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의 책방>
99%의 장막을 걷는 이방인의 보폭
- 김수우 산문집 『이방인의 춤』을 읽다
양민숙 (시인, 제주꿈바당어린이도서관장)
최근 김수우 시인의 강의 ‘시와 삶, 그 새로운 눈동자에 대하여’를 들었다. 시인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선 1%의 가시적 현실 너머에, 진정한 가치가 잠재된 99%의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행복, 자유, 만족과 같은 삶의 본질은 그 99%의 심연에 숨어 있으며, 상상력이라는 뜨거운 열정만이 그 장막을 펄럭이게 하여 현실로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사소한 일상에서 길어 올린 상상력을 통해 나 자신과 세계를 새롭게 창출할 수 있다는 희망은 가슴을 뛰게 했다. 이러한 사유는 정답만을 좇아왔던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하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 시선을 확장해야 한다는 필요를 느끼게 했다.
강의의 여운은 자연스럽게 예전에 읽었던 시인의 산문집 『이방인의 춤』으로 이어졌다. 당시 책을 읽으며 느꼈던 ‘이방인’의 감각이 강의 내용과 맞물려 더욱 선명해졌다. 시인에게 이방인이란 주류의 질서에 안주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기 위해 스스로 경계에 서려는 자다.
이 책은 시인의 고향인 부산 영도 산복도로의 굽이진 골목에서 시작하여 사하라 사막과 카나리아 제도까지 이어지는 길 위의 기록이다. 시인은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부른다. 이는 정착하지 못하는 방랑자의 슬픔이 아니라, 어느 한 곳에 고착되지 않고 끊임없이 경계를 넘나들며 자기 자신을 갱신하려는 능동적인 삶의 태도다.
『이방인의 춤』 속에는 ‘향이, 솔이, 단이’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표면적으로 그들은 산복도로의 척박한 계단이나 변방의 거리에 머무는 타자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이들은 평범한 타인이 아니다. 오히려 시인이 삶의 다양한 결을 통과하며 만나온 자신의 여러 얼굴이자 분열된 자아의 파편들에 가깝다.그들은 가난한 삶을 견디는 존재이기도 하고, 상처를 품은 채 타인을 환대하는 존재이기도 하며, 동시에 시인이 스스로에게 묻고 확인해 온 내면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향이와 솔이, 단이는 ‘타자’라기보다 수천 개의 자아로 이루어진 한 인간의 내적 군집이라고 볼 수 있다.
시인은 "알맞게 가난했고 알맞게 행복했다"고 고백한다. 이는 결핍을 억지로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 속에서도 훼손되지 않는 영혼의 존엄을 지켜낸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영도 다리 아래의 무속적 풍경이나 낯선 타국에서 만난 인연들은 모두 시인의 시선을 통해 공존과 공감의 인드라망으로 엮인다.
이 책에서 문학은 결코 고고한 상아탑 속에 있지 않다. 시인에게 문학은 삶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그 통증을 한 코 한 코 짜 올려 진주로 키워내는 과정이다. 효율과 속도를 강조하는 세상에서 시인은 기꺼이 뒤처지는 쪽을 택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뒤에서 걷는다"는 그의 말처럼, 앞서간 이가 남긴 흔적을 오래 바라보는 ‘뒤의 시선’이야말로 이 산문집의 핵심이다.
강의에서 만난 시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한 뜨거운 외침이었다면, 『이방인의 춤』은 그 가치가 구체적인 삶 속에서 어떻게 증명해 내는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몸짓이다.
책을 다시 떠올리며 나는 지금 어떤 속도로, 어떤 방향으로 걷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시인은 삶을 "수천 생을 바쳐 받아낸 훈장"이라 말하며, 아무렇게나 달아도 달각거리며 풍경 소리를 내는 그 존재의 가치를 믿으라고 전한다.
시인의 사유에서 상상력은 결국 ‘타자와의 관계’로 이어진다. 인간이 관계적 존재이듯, 우리의 삶 또한 서로 얽혀 있는 하나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순간, 상상력은 멈춘다. 그렇기에 시인은 타인의 울음에 반응하던 최초의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 「뒤」에서처럼, 시인은 앞서가는 이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며 그가 남긴 작은 빛을 놓치지 않는다. 만약 내가 들고 있는 등불이 나 자신이 아니라 타자의 앞을 비추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서로를 향해 조금 더 다정하게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방인의 춤』은 타자를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수천 개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는 여정이다. 그 여정 끝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나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하는 일이며, 그 발견이야말로 삶을 더 넓고 깊게 만드는 상상력의 시작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