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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움켜쥐려 했습니다.
자식에게 좋은 삶을 주고 싶어 애를 쓰고
배우자에게 인정받고 싶어 마음을 쏟고
노후를 대비하려 재물을 모으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애쓰며 잡고 있던 것들이 오히려 인생을 무겁게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이 옵니다.
한참을 달리다. 지쳐 멈췄을 때 손 안에 든 것이 복이 아니라 불안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 삶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집착
입니다.
금강경에서는 분명히 전합니다.
一體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모든 유위법은 꿈과 같고 환과 같으며 집착을 놓을 때 공덕이 머문다.
이 구절은 단지 마음을 비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토록 움켜쥐고 住 있는
생각
감정
욕망
사랑
결과
과거
마저도
공처럼 비어 있음을 보고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부터
진정한 자유와 복입니다.
공덕이 시작된다는 선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량한 공덕은 단순한 복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운명을 전환시키는 거대한 힘이며.
삶의 흐름을 순리에 맡길 수 있는 용기이자
자비심의 열매입니다.
집착은 실체가 없습니다.
그것은 늘 머릿속에서만 만들어지고 실상은 흐름을 막는 두려움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 결국 나를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우리는 얽히고 묶이고 어긋난 인연 속에서 고통을 키워 갑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끝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놓아야 한다고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고 집착 住하지 말아야 한다
고 진정으로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그 전에는 반드시 비움 空이라는 문턱을 지나야만 합니다.
비움 없이 복은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자식을 향한 걱정 남편이나 아내에 대한 기대 사업의 성공과 실패 건강에 대한 염려 인간관계에서의 얽힘 등 이 모든 마음의 작용들이 결국엔 집착 住입니다.
그런 마음을 붙잡고 있다 보면
생각은 늘 복잡해지고
흐름은 막히며
삶의 운은 흐려지게 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 번 놓아 보면 압니다.
놓는 순간
오히려 모든 것이
스스로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전화도 먼저 걸려오고
길었던 오해도 풀리고
막혀 있던 일이 풀릴 실마리를 드러냅니다.
이것이 바로 금강경이 전하는 무량한 공덕의 첫걸음입니다.
금강경에서 전하는 다른 가르침도 이와 궤를 같이 합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 所住 而生其心
이라는 법문은
집착 住 없이 마음 心을 내라
는 뜻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아무것도 바라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바람이 있더라도 그 바람에 붙잡히지 말라는 즉
욕망을 가지되 그 욕망에 내가 끌려가지 말라
아야 합니다. 집착 없이 살아가는 삶이란
목표를 세우되 그 결과에 메이지 않고
사람을 사랑하되 그 사람에게 기대지 않으며
재물을 사용하되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입니다.
이 경지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일상의 아주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루 동안 내가 지나치게 마음을 쓰고 있었던 대상을 떠올려 보십시오
자식이든
남편이든
회사 일이든
간에 내가 그것을 어떻게든 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붙잡고 있었다면
그것이 곧 집착입니다.
그 마음을 놓아보는 연습을 해 보십시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흐름에 맡기며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허공에 띄우듯
내려놓아 보십시오
그렇게 하다 보면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안 보이던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량은 공덕의 문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또한 금강경에서는
만약 사람이 수 없는 금은 보화를 보시하는 것보다 이 경을 듣고 믿고 이해하여 실천하는 이가 더 큰 복덕을 얻으리라
고 설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물질적인 보시도 중요하지만 집착을 내려놓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큰 공덕이라
는 의미입니다. 즉
아무리 많은 재물을 나누어도 그 안에 자비 와 집착 없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복이 아니라
는 뜻입니다. 반대로 비록 가진 것이 없어도 집착을 놓고 바른 법을 따라 마음을 가꾼다면 그 복은 형상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고 넓어집니다. 집착은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늘 나의 마음속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수행은
타인을 변화시키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다스리는 것
입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변해 주길 바라고 상황이 달라지길 바라더라도
내가 집착을 놓지 않는 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변화는 항상 내게서 시작되고
놓음입니다. 놓는다는 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것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빈 그릇이 되어야 복이 담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그 사실을 잊지 말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움켜지는 삶이 아닌
비우고 놓아주는 삶을 선택하십시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이여 모든 경전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지혜의 발현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놓으면 보입니다.
그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답이 보이지 않았던 문제들이 마음을 내려놓는 그 순간부터 실마리를 드러냅니다.
붙잡고 있을 때 흐려 보이던 길이
집착이 사라지면 명확해집니다
우리가 맞이해야 할 삶의 본 모습입니다.
놓음은 멀리 있는 어려운 일이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수행입니다.
그리고 그 놓음 속에서 길러지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금강경에서는 반복해서 말합니다.
형상이란 실체가 없으며 형상을 보고 형상이 아닌 줄 알 때 참된 지혜가 자란다.
이는 곧 세상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온갖 대상과 현상들이 실체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람도 일도 물질도 심지어 내 생각까지도 본래 정해진 실체가 없고 늘 변하는 것이 보 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변화를 붙잡으려 하고
고정된 것처럼 믿고 의지하며
결국 그 속에서 괴로움을
스스로 만들어냅니다.
이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지혜에 눈을 뜨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혜는 단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형상을 분별하고 참眞을 보 觀는 능력입니다.
그 지혜는 집착을 놓을 때 시작됩니다.
금강경의 한 구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직영재상 즉비재상 시명재상
눈에 보이는 모든 상을 잇는 그대로 보면 그것은 진짜 상이 아니며 그렇게 볼 수 있을 때 참된 상을 본다고 이는 단순한 철학적 언어가 아니라 우리 삶의 실질적인 가르침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집착하면 계속 분노와 괴로움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 상황 자체가 잠시 지나가는 인연의 흐름이며 그 안에는 나의 업과 그 사람의 업이 얽혀 있다는 점을 바라보면 집착은 자연이 옅어지고 이해와 자비가 생깁니다. 그 순간부터 지혜가 피어나는 것입니다. 지혜란 상황을 통찰하는 눈입니다. 자식 문제로 마음이 무너질 때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살피고 그 외의 부분은 그 아이의 인연과 업을 존중하며 기다릴 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분별하고 무리한 욕심은 놓아내며 관계의 갈등 속에서도 내가 옳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상대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아는 태도가 지혜입니다.
이처럼 집착이 그것을 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믿고 이해하여 실천하면 이미 무량한 공덕을 쌓은 것이니라
지혜란 단지 앎이 아니라 실천에서 비롯됩니다.
안다고 해서 곧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집착이 올라올 때마다 그것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반복해서 마음의 중심을 바라보며 매 순간을 깨어서 사는 실천이 있어야 비로소 그 지혜는 삶 전체에 스며듭니다
그리고 그 지혜의 삶은 대운은 어딘가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른 인연을 볼 줄 아는 눈과 그 인연에 따른 바른 행위에서 비롯됩니다
지혜는 그런 바른 인연을 정확히 알아보게 하는 부처님의 등불입니다. 중생은 형상에 머무르며 형상을 집착하고 그 형상이 무너질 때 고통을 느낍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끊임없이 무상과 空을 가르침을 전하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변하고 텅비어있다는 그 사실을 아는 것이 해탈의 길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무엇을 중심삼아야 할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외부의 조건이 아닌 내 안의 지혜가 삶을 바꾼다는 진리를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간에 집착 없이 지혜로 바라보면 그 안에 담긴 원인과 결과 흐름과 멈춤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음속에서 지혜가 밝아지면 더 이상 남을 탓하지 않습니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바른 일을 행할 뿐입니다. 그것이 금강경이 전하는 궁극의 수행입니다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집착을 내려놓고 지혜를 따라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복이고 가장 큰 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때 우주는 막힌 길을 열어줍니다. 운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내면의 정화와 실천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이 대혼입니다. 다음은 집착을 놓고 지혜를 따를 때 삶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지혜가 자리 잡은 마음은 관계 속에서도 자유롭습니다. 사람과의 갈등이든 오랜 인연이든 사랑이든 미움이든 거기 얽히지 않고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힘은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집착이 사라질 때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관계의 자유입니다. 놓는다고 해서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맑고 깊은 연결이 시작되는 법입니다. 집착은 관계를 망가뜨리지만 놓음은 관계를 되살립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땅히 그 마음을 일으킬 때 어떤 곳에도 머무르지 말고 일으킬지니라 관계 속에서 가장 큰 괴로움은 내가 품은 기대에 상대가 미치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사랑해 주길 바라고 이해해 주길 바라고 인정해 주길 바라며 마음을 씁니다. 그러나 그 바람이 실현되지 않을 때 실망과 분노 섭섭함이 일어나고 인의 관계는 틀어집니다. 그 바람이 바로 집착입니다. 그리고 그 집착은 상대에 대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내가 받고 싶은 것에 대한 집착입니다. 놓아야 할 대상은 상대가 아니라 내 안의 바람입니다. 자식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의 당연한 마음이지만 그것이 너무 강하면. 오히려 자식은 부담을 느끼고 멀어집니다. 집착이 사랑의 이름으로 보장될 때 관계는 왜곡될까? 금강령의 가르침처럼 마음을 일으키되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다면 자식에게 무엇을 바라지 않고 그저 존재 자체를 잊지. 인정하고 지켜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런 부모의 마음은 자식을 조급하게 하 먹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게 자라나게 합니다. 사랑도 놓을 줄 알아야 진짜 사랑이 됩니다. 바라지 않음에서 피어나는 사람 더 깊고 더 오랫동안 이어집니다. 부부관계 역시 집착에서 자유로워질 때 평화로워집니다. 내가 옳다는 고집 상대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 기대한 방식으로 사랑받고 싶다는 감정 이 모든 것들이 집착이며 그로 인해 다툼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 사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그때 마음은 한결 가벼워집니다. 내가 바뀌기를 멈추었을 때 오히려 상대는 스스로 변화를 시작합니다. 이처럼 관계의 변화를 바란다면 먼저 나의 집착을 놓아야 합니다. 내가 먼저 마음을 푸는 것이 곧 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금강경의 또 다른 구절에서는 말합니다. 부처님이 설한 법은 모두 법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이름을 법이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관계에서도 큰 통찰을 줍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바라볼 때 늘 이 사람은 이렇다는 고정된 이름과 판단을 붙입니다. 그 이름은 곧 기준이 되고 기준은 기대가 되며 기대는 실망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처럼 모든 것은 이름일 뿐 진짜 실체는 아닙니다. 그 사람도 늘 변하고 있으며 지금의 말이나 행동 역시 그 순간의 흐름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면 굳이 마음을 드렸습 또 이유가 없어집니다. 그렇게 놓을 수 있을 때 관계도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유지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연 따라 살아갑니다. 얽히고 설켜 있는 그 인연을 억지로 바꾸려 하거나 과거의 상처에 머물러 있다 보면 그 인연은 더욱 무거워지고 고통스러워집니다. 하지만 집착을 놓고 흐름에 맡길 수 있다면 본래의 흐름을 회복하게 됩니다. 갈 사람은 가고 함께할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인연의 이치입니다. 억지로 무엇을 붙잡으려 하지 않고 흘러가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내 인생의 관계는? 맑고 정갈해집니다. 그리고 그 맑음 속에서 복은 자라납니다. 가장 힘든 인연은 사실 가장 놓기 어려운 인연이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사랑했던 사람 깊이 의지했던 사람 애틋하게 품고 있던 사람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놓지 못할수록 그 인연은 괴로움으로 변하고 그 괴로움은 결국 나 자신을 해치게 됩니다. 놓는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을 해치는 건 집착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집착을 놓고도 계속 이어지는 법입니다. 내가 사랑했던 그 마음을 품되 얽히지 않는 것. 그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자비의 모습입니다. 삶에서 만나는 모든 관계는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 거울을 통해 내 안의 집착을 보고 그것을 놓는 수행을 하는 것이 바로 관계의 수행입니다. 놓을수록 관계는 깊어지고 복은 더해지며 삶은 부드럽게 흘러갑니다. 인연에 대한 과도한 기대나 얽힘에서 벗어날 때 새로운 인연이 들어올 자리가 열립니다. 그래서 놓는다는 것은 잃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것을 맞이할 준비입니다. 다음은 집착을 놓았을 때 삶의 중심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 마음이 중심을 잡지 못할 때 삶은 흔들립니다. 작은 일에도 감정이 요동치고 사람들의 말에 쉽게 상처받으며 결정 하나 내리는 데도 두려움이 따릅니다. 그런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받아들일 수 없고 복이 눈앞에 와도 그것을 잡을 힘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이런 삶의 불안해 걱정은 대부분 놓지 못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집착은 우리의 중심을 흔드는 가장 큰 원인이며 그 집착을 놓을 때 비로소 삶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중심이 잡히기 시작합니다. 금강경은 말씀합니다.
마음이 머무는 바가 없으면 그 마음은 맑아지느니라
이 말은 우리가 무언가에 집착하지 않을 때 비로소 마음의 본래 자리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어떤 외부 상황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내면의 고요함을 유지하며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바를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중심을 밖에서 찾으려 합니다.
좋은 환경
안정된 관계
일정한 수입
인정받는 위치
등으로 중심을 세우려고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조건이 변하면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결국 진짜 중심은 외부가 아니라 내 안에서 길러야 하며 그것은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생겨납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생각 감정 기억 후회 기대 분노 등은 모두 마음을 가지고 그것들이 일어날 때마다 함께 요동치는 것은 그 감정에 나를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일체의 법은 자성이 없고 본래 정해진 실체가 없느니라
이는 모든 현상이 본래 텅 비어 있으며 변화하는 흐름 속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무상함을 아는 지혜는. 감정과 생각에 휘둘리지 않게 하며
중심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중심이 있는 사람은
상황이 어떻든
마음의 균형을 잃지 않고
외부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삶을 자기가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삶에서 중심을 잃는 대표적인 순간은
대체로 상실의 상황입니다.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을 때
일터에서 밀려났을 때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입었을 때
건강이 무너졌을 때 등입니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전의 것을 붙잡으려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흔들립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놓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다시 돌아가려는 마음을 놓고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를 놓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만이
삶은 다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따르는 것이야말로
중심을 세우는 첫 번째 관문입니다.
금강경의 가르침 중
과거 심불 가득 현재 심불가득 미래 심불가득
이라는 구절은 삶의 중심을 지키는 핵심 법문입니다. 이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실체가 없으며 그것에 마음을 두는 순간 중심은 흐려진다는 경책입니다
우리는 자주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누구에게 받은 상처 하지 못한 선택 잃어버린 인연들의 마음을 두고 살아갑니다. 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에 휘둘려 현재를 놓치곤 합니다. 그러나 이 법무는 단호히 말합니다. 어느 때에도 마음을 두지 말라 그것이 진정한 자유의 길이며 마음의 중심이 깨어나는 출발점이라고 중심이 잡힌 삶은 조용합니다. 요란하지 않고 경쟁하지 않으며 남과 비교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고요함이 있습니다. 이런 삶은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어 보여도 그 안에서는 깊은 수행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중심이 있을 때 우리는 말을 아끼게 되고 비판보다 이해가 먼저 나옵니다.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된 사람 곁에는 좋은 인연이 자연스레 모이게 됩니다. 복은 그런 자리에 스며듭니다. 그런 자리에 스며듭니다. 복은 요란한 곳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고요하고 바른 마음이 있는 곳에 머뭅니다. 삶의 중심을 세우기 위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합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조용히 앉아 마음을 바라보는 일 불안한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을 따라가지 않고 바라보는 연습 기대가 커질 때 내려놓고 흐름에 맡기는 태도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는 자세요. 그리고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염불과 경전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중입니.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흔들림 없는 삶을 만듭니다. 중심을 갖는다는 것은 결국 수행자다운 태도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의 뿌리를 깊게 내리는 일이며 그 뿌리 위에 대운이 머물게 됩니다. 중심을 잃은 삶은 늘 외부에 흔들립니다. 누군가의 말에 기분이 바뀌고 상황에 따라 나의 결정이 흔들리고 복도 불안정하게 흘러갑니다. 그러나 중심이 잡히면 어떤 말도 나를 휘감지 못하고 어떤 일도 나를 꺾지 못하며 어떤 변화도 나를 밀어내지 못합니다. 그것이 집착을 놓고 가장 큰 복입니다.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행운과 기회의 눈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노는 순간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이 들어옵니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기회 만남 복 운명 같은 것들은 사실 외부에서 오는 거 것이 아니라 비워진 자리로 스며들듯 찾아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 자리를 끝까지 움켜쥔 채로 살아갑니다. 버릴 수 없어. 괴롭고 떠나 보내지 못해 고통스럽고 내려놓지 못해 모든 문을 스스로 닫아버립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모든 상을 떠나면 곧 열애를 보리라 상을 떠나지 않고는. 새로운 경지도 복도 대운도 만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집착은 빈자리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는 늘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인연이 와도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보기 들어서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과거의 실패에 집착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지 못합니다? 과거에 했던 방식만 고집하거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과거의 관계에 마음이 묶여 있다면 좋은 인연이 와도. 그 사람을 온전히 바라보* 못합니다. 과거의 상처가 떠나지 않으면 새로운 기쁨도 마음에 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놓는다는 것은 단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금강경에서는 또 이렇게 설합니다. 무주식 머무르지 않는 마음으로 보시하라 이 말은 곧 바라는 마음 없이 집착하는 마음 없이 계산하는 마음 없이 나 이와 같은 자세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 삶에는 뜻밖의 선물이 찾아옵니다. 우연처럼 느껴지는 행운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인연 나도 모르게 얻는 법. 네 그런데 그 모두는 실은 비움의 결과입니다. 내가 무엇을 움켜쥐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 그 자리에 맑은 바람처럼 찾아오는 선물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불가사의한 복이며 부처님의 자비로운 회향입니다.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만히 돌아보십시오 지나간 인연일 수도 있고 오랜 원망일 수도 있으며 나조차 눈치채지 못한 욕망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형태이든 그것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면 그만큼 다른 가능성은 차단되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요리법은 꿈과 같고 환과 같으며. 집착을 놓을 때 공덕이 무량하느니라고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모든 것은 본래 허상이며 비 오는 그 순간부터 진짜 복근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복은 외형이 화려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흐름을 맑고 순하게 바꾸어주는 조용한 기적입니다. 무언가를 놓고 나면 마음에는 여백이 생깁니다. 그 여백은 생각이 쉬는 자리이며 마음이 고요해지는 자리입니다.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 소리는 욕망과 두려움의 소리가 아니라. 진실하고 맑은 마음의 속삭임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는 자각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는 자비 흐름을 따라가라는 지혜 이처럼 노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본래의 평화가 깨어납니다. 이 평화는 어떤 돈이나 사람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며 오직 비운 사람만이 만날 수 있는 고귀한 경지입니다.
놓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동안 나를 지탱해주던 신념이나 익숙한 방식 애써 지켜온 관계를 내려놓는 일은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그런 과감한 비움 속에만 진정한 어둠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새로운 인연을 맺으려면 오래된 기대를 놓아야 하고 다른 길로 나아가려면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벗어나야 하며 복을 맞이하려면 그것이 들어올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놓는다는 것은 무너지는 일이 아니라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비우는 것이 무기력한 일이다. 아니라 가장 적극적인 삶의 선택입니다.
삶의 방향이 막혔다면 지금 있는 것을 더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무엇을 도와야 하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대부분의 막힌 내 안에 있는 집착이 맞을 것입니다. 자연스럽지 못한 모든 선택들이 결국 마음이 붙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무주심으로 살아가는 삶을 통해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제시하셨습니다.
머물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인연을 온전히 살아가는 삶 거기서 진정한 행복과 복이 태어나고 예기치 못한 대운이 찾아옵니다.
다음은 녹음의 실천을 이어갈 때 삶의 전반에 나타나는 공덕의 기운입니다. 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나를 바꾸기만 해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집착하나? 이렇기만 해도 폭은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마음에 맺힌 한 가지. 고집 한 사람에 대한 미련 한 번의 실패에 대한 후회 그것들이 자리를 비우는 순간 삶은 놀랍도록 부드럽게 흘러갑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 못한 새로운 운은 늘 마음의 한 모퉁이를 비운 자리에 도착합니다 금강경의 가르침대로 살펴보면 공덕은 비움에서 시작되고 그 공덕은 마침내 우리 삶 전체를 덮고 복의 기운으로 퍼져나갑니다.
금강경에서는 이렇게 설합니다.
법을 얻는 이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열애는 법을 설하지 않았다고 하느니라
이 구절은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어떤 가르침이든 그것을 진리로 고정하는 순간 오히려 집착이 생깁니다.
반대로 모든 법이 본래 고정된 것이 아님을 할 때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그 자유 속에서 마음은 가볍고 밝아집니다.
복도 그 가벼움 속에 찾아간다.
세상의 모든 흐름이 그러하듯
복도 막힘이 없는 흐름을 통해 도달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무엇인가에 걸려 있다면
그 복은 아무리 가까이 와도 머물 자리를 찾지 못합니다.
집착이 놓인 자리에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마음의 평원입니다.
이 평원은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도 같습니다.
어떤 상황이 오든 어떤 말이 들리든 마음은 요동하지 않게됩니다
그러다 보면 복이라는 것이 단순히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복은 사 정체의 흐름이 순조롭게 이어지는 힘이며
마음이 가는 길마다
생각마다
맑음이 머무는 상태입니다.
이는 곧 모든 상황에서 내가 할 바를 알고 중심을 잃지 않는 지혜의 작용이기도 합니다.
금강경에서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과 같으니라고 하신 부처님의 말씀이 바로 그 지혜의 핵심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형상과 현상은 마치 꿈과 같고 헛깨비 와 같고 물거품과 같다
는 이 말씀은 집착의 어리석음을 자각하게 만듭니다. 그런 허상에 마음을 걸지 않을 때 마음은 제자리로 돌아오고 그 자리에서 진정한 복이 시작됩니다.
복은 외형이 아닙니다.
복은 흐름이며 인연이며 마음에서 피어나는 향기입니다. 그것은 손에 쥐려 하지 않아도 마음이 맑고 바르면 자연스럽게 내 삶으로 스며듭니다.
복의 기운이 머무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밝고 부드럽습니다.
말은 거칠지 않고 행동은 조급하지 않으며
인연을 헤아릴 줄 알고
흐름을 기다릴 줄 압니다.
이런 사람 곁에 있으면 편안함이 느껴지고
신뢰가 생기며 묵묵히 응원받는 느낌이듭니다
복은 이런 자리에 머물기를 좋아합니다
복은 이런 기운 속에 머물기를 좋아합니다.
반대로 끊임없이 욕심내고 판단하고 움켜쥐려 하는 마음에는 보기 쉬머물지 못합니다. 폭은 억지로 불러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머물 수 있는 자리가 갖춰져야 머뭅니다.
그 자리는 바로 집착이 비워지고 자비가 깃든 자리입니다. 복의 기운은 사람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공간도 바꿉니다.
한 사람이 마음을 비우고 수행하며 살아갈 때 그 사람의 말소리 숨결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맑은 기운이 베어 나옵니다.
그러면 그가 머무는 집도 복의 공간이 되고 함께 사는 가족도 그 기운을 함께 나누게 됩니다. 자녀의 마음이 차분해지고 배우자와의 다툼이 줄고 병들었던 몸도 서서히 회복의 기운을 얻습니다.
이것이 복의 기운이 머무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시작은 단 하나의 노홈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가장 집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물어야 합니다.
내가 끝까지 놓지 못한 관계인지.
고집인지
과거의 상처인지
인정받고 싶은 욕망 있지.
그 정체를 정확히 마주보고
그것이 삶을 얼마나 무겁게 만들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놓음의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그 노홈이 마음의 바닥을 비울 때 폭의 기운은 물처럼 흘러들어옵니다. 억지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 준비된 자리에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운 이것이야말로 금강경이 전한 무량한 공덕이며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축복입니다. 삶을 다시 말게 하고 싶다면 그 어떤 실천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놓는 연습입니다.
집착하지 않기로
고집하지않기로
기대하지 않기로
그리고 흐름에 맡기기로
이 단순하지만
먼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복의 기운이 마음의 자리를 잡으면 삶은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대단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조용한 기적처럼 사람과의 관계가 부드러워지고 일상이 편안해지며 하는 일마다 작은 성취가 이어집니다. 엉켜 있던 인연들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하고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이 자리합니다. 이처럼 폭은 일상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조용히 작용합니다. 그 복의 작용은 대개 인연에서 먼저 드러납니다. 그동안 마음을 상하게 했던 사람과의 갈등이 해소되고 오해가 풀리며 따뜻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귀한 도움이 오기도 합니다. 모두가 우연이라 말하지만 그건 노홍을 실천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인연의 변화입니다. 금강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체 모든 상은 허망하니. 만약 상이 아닌 줄 안다면 곧 열애를 보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겪는 모든 인연 역시 본래 형상이 없고 실체가 없으며 변하는 흐름 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인연에 너무 집착할 필요도 없고 억지로 바꾸려 할 일 놓고 바라보는 순간 그 인연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의 기운이 인연을 통해 펼쳐지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납니다. 가족 이웃 친구 동요 심지어 스쳐 지나간 낯선 사람까지도 인연의 흐름 안에 있습니다. 이 인연들이 모두 복이 되는지 아니면 업이 되는지는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인연을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가 집착을 놓고 인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 인연은 조화로워지고 나에게 이로움을 가져다 줍니다. 반면 내가 그 인연에 욕심을 붙이고 기대를 부여하고 판단을 더할수록. 그 인연은 꼬이고 어긋나며 고통이 됩니다. 그러므로 복을 짓는 방법은 복이 올만한 인연을 대하는 태도에서 결정됩니다. 집착을 놓은 사람은 인연을 흘러가는 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한때 가까웠던 인연이 멀어져도 억지로 붙잡지 않으며 낯선 인연이 다가와도 의심하지 않고 마음을 엽니다. 그 마음은 늘 평온하고 열린 상태이며 그런 사람에게는 보기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폭은 맑고 편안한 마음에 깃들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인연의 변화는 복의 기운이 퍼질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금강경의 다른 구절에서는 이렇게도 설합니다? 보시는 공덕이 무량한 것은 집착 없이 하였기 때문이니라 이 가르침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베풀 때 그에게서 무엇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그 베풀문 보기 됩니다. 하지만 기대와 조건이 붙는 순간 그 베풂은 업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특히 가족관계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자식에게 헌신했지만 그 보답을 받지 못했을 때 느끼는 서운함은 결국 집착이 만든 괴로움입니다. 하지만 자식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하고. 그 결과는 자식의 인연에 맡긴다면 그것은 복이 되어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돌아옵니다. 직접 받지 않더라도 다른 인연을 통해 다시 들어오는 것이 우주의 이치입니다. 인연이 변할 때 삶의 흐름도 함께 달라집니다. 내가 놓아는 관계에서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내가 떠나온 자리에서 다른 인연이 피어납니다. 이 흐름은 마치 계절처럼 자연스럽고 조화롭습니다.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않아도 내게 필요한 인연은 제때에 도착하고 필요 없는 인연은 조용히 사라집니다. 이것이 집착 없는 삶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인연의 자연스러운 작용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충실한 삶의 결과입니다. 복이 있는 사람의 곁에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 모입니다. 그 사람들은 평온한 마음을 나누고 함께 성장할 기회를 주며 삶의 길을 바라겠 있는 동반자가 되어줍니다. 이는 우연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비웠기 때문에 가능해진 만남입니다. 복이 들어오면 삶의 일상도 조금씩 밝아집니다. 일이 막힘없이 흘러가고 마음의 불안이 사라지며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예전에는 놓치기 바빴던 기회를 제대로 알아보고 어떤 재앙이 오면 그것이 나에게 맞는지 분별할 수 있는 안목도 생깁니다. 이것은 단순한 직관이 아니라 복의 기운이 주는 분별의 지혜입니다. 마음이 복으로 채워졌을 때 우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줄이고 삶을 맑은 흐름으로 인도할 수 있게 됩니다. 삶 전체가 점점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낄 때가 옵니다. 그것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관계 하나 하루 일과 하나 내 말투 하나가 조금씩 변하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는 복이 흘러들 수 있도록 내가 스스로 만든 여백에서 비롯됩니다. 녹음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이며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에 보입니. 다음은 이러한 복의 기운이 마음과 삶을 바꾸는 것을 넘어. 그 복이 다른 이에게도 전해지는 회양의 작용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복은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집착을 놓고 비워진 자리에 깃든 폭은 반드시 흘러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복은 말이 되어 사람을 위로하고 행동이 되어 누군가를 돕고 마음이 되어. 인연을 따뜻하게 감쌉니다 이것이 바로 회향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끊임없이 회향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중생이 실로 존재함이 아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생을 제도하느니라. 이 말씀은 실체가 없는 중생이지만 자비로서 그들을 구제해야 함을 뜻합니다? 복은 혼자 간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을 진짜 복으로 만드는 마지막 완성은 그 복을 다시 인연에게 되돌려주는 회향의 실천에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삶이 바뀌기를 기도합니다. 재물의 흐름이 트이고 사람 관계가 평온해지고 몸이 건강해지길 바랍니다. 자 그런데 그러한 복을 얻고도 여전히 삶이 막힌 채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바로 받은 복을 머무르게 했기 때문입니다. 복은 물과 같습니다. 흐를 때 살아 있고 멈추면 썩기 시작합니다. 나 혼자만을 위한 복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 복이 머물 수 있는 자리는 넓고 넓은 마음입니다. 다른 이의 괴로움을 함께 느끼고 그 괴로움을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이 클수록 폭은 더 오래 머무르며 더 크게 자랍니다. 부처님께서 금강경에서 말씀하신 보살은 중생을 제도하되 제도하고 중생이 없느니라는 구절 또한 복의 회양을 가장 깊이 있는 지혜로 전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도왔지만 그 도움을 마음에 두지 않고 내가 남을 이롭게 했으나 그 행위에 집착하지 않는 것 그것이 참된 회향이며 복을 공덕으로 전환시키는 수행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이 비워진 상태에서 흘러나온 자비는 스스로 작용하여 또 다른 복을 낳고 그 복은 다시 인연을 살리며 그렇게 복은 세상과 이어지는 힘이 됩니다. 이러한 회양은 크고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먼저 베풀 수 있습니다. 내가 집착을 내려놓아 마음이 여유로워졌다면. 그 여유를 자식의 말 한마디를 더 들어주는 인내로 전하고 배우자의 부족한 점을 포용해주는 배려로 나눌 수 있습니다. 친구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괴로움 속에 있는 사람을 위해 한 번의 기도를 회향하는 것 이런 작은 실천 하나하나가 모두 회양이며 복의 작용이 이 세상에서 맑고 넓게 퍼져나가는 통로가 됩니다. 복은 그렇게 전해질 때 다시 내게로 돌아옵니다. 인연 따라 순환하며 언젠가 예기치 못한 때에 더 큰 복으로 돌아옵니다. 내가 베푼 만큼 받는 것이 아니라 집착 없이 베풀 수 있었던 마음의 상태가 그 복의 크기를 결정짓는 법입니다. 폭은 행위의 수량보다 마음의 품질에서 생깁니다. 내가 누구를 돕고도 그 공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복은 공덕이 되어 삶의 근본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그 반대로 좋은 일을 한 후에 자랑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면 그 복은 생기기도 전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늘 무주심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회향은 마음의 흐름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작용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고 집안의 기운이 부드러워지고 나를 향한 오해가 풀리고 뜻밖의 도움이 다가옵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그 이유를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집착을 놓고 복을 회양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나의 삶은 더 이상 혼자의 삶이 아니며 더 이상 움켜지는 삶도 아닙니다. 나의 한 걸음이 세상을 맑게 하고. 나의 한 생각이 인연을 바꾸는 수행이 됩니다. 삶의 큰 흐름이 바뀌는 순간은 언제나 이런 회향에서 일어납니다. 물질적인 도시가 아니더라도 우승하다. 말 한마디 따뜻한 눈빛 하나에도 회향의 마음이 실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일상 속의 불공이며 복을 짓고 복을 나누는 삶의 방식입니다. 복은 움켜질수록 작아지고 나눌수록 커지며 잊을수록 깊어집니다. 그러므로 복을 진짜 복으로 만드는 마지막 걸음은 바로 이 회향이라는 사실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이제 복은 내 안에서 움트기 시작했고 그 복은 인연을 통해 넓게 퍼졌으며 회향을 통해 다시 내게 돌아올 준비를 마쳤습니다. 다음은 이러한 모든 작용의 흐름 끝에서 녹음과 회향이 만들어내는 궁극의 대온 삶의 전환점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폭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연히 찾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복은 오직 집착 없는 마음에 깃들며 그 복을 나누는 삶을 통해 비로소 완성됩니다.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부터 마음은 가벼워지고 가벼워진 마음은 삶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룹니다. 인연이 풀리고 중심이 잡히며 복의 기운이 스며들고 그 복은 회양을 통해 다시 나와 세상을 밝히는 작용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게 집착 하나를 내려놓은 그 자리에 대혼이 머무는 이유 이제 분명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금강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노홈의 힘을 설하고 있습니다. 모든 요리법은 꿈과 같고 환과 같으며 모든 상은 허망하며 실체가 없습니. 하지만 그 허상에 마음을 두고 움켜주는 순간 우리는 흐름을 거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거슬림이 곧 괴로움이 되고 이 고리를 끊는 방법은 단 하나 내려놓는 것뿐입니다. 금강경은 그 내려놓음을 통해 공덕이 무량하다고 전합니다. 공덕이 무량하다는 말은 그 복이 한 개인의 복에 그치지 않고 세상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 그래서 집착을 놓은 사람에게는 태운이 머뭅니다 개인을 넘어서서 인연을 바꾸고 삶의 방향을 바꾸고 때로는 집안의 흐름까지 바꾸는 힘 그것이 진짜 대혼입니다. 이 8 부에 걸쳐 우리는 집착을 놓는 마음이 지혜를 낳고 지혜가 중심을 세우고 중심이 인연을 바꾸며 인연이 복을 만들고 그 복이 회향을 통해 다시 순환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겉으로 보기에 조용하고 평범하지만 그 안에서는 거대한 흐름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고. 인연은 여전히 복잡하지만
그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리에 머물 수 있다면
이미 당신은 부처님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 반드시 대운이 도착합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 중에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위대한 수행이 바로 이것입니다.
집착을 놓는 마음 머물지 않는 마음 기대하지 않는 마음 이 마음을 가진 사람은 더 이상 삶의 파도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흐름이 되고 그 흐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방향이 되어줍니다.
그러한 삶의 태도는 삶의 고비마다 막힘을 뚫고 새로운 문을 열어줍니다.
대운이란 갑작스러운 복이 아니라 끊임없이 선을 쌓고 집착을 놓고 회향을 실천한 삶 위에
스며드는 가장 자연스럽고 고귀한 변화입니다.
이제 당신이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드릴 수 있습니다. 왜 집착을 놓으면 대운이 오는가?
그것은 복이 먹을 수 있는 마음의 자리가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연의 흐름을 거슬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내가 가진 것을 움켜쥐지 않고 나누려는 회향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은 그런 사람을 피해 가지 않습니다.
반드시 그 자리에 머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금강경의 핵심을 가슴에 새깁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마음으로 無住心
그 마음을 일으키라
는 이 말씀처럼 이제
우리도 마음을 어디에도 묶지 말고
비워진 자리마다 복이 스며드는 삶을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지금 내가 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놓는다면 어떤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지를 그리고 그 변화가 누군가에게 회향된다면
나의 삶이 얼마나 더 넓어지고 밝아질 수 있을지를
그 물음 끝에서 반드시 복은 시작됩니다.
오늘의 이야기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집착을 놓는 마음은 지혜를 열고 중심을 섭니다.
둘째 중심 잡힌 마음은 인연을 바꾸고 삶을 조화롭게 만듭니다.
셋째 흐름에 맡기는 삶은 복이 깃들 수 있는 자리를 만듭니다.
넷째 그 복은 반드시 회향을 통해 다시 세상으로 흘러나갑니다.
5째 그 모든 과정을 실천한 사람에게는 大運이라는 이름의 삶의 전환점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여러분도 이 말씀이 깊이 다가오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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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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