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9계명을 거스르는 죄
젊은이의 주보 성녀 아녜스
아녜스가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로마의 미네르바 신전에서 제물을 바치는 여사제로 발탁되었습니다. 그것은 디오글레시아노 황제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는데, 아름답고 순결한 소녀를 뽑아서 신전에서 머물게 하며 우상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이교도들이 우상을 위한 의식을 거행하는 동안에 아녜스는 두 손을 치켜 올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며 십자 성호를 그었습니다.
놀란 황제의 군사들이 그녀를 끌어내려서 손과 발을 쇠사슬로 묶을 때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순순히 받아들여서 주변에 있던 이교도들의 마음까지 이상한 감동을 젖게 했습니다.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는 여제사장이 될 뻔한 아녜스는 전혀 슬퍼하는 기색 없이 의연한 모습으로 재판관이 있은 형장으로 나아갔습니다.
재판관은 아녜스가 어떤 고문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자 그녀가 가장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더러운 짓으로 모욕하도록 했습니다. 그녀의 옷을 벗겨서 운집해 있는 이교도들의 한복판에 세워 놓았습니다. 그 같은 치욕을 당하면서도 아녜스는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정배는 나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내 슬픔을 거두어 주실 것입니다.”
아녜스가 입을 열 때마다 군중들이 그녀의 놀라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보자 군사 하나가 아녜스에게 다가가서 추태를 부리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한 줄기 강렬한 빛이 사나이를 향해 비치는가 싶더니 그는 돌연 눈이 멀어 소경이 되었습니다. 그 사나이의 동료들이 안색이 창백해진 사나이를 급히 어깨에 메고 갔습니다.
재판장은 마지막으로 아녜스를 회유하기 위해 그녀를 흠모하고 있던 부유한 귀족 청년과 결혼하겠다는 표시로서 손을 들어올리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본래대로 보장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녜스는 거절의 뜻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저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정배로 모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나를 택하셨고 나고 그것을 원합니다. 그분은 내 모든 영혼을 은총과 사랑으로 아름답게 꾸며 주셨습니다. 저는 천사들이 모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혼인할 것입니다.”
아녜스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그녀는 일어나서 하느님께 기도를 올린 다음 자신의 가냘픈 목을 칼 아래 놓았습니다. 한 번 내려친 칼에 아녜스의 목은 땅에 떨어졌고 천사들이 그녀의 아름다운 영혼을 감싸 안고 하늘나라로 데려갔습니다.
* * *
예수님을 사랑하고 죄를 거부하기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은 성녀의 순결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영혼과 육체의 순결한 덕을 지키기 위하여 성녀가 선택한 길을 과연 내가 선택할 수 있을지, 오늘의 현실은 성녀 앞에 놓인 그날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매 순간 우리 앞에도 그리스도를 따르거나 죄의 길을 따르는 두 가지 길에서 선택은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을 혹시 잊지는 않으셨는지요?
젊은이의 주보이신 성녀 아녜스에게 전구를 구하며 그리스도께로 나아간다면 우리의 영혼도 성녀의 영혼처럼 순결을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마음에 음란한 생각을 품고 죄를 지어 눈이 멀게 된 청년은 하느님의 엄중한 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는 사람은 벌써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했다. 오른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던져 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또 오른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 던져 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 보다 낫다”(마태 5,2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