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게 멈출 때 찾아오는 것
제 스승인 아잔 차 스님께서는 오랫동안 병중에 계셨습니다.
뇌에 과다하게 물이 고이는 뇌졸중을 앓으셨던 것입니다.
병명이야 무엇이든, 그로 인해 스님께서는 뇌의 일부가 외상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마비가 일어나 스님께서는 구 년 가까이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은 만나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의논했습니다.
저는 자연이 스님의 옷을 가져가도록 하자고 말했습니다.
아잔 차 스님께선 충분히 일했으니 그냥 세상을 떠나게 하자고 말입니다.
그런데 당시 태국의 왕이 그 소식을 듣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잔 차 스님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라고 말입니다.
태국에선 왕이 승려에게 명령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것을 따라야 합니다.
왕은 아잔 차 스님을 돌보는 남자 간호사를 하루 종일 당번으로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두 세 명씩 함께 머물렀습니다. 어느 날 새로운 간호사가
당번이 되었을 때 아잔 차 스님께서 갑자기 호흡을 멈췄습니다.
새로운 간호사는 무척 놀라서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간호사는 아잔 차 스님께서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당번일 때 그런 일을 겪고 싶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날 밤 다른 스님들은 간호사를 안심시켰습니다.
저는 스님이 깊은 명상을 하는 거니까 그냥 그대로 놔두라고 했습니다.
그 간호사는 아잔 차 스님께서 사망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아잔 차 스님께서는 예전에도 이런 일이 여러 번 일어났었다고,
깊은 수행에 잠겨서 그런 거라고 말해주어도 간호사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아잔 차 스님께선 맥박이 뛰지 않았고, 두 세시간 동안 숨을 쉬시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된 간호사는 아잔 차 스님께서 호흡이 없는 동안 수시로
혈액 샘플을 채취해서 혈액 속에 산소가 잘 공급되고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혈액 속의 산소 수위는 변동이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간호사들을 안심시켰습니다. 결과적으로 혈액에 충분한 산소가
있다면 뇌에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산소는 어디서 생기는 지 모르지만 어쨌든 산소가 있었습니다.
아잔 차 스님께서는 결코 죽지 않았습니다.
그는 훨씬 세월이 흐른 뒤에 죽었습니다.
또 한가지는 어느 재가 제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때로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어느 일요일 오후, 남편은 명상에 잠길 것이라고 아내에게 말한 뒤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남편이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안방에서 나오지 않자,
아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러 안방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완전히 고요한 상태에서 앉아 있었습니다.
너무 고요해서 아내는 남편의 가슴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남편의 가슴에 귀를 대보았는데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앰블런스를 불렀습니다.
그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서둘러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응급실의 심전도에는 심장 박동이 기록되지 않았고, 뇌파에서도 두뇌 활동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평평한 선. 딩딩딩딩. 응급 상황!
하지만 이것은 이이야기의 멋진 부분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더 생생하게 느껴지니까요. 평형한 선이었습니다
그들은 FEG를 켰습니다. 또 평형한 선이 나나탔습니다. 그는 뇌가 죽은 상태였습니다.
그 어떤 정신적 활동도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심장도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 명상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운이 좋은 편이었는데, 이유는 그 일요일 오후에 당번이던 의사가 인도에서 태
어난 젊은이였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 태어난 의사는 부모들로부터 때로 깊은
명상에 잠긴 요가 수행자들은 생명 활동을 중단할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의사는 환자의 아내로부터 남편이 명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습니다.
의사는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의사는 남자의 가슴에
전기기구를 댔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영화에서 본 적 있을 것입니다.
전기 충격으로 가슴이 들것 위로 튀어 오르게 하는 것 말입니다.
의사는 그것을 여러차례 했습니다. 그런데도 ECG나
EEG에는 삐 소리가 나지 않고 사십오 분 동안 평평한 선만 나타났습니다.
통상적으로 보면 남자는 사망한 것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그 상태로 있다가 전기 충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명상에서 깨어나야겠다고 결정해서 깨어났습니다.
남자가 눈을 뜨고 드디어 삐 삐 삐 소리가 울렸습니다.
의사는 일을 마쳤고 남자의 아내는 안도했습니다. 이후 의사는
남자를 철저히 검사했지만 그는 더없는 행복감만 느끼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당신한데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남자는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는데 차를 타지 않고 그냥 걸어서 갔습니다.
그는 그것이 너무나 평화로우면서 대단히 황홀하고 평화로운 경험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전기 충격이나 앰블런스의 비상등 수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가 유일하게 불쾌했던 것은 아내가 집에 가서
"다시는 명상하지 마세요! 나는 당신이 죽었다고 생각했다구요!"라고
말하면서 단숨에 비난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가 무엇을 했는지,
어디에 이르렀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이변에 그런 일이 당신에게 일어났나요?"
그는 말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진짜 내려놓았습니다. 진짜 내려놓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수없이 경험했기 때문에 알고 있습니다.
마음은 있는데 뇌는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때로 대단한 독단주의자들입니다.
그것은 과학자들이 평판을 잃는 이유들 중 하나 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실에 직면하여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이론을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
니다. 저는 요즈음 대학에서 과학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제 생각에 그들은 조사 연구보다는 그들의 믿음을 가르치는 듯합니다.
그것은 과학자들이 특히나 서양에서 종교와 부딪치는 이유들 중 하나입니다.
과학과 종교, 종교와 과학, 과학이 그처럼 독단적일 때
그것은 대의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아잔 차 스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잔 차 스님께서 밀림과 숲을 다니며 수행하던 시절, 숲 속 어딘가에 연못,
개울 같은 곳을 찾으면 그 근처에서 밤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아잔차 스님께서 고요히 명상을 하고 있으면 동물들이 물을 먹기 위해서 나타
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동물들은 매우 고요할 때만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물들은 아잔 차 스님께서 고요하게 앉아 있을 때에만,
그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나와서 물에서 놀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깊은 수행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비유한 말씀이었는데,
완벽하게 고요하게 멈출 때만 찾아오는 것이있다고 하셨습니다.
슬프고 웃긴 사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