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타 니파타 4:9 -840 자림 가사단상] - 4.여덟 게송의 품
9.마간디야에 대한 설법의 경
[마간디야]
견해배움 규범금계 등에의한 청정함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견해배움 규범금계
없는청정 말씀하지 않는다면 그런것은
사람들을 혼미하게 할수있는 가르침이
될수있다 저는생각 하옵니다 어떤사람
보는것에 의지해서 청정해질 수있다네
----2567.6.4 자림 심적 합장
[숫타 니파타 4:9-840 자림 시조단상]
견해나 배움이니 또는 규범이나 금계에
의한 청정을 말씀하지 않고 견해가 없고
규범과 금계가 어뵤는 청정도 말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람을 혼미케 하는 가르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는것
의지해 청정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더하는 말○○○
마단디야 바라문의 반론이다
이 바라문은 역시 무엇인가를 파고드는
나름의 논리가 있어 양변 즉 견해,배움,규범,금계등에
의한 청정과 견해,배움,규범,금계등이 없는 청정도
말씀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사람에게 입을 다물라는
이야기 일수 있으므로 사람들에게 답을 제시하지
않고 논리나 합리로 접근을 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는 저는 생각한다는
분명한 나름의 논라를 가진 반론을 제기하며
어떤 사람드은 보는 것에 의해 청정해짛 수 있습니다
라고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며
석가 세존의 말씀을 차단하고 어떤 사람들은
보는것으로 청정해질 수 있다는 것인데
보는것이 불교적 입장에서는 위 없는 경지의
완전한 체험이기 때문에 마간디야 바라문의
보는것과는 결이 다른 것이다
다음의 시에 석가 세존의 대답이 기다리고 있으니
여기에서 결론을 내리지 말고 다음의 시를
차분하게 공부헤 보면 어떨까 한다
마간디야의 이러한 잘문은 현대인의 철학적 논리적
사유로 보더라도 그러한 반론은 가능한 것이며
보는것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체험을 별도로
본다면 별문제가 없어 보이는 반론과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