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그레이엄의 자서전을 다시 읽으며 언론을 생각한다. 지난 17일 타계한그 ‘미국 언론의 여제(女帝)’는 ‘위대한 신문, 위대한사주(社主)’라는화두를 던졌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싸고 정부와 언론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워싱턴 포스트를 ‘위대한신문’으로 키운 그의 정신은 우리에게 좋은 지침을 준다.
금융 재벌인 아버지가 1933년 매입한 워싱턴 포스트의 경영을 그가 맡은 것은63년이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신문사를 경영하던 남편이 조울증으로 권총자살하자 그는 주부에서 신문 발행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슬아슬하게만 보이던 46세의 여성은 용기, 열정, 균형감각, 명석함과 겸손으로 성공적인 신문경영인이 되었다.
월남전 기밀문서 ‘펜타곤페이퍼즈’ 특종과 닉슨대통령을 하야 시킨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워싱턴 포스트는 명실공히 세계의 권위지가 되었다.
권력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특종을 밀고 나간 캐서린 그레이엄은70년대에 이미 ‘미국 언론사의 살아있는 신화’가 됐다.
그의 자서전은 미국의 언론과 권력의 관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를 보여준다.46년부터 63년까지 워싱턴 포스트 발행인으로 일했던 남편 필립 그레이엄이 역대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들, 많은 정치인들과 맺었던 관계를 그는 솔직하게적고 있다.
52년 대선에서 아이젠하워를 지지하면서 아이젠하워에게 비판적인 사설과 만화를 빼버린 일, 린든 존슨을 위해 찬조연설을 하고 선거전략을 짜고 연설문을 손질해 주던 일, 존 F 케네디가 부통령 후보로 존슨을 지명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일등을 기술하면서 “지금생각하면 필요이상 정치와 밀착했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 당시에는 흔히 있던 일”이라는 설명을 붙이고 있다.
펜타곤 페이퍼스와 워터게이트 특종을 밀고 나갈 때 정부로부터 받은 압력은 무시무시했다.
워싱턴 포스트가 가지고 있는 방송국 허가권을 뺐겠다는 협박, 제삼자로 하여금 워싱턴 포스트 주식을 사게 하여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시도, “젖가슴을세탁기에 넣고 짜버리겠다”는 욕설 등을 물리치고 그는 기자들과 편집인들이 진실을 캐내도록 독려했다.
주식상장에 미칠여파를 우려하는 자문 변호사들의 보도중지 건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익보호와 국민의 알권리 사이에서 신문은 국민을 선택할수 밖에 없다”고 그는 말했다.
한국은 오늘 미국의 언론과 권력사이에서 벌어졌던 50년~70년대의 상황을 겪고있다. 삼십년 또는 오십년 늦었지만, 늦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지금이라도 의식이 바로 서면 언론과 권력의 후진적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엇이 위대한 신문을 만드는가. 그것은 바로 위대한 사주”라고 23일 열린 그레이엄의 장례식에서 벤저민 브레들리는증언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주필과 편집국장을 지낸 그는 ‘위대한 사주’의 30년 동지였다. 워터게이트 보도로 사임한 닉슨대통령 밑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키신저는 “고위 공직자들이 윤리와 사법적 규범에 따르도록 한인물”이라고 추모했다.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는 “그는 독립적이고부패하지 않고 정력적인 언론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시켰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제왕적대통령제’가 힘을 잃었다”고 말했다.
84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존경속에서 신문을 이끌었던 이 행복한 여성의 힘은어디서 왔을까.
그의 아버지 유진 메이어는 일찍이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고, 진실을 올바로 전달하기 위해유능한 기자들을 확보하는 것이 발행인의 의무다”라고 말했다.
캐서린을 언론계 여제로 만든 강한 힘은아버지의 단순한 말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위대한 신문을 만드는 여러 요소중의 하나로 나는 주저하지 않고 위대한 사주를꼽는다. 그러나 위대한 사주가 되는 길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
‘기자들로 하여금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을 환하게 비추도록하고 싶어했던’ 그레이엄의 소박한 꿈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오늘 신문과 정부의 갈등속에서 저마다 그레이엄을아전인수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레이엄의 진실은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그러나 매우 엄격하여 누구나 함부로 끌어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