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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8. 12. 큐티
룻기 3:1 ~ 11
현숙한 여인 룻을 책임지고자 하는 보아스
관찰 :
1) 룻을 보아스에게 시집보내기로 작심하는 나오미
- 1절.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a. 나오미는 작정을 하고 있습니다. 보아스가 나이와 신분과 물질의 차이가 비록 많지만, 그야말로 사랑하는 며느리 룻을 맡기기에 가장 합당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여인 나오미가 보아스의 신앙인격을 염두에 두었기에 볼 수 있는 믿음의 영역이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그녀에게 보여주신 것이라 할 것입니다.
b. 나오미에게 있어서 앞으로 계속해서 룻과 둘이서 과부2대로 지내는 것은 합당하지 못하다고 여겼었습니다. 아마도 룻이 자신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 이미 나오미는 룻을 재가 시킬 것을 작정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것이 그녀의 소망이었지만 사실은 망하는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룻이 떠나면 자신을 봉양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나오미가 룻을 떠나 보내는 것은 자신의 노후를 포기하는 것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c. 그러나 나오미는 진정으로 룻을 위해서 이 일을 진행하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나오미가 룻에게 베푸는 헤세드였습니다.
- 2절.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a. 나오미는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이제 전략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친족으로서 룻이 계대결혼에 의해서 재가하는 것이 합법적이 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b. “친족”이라는 것은 “기업 무를 자”(גָּאַל, 가알)로서의 친족인 보아스이기에 그에게 접근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c. “גָּאַל”(가알)은 '되찾다', '무르다', '구속하다'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의 가알 제도'는 하나님께로부터 할당받은 기업을 영구히 보존하고, 혈족을 유지하며, 그리고 부당한 피해를 당했을 경우 이를 보상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에서 생겨났습니다. 따라서 가알이 된 자는 '가알의 의무'를 감당해야 했는데, 그것은 곧 (1) 가난한 혈족의 땅을 도로 사주어야 했고(레 25:25,26), (2) 부당한 피해를 당한 친족을 위해 복수할 책임을 져야 했으며(민 35:12,19,21), (3) 그 친족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대를 이어주어야 함은 물론, 심지어 그 친족의 죄 값을 대신 받기까지 했습니다(민 5:8).
d. '가알의 자격'으로서는 a. 혈연적 관계에 있을 것(신 25:5-7), b. 자원해야 할 것(3:13), c. 가알로서의 능력을 구비할 것 등이 있습니다(레 25:25).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베들레헴성에서 유력한 자(2:1)이며, 친족에게 호의를 베풀 줄 아는 보아스가 엘리멜렉 가정의 가알로서 가장 합당했던 것입니다.
e. 나오미는 이러한 율법의 내용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보아스의 행적을 조사했고, 그날 밤을 가장 좋은 시간으로 여긴 것입니다. 당시 팔레스틴에서의 추수 방식은 기후 상 밤에 바람이 불고, 그 바람을 이용하여 낟알과 지푸라기나 보리 수염 등을 날려버리는 타작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더구나 밤이 늦도록 타작을 하고 그 타작 마당의 곡식 더미 곁에서 자는 것은 일반적인 행위였습니다. 그랬기에 타작 마당의 그러한 상황을 이용하고자 한 것입니다.
- 3절.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a. 보아스는 추수를 마친 일꾼들에게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렇게 함께 그 동안의 수고를 치하하고 먹고 마셨습니다.
b. 그리고 돌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잠을 잤습니다. 날마다 그랬다기 보다는 그날은 추수를 기뻐하는 잔치의 날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오미는 룻에게 예쁘게 단장할 것을 명하고, 잔치가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4절.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a. 이것은 자칫 부도덕한 모습으로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의 ‘가알제도’에 의하면 이것은 부도덕한 행위가 아니라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적극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b. 이것은 반드시 동침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타작 마당이고, 다른 일꾼들이 주위에서 자고 있는 상황이기에 남녀가 동침하기에 합당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c. 그런 타작마당에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는 것은 기업 무를 자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줄 것을 기대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 5절 ~ 6절.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a. 룻이 이 상황에서 자칫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겼다면, 그야말로 산통이 깨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나오미의 신앙 인격을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보아스의 신앙 인격을 신뢰했습니다.
b. 그렇기 때문에 시어머니 나오미가 시키는 자칫 부끄러울 수 있는 명령을 그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2) 현숙한 여인
- 7절.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a. 추수 잔치가 끝이 난 후에 보아스는 기쁨으로 잠에 들었습니다. 전과 같이 곡식 단을 지키기도 하면서 곡식 단 더미에서 즐겁게 잠에 든 것입니다.
b. 룻은 보아스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한 뒤에 조심스럽게 그의 이불 밑으로 들어가 거기 누웠습니다. 여인으로서 이렇게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환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c. 그러나 현숙한 여인 룻이 이렇게 시어머니의 말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 8절.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a.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보아스는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깨게 되었습니다. 이제 술기운도 어느 정도 사라졌던 상황이었습니다. 잠자리가 바뀐 상황에서 뒤척이는 중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었습니다. 자기 이불 속에 한 여인이 누워있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 9절.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a. 보아스는 놀라서 그 여인의 정체를 묻고 있습니다. 이 때 룻은 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b. 룻은 보아스가 자신의 “가알”이 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결혼해 주는 것이 룻을 그 날개 그늘 아래 덮어주는 것이기에 룻은 보아스의 옷자락을 펴 자신을 덮어줄 것을 구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룻은 율법을 의지하는 것 외에 자신의 적극적인 구애의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 10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a. 보아스는 이제 룻의 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늙은 자신이 룻과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것으로 여겼었는데, 자신에게 이렇게 찾아와 구혼을 하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b. 룻도 여인이기에, 그리고 아름다운 여성이기에 얼마든지 다른 젊은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아스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늙은 자신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부끄럽지만 구혼을 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축복하고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c. 룻이 처음 베풀었던 인애는 자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리고 시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베들레헴에 왔던 것이며, 나중에 베푼 인애는 시모를 잘 공경할 뿐 아니라 젊은 과부로서 정욕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처음 인애'는 죽은 남편에게 베풀었던 룻의 사랑이며, '나중 인애'는 근족과 결혼함으로써 그 남편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남기고자 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d. 여기서 보아스가 “인애”(חֶסֶד,)라는 말로 그녀의 현숙함을 표현했는데, 이 말은 룻기 전체의 주제이고, 너무나 중요한 단어입니다. '인애'(仁愛)란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חֶסֶד‘(헤세드)는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의미하며, 때로는 인간 관계에서 끊을 수 없는 우정이나 사랑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보아스는 룻의 행위가 진실된 사랑에 근거했음을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 11절.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a. 보아스는 룻을 수치스럽게 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 보아스가 룻을 정욕의 대상으로 삼아 그 자리에서 동침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여성이 먼저 자신을 유혹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b. 보아스는 분명하게 자신이 룻을 책임지고, 자신의 그늘 아래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빌미로 룻의 육체를 탐하지 않고 있습니다.
c. 보아스는 도리어 룻이 얼마나 현숙한 여인인지에 대해서 베들레헴 성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다고 그녀를 위로 하고 있습니다. 룻은 보아스의 이러한 대우에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릅니다.
d. 후일 잠언을 기록한 솔로몬은 현숙한 여인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1)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게 하며(잠 31:11-19), (2) 가난한 자에게 선을 행하고(잠 31:20), (3) 남편을 존귀케 만들며(잠 31:23), (4) 모든 언사에 지혜와 규모가 있고(잠 31:26), (5) 부지런하며 게으르지 아니하고(잠 31:27), (6)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자(잠 31:30,31)라는 것이었습니다. 룻은 바로 이러한 현숙한 여인으로서의 조건을 모두 구비한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e. 베들레헴에서는 이미 룻의 현숙함에 대해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그렇게 보아스는 룻을 대하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나오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대로 보아스가 자신의 가문의 ‘가알’이 됨을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고, 또 자신이 딸같이 여기는 룻에게 수치스럽게 여겨질 수 있는 계책을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시어머니의 명령에 또한 순종하는 룻은 단순히 시어머니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이러한 그녀의 행위는 보아스에 의해서 칭찬을 받는 것으로 보상을 받았습니다.
2) 보아스는 현숙한 여인 룻을 정욕적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의를 갖추어서 룻을 대했고, 룻을 현숙한 여인으로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타작마당에서 룻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명예롭게 대해주고, 먼저 보아스 자신보다 더 가까운 친족에게 가서 기업무를 책임을 그에게서 자신에게 돌리는 행위를 먼저 행한 것입니다.
3) 나오미는 상당한 결단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나오미의 지도를 따르는 룻도 대단한 결단력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을 만치 그들의 상황이 절박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궁극적으로 소망한 것은 하나님의 “헤세드”(חֶסֶד)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애, 자비, 사랑, 긍휼, 언약, 실수하지 않으시는 은총을 구했기에 그러한 행위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헤세드는 두 과부를 살리시고, 늙은 보아스를 살리시고, 이스라엘을 살리시고, 온 인류를 살리시게 되었습니다.
적용 :
1) 헤세드의 원리는 언제나 상호교환적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룻기에서 다루고 있는 헤세드(חֶסֶד)는 언제나 그렇습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헤세드를 베풀고, 룻도 나오미에게 헤세드를 베풀었습니다. 룻이 보아스에게 헤세드를 베풀고, 보아스도 룻에게 헤세드를 베풀었습니다. 그러한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헤세드가 나오미에게, 룻에게, 보아스에게 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나도 인내하는 가운데 내게 허락된 이들에게 헤세드를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또 무너지지만 그럴지라도 다시금 다짐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헤세드를 내가 진실로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2) 말씀에 대한 확신이 나오미, 룻, 보아스를 움직이게 했고, 수치스러울 수 있는 것이 명예가 되도록 이끌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언제나 수치스러운 듯이 보이는 것도 명예롭게 만들게 해 주시는 것이 됩니다. 내가 주님 앞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미련해 보여도 그것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고, 말씀에 의거하여 죽도록 충성할 때 주님은 그것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