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2. 애잔함 너머 성찰 전하는 말소리 닮은 길
기자명 방기준
강원도민일보 기사 입력 : 2023.02.23. 지면 20면
단종 삶 담긴 영월 청령포서 출발
김삿갓면 각동리까지 15.6㎞ 구간
역사가 전하는 성찰 고스란히 담겨
폐역으로 남은 청령포역 맞닿아
두물머리 풍경·시가지 조망 가능
100대 명산 태화산 등반 포함
고씨동굴·동굴생태관 관광지 인접
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운탄고도 1길은 열일곱 살 어린 나이로 비운의 생을 마감한 조선 6대 임금 단종의 애절한 삶이 담긴 영월읍 청령포에서 시작된다. 이어 도도하게 흐르는 동강을 따라 걸으며 여유를 찾고, 산길 인근 천연기념물 제219호 고씨동굴에서는 4억년 전 자연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한 시간으로 회귀하게 만든다. 때문에 오랜 역사가 우리에게 속삭여 주는 말소리를 통해 여유를 되찾고 치유에 이르는 길이다.
■ 운탄고도 1330 1길= 성찰과 여유, 이해와 치유의 트레킹코스
운탄고도 전체 440리길의 첫 발을 단종의 애절한 삶이 담긴 영월 청령포에서 떼어놓는 것은 운탄고도에 어린 애잔한 정서를 미묘하게 자극한다. 불과 17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고 갔으나 단종의 삶은 정치와 권력의 허망함을 넘어 인생의 덧없음까지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진다. 그 힘을 압도하는 것은 분명 슬픔이지만, 청령포를 돌아 보노라면 슬픔 너머의 무엇, 슬픔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뭔가와 만나게 된다.
만약 이것이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성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단종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그리고 우리의 오랜 역사가 지금의 우리에게 속삭여 주는 말소리를 들을 수 있다.
또 이 속삭임 안에는 분명 경제도약의 시기 ‘검은 다이아몬드’를 캐내며 청춘을 바쳤던 우리 아버지들의 목소리 또한 담겨 있을 것이다.
청령포를 떠난 발길이 그리 가파르지 않은 언덕 산길을 넘으면 아름다운 숲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곧이어 태백선 청령포역이 나타난다. 역의 이름은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를 빌어 지어졌다. 1978년 1월 1일 여객은 취급하지 않고 열차의 교차 운행과 대피를 위해 설치한 신호장(信號場)으로만 처음 문을 연 뒤 1995년 8월 10일에 역무원이 배치됐으나 2005년 4월 1일에 역무원이 철수하며 현재까지 폐역으로 남아 있다.
청령포역과 세경대 정문을 지나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풍경과 영월읍 시가지 전경을 감상한 뒤에 남한강을 따라 언덕길을 걸어 내려가다 보면 수변공원에 조성된 팔괴2리 태화산카누마을이 보인다.
겨울철을 제외한 봄과 여름·가을에 길을 걷게 된다면 잔잔한 수면 위에서 카누·카약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여기서 강촌 풍경을 구경하며 숨을 돌려야 한다. 한국 100대 명산의 하나인 태화산으로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평균 해발 630여m의 산길 4㎞ 구간은 크고 낮은 언덕과 바윗길로 이어져 있어 자신의 체력을 확인하는 에너지 충전소다. 트레킹 보다는 등산에 더 가깝다고 느낄 수 있다.
또 이 구간은 외씨버선길 13구간과 겹치는 곳이기도 해서 걷는 동안 두가지 안내리본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2시간여 동안 숨가쁘게 걷는 산길은 비록 힘은 들지만 도착 지점인 김삿갓면 각동리마을에 내려서는 순간 시골과 강촌풍경이 어우러진 아늑한 분위기 속에 상쾌함이 찾아 온다.
과거에 대한 성찰을 통해 동강과 남한강을 따라 걸으며 여유를 되찾고, 그렇게 찾아진 여유로운 걸음들이 차곡차곡 쌓여 미래에 닿는 이해를 통해 치유에 이르는 운탄고도 1길은 영월읍 청령포∼김삿갓면 각동리 15.6㎞ 구간에 5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1길 주변의 명소들
△청령포
영월을 다녀간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청령포라고 한다. 강물이 둘러싸고 있는 듯해서 섬과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런 고립감이 자연스럽게 단종과 연결돼 애잔함을 준다. 동쪽과 남쪽·북쪽 3면은 강으로, 서쪽은 가파른 암벽인 육육봉으로 막혀 있어 걸어서는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천혜의 유배지 형국이다. 현재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배가 유일한 출입 수단이며 많은 관광객을 한꺼번에 실어 나르는 데는 유용하지만 운치는 그다지 없다.
△고씨동굴
석회암 동굴의 진면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천연기념물 제219호이다. 영월 10경(景)가운데 하나이며 폭염이 지속되는 한여름에도 동굴 안은 시원해서 이 때가 피크를 이루지만, 사철 내내 영월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1966년에 처음 알려졌을 당시에는 나룻배로 강을 건너야만 입구에 닿을 수 있었는데, 현재는 동굴 입구까지 널따란 다리가 놓여 있다. 동굴의 전체 길이는 3㎞가 넘지만 관람객에게 개방된 지역은 500여m에 이른다. 종유석과 종유관·석순·석주·유석·동굴산호 등 동굴을 생성하고 있는 매우 다양한 형태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트레킹을 잠시 멈추고 타임머신에 훌쩍 올라 지질시대로 날아가 보는 것은 재미만이 아닌, 자연의 아름다움을 잊고 살아온 우리에겐 소중한 경험이다.
△영월동굴생태관
고씨동굴을 탐방하기 전에 관람할 수 있는, 동굴의 생태를 알아보는 데 유용한 곳이다. 고씨동굴 입구로 이어지는 널따란 다리의 안쪽 주차장 인근에 있어서 방문이 편리하며, 동굴에 대한 전문 연구자들의 자료로 채워져 있어 학습효과도 높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여러 가지 동굴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아프리카미술박물관
고씨동굴 주변에 있어서 고씨동굴 탐방과 연계할 수 있다. 아프리카 20여개국에서 수집한 다채로운 미술품들이 전시돼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아프리카 부족들의 생활과 그들의 종교를 바탕으로 한 그림과 조각·생활도구·장신구는 물론 아프리카의 현대미술도 상설 전시를 하고 있다. 목재와 청동·토기·상아 등을 활용해 만든 작품들이 가진 토속적이고 원시적인 분위기는 고씨동굴이 가진 과거와 묘하게 맞물리기도 한다.
운탄고도1길(영월 청령포 통합안내센터 - 각동리 입구)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