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에서 이포나루 방향으로 길을 달리다보면 금사면 이포리 국도변에 ‘경기무형문화재 37호, 오부자옹기’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옹기장이 김일만씨(64)가 아들 4형제와 함께 7대째 가업을 이으며 옹기를 굽고 있는 가마터다. 조선시대 때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도였던 김씨의 조상이 호구지책으로 옹기를 굽던 것이 지금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민속자료로 인정받은 가마는 약 150년의 역사를 안고 있다.
김씨 오부자가 굽는 옹기는 가스가마와 화학제품으로 만든 겉이 매끈한 옹기에 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김씨는 가마터가 있었지만 먹고 살기 힘들어 전국을 떠돌아다니다시피 했고 아이들이 자라자 1980년대 부터 여주에 정착했다. 말이 정착이지 장남 성호씨(42)와 차남 종호씨(39)는 간신히 초등학교를 마쳤다. 가수가 되고 싶었던 창호씨(36)는 가난이 지겨워 무작정 상경했다가 13년 전에 돌아와 다시 가마에 불을 지폈다.
가난은 여전히 따라다녔다. 1995년 4형제는 ‘이제 (옹기 굽는 일을) 완전히 접자’고 결론을 내렸지만 아버지는 장인정신을 버리지 않았다.그동안 단골이 형성되면서 겨우 먹고 살 만했고 이제는 일본에서 수학여행을 올 정도로 유명해졌다. 따로 떨어져 사는 장남과 차남도 작업이 시작되면 가마터로 찾아온다. 아버지는 총감독, 장남은 흙을 선택하고 유약을 만들고 차남은 물레를 찬다. 도자기공예과를 다닌 삼남은 옹기의 현대화 작업에 골몰한다. 막내 용호씨(30)는 아버지를 뒤를 이어 큰 옹기 작업을 한다.
‘숨 쉬는 옹기’ 하나가 태어나기까지는 약 3개월이 소요된다. 가마가 꽉 차도록 옹기를 만든 다음 5일간 불을 때고 5일간 식히는데 대추 색깔이 나는 옹기를 최상으로 친다. 오부자옹기는 가족간의 유대를 바탕으로 불편하지만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장인정신으로 뒤늦게 빛을 보는 명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