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지이안(觸地而安)
거주하고 있는 곳이 편안하다는 뜻으로, 배운 재주가 있으면 어떠한 경우에도 자립할 수 있다는 말이다.
觸 : 닿을 촉(角/13)
地 : 땅 지(土/3)
而 : 말 이를 이(而/0)
安 : 편안할 안(宀/3)
출전 : 안씨간훈(顏氏家訓) 卷第三 면학(勉學) 第八
중국 남북조시대 수(隋)나라의 학자인 안지추(顏之推)가 남긴 안씨간훈(顏氏家訓) 면학(勉學)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남북조(南北朝) 전란이 일어난 후 조정은 변혁되어 효행이 있는 자와 청렴한 자, 수재(秀才), 뛰어난 재능이 있는 자를 추천 받아 관리로 선발(選舉)하였으므로, 지난날의 친척이나 오래된 친구(親故)는 필요 없게 되었다.
관리로 나아가는 중요 길목의 권세를 잡은 사람이 지난날 같은 동료라고 해서 마음 놓고 찾아 볼 수도 없는 것이다. 이때 자신이 가진 능력이 아무것도 없으니, 세상에 쓰이고자 노력하나 아무 곳에도 쓰임을 받지 못한다.
거친 옷을 입어야 했고 집안의 보존을 잃게 되었으며, 지난날의 화려함을 잃고 그 본질(자신이 가진 재능)이 드러나며, 쓸쓸하기가 마치 늙은 나무와 같으며, 말라가는 시냇물 꼴이 되고, 사슴이 융마(戎馬; 軍馬)에 둘러싸여 죽음의 구렁텅이에 나뒹구는 신세에 이르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를 만나고 보니 자신이 변변한 재능이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학문이나 기예가 있는 사람은 어디든지 자신이 서 있는 곳이 편안한 땅이 되는 것이다.
어지러운 전란을 거치는 동안 사로잡힌 사람들을 보니, 비록 대대로 평범한 소인이었지만 논어를 알고 효경을 읽은 사람은 남의 선생이 되었다.
그러니 천 년을 벼슬살이 한 집안이더라도 낮은 직(書記)의 일을 모르는 사람은 농사일이나 말 먹이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살펴보건대 스스로 부단히 노력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만약에 수 백 권의 책을 평소 꾸준히 읽고 노력했다면 천 년이 지나도 평민(小人)으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及離亂之後, 朝市遷革, 銓衡選舉, 非復曩者之親; 當路秉權, 不見昔時之黨。求諸身而無所得, 施之世而無所用。被褐而喪珠, 失皮而露質, 兀若枯木, 泊若窮流, 鹿獨戎馬之間, 轉死溝壑之際。當爾之時, 誠駑材也。有學藝者, 觸地而安。自荒亂已來, 諸見俘虜。雖百世小人, 知讀論語, 孝經者, 尚為人師; 雖千載冠冕, 不曉書記者, 莫不耕田養馬。以此觀之, 安可不自勉耶? 若能常保數百卷書, 千載終不為小人也。
(顏氏家訓 卷第三 勉學第八)
▶️ 觸(닿을 촉)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뿔 각(角; 뿔)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벌레가 잎에 들러붙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蜀(촉)으로 이루어졌다. 뿔을 갖다대어 찌르다, 전(轉)하여 犯(범)하다, 닿다의 뜻이 있다. ❷형성문자로 觸자는 ‘닿다’나 ‘찌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觸자는 角(뿔 각)자와 蜀(벌레 촉)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蜀자는 ‘애벌레’를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觸자는 뿔로 무언가를 들이받는다는 것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로 본래의 의미는 ‘찌르다’나 ‘받다’이다. 뿔이 있는 동물들은 심한 자극을 받았을 때 사람이나 동물을 들이받는 행위를 한다. 그래서 觸자는 ‘찌르다’라는 뜻 외에도 무언가에 의해 자극을 받는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觸(촉)은 ①닿다 ②찌르다 ③느끼다 ④받다 ⑤범(犯)하다 ⑥더럽히다 ⑦물고기 ⑧물고기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일을 당하여 충동이나 감정 따위를 유발함을 촉발(觸發), 피부의 겉에 다른 물건이 닿을 때 느끼는 감각을 촉각(觸覺), 무엇에 닿았을 때의 느낌을 촉감(觸感), 법으로 금하는 데 저촉된 물건을 촉물(觸物), 일을 범하여 일으킴을 촉사(觸事), 더러운 짓을 범함을 촉오(觸汚), 웃어른의 마음을 거슬려서 성을 벌컥 내게 함을 촉노(觸怒), 자극하여 움직임을 촉동(觸動), 추운 기운이 몸에 닿아서 병이 일어남을 촉상(觸傷), 차디찬 촉감을 냉촉(冷觸), 맞붙어서 닿음을 접촉(接觸), 손으로 만질 때의 느낌을 감촉(感觸), 서로 충돌함이나 서로 부딪침이나 서로 모순됨을 저촉(抵觸), 손을 대어서 건드리지 아니함을 불촉(不觸), 사소한 일로 서로 싸우는 일을 만촉(蠻觸), 집적거리어 비위를 거스름을 도촉(挑觸), 격렬하게 대들어 맞섬을 격촉(激觸), 사물이 눈에 보이는 것마다 슬픔을 자아 내어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촉목상심(觸目傷心), 가서 닥치는 곳마다 낭패를 당한다는 말을 촉처봉패(觸處逢敗), 한 번 닿기만 하여도 곧 폭발한다는 뜻으로 조그만 자극에도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태를 이르는 말을 일촉즉발(一觸卽發), 만씨와 촉씨의 다툼이라는 뜻으로 시시한 일로 다툼을 이르는 말을 만촉지쟁(蠻觸之爭), 어미 없는 송아지가 젖을 먹기 위해 어미를 찾는다는 뜻으로 연고 없는 고독한 사람이 구원을 바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고독촉유(孤犢觸乳), 숫양이 무엇이든지 뿔로 받기를 좋아하여 울타리를 받다가 뿔이 걸려 꼼짝도 못한다는 뜻으로 사람의 진퇴가 자유롭지 못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저양촉번(羝羊觸蕃) 등에 쓰인다.
▶️ 地(땅 지)는 ❶회의문자로 埅(지), 埊(지), 墬(지), 嶳(지)가 고자(古字)이다. 온누리(也; 큰 뱀의 형상)에 잇달아 흙(土)이 깔려 있다는 뜻을 합(合)한 글자로 땅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地자는 ‘땅’이나 ‘대지’, ‘장소’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地자는 土(흙 토)자와 也(어조사 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也자는 주전자를 그린 것이다. 地자는 이렇게 물을 담는 주전자를 그린 也자에 土자를 결합한 것으로 흙과 물이 있는 ‘땅’을 표현하고 있다. 地자는 잡초가 무성한 곳에서는 뱀을 흔히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대지(土)와 뱀(也)’을 함께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地(지)는 (1)일부 명사(名詞) 뒤에 붙어 그 명사가 뜻하는 그곳임을 나타내는 말 (2)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 명사가 뜻하는 그 옷의 감을 나타냄 (3)사대종(四大種)의 하나 견고를 성(性)으로 하고, 능지(能持)를 용(用)으로 함 등의 뜻으로 ①땅, 대지(大地) ②곳, 장소(場所) ③노정(路程: 목적지까지의 거리) ④논밭 ⑤뭍, 육지(陸地) ⑥영토(領土), 국토(國土) ⑦토지(土地)의 신(神) ⑧처지(處地), 처해 있는 형편 ⑨바탕, 본래(本來)의 성질(性質) ⑩신분(身分), 자리, 문벌(門閥), 지위(地位) ⑪분별(分別), 구별(區別) ⑫다만, 뿐 ⑬살다, 거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흙 토(土), 땅 곤(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하늘 건(乾), 하늘 천(天)이다. 용례로는 일정한 땅의 구역을 지역(地域), 어느 방면의 땅이나 서울 이외의 지역을 지방(地方), 사람이 살고 있는 땅 덩어리를 지구(地球), 땅의 경계 또는 어떠한 처지나 형편을 지경(地境), 개인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치를 지위(地位), 마을이나 산천이나 지역 따위의 이름을 지명(地名), 땅이 흔들리고 갈라지는 지각 변동 현상을 지진(地震), 땅의 위나 이 세상을 지상(地上), 땅의 표면을 지반(地盤), 집터로 집을 지을 땅을 택지(宅地), 건축물이나 도로에 쓰이는 땅을 부지(敷地), 자기가 처해 있는 경우 또는 환경을 처지(處地), 남은 땅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나 희망을 여지(餘地), 토지를 조각조각 나누어서 매겨 놓은 땅의 번호를 번지(番地), 하늘과 땅을 천지(天地), 주택이나 공장 등이 집단을 이루고 있는 일정 구역을 단지(團地), 어떤 일이 벌어진 바로 그 곳을 현지(現地), 바닥이 평평한 땅을 평지(平地), 자기 집을 멀리 떠나 있는 곳을 객지(客地),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역지사지(易地思之),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몸을 사림을 복지부동(伏地不動),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움직이게 한다는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 방향이 어디이고 땅의 방향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천방지방(天方地方), 감격스런 마음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음을 감격무지(感激無地) 등에 쓰인다.
▶️ 而(말 이을 이, 능히 능)는 ❶상형문자로 턱 수염의 모양으로, 구레나룻 즉,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말한다. 음(音)을 빌어 어조사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而자는 ‘말을 잇다’나 ‘자네’, ‘~로서’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而자의 갑골문을 보면 턱 아래에 길게 드리워진 수염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而자는 본래 ‘턱수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지금의 而자는 ‘자네’나 ‘그대’처럼 인칭대명사로 쓰이거나 ‘~로써’나 ‘~하면서’와 같은 접속사로 가차(假借)되어 있다. 하지만 而자가 부수 역할을 할 때는 여전히 ‘턱수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而(이, 능)는 ①말을 잇다 ②같다 ③너, 자네, 그대 ④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 ⑤만약(萬若), 만일 ⑥뿐, 따름 ⑦그리고 ⑧~로서, ~에 ⑨~하면서 ⑩그러나, 그런데도, 그리고 ⓐ능(能)히(능) ⓑ재능(才能), 능력(能力)(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30세를 일컬는 이립(而立), 이제 와서를 이금(而今), 지금부터를 이후(而後), 그러나 또는 그러고 나서를 연이(然而), 이로부터 앞으로 차후라는 이금이후(而今以後), 온화한 낯빛을 이강지색(而康之色) 등에 쓰인다.
▶️ 安(편안 안)은 ❶회의문자로 사람이 무릎꿇고 깍지끼어 신을 섬기는 모습의 女(여자)가 건물의 지붕, 신을 모시는 곳을 뜻하는 집(宀) 안에 있는 모양으로 편안함을 뜻한다. 安(안)은 사람이 사당에서 신을 섬기는 일, 나중에 女(녀)를 여자라 생각하여 安(안)은 집속에 여자가 고요히 앉아 있는 모양에서 평안함이라 설명하게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安자는 ‘편안하다’나 ‘편안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安자는 宀(집 면)자와 女(여자 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갑골문에 나온 安자도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다. 安자는 여자가 집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편안하다’나 ‘안정적이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安(안)은 성(姓)의 하나로 ①편안(便安) ②편안하다 ③편안(便安)하게 하다 ④안존(安存)하다(아무런 탈 없이 평안히 지내다) ⑤즐거움에 빠지다 ⑥즐기다, 좋아하다 ⑦어찌 ⑧이에(乃), 곧 ⑨어디에 ⑩안으로, 속으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편할 편(便), 편안할 녕(寧), 편안 강(康), 편안할 온(穩), 편안할 정(靖),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위태할 위(危)이다. 용례로는 편안히 보전함을 안보(安保), 편안하여 탈이나 위험성이 없음을 안전(安全), 일이나 마음이 평안하게 정하여 짐을 안정(安定), 근심이 없고 편안함을 안이(安易), 편안하고 한가함을 안일(安逸), 걱정이나 탈이 없음을 안녕(安寧), 걱정이 없이 마음을 편안히 가짐을 안심(安心), 평안함과 평안하지 아니함을 안부(安否), 정신이 편안하고 고요함을 안정(安靜),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몸이 괴롭거나 아프거나 힘들거나 하지 않고 편하여 좋음을 편안(便安),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림을 치안(治安), 위로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함을 위안(慰安), 안전을 유지하는 일을 보안(保安), 오래도록 평안함을 구안(久安), 무사히 잘 있음을 평안(平安), 웃어른에게 안부를 여쭘을 문안(問安), 편안한 때일수록 위험이 닥칠 때를 생각하여 미리 대비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안거위사(安居危思), 구차하고 궁색하면서도 그것에 구속되지 않고 평안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감을 일컫는 말을 안빈낙도(安貧樂道), 자기 분수에 만족하여 다른 데 마음을 두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안분지족(安分知足), 평화롭고 한가하여 마음 내키는 대로 즐김을 일컫는 말을 안한자적(安閑自適), 편안한 가운데서도 늘 위험을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늘 스스로를 경계하여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어려움에 대처함을 이르는 말을 안불망위(安不忘危), 편안히 살면서 생업을 즐김을 일컫는 말을 안가낙업(安家樂業), 마음 놓고 있을 집과 사람이 지켜야 할 바른 길이라는 뜻으로 인의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안택정로(安宅正路), 어찌 그러치 않으랴 또는 마땅히 그러할 것이다란 뜻으로 하는 말을 안득불연(安得不然), 확실한 안심을 얻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안심결정(安心決定), 반석과 같이 든든하여 위태함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안여태산(安如泰山), 조용하고 편안하게 아무 일 없이 지냄을 일컫는 말을 안온무사(安穩無事), 부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빈자를 구하여 물품을 베풀어 줌을 일컫는 말을 안부휼궁(安富恤窮)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