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죽음
강 문 석
매스미디어가 발달한 덕분에 우리는 참 편리하고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년을 건강하게 보내는 비결에는 일자리를 갖는 게 첫 번째로 꼽히지만 친구를 만나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옛 직장 동료들과 만나는 행사에 참석하는 것도 노년을 잘 보내는 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작년에 만났던 선후배 중에서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이들이 생기면 안타깝다. 생자필멸이라고 했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세상 떠난 이들의 비보를 한참 지난 뒤에 접하게 될 때마다 황망함을 느끼곤 한다. 재직 때 함께 동고동락했던 날들이 떠오르면서 퇴직 후에라도 좀 더 가까이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다.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지만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입에 잘 올리려고 하지를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어떻게 내 생을 잘 마무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태어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한다.
요즘은 ‘미리 써보는 유언장’과 같은 바람도 심심찮게 불고 있다. 미리 써보는 유언장은 죽음을 앞둔 노년들에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 문학단체에서도 이번 달에 ‘미리 써보는 유언장’으로 특집을 꾸민다고 해서 글을 쓰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레 죽음에 관해 많은 묵상을 하게 된다.
사색의 계절이라는 가을은 한편으론 죽음을 생각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한여름에 그토록 푸르던 나뭇잎들은 낙엽으로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 천주교회에선 가을의 끝자락인 11월 한 달을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위령성월로 지내기도 한다. 삶과 죽음이 소통하는 통로로 산 자들이 죽은 사람을 기억하며 바치는 기도는 참으로 아름답다.
얼마 전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은 뇌암으로 죽어가면서 자신의 장례식을 치밀하게 준비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 오바마와 부시 두 전직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추도사를 부탁하였고 장례식 때 부를 노래까지 직접 결정하였는데 바로 아일랜드 민요 ‘대니 보이’였다. 매케인의 조상은 아일랜드로 이주한 스코틀랜드 사람이었고 오페라 가수에게 노래를 부탁하였다.
워싱턴 국립성당에서 열린 영결식장에 이 노래가 울려퍼졌다. 우리나라 결혼식장에서도 가끔씩 축가로 ‘아, 목동아!’를 부르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는 잘못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이 노래는 가사와 곡조가 결코 밝지 않기 때문이다. 이별과 죽음을 상징하는 노랫말들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 노래를 장례식에서 부른다고 한다.
진해가 낳은 시인 김달진은 나이대별로 늙음의 속도를 해학적으로 노래했다. 60대에 들어서는 해마다 늙기 시작하여 70대엔 달마다 늙고 80대엔 날마다 늙다가 90대엔 시간마다 늙는다고 읊었다. 어언 일흔 중반에 이르고 보니 경남 진해 김달진문학관에 붙어있는 이 시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요즘은 가까이 지냈던 분들을 초대하여 살아생전에 미리 장례식을 치루는 사람도 있다. 장례식이란 이름을 붙여서 분위기가 좀 묘하겠지만 나는 무릎을 칠 정도로 기발한 아이디어란 생각이 들었다. 살아오면서 은혜 입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사전 장례식을 마치고나면 세상에 빚진 것을 조금이나마 갚는 것이 되니 기분이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사전 장례식과는 달리 나는 미리 써보는 유언장에서 내가 살아있을 때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편지를 써서 장례가 끝난 후 발송하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가족과 가까운 친척만으로 치를 장례이기 때문에 지인들에겐 사후 통보가 될 것이다.
혹시 <아름다운 죽음>이란 말을 들어보았는지 모르겠다. 30년 동안 수천 명의 죽음을 지켜본 세계적인 호스피스 전문의사인 아이라 바이오크가 쓴 책 제목이다. 책엔 죽음 직전의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이르러 삶의 소중함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성할 때 지금부터라도 해야 할 일을 찾아서 생을 완전히 마감하기 전까지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인간관계를 보다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마무리 조건은 그 관계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생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마지막 남은 1초라도 참되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사회적 지위나 부유함의 정도가 아닌 바로 인간관계를 완성함으로써 아름다운 마무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 우리는 자신에게 가장 귀중한 자산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보통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굳이 마음을 표현하지 않더라도 서로 사랑하는 것을 잘 알거라고 지레짐작한다.
심지어 갈등이 발생하여 심하게 다툰 나머지 몹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를 때조차도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애틋한 부모자식간이라도 부모가 사랑한다는 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거나 묵은 앙금을 씻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난다면 자식들은 끝내 안정을 못 찾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아주 기본적인 감정들을 서로에게 전달하지 못하면 깊은 상처로 남아 가슴에 사무치고 마는 것이다. 설령 뻔한 말일지라도 분명하게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사랑해요. 고마워요. 용서하고 또 용서해 주세요. 잘 가요.” 이런 종류의 말은 결코 때를 기다려서 할 말도 신중하게 해야 할 말도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면 그때부터는 서로 기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마땅히 해야 할 말이다. 굿바이는 신이 함께 하길 빈다에서 나온 말로 헤어질 때 습관적으로 하는 축복의 인사말이다. 이러한 축복의 인사를 제대로 남기고 떠난 인물들이 떠오른다.
시간만 나면 천막촌을 찾아 가난한 사람들을 껴안은 김수환 추기경과 누더기 옷을 걸치고도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던 성철 대종정이다. 두 성직자가 세상에 불멸의 사랑을 남기고 떠났듯 우리도 노년의 삶을 마감할 때 세상에 남을 사람들과 아름답게 헤어질 수 있어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선 평소 가까운 자식들부터 관계를 돈독히 해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첫댓글 회장님~!아름다운 가을아침입니다~! 먼저 문안 인사올립니다~!! 그런데 갑자기 회장님의 유언장을 받고 보니 너무 쓸쓸하고 미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장례식을 미리 치른다는 것은 다소 충격적이지만 한편으로 깊은 의미가 있을 법도 하군요. 오랜 문화의 틀을 깨는 새로운 의례에 사람들이 얼마나 호응하고 받아드릴지 궁금하네요. 이럴때 선구자적 용기가 필요한데...
회장님! 늘 새로운 것에 응전하시는 모습에서 후배들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버나드쇼 의 묘비명이 생각납니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
오늘따라 저 자신에 대해 더 많이 돌아보게 됩니다.회장님!~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