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 예수님
오늘은 우리 민족의 명절인 추석, 한가위입니다.
추석(秋夕)은 한가위, 중추(仲秋), 중추절(仲秋節), 가배일(嘉俳日)로 부르기도 하며, 음력 8월 15일에 치르는 명절로서 설날과 더불어 한국인에게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명절입니다. 가을 추수를 끝내고 햅쌀과 햇과일로 조상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차례를 지내며, 특히 송편은 추석에 먹는 별미로 들 수 있습니다. 추석에는 일가친척이 고향에 모여 함께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해마다 추석이 오면 전 국민의75%가 고향을 방문하여 전국의 고속도로가 정체되고 열차표가 매진되는 현상이 벌어지는데, 이를 흔히 '민족대이동'이라고 부릅니다.
덕분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추석에만 들어와라’는 새로운 속담이 생겼다는 설이 있습니다. 한국 전역이 거북이걸음을 하는 자동차들로 인해, 운전자들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 하고 피를 말리는 듯한 고통에 시달리지만, 운전자가 아닌 사람들은 차 안에서 편하게 폰 게임을 하거나 잘 수 있다고도 합니다.
참고로 秋夕이란 한자어 자체도 한국에서만 쓰는 한국산 한자어로, 중국에서는 이 명절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보통 중추절(中秋節)이란 말을 쓴다고 합니다.
추석에는 추석빔을 입고 햅쌀로 빚은 송편과 여러 가지 햇과일·토란국 등 음식들을 장만하여 추수를 감사하는 차례를 지내고, 맛있는 음식을 이웃과 다정하게 나누어 먹으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아무리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도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겁게 보냈으므로 "1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도 생겨났다고 합니다. 온갖 곡식이 무르익는 결실의 계절로서, 가장 밝은 달밤이 들어 있으며,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성묘를 드립니다.
추석 때는 여러 가지 행사가 펼쳐지며 놀이가 벌어집니다. 소싸움·길쌈·강강술래·달맞이 줄다리기, 씨름 등을 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지금은 연예인이나 외국인 장기자랑, 성룡 영화, 아이돌 육상대회 등을 보거나 고스톱이나 내기 윷놀이를 하며 가족끼리 정과 우애와 칼부림과 증오를 나눕니다. 일부 노총각, 노처녀, 백수, 백조, 맏며느리들과 주부들에게는 악몽같은 명절이기도 합니다. 전날부터 전 부치고, 음식하고 송편 빚으며 쉬는 시간 없이 온갖 고생을 하고 나면 뒤늦게 동서나 시누이들, 혹은 며느리들이 와서 웃음을 흘리며 ‘어머, 올해도 좀 늦었지요.’ 하고는 어머니에게 용돈 몇 푼을 드리고 냉장고를 탈탈 털어가곤 하지만, 집안 남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텔레비전의 걸그룹들을 바라보며 흐뭇해 하며, 고스톱과 술잔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쌓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결혼도 못하고 있는게 서러운데, 평소에는 관심도 없어 보이던 친척들이 추석만 되면, ‘언제 결혼하냐, 좋은 사람은 있냐?’, ‘그 나이 될 때까지 뭐했느냐?’, ‘우리 애기 좀 봐줘라!’ 하며 괴롭힙니다. 조카들은 애지중지 모아놓았던 피규어들을 탈탈 털어가고, 컴퓨터에 온갖 게임을 다운받아 바탕화면을 악성코드로 가득 채워 놓고 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추석은 추수기를 맞이하여 풍년을 축하하고,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제사를 지내고, 이웃과 더불어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한국 최대의 명절입니다.
이러한 민족 최대의 명절에 이 멀리 청북까지 찾아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실, 우리가 많은 고생을 하면서도 고향을 찾는 까닭과 이유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 하고 찾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가족을 찾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다양한 기본적인 본능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통해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됩니다.이는 심리적인 안정성을 우리에게 제공하게 됩니다. 단적인 예로, 사람은 부모의 얼굴을 아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심리적 안정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 나의 뿌리와 바탕을 만들어 주신 조상들을 기억하고 기도해 드립니다. 아울러 우리가 땅으로부터 얻는 모든 풍요의 결실을 우리는 오늘 기억합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세상의 모든 생명이 결실이 있는 것과 같이 이제 우리들 자신이 결실을 맺어 추수 당하게 되는 때가 있다는 것을 전해 줍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일을 알지 못하고 재물에만 몰두하는 한 부유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내일이 다가오는 사실에 당연한 듯 살아가며 우리는 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힘을 씁니다. 농부가 정성을 들여 곡식을 키워내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힘을 다해 보다 낳은 우리 삶의 소출을 얻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일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죄도 아니요, 잘못된 일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그러나 부자의 다음의 말은 새겨봐야 합니다.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는 결국 자신만의 안식을 위해, 자신만의 즐거움을 위해 일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야기의 끝에“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하고 말씀해 주십니다.
제2독서에서는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하고 말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살아왔는지, 왜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려고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 앞에 부유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우리 조상들은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고 마시며 함께 기뻐했을까요? 지금은 추수를 하는데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기계가 있으니까요. 대규모 인원이 함께 작업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목으로 ‘나 혼자 산다’가 나왔겠습니까. 그러나 옛날 우리 조상님들께서는 서로 돕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조상들의 현명함은 바로 다름 아닌 공생에 있었습니다. 서로 도움으로써 서로가 더 잘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가위 명절은 추수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석을 통해 한 해의 농작물을 수확하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한 나의 뿌리인 조상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다른 의미에서 조상들께 대한 감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감사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들도 또한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내가 맺은 하루하루의 결실에 대해 생각해 보고 하느님께 봉헌하는 시간을 갖는 것,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소중한 마음을 우리가 마련해 내지 못한다면, 어느 날 갑자기 우리들의 삶을 하느님께서 거두어들이고 추수하시고자 할 때에, 아무것도 결실로 내어 드리지 못한 죄송스럽기 만한 삶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뿌리를 되짚어 봅니다. 가족들이 한데 모여 우리의 선조들과 조상님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생각해 봅니다.
주님께 부끄럽지 않은 삶을, 매일 하루 내 삶의 모든 것에 감사드릴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주님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결심하며 주님께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