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에서 맛볼수 있는 별미들
울릉도의 음식은 대체로 소박하고 서민적이다. 토박이들이 즐겨먹는 향토음식에서도 맨손으로 험준한 자연에 맞서 삶터를 일군 개척민들의 근면성과 검약정신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래서 울릉도의 향토음식은 호사스럽거나 기름지거나 장식이 많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단순하고 소박하면서도 재료의 고유한 맛과 신선함을 고스란히 담아낸 음식이 대부분이다.
울릉도의 대표적인 별미인 울릉약소, 홍합밥, 산채비빔밥, 오징어, 호박엿의 다섯 가지는 '울릉오미'(鬱陵五味)라 불린다. 적어도 이 다섯 가지만큼은 꼭 한번쯤 맛봐야 제대로 울릉도를 여행했다고 말할 수 있다. 울릉오미는 아니지만, 따개비를 넣은 따개비밥과 칼국수도 울릉도가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별미이다.
울릉약소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해양성기후를 띠는 울릉도에는 목초(牧草)가 풍부하다. 그 종류만도 575종에 이르는데, 그 중에는 섬바디·부지깽이·전호·복분자·독활·엉겅퀴·보리수·송악 등 소가 좋아하는 목초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현실적으로 울릉도에서는 배합사료로 소를 사육하기가 어렵다. 육지에서 운반해오는 일도 쉽지 않거니와 값도 비싸서 소에게 먹일 엄두조차 낼 수가 없다. 그러니 울릉도의 소는 여기저기 지천으로 돋아난 자생식물만 뜯어먹고 자란다. 이 섬의 자생식물은 산채 아니면 약초이다. 그것을 먹고 자란 소의 고기 자체도 약이 된다. 그래서 약소(藥牛)다.
울릉약소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섬바디이다. 미나리과의 울릉도 특산식물인 섬바디는 위암, 자궁암, 대장암 등의 암세포의 확산을 억제시키는 효과가 있는 약초이기도 하다. 섬바디 줄기를 쪼개면 우유처럼 하얀 즙이 흘러나오는데, '풀에서 나는 우유'라 불리는 이 즙 때문에 소가 유달리 섬바디를 좋아한다. 그래서 한때는 울릉도 최대의 평지인 나리분지를 비롯한 섬 곳곳에 많은 섬바디밭이 조성되기도 했다.
울릉약소의 시조는 1883년에 첫 개척민과 함께 들어온 암수 1쌍이다. 그 뒤로 1892년 6월에는 울릉도 주민 몇몇이 경상도 울진에 가서 암컷 3마리, 수컷 2마리의 송아지를 콩 30섬과 맞바꿔 들여오기도 했다. 이후 울릉도의 소는 사육두수가 크게 늘어났고, 1960년대에는 매년 100~200 마리씩 육지로 반출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포항 우시장에는 울릉약소를 구입하러 온 상인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게다가 울릉약소는 육지의 소보다도 훨씬 높은 값에 거래되었다. 2005년 현재 울릉약소는 650마리에 불과해서 자체수요를 충당하기도 빠듯한 실정이라고 한다.
울릉약소는 근육질의 붉은 빛이 육지의 소고기보다 선명하고 지방질의 색깔은 약간 누렇다. 자생식물 특유의 향기와 맛이 배어 있어 노린내도 나지 않는다. 또한 배합사료로 사육된 육지의 소들과는 달리, 육질이 비교적 질긴 편이다. 옛날 시골에서 풀과 여물만 먹여 키운 토종한우와 아주 흡사한 육질과 고기 맛을 지녔다. 그래서 '입안에서 살살 녹는 고기 맛'에 길들여진 육지 관광객들 중에는 울릉약소가 '그저 그렇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울릉약소의 진미를 제대로 맛보려면 몇 가지의 방법이 있다. 울릉약소는 고기 맛을 돋우기 위해 양념이나 숙성을 하지 않는다. 갓 잡아 신선한 생고기이기 때문에, 얇게 썰어서 살짝 익혀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육회로 먹어도 좋을 만큼 신선해서 오래 구우면 오히려 고기가 단단하고 푸석해진다. 불판에 닿자마자 바로 집어먹는 게 좋다. 육질이 고들고들하고도 쫄깃한 약소는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해지며 깊은 맛을 낸다. 잊지 말아야 것이 하나 더 있다. 약소 고기는 상추나 깻잎에 쌈장을 넣고 싸먹는 것보다도, 바닷물에 절여서 설탕과 식초로 양념한 명이절임에다 싸 먹어야 더 맛이 좋다.
추천 맛집/ 향우촌(도동, 791-8383), 울릉약소숯불가든(도동, 791-0990), 삼정숯불가든(저동, 791-3536), 일호식육식당(천부, 791-0058), 창성식당(남양, 791-0074)
홍합밥
울릉도의 홍합은 육지의 포장마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서해나 남해의 얕은 바다에 잠긴 갯바위에 다닥다닥 붙어서 자라는 에서 따온 육지의 홍합은 살이 무르고 삶으면 살색이 하얘지며 크기도 잘다. 그래서 속살보다도 시원한 국물이 술꾼들의 술안주나 속풀이 국으로 더 인기가 좋다.
반면에 '열합', 또는 '참담치'라고도 불리는 울릉도 홍합은 크기가 손바닥만하고 속살이 붉은 빛을 띠며 육질은 쫄깃쫄깃하다. 겉껍질에 각종 해초와 바다생물이 붙어 있어 거칠다는 것도 육지 홍합과 다른 점이다. 주로 수심 20m 이상의 비교적 깊은 바다에 서식하는 울릉도 홍합은 해녀들이 잠수를 해서 손으로 채취한다.
홍합은 구이, 전골, 불고기로도 조리해 먹지만,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홍합밥이다. 잘게 썬 홍합을 넣고 갓 지어낸 홍합밥에다 김과 양념장을 넣고 쓱쓱 비벼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이 홍합밥은 한꺼번에 미리 해두지 않는다. 손님으로부터 주문을 받아서 밥을 짓는 탓에 적어도 20~3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불필요한 시간낭비를 줄이려면 미리 전화로 예약한 뒤에 찾아가는 게 좋다.
추천 맛집/ 보배식당(도동, 791-2683), 99식당(도동, 791-2287), 두꺼비식당(도동, 791-1312), 홍일점가든(저동, 791-0880), 창성식당(남양리, 791-0074)
산채비빔밥
어느 관광지나 흔한 게 산채요리 전문점이다. 특히 등산로나 절 입구에는 어김없이 '산채촌'(山菜村)이 형성돼 있다. 다른 음식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 듯이 죄다 산채전문점이다. 메뉴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에서 정식·비빔밥·전 등의 산채요리만 몇 끼니를 계속 먹고 나면, '산채'에 신물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산채비빔밥을 별미라고 말하면 손사래를 치거나 고개부터 내젓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울릉도의 산채는 품격이 다르다. 육지의 산채는 대개 중국에서 수입됐거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어 맛과 향이 덜하다. 반면에 울릉도의 산채는 약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봄부터 잔설을 뚫고 싹을 틔우기 때문에 맛이 좋고 향도 깊다. 게다가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비옥한 토양, 그리고 소금기 섞인 해풍 등의 자연조건도 울릉도 산채의 향미(香味)를 높이는 데에 일조한다.
울릉도의 대표적인 산나물로는 전호, 취나물, 부지깽이, 삼나물, 명이, 고비, 땅두릅, 섬더덕 등이 있다. 대부분 이른봄에만 채취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중 가장 먼저 돋아나는 것은 전호이다. 바디나물, 사약채, 향채 등으로도 불리는 전호는 같은 미나리과의 식물인 섬바디와 비슷하게 생겼다. 그래서 이른봄에 울릉도를 찾은 관광객들 중에는 전호를 채취한다며 산에 올라가서는 섬바디만 잔뜩 뜯어오는 사람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전호는 대체로 12월경부터 싹이 돋아나기 시작해서 1월 말이나 2월 초순경이면 뜯어서 나물로 먹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전호를 채취하려면 산비탈마다 두텁게 쌓인 눈을 헤쳐야 된다. 향미가 독특한 이 나물은 저장성이 떨어져서 육지로 내보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울릉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데, 주로 울릉약소 전문식당에서 샐러드로 내놓는다.
울릉도 사람들이 가리키는 취나물은 육지의 참취가 아니다. 울릉도 특산식물의 하나인 울릉미역취이다. 육지에 자생하는 미역취보다 훨씬 잎이 커서 '큰미역취'라고도 한다. 이 취나물은 울릉도의 산채 가운데 비타민 A의 함유량이 가장 높아서 피부를 매끄럽게 해주고 감기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며 시력을 좋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울릉도 전역에서 재배되는 취나물은 이른봄부터 채취하기 시작해 한해 서너 차례나 채취할 수 있어서 어떤 농작물이나 약초보다도 수익성이 좋다. 그리고 가장 맛이 좋은 초벌나물은 곧장 생채(生菜)로 육지의 시장에 출하된다. 두벌 이후의 나물은 대부분 삶은 뒤 말려서 저장한다.
취나물과 같은 국화과 식물인 부지깽이는 섬쑥부쟁이의 울릉도 방언이다. '배고픔을 알지 못하게 해주는 풀'이라는 뜻의 '부지기아초'(不知飢餓草)에서 유래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울릉도에만 자생한다. 이른봄인 3월부터 채취하는 부지깽이나물은 향이 아주 좋다. 그리고 가을이면 순백의 정갈한 꽃이 소담스레 핀다.
삼나물은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눈개승마의 어린 싹을 삶아서 말린 것이다. 야생상태의 눈개승마는 주로 강원도 이북의 고산지대에 자생하지만, 삼나물이 생산되는 곳은 울릉도뿐이다. 알칼리성 산채인 삼나물은 씹으면 쫄깃쫄깃하고 쇠고기 맛이 난다고 해서 '고기나물'로도 불린다. 남자들의 양기를 돋워주고 해독작용이 탁월하며, 비빔밥·무침·찌개·탕류 등 고급요리의 재료로 많이 쓰이는 나물이다.
명이는 울릉도 개척민들의 목숨을 부지시켜준 산채이다. 오늘날에는 울릉도의 음식점마다 초간장에 절이거나 김치로 담근 명이를 밑반찬으로 내놓는다. 그래서 산마늘이라는 본래 이름보다도 '명이'(命荑)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아직까지는 인공재배가 불가능해서 순 자연산만 유통된다. 꽃은 파꽃을 닮았고 맛은 마늘과 흡사하다. 외떡잎식물인 명이는 이른봄에 돋아난 어린잎만 먹을 수 있다. 커갈수록 잎이 질겨지고 매운맛이 강해지는 탓이다. 그리고 한꺼번에 많이 섭취하면 입안에서 육고기의 노린내 같은 냄새가 날 수도 있다.
울릉도에서 처음으로 인공재배에 성공한 고비는 고사리와 같은 양치식물이다. 잎을 펼치기 전의 어린 싹이 마치 개의 척추 뼈를 닮았다고 해서 '구척'(狗脊)이라고도 한다. 고사리와 마찬가지로, 고비나물도 이른봄에 돋아난 새싹을 삶아서 말린 것이다. 생김새와 쓰임새도 고사리와 비슷해서 각종 양념을 넣고 볶아먹거나 비빔밥·고깃국·찌개·탕류 등의 주요재료로 활용된다. 하지만 고사리는 남자의 정력을 감소시킨다는 속설이 있지만, 고비의 인경(鱗莖; 비늘줄기)은 오히려 그 반대의 효험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울릉도에서는 "기력이 쇠해 돌아가신 조상께 드릴 수 없다"고 해서 제사상에 고사리 대신 고비를 올린다.
울릉도의 두릅은 흔히 '땅두릅', 또는 '땃두릅'이라 불리는 독활이다. 그 뿌리는 근육통·하반신마비·두통·노졸중 등을 치료하는 약재로 쓰인다. 울릉도 전역에서 무리 지어 자생하는 땅두릅은 어린 싹을 식용으로 쓰는데, 향기가 좋고 사각거리면서 씹히는 맛이 시원하고 담백하다. 주로 생채를 고추장이나 마요네즈에 찍어먹거나 초고추장무침·볶음·절임 등으로 조리해 먹는다.
울릉도에서 재배되는 섬더덕은 심(心)이 없고 부드럽다. 또한 육지의 더덕은 껍질을 벗긴 뒤 찬물에 담가서 쓰고 아린 맛을 우려내는 반면, 울릉도산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구워먹을 수 있다. 또한 2~3년 이상 키운 굵은 더덕이 대부분이어서 살이 통통하고 즙도 많다. 더덕은 무기질·단백질·지방·탄수화물·비타민B 등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영양식품인데, 주로 구이·장아찌·술·즙·죽 등으로 다양하게 조리된다.
울릉도의 산채비빔밥은 바로 이런 산나물을 한꺼번에 섭취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매력적이다. 그야말로 약식(藥食)이자 최고의 '웰빙음식'으로 평가할 만하다.
나리분지의 산마을식당에서는 산채로 전을 부쳐주기도 한다. 이 산채전은 어떤 야채전보다도 고소하고도 담백해서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짐작컨대, 맛 좋고 향이 깊은 울릉도 산채가 주재료로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주인 아주머니의 남다른 손맛도 간과할 수 없겠다.
추천 맛집/ 산마을식당(나리분지, 791-6326), 나리촌백숙(나리분지, 791-6082), 두꺼비식당(도동, 791-1312), 홍일점가든(저동, 791-0880)
오징어
오징어도 역시 우리나라의 어디서나 산채전문점만큼 흔하다. 그런데도 울릉도에 가면 팔팔 뛰는 오징어를 즉석에서 회로 친 오징어회와 오징어 내장을 넣고 끓인 오징어내장탕을 반드시 먹어 봐야 한다. "왜?"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울릉도 오징어가 가장 맛있으니까."
울릉도 바다는 맑고도 깊다. 그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오징어의 맛도 바다처럼 맑고 깊다. 게다가 오징어잡이 철에는 매일 아침마다 펄펄 뛰는 오징어가 항구로 들어온다. 또한 유통과정도 어민→횟집→소비자의 3단계로 단순해서 어느 지방보다도 싱싱하고 물 좋은 오징어를 맛볼 수 있다. 반면에 다른 해산물들은 의외로 귀한 편이다. 육지 사람들이 즐겨먹는 조개, 새우, 조기, 갈치 등도 울릉도에서는 귀물(貴物)이다. 오징어 이외의 어종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의 잡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징어의 어획량에 따라서 울릉도 어항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어민들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한다.
울릉도 오징어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역시 회로 먹어야 한다. 오징어잡이 배가 많이 드나드는 도동항이나 저동항의 노점 횟집에서 아주머니들이 숙련된 솜씨로 썰어주는 오징어를 초장에 찍어 먹으면, 말 그대로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거기에다 소주 한잔을 곁들이면 신선이 따로 없다.
오징어내장탕도 오래도록 잊지 못할 울릉도의 별미이다. 잘 손질된 오징어의 내장을 한번 끓여낸 다음 호박잎·풋고추·홍고추를 송송 썰어서 얹어낸 음식이 오징어내장탕이다. 맛이 구수하고 시원해서 해장국으로도 그만이다.
말린 오징어도 울릉도산을 으뜸으로 쳐준다. 울릉도산 건오징어는 대체로 '당일바리'이다. 오징어는 잡은 뒤 하루 이틀쯤 지나면 나쁜 맛과 냄새를 유발하는 물질과 비린내의 주성분인 트리메탈아민 등이 생성되어 맛과 향이 저하된다. 그러나 밤샘작업 끝에 항구로 들어온 울릉도 오징어는 당일 내에 할복작업과 건조작업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덕택에 선도(鮮度)가 좋고 맛이 깔끔하다. 또한 육질이 두텁고 맛이 고소하며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
육지의 건어물가게에서는 다른 지역의 건오징어가 울릉도산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구별하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울릉도산 건조징어는 귀 부위에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이다. 섬조릿대로 오징어의 귀 부위를 뚫어서 20마리씩 끼운 다음 덕대에 걸어서 말림으로써 생긴 구멍이다. 또한 고르게 건조시키고 미생물의 오염을 막기 위해 다리 사이에 '탱깃대'를 키워 넣는다는 점도 울릉도 오징어의 특징이다. 반면에 빨래처럼 줄에 널어서 말린 강원도산 오징어에는 귀 구멍이나 탱깃대가 없다.
추천 맛집/ 99식당(오징어내장탕, 도동, 791-2287), 우성식당(도동, 오징어회, 791-3127), 도동항 활어회노점(오징어회)
호박엿
<울릉도 트위스트>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르는 호박엿'이다. 그토록 맛있는 울릉도 호박엿의 시원(始原)은 개척 당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서면 태하리 서달령 부근에 과년한 처녀가 살고 있었다. 어느 해 봄, 그녀는 육지에서 가져온 호박씨를 울타리 밑에 심었다. 이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서 커다란 호박을 맺을 무렵이면 처녀는 멀리 떨어진 마을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호박 줄기는 나날이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었다. 처녀가 시집간 뒤 남아 있는 식구들은 부지런히 호박을 따먹었는데, 그 수가 줄지 않았다. 마침내 방안을 온통 채울 수 있을 정도로 많은 호박을 수확했다. 그 해 겨울에 곡식이 떨어지자 식구들은 호박으로 죽을 쑤어 먹었다. 그런데 그 맛이 엿처럼 달았다. 그 뒤로 '호박엿'이란 말이 생기고 실제로 호박을 넣어 달여낸 호박엿도 생겼다고 한다.
대형 여객선이 취항하기 전까지만 해도, 울릉도 호박엿은 주로 제과점이나 가정에서 소규모로 생산되어 섬 안에서만 소비되었다. 육지의 숱한 엿장수들이 팔았던 '울릉도 호박엿'은 대개 울릉도 호박엿의 명성만 빌린 것이었다. 그러다 유지와 울릉도 사이에 대형여객선이 오가게 되자 비로소 울릉도 호박엿은 육지를 퍼져나갔고, 규모 있는 호박엿 공장도 몇 군데 생겨났다.
현재 울릉도에는 3개의 호박엿 공장과 1개의 호박젤리 공장이 있다. 가장 오래된 곳은 도동에 위치한 울릉둥글호박엿공장(791-2115)이지만, 규모는 서면 남서리의 울릉농협호박엿공장((791-2059)이 가장 크다.
울릉도 호박엿은 육지의 것과 여러 모로 다르다. 우선 호박이라는 재료에서 큰 차이가 난다. 울릉도 호박은 육지 호박보다 과육이 두껍고 무겁다. 대체로 둥근 호박보다 맷돌형의 호박이 더 맛있는데, 그 무게는 10∼15kg이나 나간다. 당도도 육지 것보다 1∼2브릭스(brix; 당도를 재는 단위. 포도가 12브릭스 정도이다)가 높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호박엿 제조과정이 다르다. 육지에서는 옥수수가루에 엿기름을 넣고 삭히는 반면, 울릉도에서는 옥수수를 밥처럼 쪄서 자루에 담아 짜낸 뒤에 엿기름을 넣고 달인다. 이렇게 하면 호박엿을 훨씬 부드럽게 뽑을 수 있다고 한다. 세 번째는 손으로 엿을 뽑는다는 점이다. 엿을 길게 늘였다가 반으로 접는 작업을 수없이 되풀이하면 엿 속에 공기구멍이 무수히 생긴다. 이 공기구멍이 많을수록 먹기가 좋고 이에 달라붙지도 않는다.
울릉도 호박엿은 호박이 30%나 들어가 있어서 너무 단단하거나 달지도 않으며 이에 잘 달라붙지도 않는다. 더욱이 호박에는 각종 영양소도 풍부하고 폐암 예방의 효과가 있다는 베타카로틴의 함량이 많다. 특히 늙은 호박에는 위점막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어 위궤양 환자들에게 아주 좋다. 울릉도에서 호박엿을 먹고 배를 타면 멀미를 하지 않는다는 말도 널리 퍼져 있다.
울릉도 호박엿은 한번 먹어보면 자꾸 입맛을 당긴다. 몇 해 전에 취재 차 울릉농협호박엿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공장장이 "그냥 보내면 서운하다"며 호박엿 한 상자를 차안에 넣어줬다. 우리 일행 세 명은 적지 않은 양의 호박엿 상자를 보며 "저 많을 걸 언제 다 먹어치우나"며 걱정 아닌 걱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것은 문자그대로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운전하면서도 먹고, 밤 먹고 난 뒤에 입가심으로도 먹고, 밤참으로도 먹고, 아무리 먹고 먹어도 물리지 않았다. 결국 커다란 호박엿 상자를 모두 비우고 울릉도를 떠나왔다.
1990년에 전통식품 개발사업체로 지정된 울릉농협호박엿공장에서는 가락엿, 판엿 등의 호박엿 이외에도 호박조청과 호박잼도 생산한다. 호박조청은 좀 걸쭉한 엿이고, 호박범벅 같은 호박잼은 쫀득쫀득하고 약간 달콤해서 빵이나 떡을 먹을 때에 곁들일 만하다.
따개비밥
절지동물의 일종인 따개비는 주로 밀물 때마다 물에 잠기는 갯바위나 암초에 붙어산다. 직경은 1.5~2cm쯤 되고 껍데기가 삿갓처럼 뾰족한 원추형으로 생겼다. 육지에서는 따개비를 요리재료로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 크기가 작고 맛에서도 별다른 특색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울릉도의 따개비는 다르다. 육지 것에 비해 훨씬 몸통이 크고 육질도 쫄깃하다.
울릉도 해안도로를 지나다보면, 파도치는 갯바위 사이를 위태롭게 건너다니며 따개비를 따는 광경이 간혹 눈에 띈다. 몸을 물에 반쯤 적신 채로 하나하나 손으로 따야 된다. 그래서 파도가 높게 일렁이거나 날씨가 추운 겨울철에는 맛보기 어려운 계절형 별미이다. 물론 냉동시켜둔 것을 쓰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그 맛은 제 철에 방금 따온 것과 비할 데가 아니다.
조개류 가운데 가장 비싸고 귀한 전복보다도 울릉도 따개비가 더 맛좋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인데, 울릉도의 여러 별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다. 크기는 작아도 속이 옹골차서 씹히는 맛이 아주 좋다. 쫄깃하고 고소하며, 파르스름한 빛이 도는 따개비밥을 입안에 넣으면 향긋한 바다 냄새가 느껴진다. 또한 따개비칼국수의 국물은 시원하기 그지없다. 속이 확 풀리면서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추천 맛집/ 99식당(따개비밥, 도동, 791-2287), 상록식당(따개비밥, 도동, 791-1052), 신애분식(따개비 칼국수, 천부, 791-0095), 동은식당(따개비 칼국수, 천부, 791-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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