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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달을 보면서 한잔 술을 마시며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이백이다. 허지만 내가 중국 여행 중 만난 시인이 두보와 굴원이었다 굴원은 양츠강 거슬러 올라가다 만난 동상 앞에서 그 때는 잘 몰랐던 시인이었고, 두보초당 대나무 숲에서 만난 시인은 나에게 익숙한 두보였다.
두보초당 두보 앞에서 이 먼 곳을 비행기로 차로 어렵게 찾아 간 두보 거리를 걸으며 어떻게 두보의 시가 우리나라에 알려져 우리 옛 선인들이 흠모하는 두보의 시를 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돌아 왔었다.
두보초당에서 만난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 두보가 굴원의 나라 사랑하는 충절을 흠모하고 닮으려 했었다는 말을 듣고서야 중국의 시인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한문 고전강독 선택으로 알게 된, 신라 文聖王 (857) 시대에도 중국과의 잦은 왕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시인의 시가 걸려있는 앞에서, 이 먼 이국 땅에서 우리나라 시를 대할 수 있었는지의 궁금증도 풀린다.
「최치원은 12세에 당에 유학하여 그곳 빈공과에 합격한다든지, 박인범, 최광유, 최승석등이 중국 유학시절 중국시성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축된다.』또 과거시험에서 내걸린 주제도 중국 시성들의 시제가 걸렸을 것으로 생각하니 시대는 달랐지만 두보와 이백에게 영향을 준 굴원을 알게 된 계기로 중국 시성들에 대한 궁금증으로 우리한테 잘 알려진 이백과 두보의 시심을 보고 싶어 선택한 제재다.
논문을 쓰려고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이백의 고구려라는 시를 보고, “아, 그랬었구나.‘ 옛 선인들의 교육열이 어린 나이에도 오늘날처럼 중국유학을 보낸 것을 알고서야 광활한 중국 시인들의 시가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우리나라의 시도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인들이 감탄했다는 말이 실감된다. 훈민정음 이전에는 과거시험에 나오는 제재가 나라 사랑하는 굴원의 임금에 대한 충절의 시 라든지 두보의 시가 내 걸렸을 것이라고 유추해 본다.
한문이 과거제도 때문에 더 사랑받을 수 밖에 없던 시대를 보면서 훈민정음을 인정하지 않던 사대부들의 사상을 알게 되고 글이 없던 시대에 단 한글자로 많은 내용을 담아 낼 수 있는 한문에 사대부들이 빠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은 당연한 결과 인 듯하다. 그러면서 자연히 중국 시성들의 시를 흠모하게 되어 오늘 날까지 이백과 두보의 시가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리라.
중국의 문학사에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2대 시인은 단연코 이백과 두보이다. 두 시인의 시상을 알고자 택한 제재이다.
Ⅱ. 이백과 두보의 만남
이백은 詩仙, 두보를 詩聖 이라고 칭하는데, 두 詩歌는 각기 다른 성격의 시풍을 구사 하는데, 이백은 자유분방하며, 낙천적이며 뛰어난 선천적인 감각으로 생각하고 상상케 하는 그윽함이 넘치는 글로서 인간의 기쁨을 노래한 반면 두보의 시는 열혈한 애국과 심각한 연민 에서 나타나듯이 현실 반영과 비판에 의거한 인간의 고뇌에 깊이 침잠하여 시대의 아픔을 寫實적인 서사시로 표현하였다.
후세사람이 이르기를 이백의 창조적인 환상미는 두보가 백번을 환생해도 못 따르고, 두보의 사실적 조형미는 이백이 백번 환생해도 못 따른다고 말하고 있다.
이백이 44세 때인 744년 당나라 현종 때 洛陽에서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져 함께 강남으로 돌아다니며 酒을 벗 삼아 詩를 읊으며 각자의 마음을 달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두 사람은 11살의 나이차가 있는데, 첫 만남에서 의기투합 하여 주유천하 하면서 시가를 즐기는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시대상은 唐(玄宗)代로, 가장 문화전성기를 구가하였던 시기였다. 두 사람은 모두 일찍이 젊은 공명심과 패기로 관직에 발을 디뎠으나 강직함으로 결국 출세를 못하고 일생을 방랑생활로 시와 술로 마음을 달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두 사람은 11살의 나이차가 있는데, 첫 만남에서 의기투합 하여 주유천하 하면서 시가를 즐기는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시대상은 唐(玄宗)代로, 가장 문화전성기를 구가하였던 시기였다. 두 사람은 모두 일찍이 젊은 공명심과 패기로 관직에 발을 디뎠으나 강직함으로 결국 출세를 못하고 일생을 방랑생활로 시와 술로 마음을 달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Ⅲ. 이백의(701-762)시 세계
이백은(701-762년) 자는 太百, 호는 靑蓮居士, 시풍에서 나타나듯이 낙천적인 데다 무술도 하는 건강체질이었다. 술과 낚시를 연상케 한다.
‘달의 시인’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이백은 구름 같은 방랑 시인이었다. 부모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터라 구구한 추측들이 나돌게 되었고, 본래 사천성 창명현 출생이라는 설. 性 마저 불확실한 서역의 이민족이라는 설. 아무튼 쇄엽 출생으로 5세 무렵 호상인 아버지를 따라 사천성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봄이 일반적이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현령인 이양빙에게 만 권 시고를 맡기고 일생을 마감하매, 용산에 장사 지냈음이 확실하건 만은, 채석에서 뱃놀이를 하다 물에 빠진 달을 건지려고 익사했다고 하는가 하면,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등의 전설로 전해진다. 이백은 어려서부터 시를 쓰는데 타고난 천재성을 보였다. 검술을 좋아하고 한군데 오래 머물지 않고 돌아 다녔으며, 젊은 시절 도교에 심취하여 그의 시풍은 도교적이다. 제갈량이 북벌을 위해 수없이 오고간 廣元 대검산 ‘劍門關’에 돌비석에 새겨진 이백의 ‘蜀道難’이란 시가 새겨져 있다.
이백의 화려하고 찬란한 낭만주의의 극치로 다양한 제재로 술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시선인 동시에 주선이란 두 이미지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백에게는 겉으로 보이는 낙천적인 표정과는 달리, 남모르는 시름이 많았으니, 그로 하여금 하루에 모름지기 삼백 잔을 기울이게 한 백년수 천고수 만고수 궁수천만단의 시름이란 한 가정에 속박될 수 없는 방랑벽 때문에 가족에 대한 안쓰러움과 죄책감이며, 태연한 듯 하면서도 잊을 수 없는 고향에의 그리움이며, 문득문득 엄습해 오는 외로음이며, 신선을 꿈꾸면서도 인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탄이며, 포부를 펼쳐보지도 못하고 실각한 정객으로서의 울분이며... 천하의 시름을 혼자 걸머진 대리수였던 그의 술잔에는 언제나 인생무상이 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이 시름에는 고독도 한몫을 차지하여 낮선 땅 황혼에서서, 구름과 새들의 행방을 지켜보면서
저들은 다 돌아갈 곳이 있건만, 이 나는 의지할 곳이 없고녀. 하며 가끔 이렇게 탄식했으니 고향 생각에 고개를 떨 구기도 하면서 향수에 애타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백의 ‘음주의 변’은 다채롭다.
주종도 청주. 탁주. 백주. 녹주 포도주 .국화주. 신풍주. 울금주...통칭해서 비주로 일컬었다. 술잔도 금배 금준 오관 금뢰 옥호 백옥배 오박배 서주작...
취태도 화화미. 취여니. 퇴연와...다양하다
이백의 시에서의 자연과 인생은 하나의 사랑으로 귀일되어 있음을 본다. 산천초목이며 달과 꽃과 새와 바람과 구름은 그의 술자리에 동참하여, 사랑으로 다가오는 친구요 애인이었다. 자연은 인간에게로 사랑으로 오는 위치 바꿈 되어 오는 것이 독특하다.
이런 남다른 자연관을 몇 예를 들면.
『그대여 이 잔 거절 말게나
봄바람은 생글생글 우리에게 다가오고』
『꾀꼬리는 푸르 가지에 울고
밝은 달을 술단지 속을 기웃거린다.』
『저물어 푸른 산을 내려오자니
산달이 나를 따라 마을로 돌아온다.』
달도 제 퀘도들 벗어나 그의 뒤를 발밤발밤 따라오고 있는 것이다.
『산꽃이 내게 방긋 웃나니
한잔 딱 하기 좋을텐데...』
『지는 달은 처마 밑으로
불 꺼진 방 안을 기웃거리고
떨어져 나는 꽃잎도 방에 들어와
침상 옆 빈자리를 비웃는다.』
『봄바람 나와는 안면 없건만
무슨 일로 비단 휘장 들쳐 드는고?』
『연꽃은 이양 떨며 “사랑해요” 말해 올 듯
배 젓는 사람을 애타게 하네』
이처럼 자연을 수동적 피상체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랑을 고백해 오는 능동체로 변신해 있는 것이다.
이백의 시는 두보의 와는 대조적으로 신체시가 적은 반면 장편 고시체가 많다 . 그것은 신체시보다는 격식이 엄격하지 않아 시상이 동 하는 대로 분방하게 붓을 달리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신체시에도 平仄에 얽매이지 않은 破格이 많으니, 속박에 억매이지 않는 그의 성격이서라고 볼 수 있다.
기상천외한 표현도 특별한 언어가 아니라 수식도 없는 일상의 생활 용어 일 분이다. 그래서 더 사랑을 받는 시인이다.
그 제재도 분방한 공상력과 솟구치는 정열을 불어 넣음으로써 새로운 경이로움으로 변신한 영원한 생명의 향기롭고도 찬란한 시의 꽃을 피워내곤 했던, 마치 미다스 왕의 손길이 닿는 것마다 찬란한 황금으로 바뀌는 것과도 같은 시성이다.
그래서 두보는 그를 평하여 ‘술 한말에 시 백 편’ 이라 했고 또 이백의 시를 평하여서는
『붓을 달리면 풍우를 놀라게 하고
시가 이루어지면 귀신도 울리었다고 했으니, 하물며 사람을 울리는 일쯤이야』
이백의 시집은 당대에 이미 이양빙이 편집한 초당집과 魏顥가 서문을 붙인 李翰林集의 두 가지가 있었으나 다 전하지 아니하고, 지금 전하는 것의 가장 오래된 것은 송대의 것으로, 여러 판본들이 나왔는데, 수록된 시는 야 1000여수이다.
李白의 詩
1. 月下獨酌 李白
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月旣不解飮 影徒隨我身
暫伴月將影 行樂須及春
我歌月排徊 我舞影泠亂
醒時同交歡 醉後各分散
永結無情遊 相期邈雲漢
꽃나무 사이 한 단지 술을
친구 없이 혼자 마시다
술잔들어 달을 맞으니
내 그림자랑 셋이 되었네.
달이야 본래 술 못하지만
그림잔 고분고분 나를 따르네
달과 그림자 잠시 벗하여
이 봄을 한껏 즐겨 볼까나
내 노래에 달은 어지렁거리고
내 춤에 그림자는 범벅춤 춘다
깨어 있어선 함께 즐기다
취해 잠들면 흩어지나니
시름없는 우리 사귐 길이 맺어서
먼 은하에서도 만나자꾸나
감상
달 아래 혼자 마시며 4 편중 이 月下獨酌 一은 미소를 머금게 한다.
술을 노래하는 시중 대표작중 으뜸인 月下獨酌 一 .
봄 밤 꽃나무 사이에 달과 술 그림자와 셋이 어지렁 거리며 추는 범벅춤은 친구 없는 고독을 승화한, 낭만의 극치이다. 酒仙다운, 詩仙다운 면모이다.
달은 술 못 마시는 친구지만, 그림자는 고분고분 같이 내 몸짓 따라 술도 마셔주고 너울너울 어지렁 어지렁 같이 범벅춤을 추는 것이다. 그러다 잠들어버리면 제각기 흩어지는 아쉬움을 忘精의 교분을 맺어, 후생에서도 아득히 높은 은하의 세계에서 다시 만날 그날 있기를 서로 기약하자는 마음은 미소짓게도 하지만 처연하기까지 하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들일지라도 같이 어울려 어지렁 거리고 범벅춤을 함께 추구 싶은 마음이 든다.
2. 將進酒 李白
君不見 군불견
黃河之水天上來 황하지수천상래
奔流到海不復廻 분류도해불부회
又不見 우불견
高明鏡悲白髮 고당명경비백발
朝如靑絲暮如雪 조여청사모여설
人生得意須盡환 인생득의수진환
莫使金樽空對月 막사금준공대월
天生我材必有用 천생아재필유용
千金散盡還復來 천금산진환부래
烹羊宰牛且爲樂 팽양재우차위락
會須一飮三百杯 회수일음삼백배
岑夫子,丹丘生 잠부자,단구생
將進酒,君莫停 장진주,군막정
與君歌一曲 여군가일곡
請君爲我側耳聽 청군위아측이청
鍾鼎玉帛不足貴 종정옥백부족귀
但願長醉不願醒 단원장취불원성
古來賢達皆寂莫 고래현달개적막
惟有飮者留其名 유유음자유기명
陳王昔日宴平樂 진왕석일연평락
斗酒十千恣歡謔 두주십천자환학
主人何爲言少錢 주인하위언소전
且須沽酒對君酌 차수고주대군작
五花馬,千金구 오화마,천금구
呼兒將出換美酒 호아장출환미주
與爾同銷萬古愁 여이동소만고수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황하지수천상래 황하의 강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삐 흘러 바다로 가 다시 못 옴을
또한, 보지 못하였는가
고당명경비백발 고당명경에 비친 백발의 슬픔
아침에 검던 머리 저녁에 희었다네
기쁨이 있으면 마음껏 즐겨야지
잔에 공연히 달빛만 채우려나
하늘이 준 재능은 쓰여질 날 있을 테고
재물은 다 써져도 다시 돌아올 것을
양은 삶고 소는 저며 즐겁게 놀아보세
술을 마시려면 삼백 잔은 마셔야지
잠부자, 그리고 단구생이여
술을 마시게, 잔을 쉬지 마시게
그대들 위해 노래 한 곡하리니
모쪼록 내 노래를 들어주시게
보배니 부귀가 무어 귀한가
그저 마냥 취해 깨고 싶지 않을 뿐
옛부터 현자 달인이 모두 적막하였거니
다만, 마시는 자 이름을 남기리라.
진왕은 평락전에 연회를 베풀고,
한 말 술 만금에 사 호탕하게 즐겼노라
주인인 내가 어찌 돈이 적다 말하겠나
당장 술을 사와 그대들께 권하리라
귀한 오색 말과 천금의 모피 옷을
아이 시켜 좋은 술과 바꾸어오게 하여
그대들과 더불어 만고 시름 녹이리라.
감상
將進酒 는 古樂府의 제명이라 ‘술을 권한다’는 뜻으로 일종의 권주가이다.
古樂府제로 술을 찬미한 가운데에서도 이백의 술을 찬미하는 장진주가 빼어난다.
이 시는 짧은 일생에 천만고의 시름을 안고 있는 인생 무엇으로 그 시름 잊고, 인생 무상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술이야말로 시름 녹여 없애는 忘憂物이며 仙物이라는 이백다운 종횡 무진의 낭만과 과장으로 호기로운 음주 예찬을 펼쳐 가는 醉中作이다. 醉中인만큼 과장도 호기도 한없이 부풀어 있는 中, 은근히 때를 얻지 못한 자신의 不遇의 憤恨을 시종 시에 토로하고 있다.
한 자리에서 술 3백 잔을 마셔야 한다는 것은 自由奔放(자유분방)한 이백의 성격을 반영한다. 중국의 술잔은 아주 작아 한 모금으로 마실 수 있지만, 그 대신 독한 술이라 3백 잔이면 엄청난 양이리라. 폭포수가 쏟아지듯 거침없이 이어간 詩想을 그 누가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이백 詩仙의 면모를 드러낸 작품이다. 오색 말과 천금의 모피 옷도 술과 바꾸어 버릴 만큼 호기로운 이백의 작품 장진주를 읊으면서 술 한 잔을 건네면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도 그 흥취에 젖어 한 잔술의 즐거움을 알고 마실 것 같다.
3. 山中問答 李白
問余何事棲碧山 문여하사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부답심자한
桃花流水杳然去 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묻노니, 그대는 왜 푸른 산에 사는가.
웃을 뿐, 답은 않고 마음이 한가롭네.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흘러가나니,
별천지 따로 있어 인간 세상 아니네.
감상
세간의 명리를 떠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은서 생활의 즐거움을 문답형식으로 나타내, 작자의 탈속적 시경이다.
逃花流水를 보면서도 別有天地임울 ㅁㅎㄹ라보는 속인과는 이미 대화의 상대 아님을 간파한 나머지, 상대방을 무안케 하지 않으려곰소, 동시에 지신을 호도하는 가장 무난한 대답인 웃을으로 千言萬談을 대신 하였으니, 笑而不答
은 이 시의 기경처이다.
산에 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정광이다.
요즈음 우리들의 잦은 산행에서도 이렇게 문답하며 산에 오르면 산행을 더 알차게, 즐겁게 산을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시.
시형은 칠언절구. 우자는 평성 刪 운.
4. 戱贈杜甫 李白
飯顆山頭逢杜甫 頭戴笠子日卓午
借問別來太괴生 總爲從前昨詩苦
반과산 머리에서 두보를 만나니
머리에 쓴 갓그림자 정오를 가리켰네.
지난번 헤어진 후로 무척이나 수척한데
여전히 시 짓기에 고심해서인지요
감상
이 시는 이백이 두보의 고지식함을 풍자한 시다.
飯顆山이란 산 이름이 이미 익살스러운데다가, 앞의 頭 는 山頭요, 뒤의 두는 人頭인데, 산정에 선 두보의 머리에 쓴 笠子가 산이 쓰고 있는 ‘笠子’처럼 정오의 햇빛에 포개져 보이는 시각도 또한 戱作기가 농후해 보인다.
杜甫은 그 스스로 자신을 평하여 ‘사람됨이 아름다운 시구를 탐하는 성벽이 있어 驚人句를 얻지 못하면 죽어도 그만 두지 못한다 라고 했듯이, 시 짓기에 고심하여 몸이 야위는 , 집요한 성격을 아는 이백이 11세의 연치차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弄도 할만큼 스스럼없는 지기의 사이임을 알 수 있다.
시형은 칠언칠구 운자는 塵 운
5. 三五七言 李白
秋風淸
秋月明
落葉骤
寒鸦恓復驚
相思相見知何日
此時此夜難爲程
가을바람 맑고
가을바람 밝은데
낙엽은 모였다가 다시 흩어지고
까마귀도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난다
생각하는 임은 어느 때나 만나며
이 밤 이 시각, 이 마음 어이할꺼나
감상
바람이 맑을수록,
달이 밝을수록 그리운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그 度를 더하거니,
하물며 그것이 가을바람이며 가을 달임에서랴
逢別이 무상한 낙엽의 聚散, 방황하는 밤까마귀 이들 모두 가세하여 마음을 충동이고 있으니 어이하랴?
낭만적이고 낙천적이어서 만고의 시름도 술이면 그만이던 이백이건만, 술로소도 어찌할 수 없게 한, 그 님의 심사 또한 심상치 않았으려니 그리움에 불타던 그 마음들, 꺼진 지 이미 천이요 수백년이건만 그 불길 지금도 가슴에 옮아 再燃되고 있네.
시형은 3.3.5.5.7.7로 시정을 점층적으로 고조해 가는, 이른바 三七言詩로서, 이백이 창시한, 그의 독창적인 시 형식이다.
754년 작자 54세 때의 지음으로 추정 된다
운자는 평성 庚 운
6. 高句驢 李白
金花折風帽 白馬小遲回
翩翩舞廣袖 似鳥海東來
금꽃달린 折風帽를 쓰고
백마로 조금씩 천천히 돌아간다.
펄럭펄럭 나부끼듯 춤추는 넓은 소매
새가 동해에서 날아 온 듯하다.
감상
이백이 우리나라 두루마기 입은 고구려인의
펄럭이는 넓은 소매 휘 날리며
걷는 모습을 보고
마치 춤추는 한 마리 새를 연상하는 시
우리가 보아도 소매 펄럭이는 모습을 보고 학춤을 연상되는 것을 보면 능히 한 마리 새가 날아 드는 것 같이 느꼈을 것 같다.
시형은 오언율시
Ⅳ. 杜甫(712-770년)의 시세계
두보는 중국 河南省 鞏縣 출신으로, 자는 子美, 호는 少陵이다. 그의 먼 조상은 晉나라 때의 학자 杜預이고, 조부는 당나라 초기에 이름을 떨쳤던 시인 杜審言이다. 이러한 가풍의 영향으로 두보는 어린 시절부터 시를 잘 지었으나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하고, 각지를 유랑하며 李白ㆍ高適 등과 교유하기도 하였다. 그 뒤로도 두보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안녹산의 난을 비롯한 잦은 전란으로 인해 유랑의 삶을 계속해야 했다. 안녹산의 난 이후 파직당하고 사천성 成都에서 5년간 생활하며 주옥같은 많은 시를 지었는데, 그때가 삶의 안정된 정착이 되었었다고 한다. 그 후 일정한 거처 없이 장강을 표류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였다. 36세에 폐병을 앓았고 40세에 악성 학질, 50세에 들어와 치통, 두통, 전신마미 증세까지 지니는 등 불운한 생애를 지냈다. 평생 가난에 허덕이며 고달프게 살았지만 자신의 불운을 탓하지 않고 원대한 포부와 이상을 가슴속에 지닌 채 겸허히 살았다.
시를 통해 백성의 어려운 생활상과 고위 관직들의 부패를 고발하여 백성의 눈과 입이 되어 주었기 때문에 두보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성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의 成都에 두보가 살던 대나무 숲이 있는 杜甫草堂이 있어 그를 그리며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그는 오랜 유랑 생활 속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소망을 평생토록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러나 끝내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洞庭湖 인근의 배 안에서 병을 얻어 객사하고 만다. 두보의 삶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고향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이었다 할 수 있다. 그의 시는 바로 그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라 할 수 있다.
두보는 동시대의 시인 이백과 함께 '李杜'로 일컬어지는 중국 최고의 시인이다. 두보의 시는 이전의 詩風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와 아울러 후대의 시인들에게는 漢詩의 모범이 되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그를 '詩聖'이라 한다. 또한 두보의 장편 古詩는 사회성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어서, '詩史'라고 부르기도 한다. 두보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당나라 때의 韓愈가 "이백ㆍ두보의 문장이 있는 곳에, 그 불꽃은 만 길이나 빛나리" 하며 찬양한 이래로, 송나라로 접어들어 王安石 蘇軾 등에게 칭송됨으로써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다.
왕안석이 말하기를
"두보는 슬픔과 기쁨(悲歡), 막힘과 통함(窮泰), 밖으로 발함과 안으로 거두어들임(發斂), 아래로 내리 누름과 위로 올라감(抑揚), 빠름과 느림(疾徐), 종횡(縱橫) 등 이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평담(平淡)하고 간이(簡易)한 것이 있고, 화려하고 정확한 것이 있고, 삼군(三軍)의 장수 같은 엄함과 위엄이 있고, 천리마같이 치달림이 있고, 산골짜기 은사 같은 담백하고 精簡함이 있고, 고귀한 公子 같은 풍류가 있다. 두보의 시는 들어가는 실마리가 치밀하고 사상 감정이 깊기 때문에, 보는 자가 그 속내까지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그 묘처를 알기가 쉽지 아니하니, 견문이 얕은 자가 어찌 쉬이 두보의 시를 엿볼 수 있으리오? 이것이 바로 두보가 전무후무한 위대한 시인이 되는 까닭이다."
"두보의 시, 한유의 문장, 노공(魯公, 顔眞卿)의 서예는 모두 각 분야의 집대성한 것들이다. 시를 배울 때는 마땅히 두보를 스승으로 삼아야 하는데, 규칙과 법도가 있기 때문에 배울 만하다. 한유는 시에 대해서는 본래 이해함이 없었지만, 재주가 워낙 높았기 때문에 빼어났을 따름이다. 도연명은 시를 지은 것이 아니고 자기 마음의 취향을 써내었을 뿐이다. 두보의 시를 배우면, 설령 완벽하게 배우지 못하더라도, 썩 괜찮은 좋은 시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한유의 재주와 도연명의 묘함이 없이 그들의 시를 배운다면, 결국에는 白居易가 될 뿐이다."
두보의 시는 우리나라의 시인들에게도 끼친 영향이 매우 크다. 두보의 시를 모르고서는 시인으로서 학자로서 행세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다산 丁若鏞은 두보의 시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시는 마땅히 두보를 孔子로 삼아야 한다. 그의 시가 백가의 으뜸이 되는 것은 『시경』 3백 편을 이었기 때문이다. 『시경』 3백 편은 모두 충신, 효자, 열부, 良友들의 진실하고 충후한 마음의 발로이다. 두보의 시는 고사를 인용함에 있어 흔적이 없어서 언뜻 보면 자작인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출처가 있다. 바로 두보가 詩聖이 되는 까닭이다."
한글이 창제된 뒤에는 왕명으로 두보의 시 전체가 번역되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杜詩諺解』원제는 分類杜工部詩諺解』이다. 『두시언해』는 세종 25년(1443)에 착수하여 38년 만인 성종 12년(1481)에 간행하였는데, 이는 국가사업으로는 처음으로 번역한 개인의 시집이다. 儒學을 국시로 채택한 조선에서 四書三經보다 오히려 먼저 번역한 셈이니, 두보의 시가 그 당시 얼마나 높이 평가되었는지 알게 해주는 자료라 하겠다.
두보의 시는 고난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병고에 시달리면 시달릴수록 더욱 熾盛하였으며, 그의 정은 만년에 이를수록 차원을 높이어 전 민중에게로 확충되었으며 , 두보의 사실주의의 수법은 치밀하고도 정확함, 驚人句를 얻지 못하고는 죽어도 그만두시 않는다고 스스로 토로 할 만큼 집요 하고도 진지했다. 두보는 詩經이래의 漢. 魏. 晋의 시를 두루 섭렵하여, 고대시의 소박성과 성실성은 물론 六朝詩의 섬세성과 기교성을 두루 갖춘 , 전통 속에서 참신으로 신체시를 완성, 당시의 사회상을 천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오히려 현장을 목도 하는 듯 생생하게 보이니, 두보의 시는 ‘詩史’인 동시에 ‘集大成’의 시이다.
현전 하는 작품은 1,000여수 두보는 1,400여수의 유작을 남기고 있다.
杜甫의 詩
1. 春日憶李白 杜甫
白也詩無敵(백야시무적)飄然思不群(표연사불군) 淸新庾開府(청신유개부)俊逸鮑參軍(준일포참군) 渭北春天樹(위북춘천수) 江東日暮雲(강동일모운)何時一樽酒(하시일준주) 重與細論文(중여세논문)
이백의 시는 적수가 없어표연하여 그 생각 특출하다참신성은 유개부와 같고기상이 뛰어남은 참군 포조와 같다위수 북쪽은 봄 하늘의 나무가 무성하고강동은 저문 하늘에 구름이 떠 있다 언제나 한 동이 술로 다시 그대와 글을 논할까
시형은 오언율시
감상
나이차가 있음에도 두사람의 우정은 눈물겹도록 다정하다.
서로 존경하며 그리워하는 글은 요즈음처럼 전하지 못하는 시대를 한탄해야 할 것이다. 저문 하늘에 구름을 보며 한 하늘 아래 있다는 자부심으로 이백을 생각하며 언제 한 동이 술 마시며 시상을 논할까? 하는 두의 ‘시심’이, ‘정’이 부럽다.
애정보다도 더 정 깊은 시를 보면서. 어제는 영원한 우정이여를 논하던 세태는 오늘 등을 지는 짧은 정으로 메마른 오늘날의 사람들이 이백을 닮아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는 이백의 시 한편이 감사하다.
2. 春夜喜雨 두보(杜甫;712-770)
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 當春乃發生 당춘내발생 隨風潛入夜 수풍잠입야 潤物細無聲 윤물세무성 野徑雲俱黑 야경운구흑江船火獨明 강선화독명曉看紅濕處 효간홍습처
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리나니봄을 맞아
초목이 싹트고 자란다
봄비는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
만물을 적시되가늘어 소리도 없다.
들길은
구름 함께 어두운데강가의 배엔
불빛 번쩍번쩍
아침에
붉게 젖은 곳을 보니
꽃으로 뒤덮힌금관성이어라.
시형은 오언율시
감상
好雨가 제 알아서 오는 저 비는 천하 만물을 자양할, 생명의 비요 좋은 비다. 봄바람을 타고 몰래 사랑의 빗물로 생명들을 눈뜨게 하는 작업은 극비리에 진행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자오록이 밤비 내리는 한밤, 대지는 물론 하늘을 뒤덮은 구름마저 어둠으로 일색인 가운데 강 배의 등불 하나가 홀로 깨어 있는 두보와의 만남인 듯, 또는 만물 생성의 위대한 자연 이세를 悟得한, 자신의 炯眼인양, 暗中 微明의 구원이기도 하다. 비밀작업이 끝난 청명한 아침 하룻밤 사이에 붉은 꽃들이 활짝 피어 뒤덮힌 금관성의 성곽 일대이다.
바로 군자의 덕을 갖춘 좋은 비가 밤사이 몰래 베풀어 놓은 보람인 것이다.詩聖으로 일컬어지는 두보의 진면목이 이 시에 뚜렷하다. 그 유덕함이 봄비와 같고 겸허함이 또한 봄비와 같아, 덕을 감추고, 공을 숨기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이 두보의 진정한 聖의 바탕인 마음을 알 수 있다.
3. 寄李白 杜甫
昔年有狂客 석년유광객號爾謫仙人 호이적선인筆落驚風雨 필락경풍우詩成泣鬼神 시성읍귀신 聲名從此大 성명종차대汨沒一朝伸 골몰일조신文彩承殊渥 문채승수악 流傳必絶倫 유전필절윤 龍舟移棹晩 용주이도만 獸錦奪袍新 수금탈포신白日來深殿 백일래심전 靑雲滿後庭 청운만후정 乞歸優詔許 걸귀우조허 遇我宿心親 우아숙심친 未負幽棲志 미부유서지 兼全寵與辱 겸전총여욕 劇談憐野逸 극담연야일 嗜酒見天眞 기주견천진醉舞梁園夜 취무양원야行歌泗水春 행가사수춘 才高心不展 재고심불전道屈善無鄰 도굴선무린 處士禰衡俊 처사녜형준諸生原憲貧 제생원헌빈槄粱求未足 도량구미족薏苡謗何頻 의이방하빈五嶺炎蒸地 오령염증지 三危放逐臣 삼위방축신 幾年遭鵩鳥 기년조복조 獨泣向麒麟 독읍향기린蘇武先還漢 소무선환한 黃公豈事秦 황공기사진楚筵辭醴日 초연사예일梁獄上書辰 량옥상서진已用常時法 이용상시법 誰將此義陳 수장차의진 老吟秋月下 노음추월하病起暮江濱 병기모강빈莫怪恩波隔 막괴은파격 乘槎與問津 승사여문진
지난 날 광객이 있어그대를 적선이라 불었지붓 들면 비바람도 놀라게 쓰고시 지으면 비바람도 놀라게 한다명성이 이로부터 생겨났으니묻혀 살던 몸이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그대 아름다운 문채는 황제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세상에 유전되는 작품은 반드시 뛰어났네황제의 배는 이백을 기다려 늦게 노 저어 가고시 잘 지어 짐승무늬 놓은 좋은 비단 받았다대낮에도 깊은 궁전으로 드나들었고푸른 구름 같은 높은 관리들 그대 집 뒤 뜰에 가득했네초야로 돌아갈 것을 청하자 황제 조칙 내려 허락하니나를 만나서는 오랜 마음 친구처럼 친절하셨네그윽이 숨어 살려는 뜻 어기지 않고총애와 욕됨을 겸하였다마음대로 이야기 나누며 시골의 편안함을 그리워하고술을 좋아하여 천진한 기질을 보여 주었네취하여 양원의 밤 연회에서 춤을 추었고사수의 봄을 다니며 노래했다높은 재주 지녔으나 마음대로 펴지 못했고앞길이 굽혀지니 착해도 따르는 이웃이 없었네 처사 예형은 뛰어난 인물이어도 숨어살았고공자의 제자 원헌은 가난하게 살았네벼와 조 구하여도 구하지 못하였는데율무가 구슬이라는 근거 없는 비방 몇 번이던가오령 고개는 무더운 고장인데삼위로 쫓겨나는 신하 되었지몇 년이 되어야 복조를 만날까기린을 향하여 홀로 눈물 짓는다한나라 소무보다 먼저 한나라로 돌아오고항공처럼 어찌 진나라를 섬기리요초나라의 잔치 단술 때문에 떠나려하고양나라 감옥에서 상서 하여 무죄를 밝혔지요이미 당시의 법률을 적용하였으니
누가 이 바른 뜻을 말해줄까늙은 몸으로 가을 달 빛 아래 시를 읊고저무는 강가에 병든 몸을 일으켜본다천자의 은혜의 물결 멀리 있다 여기지 말고뗏목 타고 나루터 길을 묻어보게나
시형은 오언율시
감상
744년 이백이 안녹산의 난에 가담한 죄로 사형을 받은 이백은 곽자의 장군의 구명운동으로 감형되어 장안에서 쫓겨나 낙양으로 유배 가는 중(757) 두사람이 만나 서로를 알아 보는데 그리 긴 시간이 아니어도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를 찬양하고, 위로하고 후세에 길이 남을 우정의 시로 길이 귀감이 된다. 찬양하는 시로 이백의 억울함을 위로하는 시를 이백에게 보내는 40구의 오언 고시의 장편의 시로 이백을 위로하는 이 시는 역사적인 고사를 많이 인용하여 이백의 면모와 천재성을 널리 알리는 시이다.
4. 天末懷李白 杜甫
涼風起天末 량풍기천말君子意如何 군자의여하鴻雁幾時到 홍안기시도江湖秋水多 강호추수다文章憎命達 문장증명달魑魅喜人過 리매희인과應共冤魂語 응공원혼어 投詩贈汨羅 투시증골나
서늘한 바람 하늘 끝에서 이는데
그대의 마음은 어떠한지 기러기는 어느 때에 오는지
강과 호수엔 가을 물결 출렁인다문장은 출세가 가장 방해가 되고귀신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것을 기뻐한다당연히 원귀 된 영혼과 이야기를 하였거니시 지어 멱라수에 던져 바치리라
시형은 오언율시
감상
오늘날처럼 서신도 자유로이 주고 받을 수 없던 나날
멀리 기러기 날아드는 것을 보면서 이백을 생각하니 하늘 끝과 끝에 헤어져 있다고 생각하며 이백을 그리워하는 시로 이백의 문장이 오히려 출세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니, 시 지어 멱라수에 던져 바쳐 이백에게 보내는 마음을 그려낸 시이다.
5. 夢李白 杜甫
浮雲終日行 부운종일행 遊子久不至 유자구불지 三夜頻夢君 삼야빈몽군 情親見君意 정친견군의 告歸常局促 고귀상국촉苦道來不易 고도래불역 江湖多風波 강호다풍파 舟楫恐失墜 주즙공실추 出門搔白首 출문소백수 若負平生志 약부평생지 冠蓋滿京華 관개만경화 斯人獨憔悴 사인독초췌 孰云網恢恢 숙운망회회 將老身反累 장로신반루 千秋萬歲名 천추만세명 寂寞身後事 적막신후사
뜬 구름 종일토록 하늘을 떠다녀도
떠난 친구는 오래도록 오지 않네
사흘밤을 연거푸 꿈에 보이니
다정한 님의 마음 나타남이리
작별할 땐 항상 풀 죽어 하는 말
돌아오기 어렵다 쓸쓸히 말하네
강호의 뱃길에 풍파 심하여
하마면 배 뒤집힐까 걱정이라고.
문 나서며 흰머리 긁적거리니
한평생 품은 뜻을 저버린 듯
높은 벼슬아치들 서울에 가득한데
이 님이 홀로 얼굴 수척하다.
누가 말했나, 하늘의 그물이 한없이 넓다고
늘그막에 몸이 도로 얽매일 줄이야
천추만세의 이름이련만
적막하여라, 죽은 뒤의 일일 뿐.
오언율시
감상
이백은 두보의 가장 경애하는 11년 연상의 선배이다.
서로를 그리워하는 두 사람의 애정의 간절함이 상호 감응하여 꿈을 꾸었으리라, 그 말이 마치 생시 같은 꿈 이야기이다.
오기 어렵다는 하소연, 떠나기 싫어하는 쓸쓸한 모습, 그것이 꿈이었기에 깨어나 삭일수록 안쓰럽기 그지없고, 신변에 무슨일이 있는지 염려하는 마음이다. 부귀한 사람들 성 안에 가득한데, 홀로 쫓겨나 하늘 끝 이역에 零落되어있는 천재 이백을 생각하며, 불합리한 세상사를 한탄하는 작자의 뜨거운 한숨이 행간에 서려 있음을 느낀다.
시형은 오언고시, 운자은 거성 眞 운
6. 秋興一 杜甫
玉露凋傷楓樹林 옥로조상풍수림 巫山巫峽氣蕭森 무산무협기소삼 江間波浪兼天湧 강간파랑겸천용 塞上風雲接地陰 새상풍운접지음叢菊兩開他日淚 총국양개타일루 孤舟一繫故園心 고주일계고원심 寒衣處處催刀尺 한의처처최도척 白帝城高急暮砧 백제성고급모침
옥 같은 이슬 맞아 단풍나무 숲 시들고무산 무협에는 가을 기운 쓸쓸하구나강의 물결은 하늘로 치솟고변방의 바람과 구름 땅을 덮어 음산하다국화 떨기 다시 피어나니 지난날이 눈물겹다 외로운 배 한번 매였으니, 고향 생각하는 마음집집마다 겨울옷 준비에 바쁜 손길들백제성은 높고 저물녘 다듬이질 소리 바쁘기만 하구나
감상
이 시는 원년(766) 작자 55세때 성도시대를 마감하고 배로 장강을 하강하다 기주에서 2년을 보내게 되는 그 둘째 해의 가을에 지음이다.
전 8수의 이 연작시는 한 수 한 수가 독립되어 있는 한편, 전체는 전체대로 연괄 되어 한 편의 장시를 이루고 있는, 두보의 대표적 명작이다.
아름답던 신나무 숲의 붉은 단풍도 떨어지는 가을 천험의 요해처인 무산 무협은 쓸쓸하면서도 장엄한 기운 감돌아 나그네의 마음을 비장하게하고 있다.
성도를 떠나 장강을 하강하던 귀향길이 귀주에서 발이 묶여 두 번째로 국화꽃이 피는 것을 보고 울게 되니, 지난해 울었던 바로 그 고향 그려 울었던 그 눈물 그대로요, 늙고 병든 몸 의지할 오직 하나인 외로운 배는 강 언덕에 비끄러매인 이래로 다시는 고향에로의 한결같은 마음 풀어 볼 길이 없이 속절없는 나날만 보내고 있으니, 배 임자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배의 마음도 내내 고향 생각에만 잠겨있는 것으로 擬人視되어 있다.
寒衣處處催刀尺 白帝城高急暮砧
백제성은 기주에서는 까마득하게 올려다보이는 산위의 성이라, 다듬이 소리는 산 아래인 인가에서나고 있는 것이다.
急暮砧의 急 暮로 하루 해가 저물고, 세서도 늦어져 모든 것이 촉박해짐을 나타냈으니, 베옷소매가 민망하게 오그라드는 나그네의 초조로운 향사를 생동하게 景의 뒤안에서 감쪽같이 그려내는 物性에까지 싸무친 대시인의 입체적 복합적 함축적인 표현이다.
시형은 칠언율시 운자는 侵 운
7. 秋興二 杜甫
가을 흥취 杜甫(두보)
夔府孤城落日斜(기부고성낙일사) 每依北斗望京華(매의북두망경화) 聽猿實下三聲淚(청원실하삼성루) 奉使虛隨八月槎(봉사허수팔월사) 畵省香爐違伏枕(화성향로위복침) 山樓粉堞隱悲笳(산루분첩은비가) 請看石上藤蘿月(청간석상등라월) 已暎洲前蘆荻花(이영주전노적화)
기주의 외로운 성에는 저녁 해 기울고언제나 북두성 보며 서울을 그린다원숭이 울음 세 번 들으면 눈물이 떨어지고 奉사신 수행은 팔월 뗏목처럼 헛되었다상서성에 숙직할 일 몸이 아파 어긋나고
산의 누의 성가퀴에는 애달픈 피리소리이 은은하다 보시오, 바위 위의 등라에 걸린 달이영주 섬 앞 갈대꽃을 비추고 있는 것을
8. 秋興三 杜甫
千家山郭靜朝暉 천가산곽정조휘日日江樓坐翠微 일일강루좌취미 信宿漁人還汎汎 신숙어인환범범 淸秋燕子故飛飛 청추연자고비비匡衡抗訴功名薄 광형항소공명박 劉向傳經心事違 유향전경심사위同學少年多不賤 동학소년다불천 五陵衣馬自輕肥 오릉의마자경비
산성의 일천 집들에 아침 햇살 고요한데날마다 강가 누대에서 푸른 산기운 속에 앉아본다 이틀 밤을 지낸 어부 다시 배를 띄우고맑은 가을에 제비는 일부러 하늘을 난다광명처럼 간언을 올렸지만 공명은 낮았다유향처럼 경전을 전하려 하나 마음과 일이 어긋나네어린 시절 같이 공부한 이들 모두 부귀하여오릉 땅에 살면서 옷과 말은 빠르고 살찐 것들이라네
8. 秋興四 杜甫
聞道長安似奕棊 문도장안사혁기 百年世事不勝悲 백년세사불승비 王侯第宅皆新主 왕후제택개신주 文武衣冠異昔時 문무의관이석시 直北關山金鼓震 직북관산금고진 征西車馬羽書馳 정서거마우서치 魚龍寂寞秋江冷 어룡적막추강냉 故國平居有所思 고국평거유소사
듣자니, 장안의 시국이 바둑판이라니한평생 세상 일 설음도 겹다.왕후의 높은집엔 새 주인 들고,문무의 의관도 옛 날과는 다르다네.북쪽 관산은 징과 북이 진동한다.서쪽 정벌 떠나는 수레와 말들 그리고 격문은 치닫고 가을 강은 차갑고 물고기도 조용하니고국에 살던 그 때가 생각나네.
칠언율시
감상
제1 2구는, 全句의 정황의 개괄에서 내려진 단정이며 귀납이요, 제 2구는 전구의 감개를 포괄한 탄식이며 연역적 부연이다.
교호로 ㅠㅗ진하는 흑백 한 점한점에 변화 무쌍하게 바뀌어 가는 바둑판 위의 형세처럼 일국의 수도인 장안은 반군과의 치열한 공방 끝에 주객이 바뀌어 문물제도마져 변하여 있다. 천심도 냉담하여, 마땅히 출현하여 快刀亂麻로 나라를 평성 구세 영웅 소식 없고, 일개 시인으로서는 국가에 이바지할 수 없는 없는 채 향사만이 HKSTLEH 자신을 떠나지 않으니 , 일생에 겪는 세상일 설움도 겨움이여.
제 6구의 羽書馳는급거 출동한 정서군으로부터의 승전 속보를 기다리는 추조한 심사를 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시형은 칠언율시 운자는 평성 微 운.
9. 春望 杜 甫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感時花천淚(감시화천루)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
烽火連三月(봉화연삼월)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
白頭搔更短(백두소경단)
渾欲不勝簪(휘욕불승잠)
나라가 패망하니
산하만 남아 있어
성 안에 찾아온 봄,
풀과 나무만이 무성하구나.
時勢를 설워하니
꽃을 봐도 눈물이요,
이별을 슬퍼하니
새소리에도 설레는 마음.
봉화가 석 달이나
아니 끊이니
집 소식은 만금인 양에서
듣기 어렵다.
흰 머리 긁자니
다시 짧아져
남은 머리를 다 모아도
이제는 비녀마저
꽂지 못하겠네.
10. 登岳陽樓
昔聞洞庭水 차문동정수
今上岳陽樓 금상악양루
吳楚東南坼 오초동남탁
乾坤日夜浮 건곤일야부
親朋無一字 친붕무일자
老去有孤舟 노거유고단
戎馬關山北 계마관산북
憑軒涕泗流 빙한체사류
동정호 악양루 절경을 말로만 듣다
오늘에야 악양루에 올라 보니
동남으로 탁 터진 건
오나라 초나라요
밤낮으로 둥실 뜬 건
하늘이요 땅이어라
친척도 친구도
한 자 글월도 없으니
늙고 병든 몸엔
외로운 조각배 한 척
군마 득실대는
고향 바라
헌함에 기대서니, 아.
하염없는 것, 눈물이어라.
시형은 오언율시, 운자는 평성 尤운.
감상
1 . 2 구의 洞庭水와 岳陽樓는 互文 으로 , 전후구에 상호 보완하며 교차 반복함으로써 시의를 확충하고 시정을 부풀렸으니, 昔聞이래의 숙원이 성취되는, 무한감개가 行間에 자욱이 서리어 있음을 보게 된다.
3 . 4 구는 악양루 위에서의 極目 포괄한 우주 공강과, 주야로 연속되는 유구한 시간 속에 浮動 유전하는 渺漠한 천지 만상이 전후구에 坼과 浮를 機軸으로 전개되어 있음에 유의할 것이다.
6구의 孤舟 는 현식적으로 그의 유일한 재산인 동시에, 풍랑에 부대끼는 자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7 . 8 구의 憑軒은 맥이 빠져 몸을 가눌 수 없음에요, 涕泗流는 자제하려해도 쏟아지는 대로 放流해 놓고 있는 정황이다.
이 시는, 768년 57세 때 봉절을 떠나 한 척 조각배로 장을 하강 이곳 동정호에 이르러서의 작으로 전한다.
Ⅴ. 二伯 杜甫 시인의 대비
二伯
시인은 호상의 아들로 태어나 곤궁함을 모르고 자란 이백은 시서를 통달하고 기서를 좋아했다.
출세간적이며, 자부심이 강하고 호방하며 낙천적이며, 공상적이며 낭만적이다. 단신으로 자유분방하다
남에게 눈물을 보이기 꺼리며 도교적 공상에 심취한다. 음주에 절제가 없으며, 한때 만금을 뿌리며 호사하기도 했다. 불여의한 울분과 백년수를 해소하기 위하여 술을 마신다.
시작은 기상천외함이 많다. 강렬한 감정대로 붓을 달린다 인생무상이 바닥에 깔려 있다.
고시체에 능하며 절구에 빼어났다.
칠어율시가 적고 칠언도시가 많다.
이백의 시에 편승하여 울적한 가슴은 술을 마시지 않는 독자도 취기를 느끼며 표표히 휘날리는 깃발을 바라보듯 시선으로 선망한다.
杜甫
시인은 두심언의 손자로 태어나 두보는 전통적인 유가의 교육을 받았으며, 세간적이며 성격은 침중하며, 현실적이며, 세속적이며 가족적이며 인정이 두텁고 눈물이 많다. 충군 애국심이 강하다.유교적도의를 중시하고, 행동이 상퀘를 벗어나지 않는다. 정열적이며 뜻을 펴기 위한 근고의 자세를 버리지 않지만 늘 곤궁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작태도는
사실적이며 비참한 내면을 숨기려하지 않는다. 경인구를 얻기 위하여 고뇌를 거듭하며 인도주의 입각하여 학대받는 ㄷ중 편에 서서 고뇌를 대변한다. 염전사상이 바닥에 깔려있다.
시의 특색은 염을 중시하고 정연하 형식미를 갖춘 장편시에 빼어났다.
칠언절구가 적고 오언율시가 많다.
독자의 반응은 깊이 음미하여 눈물에 동참한다,
교육적이 아니데가 없어 자녀 교육의 교재로 제공되어 왔다.
시세계로 몰입되어 자신의 일로 체험하게 된다.
시성으로 존경한다.
Ⅵ. 맺음말
이백과 두보의 우정은 천보 744년 고력사와 양옥환의 쫓겨난 낙양에서 처음으로 두보와 만나, 우정을 다지고, 745 년에 헤어져, 다시 만나지 못함에도 서로에게 헌시를 지으면서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우정은 후세에 길이 남겨져 오늘날까지 안타까운 이별의 시로 전해져 온다.
요즈음처럼 자주 볼수 없음도 한몫 했을까? 남녀간의 사랑보다 더 진한 정이 느껴진다.
조석으로 변하는 요즈음의 세태가 걱정인 요즈음 이백과 두보의 우정을 보면서 많이 닮아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