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에도 산에 가지 않고 동강장 구경이나 하며 놀았으니
바보가 출근하고 바로 조계산을 길게 걷기로 맘 먹는다.
9시 이전에 시동을 거니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
몇 번 시도하다가 결국 긴급출동을 부른다.
키가 크고 호리한 젊은이는 친절한 듯한데 자기 경험상 벌교에서는 수리가 어려우니
순천으로 가자고 한다.
견인 비용이 있느냐니 5,6만원 나올 거라고 한다.
긴 트럭이 와 어렵게 나의 차를 짐칸에 싣고 순천으로 간다.
젊은이는 6만 5천인데 깎아서 6만원만 달라하여 받자마자 떠난다.
다른 르노 차를 보고 있던 미남이 와서 시동을 걸어보더니,
배터리가 약하다고 한다. 조금 어이가 없다.
친절 속에도 이익이 숨어있었다고 생각하니 그걸 몰랐던 내 자신에게 화가 난다.
배터리를 새걸로 교체하고 전조등도 손봐달라고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면서도
케이블을 교체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중고차를 산 내가 감수해야 할 일이다. 다음에 하겠다 하고 할 수 있는데까지만 해 달라한다.
순천에 사는 이들 중에 점심 먹을 이를 생각하다가 그냥 벌교로 와
천자암으로 간다. 공사중인 천자암 앞에 닿자 12시 10분이 넘는다.
절에 들르지 않고 부지런히 고개를 넘어 보리밥집으로 간다.
남주인이 밭에서 괭이질을 하고 있기에 한낮엔 쉬시지요 하니
산 속고은 일할만하다고 하신다.
동동주 반되에 보리밥을 주문하고 큰 호스에서 쏟아지는 물에 가 씻는다.
사람들을 등지고 술을 마시면서 또 한산시를 몇 장 읽는다.
한산이나 습득의 자연생활을 난 짐작도 못한다.
배낭을 서어나무 아레에 기대고 눕는다.
손님들의 아득한 대화가 가물하게 잠에 드는데 어느 순간 두 여성이 내려가며 인사 소리에 깬다.
2시가 지난다.
오랜만에 장군봉으로 올라간다.
배바위에 올라 전망을 볼까 하다가 먼 곳이 흐릴 거고 더울 듯해 바로 장군봉으로 간다.
선암은 신선바위인지 배바위인지 설명이 긴데 애매한 부분이 보인다.
남해쪽의 산은 조금 보이지만 뒷쪽 지리산은 안 보인다.
접치 삼거리쪽으로 융단같은 실사초 지대르르 지난다.
연산봉에는 사진만 찍고 아래 기울어진 바위로 나무를 걸치고 올라간다.
서쪽의 모후산 뒤 무등은 사진에는 잡히지도 않는다.
얼마가 지났는지 모를 막걸리를 마시고 더ㅓ 놀다 내려온다.
송광굴목재 부근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나무통을 들어 옮겨가고 있다.
산딸나무 하얀 꽃을 보며 천자암봉을 지나 돌아온다.
곱향나무는 보지 못하고 중암 선생의 활안선사비 글씨만 멈춰서 보고 온다.
낙성을 지나며 한창기 선생의 생가를 볼까하고 지곡마을로 들어갔으나 물어 볼 사람도 못 만나 허탕치고 나온다.
저녁을 먹은 바보가 산책을 하자하여 동네 논가운데 길을 잠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