복을 갖춰입은 백제 외교관이 탁순국의 임금과 만나 대담하는 모습을 보고자 한다. 그런데 추노를 보면 퓨전 사극 주제에 당시 시대적 분위기는 더욱 잘 고증되어 있는 것이 슬픈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일본식 시대극이 아니다. 고증보다 흥미, 재미에 집중한다. 그게 한류의 특성 아닌가? 그래서 일본 역사 드라마보다 재미있는 거고. 각 나라의 특성이 다르고 드라마의 성격이 다른 것이다. 지나치게 고증 운운으로 재미거리인 드라마를 옥죄면 안 된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라는 장르가 어떠한 길로 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이다. 과거의 역사는 내일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근초고왕과 같이 사실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처음부터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뚜렷한 주제의식으로 조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기획의도조차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이 스토리를 뭐라고 하면 좋은가. 그렇게 고민하다 선택된 단어가 바로 '막장'이다.
고증 운운하는 소리를 안 듣고싶다면, 스토리부터 막장에서 좀 꺼내야 한다. 그리고 자칫 극중 전개를 역사적 사실로 착각할 수 있게 하는 크레딧의 원작 표기도 삭제해야 한다. M방송국에서 방영한 드라마 '김수로'는 적어도 극중 전개가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명시했다.
역사학자들도 사극의 허구를 인정하며 김기덕 교수는 화면에 허구와 사실을 자막처리 하는 것 보다는 블로그 등을 통해 토론을 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한다. 사극의 허구성은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통계의 장난이라고 해서, 그 '역사학자'가 구체적으로 몇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두 분은 역사 드라마를 아예 안 보신다. 전통문화학교에 계시는 교수님 한 분은 자못 비판적인 논조로 이 드라마에 대한 언급의 서두를 꺼내셨고, 한국외대에 계시는 교수님 한 분은 드라마를 보다 보면 지나치게 궁시렁거린다고 TV 앞에서 추방되셨다고 한다. 이 교수님은 드라마에 자문 역할을 맡아도 자신이 가르치는 역사적 사실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고 포기한 기색까지 내비치신 바 있다.
사실과 허구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은 좋지만 드라마라는 장르를 놓고서 이런 이런 점은 사실과 다르니 말이 안 된다는 어불성설이다. 드라마는 원래 말이 안 되는 소재로 말이 안 되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드라마의 본질이다. 말이 되는 걸로 말이 되는 소리만 하는 건 재판이나 기록이지 드라마가 아니다. 드라마에 대한 기본 이해를 갖고 사극에 대한 사실 순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반 드라마에서는 글쓴이의 말이 합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극에 대해서는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적어도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과 주제의식을 지켜달라고, 혹은 역사적 사실과의 기본적인 혼동을 막아달라고 하는 것이다. 우격다짐식 마구잡이 개명으로 허구에 사실을 우겨넣고, 정작 근초고왕의 업적은 축소하면서 있지도 않은 가정사를 지나치게 부각시키며 인기인의 영입으로 묻어가려는 모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아가 이러한 온갖 논란에도 불구하고 무응답으로 일관된 제작진 측의 태도에 각종 언론까지 덩달아 침묵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실망과 분노를 더욱 키우기에 충분하다. 그것이 시청자들의 비싼 시청료를 걷어가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올바른 태도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삼국지에서 임동주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지만 작품에 있어서의 고증은 제쳐놓는다 하더라도, 확고한 역사관이 없는 드라마들도 있어 뜻있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어떤 것들은 사건의 설정과 전개가 어설프기가 그지없다. 과연 이런 드라마들이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하여 한류라 지칭되는 문화산업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잇을지, 심히 걱정이 된다." ─ 우리나라 삼국지:주몽부터 대조영까지 다시보기, 임동주 저
2011.4.27 木日
[넷만담] 사극은 faction이다.
첫댓글 정말 작가가 배우와 출연진을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 보여준 사극이죠....하필 완전 망한 자명고 쓴 작가라니...
예전에 초등학생과외하던 시절에.. 아이들이 장난인지..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려와 발해를 세운사람이 최수종이라고. 했던걸 생각하면.. 아오...
전 시골에서 애들이 떠드는 거 듣다가, 대한민국을 세운 사람이 박정희라고 들었음;; (독립투사들은 다 어디
가고 친일파 ㅅㄲ만 남은겨...)
사극 꼬락서니가 말도 못 하게 더럽혀지고 있어서 저도 참 거시기 하다능... 한 달 전인가?? 어떤 케이블 TV에서
과거 재밌게봤던 '대조영' 이란 드라마를 해서 봤는데, 마침 그 때가 마지막 고-당 전쟁 때 였고, 고구려 사대부 사람들이
당군에게 성문을 열어주고 항복을 하던 장면이더군요..그리고 당군이 이어서 평양성 초토화 시작;; "이..이게 무슨
짓인가...!" 하고 사대부 사람이 말 꺼내니, "너희 고구려........문화 어쩌구, 천년이 어쩌구.."
이야;; 제가 요 대조영 처음 본 때가 고구려 망한 이후 였는데..이런 손 오글거리는 대사&파시스트 Feel 쩔었다능;;
태조왕건좀 다시 보고와봐라 된장할... 안그래도 요즘 정주행중인데, 감탄사가 절로 나옴. 제 여동생도 무척 좋아하던. 짝패 아니면 왕건보려고 함.
팩션이 좋으면 그냥 허준이나 대장금 추노 같은거나 계속 만들라고 망할것아
왜 굳이 사서 욕먹을려고 발광인건지...
우왕 일본사극이 나은 것도 있던디 ㅋㅋㅋ 여튼 막장 고증에 막장 스토리 텔링을 옹호하는 꼴하곤 울 나라 사극의 앞날이 어둡네예
답이 안 나오네요. 그리고 팩션 핑계도 구차하네요. 팩션적 요소가 많던 학생님 글만 봐도진정한 팩션이 뭔지 알텐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태조왕건 레알 명작이였는데...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