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한상억(韓相億 1915-1992) 강화 출생
曲 : 최영섭(崔永燮 1929- ) 강화 출생
시인 한상억은 - 1935년 인천공립상업학교를 졸업했다.
'평행선의 대결' '창변사유' 같은 시집을 남겼지만 , 그가 일약 유명해진 것은 '그리운 금강산' 때문이었다. 이 노래는 1961년 한국전쟁 11주년 기념으로,
KBS의 청탁을 받아 한상억이 작사했고, 곡은 아련한 그리움과 , 민족의 비원을 애틋하게 표현했으나 - 절제를 가진 명곡으로 평가받는다.
이 노래비는 -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뜰에 서 있다.
경기일보·경기매일신문 논설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작곡가겸 지휘자 최영섭은 -
중학교 5학년 때 -
이미 작곡발표회를 가질 정도로 음악적 소질을 보였다.
그는 서울대학교 작곡과에 입학하여 ,
김성태 교수에게 배웠으나 -
6ㆍ25 전쟁 중에서 졸업하지 못하고 대학 4년을 수료하였다.
그 후 -
비인 국립음대로 유학하여 ,
"칼 베스터라이히"(Karl Westereich) 교수에게 지휘법을 배웠다.
한때 대학에서 강사를 지냈으며 다섯회의 작곡발표회와 ,
여러장의 독집음반을 내는 등 활발한 작곡활동을 펼쳐왔고,
서울그린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역임하는 등 지휘자로서도 활동하였다.
대표가곡으로는 -
칸타타 '아름다운 내 강산'의 삽입곡 중 하나인 '그리운 금강산'이 있다.
작곡집으로 가곡집 -
'소라'와 오페레타 '운림지' 등이 있고,
서울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명예단장을 지냈으며 ,
대한민국 방송대상과 ,
2001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누구의 주재런가
맑고 고운산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의 금강산"
"수수 만년 아름다운 산 못 가본지 그 몇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자리 흰 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
발아래 산해만리 보이지 마라 우리 다 맺힌 원한 풀릴 때 까지"
"수수 만년 아름다운 산 못 가본지 그 몇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가사의 와전된 내용 및 개사 내역
가사중 - 주제런가는 원래 주재(主宰)로 작사를 했는데 , 그당시 인쇄를 잘못하여 지금까지
주제런가로 불리어 지고있다 한다. 작곡자 최영섭의 설명은 , 작사자 한상억은 원래 "관장하다, 주장하여"라는 뜻의 주재(主宰)>라고 썼다.- 누가 이렇게 아름답고 ,고운 명산을 만들어냈느냐는 뜻이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주제(主題)>로 오식(誤植)이 되었다.
한상억은 마지 못한듯 - "원래 뜻과 많이 다르지만, 문맥상 억지는 아니다"라며 받아들였고,
그 이후 '주제'로 표기되기 시작했다. '주제런가'로 된 악보도 있지만 이는 어법에 맞지 않는다.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다른 부분도 달라졌다. 72년 남북적십자 회담이 열리자 -
한상억은 후렴의 "수수만년 아름다운산 더럽힌지 몇몇해"중 - '더럽힌지'를 '못가본지'로,
2절의 첫 소절 - "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자리" 의 '짓밟힌 자리'를 - '예대로인가' 로----,
중간부분 "우리 다 맺힌 원한"의 '원한'을 -- '슬픔'으로 고쳤다.
이 노래는 61년 여름 서울중앙방송국(현KBS)이 - "조국강산을 소재로 가곡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만들어 달라"며 , 위촉한 작품이었다. 주문대로 이 노래는 가곡사에 길이 남게 됐다.
작사자의 의도에 맞게 - '누구의 주재런가'로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