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6일(월)
* 시작 기도
주님...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셨습니다.
그러하기에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몸의 덜 귀히 여기는 지체를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준다고 하셨습니다(고전 12장).
그런데 이 종은 어찌 된 건지 내가 가장 좋은 것만 차지하려 하고 제일 높은 곳에 있으려고만 했었습니다.
한 때는 최고 많이, 최고 많이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내가 최고 많이, 그것도 최고로 좋은 것을 얻을 줄 믿었던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역자를 불러 전도집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봤자 얻는 거라곤 쇠락의 법칙에 따라 썩어 없어질 만물 안에 있는 것들인데 말입니다.
나의 영안은 점점 어두워지고 정욕의 눈만 밝아질 뿐이었습니다.
이런 나를 주님께서는 공의로 심판하셔서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그 복음이 나를 살려서 새 생명 곧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주님의 날, 공동체가 함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십자가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 주소서.
예수를 나의 소유물로 오해하지 않고 나의 주요 생명으로 바르게 알도록 나를 장악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욜 2:1-17
제목 :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1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2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
3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들의 예전의 땅은 에덴동산 같았으나 그들의 나중의 땅은 황폐한 들 같으니 그것을 피한 자가 없도다.
4 그의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5 그들이 산꼭대기에서 뛰는 소리는 병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검불을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 강한 군사가 줄을 벌이고 싸우는 것 같으니
6 그 앞에서 백성들이 질리고,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
7 그들이 용사 같이 달리며 무사 같이 성을 기어오르며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되 그 줄을 이탈하지 아니하며
8 피차에 부딪치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며 무기를 돌파하고 나아가나 상하지 아니하며
9 성중에 뛰어 들어가며 성 위에 달리며 집에 기어오르며 도둑 같이 창으로 들어가니
10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11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16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17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 나의 묵상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늙은이들과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애곡을 명하신다.
이 애곡은 단지 슬픔을 표하는 표면적 애곡이 아니라 전심으로 지은 죄를 회개하는 애곡이다.
약혼한 젊은 처녀가 약혼자가 죽었을 때 하는 애곡과 같이 할 것이다.
제사장들 역시 하나님의 성전에 드릴 소제물과 전제물이 없어서 애곡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선지자도 불이 목장과 들의 모든 풀을 살랐음을 인하여 직접 애곡한다.
1절, 한편 시온에서 나팔을 부는 형식으로 경고의 소리를 질러서 그 땅 주민들로 하여금 모두 떨게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될 것이며 이제 곧 임박하였다.
2-3절, 천지가 어두움에 뒤덮인 것 같이 수많은 이방 백성을 통해서 전무후무한 심판이 집행 될 것에 대한 예고이다.
4-5절, 심판을 집행할 여호와의 군대의 위용을 묘사하고 있다.
6절은 여호와의 날에 임할 대재앙에 대한 반응이 나온다.
7-9절, 다시 심판을 집행할 여호와의 군대의 위용이 묘사된다.
10절은 여호와의 날에 발생할 대재앙이 예고된다.
11절은 여호와의 날에 이루어질 심판의 두려움이 예고된다.
12-17절은 선민들로 하여금 이러한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철저하게 회개하고 전 민족이 금식을 선포하고 대성회를 개최하여 여호와께 긍휼을 호소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여호와의 날에 임할 여호와의 군대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4,5,7-9절).
떼를 지어 달려오는 군마와 같다(4).
그들의 소리는 전차들이 산을 넘어가며 내는 큰 소리 같다(5).
불꽃이 마른 줄기를 태우는 소리와도 같다(5).
싸울 태세를 갖추고 전열을 가다듬은 강한 군대와 같다(5).
5절의 ‘불꽃이 검불을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의 의미를 재고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쌀과 보리 농사를 하는 시골에서 자랐다.
특별히 보리를 추수하고 난 뒤에 그 보리 검불 태우는 것을 많이 봤다.
그것은 마치 지옥을 연상케 할 정도로 짚에 공간이 있어서 타닥타닥 하면서 타는 소리가 가히 가공할 만한 소리이다.
오죽했으면 그런 장면 앞에서 백성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겠는가?(6절).
4-6절은유다에 엄습한 메뚜기 때의 모습을 들어 산 위에 진용을 펼친 이방 대군의 위용과 이로 인한 선민의 공포를 묘사하였다.
7-9절은 메뚜기 떼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한 곳에 내려앉아 그곳을 초토화시키는 것을 성을 침공하여 정복하는 이방 군대의 면모와 연결시켜서 장차 임할 심판의 불가피성을 선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성을 뛰어넘고 성중을 장악한 이방 대군이 성난 파도와 같이 일사불란하게 성을 침입하여 유린할 것을 예고한다.
이처럼 여호와의 큰날은 심히 두렵고 당할 자가 없다.
따라서 육신의 잘 되고 못 됨이 본질이 아니라 우리의 영이 헐벗지 않도록 날마다 생명의 양식으로 채워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옷을 찢지 말고 진심으로 애통해 하며 마음을 찢을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그분은 은혜와 자비가 충만하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 곧 사랑이 넘치셔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실 것이다.
오늘 이 시대는 얼마나 많이 먹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영양가 있는 것으로 먹되 얼마나 조금 먹을까를 고심하는 시대이다.
살이 찌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찐 살을 빼기를 원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많이 굶는 것이 자랑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육신의 살을 빼는 것도 좋지만 정말 영적으로도 살을 빼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살찌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살이 뒤룩뒤룩 찐 상태를 완악함이라고 한다.
(마 13: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여기서 ‘완악하다’라는 말이 바로 ‘살이 찌다’는 뜻으로 헬라어로 ‘파퀴노’라 한다.
파퀴노 곧 살이 찐 상태인 완악함은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할 자인 것이다.
그 심판을 통하여 나의 자아가 죽는 것이다.
나의 자아 곧 나의 옛 사람이 죽는 것은 주님이 달리신 그 십자가에 나도 함께 못 박혀 죽는 죽음이다.
그럴 때 비로소 나에게 새 생명이 임하며 그 생명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구약 시대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할 때 옷을 찢어서 그 고통의 깊이를 표현하였다.
하지만 그런 고통을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고 진심으로 회개하여 마음을 찢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마음을 찢는 것이야 말로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기부인이며 주님이 장사되신 그 무덤에 나도 함께 장사되는 생명의 연합이 되는 것이다.
나를 구원한 십자가와 생명 주신 주님의 무덤 앞에서 오늘도 함께 연합의 삶을 이어간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열심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복음을 모를 때는 주를 위하여 내가 최선을 다하고 열심을 다하는 것이 복음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을 낸다한들 그것이 나의 이름을 드러내는 수단이요 방편임을 알았을 때,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습니다.
낯이 뜨뜻하고 화끈거려 도무지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열심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하나의 구실이었습니다.
자기주장의지라는 나의 의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주어지면 죄의 세력이 기회를 타서 주어진 율법 곧 계명으로 내 속에서 탐심을 이루려 합니다.
나는 그런 속셈도 모른 체 주님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그저 나의 열심과 최선을 다하는 시늉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뒤에 아주 음흉한 궤계가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복음을 통하여 그 궤계를 알았기에 내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나의 의는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의만 드러나기 원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사 여호와의 날 곧 마지막 종말의 때가 올수록 더욱 주님을 바라며 그 날을 소망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나의 모든 것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