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만이 영광과 환호를 받는다.
운동경기 중에 야구는 특별한 경기이다.
야구를 연구한 공헌으로 명예의 전당까지 오른 야구 최초의 칼럼니스트인
고(故) 레너드 코페트는
“야구란 무엇인가?(The New Thinking Fan’s Guide to Baseball)”
라는 책을 썼다.
그는 책에서 야구란 두려움(fear)의 경기라 하였다.
두려움이란 야구의 규칙이 너무 까다롭고 투구(投球)나 타구(打球)에 의한 공포가
크기 때문이라 했다.
야구 경기장은 특이하게 부채꼴모양이고 경기 방식이나, 방망이, 공, 장갑등 장비도 별다르다.
축구 배구 농구 탁구 핸드볼 등은 공이 규정된 위치에 들어와야 점수가 나는데
야구는 사람이 들어와야 점수가 난다.
또한 경기(競技) 하나하나가 철저히 기록으로 복기(復碁)되고 선수들은
손발 동작 하나하나가 감독의 철저한 지시를 받는다.
흔히 야구를 기록의 경기라 한다.
그 기록에 의하여 다음경기의 계획을 세운다.
이처럼 과학적인 운동인 야구도 반드시 승자(勝者)와 패자(敗者)가 구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A 라는 팀이 있다.
A팀 감독은 9명의 레귤러 멤버 에게 투수의 공배합 하나하나, 타자의 배팅(batting),
주자의 도루(盜壘)등 철저한 감독의 싸인 하에 경기를 진행하게 한다.
그 결과 A팀이 승리 하였다.
이때 사람들은
“역시 야구는 철저한 과학적 분석과 감독이 일일이 싸인 을 보내야 이기는 것이다”
라는 호평(好評)을 한다.
B팀이 있다.
B팀은 A팀과는 다르게 기본적인 작전만 세우고 거의 80%는 선수들의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선수 판단으로 경기를 하라고 재량권(裁量權)을 주었다.
그 결과 B팀이 승리하였다.
이때 사람들은
“야구는 감독의 하나하나 싸인 보다 선수자신의 판단이 중요하다”
고 역시 승리의 호평(好評)을 하였다.
AB팀의 경기 과정이 반대로 나타나는 결과에도 관전평은
“승리(勝利)”를 중심으로 해석하였을 것이다.
폭우(暴雨)로 수해(水害)를 입은 슬픔과 추석명절의 희비(喜悲) 말미에 카리브해의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U-17 여자월드컵” 우승소식이 전하여 대한민국이
온통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정말 장한일이다 !
더 이상 칭찬할 말이 필요 없고 감격(感激)만 있을 뿐이다.
특히 결승전에서 일본을 이겼으니----
승부차기를 한 후에 축구장에서 승자의 환호(歡呼)와 패자의 비통(悲痛) 이
확연히 구분되었다.
TV를 통해 승리를 확인한 국내에서는 대통령의 축하전화와 오찬이 약속되었다.
여민지 선수의 “최우수 선수상과 득점왕 석권”
“불모지서 핀 희망의 꽃 장하다 고맙다”
“될성부른 재능이었다”
“전국 선수 345명중 21명으로 만든 기적의 드림팀”
“똘똘한 선수를 잘 키웠다”
“덕장 최덕주 감독 아버지 리더십”
신문의 3면을 전부 축구우승으로 장식하였다.
절대로 과찬(過讚)이 아니다.
승리에 따른 보상(補償)으로 당연한 찬사(讚辭)다.
어떠한 수식어(修飾語)로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값진 승리였다.
승자에게는 힘들고 어려웠던 지난 과정들이 상세하게 소개되면서 승리까지의
험난했던 길을 아름답게 소개한다.
그러나 패자(敗者)에게는 지난과정들이 책임에 대한 추궁과 힐책(詰責)으로 돌아온다.
어찌 패자(敗者)라 하여 계획과 훈련을 소흘히 하였겠는가.
그러나 세상은 패자(敗者)에게 연민(憐憫)의 눈길은 보내지 않는다.
과정(過程)과 원인(原因)은 중요하지 않다.
세상은 결과만을 볼뿐이다.
이것이 어디 운동경기뿐이 겠는가.
운동경기를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이라하여 건전한 운동가(運動家) 정신이므로
경기도(競技道)라고도 한다.
유럽에서는 페어플레이(fair play)와 일체(一體)를 이룬다고 하여
기사도정신(騎士道精神)이라고도 한다.
기사도정신이란 무용(武勇), 성실(誠實), 명예(名譽), 예의(禮儀), 경건(敬虔),
겸양(謙讓), 약자보호(弱者保護)의 덕목(德目)을 가춘 중세 서유럽 봉건 제도의
꽃으로 불린 기사들 규범의식을 말한다.
신라의 화랑도(花郞道) 정신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올림픽의 정신을 르까프(Lecaf)라하여 더 빠르게(citus) 더 높게(alyus) 더 강하게(fortis)
하는 스포츠의 도전정신, 창조정신 으로 지구상의 젊음의 축제를 상징하였다.
그러나 스포츠는 총을 들지 않은 전쟁과 다름이 없다.
승리를 향한 전장(戰場)에서는 이 모든 아름다운 이념과 말들이
허구(虛構)에 불과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승자에게만 영광의 갈채를 보내고 환호한다.
염랑세태(炎凉世態)란 말은 더우면 서늘한 곳을 찾고, 추우면 따듯한 곳을
찾는 것이 세상인심이란 뜻이다.
중국 전국시대 유세가(遊說家)인 소진(蘇秦)이 가난했을 때는 친척 친구 심지어
가족도 처다 보지 않았는데 출세하여 그의 이름이 천하에 떨치니 모두 칭송하고
고개를 숙인다는 세상인심을 말한 고사성어이다.
감독의 싸인이 있든 없든, 눈치껏 반칙을 하던 심판이 오심을 하던 과정은
문제 될 것이 없는 것이 오늘날 스포츠 전장(戰場)의 현실이다.
승리만 하면 모든 오욕(汚辱)이 묻히고 영광의 월계관(月桂冠)을 쓴다.
이것이 지금세상 인심이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適者生存),
승자만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세태다.
역사도 승자의 중심으로 기록되는 것이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 승자의 기록이고,
조선왕조실록도 대부분 승자중심이 많다.
조선왕조의 왕릉42기(2기는 북한에 있음)를 답사하여도 왕권이 강(强)
하였던 태조 이성계, 태종, 세조(수양대군)의 릉(陵)은 특별히 화려하다.
반대로 영월에 있는 단종의 능은 매우 수수하다.
2차 대전 때 연합군이 드레스덴, 퀼른, 베를린, 도쿄대공습으로
수백만의 민간인을 폭살(爆殺)하고,
카타르고의 한니발 장군이 로마를 정복할 때 죄 없는 민간인을 살해하면서도
승리자로서의 정당함을 주장하였다.
세상무대는 월계관(月桂冠)을 쓴 승자에게만 주인공됨을 허용한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