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世 진준陳俊- 참지정사겸판병부사공 사적☞ 고려사 권128 3쪽
丁丑. 王將幸普賢院, 至五門前, 召侍臣行酒, 酒酣, 顧左右曰, “壯哉. 此地可以肄兵.” 命武臣爲五兵手搏戲, 蓋知武臣觖望, 欲因以厚賜慰之也. 賴恐武臣見寵, 遂懷猜忌. 大將軍李紹膺與一人相搏, 紹膺不勝而走, 韓賴遽前批其頰, 卽墜階下, 王與群臣撫掌大笑, 宗植李復基亦罵紹膺.
肄兵(이병): 군사를 훈련시킴.
五兵(오병): 과(戈)·수(殳)·극(戟)·추모(酋矛)·이모(夷矛)의 다섯 가지 병기(兵器).
手搏戲(수박희): 손을 써서 상대를 공격하는 우리 나라 전통 무예의 한 가지.
觖望(결망):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원망(怨望)함.
批(비평할 비): 치다, 때리다. 頰(뺨 협). 墜(떨어질 추).
정축. 왕이 보현원으로 행차하려고 오문(五門) 앞에 이르러서는 시신(侍臣)을 불러 술잔을 돌렸는데[行酒] 술에 취하자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장하도다.
이 땅은 군사들을 연습시킬 만하다.”라고 하였다.
무신(武臣)에게 명하여 오병수박희(五兵手搏戲)를 하게 하였는데, 〈왕이〉 무신들이 불만을 가지고 원망하고 있음을 알고 있어 후하게 하사하여 그들을 위로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한뢰는 무신들이 〈임금의〉 총애를 받을까 두려워하여 드디어 시기[猜忌]하는 마음을 품었다.
대장군(大將軍) 이소응(李紹膺)이 한 사람과 서로 치다가 이소응이 이기지 못하고 달아나니 한뢰가 앞으로 나가 그의 뺨을 때려 즉시 계단 아래로 떨어뜨리자 왕과 여러 신하가 박수(拍手)치며 크게 웃었고 임종식과 이복기(李復基)는 또 이소응에게 욕을 하였다.
고려사 권128- 3쪽 ▲
上 右-첫줄 復基亦罵紹膺. 於是, 仲夫金光美梁肅陳俊等失色相目, 仲夫厲聲詰賴曰, “紹膺雖武夫, 官爲三品, 何辱之甚.” 王執仲夫手, 慰解之, 李高拔刃目仲夫, 仲夫止之. 至昏, 駕近普賢院, 高與義方先行, 矯旨集巡檢軍. 王纔入院門, 群臣將退, 高等手殺宗植復基于門. 左承宣金敦中知亂作, 在途佯醉, 墮馬而逃. 韓賴依所親宦官, 潛入內, 匿御牀下. 王大驚, 使宦者王光就禁之, 仲夫曰, “禍根韓賴尙在王側, 請出誅之.” 內侍裴允才入奏, 賴挽王衣不出, 高又拔刃脅之, 乃出, 卽殺之. 指諭金錫才謂義方曰, “高敢於御前拔刃耶.” 義方瞋目叱之, 錫才不復言. 於是, 承宣李世通內侍李唐柱御史雜端金起莘祗候柳益謙司天監金子期太史令許子端等凡扈從文官及太小臣僚宦寺皆遇害, 積尸如山.
厲聲(여성): 언성을 높여 큰 소리를 지름. 또는 그 소리.
矯旨(교지): 왕명(王命)이라고 거짓 꾸며 내리던 가짜 명령(命令).
纔(겨우 재). 墮(떨어질 타). 牀(평상 상). 挽(당길 만).
指諭(지유): 대전(大殿), 중궁전(中宮殿), 동궁전(東宮殿)에 소속된 무관직의 하나.
莘(족두리풀 신).
이복기(李復基)는 또 이소응에게 욕을 하였다.
이에 정중부·김광미(金光美)·양숙(梁肅)·진준(陳俊) 등이 얼굴빛이 변하고 서로 눈짓을 하더니 정중부가 화가 난 소리로 한뢰를 꾸짖으며 이르기를, “이소응은 비록 무신[武夫]이나 관직이 3품인데 어찌 욕보임이 이리 심한가?”라고 하였다. 왕이 정중부의 손을 잡고 위로하고 화해시켰는데 이고가 칼을 뽑고 정중부에 눈짓하니 정중부가 그를 저지하였다. 날이 어두워지고 어가(御駕)가 보현원 가까이에 이르자 이고가 이의방과 더불어 먼저 가 왕의 명령이라[旨] 속이고 순검군(巡檢軍)을 모았다.
왕이 막 보현원 문에 들어가고 여러 신하가 물러나려 하는데 이고 등이 임종식·이복기를 문에서 손으로 때려죽였다.
좌승선(左承宣) 김돈중(金敦中)은 난이 일어난 것을 알고 길에서 거짓으로 취한 척하고 말에서 떨어져 도망쳤다.
한뢰는 친한 환관에게 의지하여 몰래 안으로 들어가 왕의 침상[御牀] 아래 숨었다.
왕이 크게놀라 환관[宦者] 왕광취(王光就)가 그를 막게 하니 정중부가 말하기를, “화의 근원인 한뢰가 아직 임금님 곁에 있으니 그를 내보내 베시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내시(內侍) 배윤재(裴允才)가 들어와 아뢰었으나 한뢰가 왕의 옷을 잡고 나오지 않자 이고가 또 칼을 뽑고서 그를 위협하니 곧 나왔으므로 즉시 그를 죽였다.
지유(指諭) 김석재(金錫才)가 이의방에게 말하기를, “이고가 감히 어전에서 칼을 뽑았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이의방이 눈을 부릅뜨고 그를 꾸짖으니 김석재는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이에 승선(承宣) 이세통(李世通), 내시(內侍) 이당주(李唐柱), 어사잡단(御史雜端) 김기신(金起莘), 지후(祗候) 유익겸(柳益謙), 사천감(司天監) 김자기(金子期), 태사령(太史令) 허자단(許子端) 등 호종하던 문관(文官) 및 대소신료들과 환시(宦寺) 등이 모두 해를 입어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자료검토/ 25世 ☞ 해송(海松) 진옥수(陳玉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