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행복†충전소 원문보기 글쓴이: 행복충전소
제목: 그리스도인의 소망(영화설교5-밀리언달러베이비): 정준호
본문: [눅 12:15-눅 12:21]
(15)그리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
(16)그리고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 소출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고 궁리하였다.
(18)그는 혼자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
(19)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을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20)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21)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
[시 39:5-시 39:7]
(5)주께서 나에게 한 뼘 길이밖에 안 되는 날을 주셨으니, 내 일생이 주님 앞에서는 없는 것이나 같습니다. 진실로 모든 것은 헛되고, 살아 있는 사람일지라도 한낱 입김에 지나지 않으니, (셀라)
(6)걸어다닌다고는 하지만, 그 한 평생이 실로 한 오라기 그림자일 뿐, 재산을 늘리는 일조차도 다 허사이니, 장차 그것을 거두어들일 사람이 누구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7)그러므로 주님,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내 희망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개요
서론
1) 동영상 1(시디1 32:13-38:08 프랭크가 메기에게 권투를 허락함 5분50초)
2) 영화설명/ 세상에서의 소망
본론
1) 동영상 2(시디1 49:16-51:48 승리하는 메기, 모쿠이사 2분30초)
2) 전부라고 생각한 소망/ 희망
3) 동영상 3(시디2 28:10-35:53 메기의 부상, 7분30초)
4) 소망이 무너질때
결론
1) 동영상 4( 메기의 산소 호흡기를 치우는 프랭키 3분40초)
2) 참 희망 그리스도
서론
1) 동영상 1(시디1 32:13-38:08 프랭크가 메기에게 권투를 허락함 5분50초)
2) 영화설명/ 세상에서의 소망
오늘은 5번째 영화설교 시간입니다. 지금 보신 영화는 배우겸 감독으로 유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주연을 맡은 ‘밀리언달러베이비’입니다. ‘밀리언달러베이비’의 뜻은 1센트짜리 물건만 모아놓은 1센트 상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백만달러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물건‘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2004년 12월 미국 언론에 처음 공개된 이 영화는 2005년 2월 제77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 4개 부문을 비롯하여 2005년 골든글로브상, 감독상, 드라마부문 여우주연상, 2004년 전미비평가협회 최우수영화상 등을 수상한 수작입니다. 또 뉴스위크, 뉴욕타임스, 미국언론협회 등이 전성한 ‘2005년10대영화’에 포함되면서 2005년 미국영화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이라는 호평을 얻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른체 무심코 이 영화를 봤는데 끝난 다음에도 한참을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앉아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한 때 잘 나가던 권투 트레이너였지만, 소원해진 딸과의 관계 때문에 스스로 세상과의 교감을 피하는 나이든 권트 트레이너 프랭키와 권투 외에는 아무것도 할게 없지만 이미 그러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은, 그리고 권투의 기본기도 매우 부족한 31살의 매기입니다.
지금 프랭키에게는 그가 모든 것을 받쳐서 트레이너중인 ‘윌리’라는 장래가 유망한 권투선수가 한명 있습니다. 윌리는 본래 호텔을 청소하는 특별히 할 줄아는게 없는 흑인청년이었는데 프랭키가 7-8년 전에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현재 트레이너 중이고 곧 챔피언도 될 충분한 능력이 있는 슈퍼루키입니다. 이 세상에 대한 특별한 소망이 없던 윌리는 프랭키에게서 ‘희망’을 발견했고, 프랭키 역시 윌리에게서 자신의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봤던 영화의 앞부분 보면 윌리가 프랭키를 배신하고 좀더 조건이 좋은 매니저에게 떠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감정 표현이 서투룬 프랭키는 자신이 꿈꿨던 ‘희망’으로부터 다시 한번 배신을 당했고 세상과 좀더 단절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권투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은 31살의 매기라는 여자 복서가 프랭키를 찾아와서 자신의 트레이너가 되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권투밖에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이 없던 매기에게 프랭키는 자신의 꿈을 실현해줄 ‘희망’처럼 보였나 봅니다.
하지만 이미 믿었던 사람들에게 상처 투성이가 된 프랭키는 ‘31살이 된 여자가 바레리나를 꿈꾸지 않듯 복싱 선수를 꿈꾸어도 안된다’며 냉정하게 매기를 돌려 보냅니다. 하지만 권투가 유일한 희망인 매기는 낮에는 식당에서 서빙을 보며 손님들이 남긴 음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밤에는 매일 체육관에 나와 홀로 연습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지금 보신 내용처럼 프랭키는 두 손을 들고 매기의 트레이너가 되기로 결정을 합니다.
물론 억지로 시작한 트레이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점차 프랭키는 다시 매기라는 너무나도 맑은 영혼을 가진 31살의 여자 복서를 통해 자신의 희망을 발견하기 시작하며 그 둘은 단순히 선수와 트레이너가 아닌 한 인간대 인간으로 서로를 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를 통해 발견한 희망은 정말로 현실로 나타나게 되고 매기는 프랭키의 지도를 받으면서 하는 시합마다 승리하게 됩니다.
본론
1) 동영상 2(시디1 49:16-51:48 승리하는 메기, 모쿠이사 2분30초)
2) 전부라고 생각한 소망/ 희망
영화의 제목이 딱 들어맞는 내용입니다.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든 1센트의 가치 밖에 없던 매기야 말로 프랭키가 발견한 ‘밀리언달러베이베’였던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나가던 매기에게 윌리를 스카웃했던 매니저가 접근하게 되면서 영화를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하지만 매기는 그 매니저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프랭키와의 신뢰를 지킵니다. 이 장면을 참 감동적인 부분입니다. 매기에게서 자신이 살아야할 희망을 발견하는 프랭키와 프랭키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는 매기는 아버지와 딸과 같은 관계가 되면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희망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나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희망’을 발견하고 싶어합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희망을 주는 ‘매기’나 ‘프랭키’를 발견하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까? 왜 우리는 세계에서 그 유래가 없는 0교시 수업을 시작으로 이 토록 처절하리 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까? 이런 노력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학업’이 자신의 모든 희망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대학에 가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싶어합니다. 운동선수들은 ‘운동’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싶어합니다. 박지성 선수와 이영표 선수에게는 축구야 말로 그들이 존재하는 ‘희망 그 자체’ 아니겠습니까? 음악가에게는 음악이 희망일 수 있고, 어렸을 때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어떤 성인은 현재 자신이 이룬 ‘가정’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혹은 많은 부모들이 자신들의 ‘자녀’에게서 자신들이 살아야할 ‘희망’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하루 하루 굶기를 밥 먹듯이 하다’라는 말이 나온 그 처절한 보리고개 시절 우리의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떻게 좌절하지 않으시고 지금 한국사회의 이런 경제적 기적을 이루었습니까? 거창한 이유도 많이 있겠지만 자신들의 자녀를 위해서입니다. 비록 나는 이렇게 가난에 시달리며 살지만, 내 자식들에게 만큼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부모님들의 마음들이 지금의 한국사회를 이룬 겁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에게 자신의 희망과 소망은 ‘재물’입니다. 그는 재물을 모으는 기쁨으로 인해 하루 하루를 살아 갑니다. 재물이 얼마나 많은지 지금 이미 재물로 가득찬 곳간을 헐고 다시 곳간을 크게 짓습니다. 그리고 그 곳간을 채우는 재미로 살아 갑니다.
이것은 마치 가정 주부들이 알뜰하게 돈을 모아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은 아직 피부로 느끼지 못하시겠지만 월세에서 전세로 올라가고, 전세로 살다가 내 집을 마련하는 기쁨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처음에 프랭키와 매기는 서로를 통해 성공이라는 편협한 ‘희망’만을 발견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들은 서로에게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상처를 서로를 통해 회복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게됩니다.
어느날 프랭키는 시합을 앞둔 매기에게 ‘무쿠슈라’라는 불어가 써있는 권투가운을 선물합니다. 매기는 프랭키에게 무쿠슈라의 뜻이 뭐냐고 물어보지만 프랭키는 그 뜻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 때부터 매기는 ‘무쿠슈라’라는 글씨가 새겨진 가운을 입고 시합을 하기 시작하고 수 많은 관중들은 매기를 향하여 ‘무쿠슈라’라고 환호성을 칩니다.
매기도 프랭키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행복한 시절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지금 행복해 하는 이유는 자신을 향해 ‘무쿠슈라’라고 소리치는 관중들의 ‘환호성’도 명예도 돈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행복한 이유는 가슴으로 자신을 이해해주는 서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연승가도를 달리던 매기는 챔피언전을 치루기 위해서 프랭크와 함께 라스베가스로 갑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희망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었고 그렇게 될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프랭키는 매기가 시합에 출전하기에 앞서 이번 경기에서 이기면 ‘무쿠슈라’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꿈과 희망에 좀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전진합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희망에 가장 가까이 왔다고 생각한 그 순간 그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여겼던 그 ‘희망’이 송두리체 무너지게 됩니다.
3) 동영상 3(시디2 28:10-35:53 메기의 부상, 7분30초)
4) 소망이 무너질때
상대 선수의 반칙으로 척추가 부러진 매기는 고개도 움직일 수 없는 불구가 됩니다. 산소허흡기에 의존하지 않고는 이제 숨도 마음대로 쉴수가 없습니다. 노년의 프랭키가 세상과 화해하는 계기가 되었고, 자신이 이 세상을 살아야할 이유를 찾게 해줬던 매기라는 그의 희망이 무너져 버린겁니다. 프랭키는 병원에 식물인간 처럼 누워있는 매기를 보면서 너무나도 가슴이 아픕니다. 이미 무너진 희망이지만 프랭키는 그 희망을 포기할 수 없어서 병동에서 매기에게 떨어지지 않고 그 옆에 앉아 책을 읽어 줍니다.
‘나는 일어나 갈 것이다. 그 자유로운 곳으로, 흙과 풀로 만든 거기 지어진 작은 오두막 그리고 거기서 조금한 평화를 누릴 것이다’
프랭키는 매기를 위해 이런 희망찬 글들을 읽어주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온 몸에 욕창이 생기고, 두 다리마저 절단해야 하는 매기를 보면서 가슴이 아프기만 합니다. 프랭키는 자신에게 삶의 의미를 주었던 그 희망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이것은 매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하고 더 이상 갈 곳이 없던 자신에게 희망이었던 프랭키가 자신 옆에 앉아서 슬퍼하는 모습에 매기 역시 괴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시체와 다름 없이 수 개월을 침대에 누워있다가 온 몸에 욕창이 생기고, 두 다리마저 절단한 매기는 어느날 프랭키에게 부탁을 합니다. ‘프랭키, 산소 호흡기를 떼어 주세요’
그 이야기를 들은 프랭키는 매기에게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거절하지만 정말 무엇이 그녀를 위한 것인가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다 병원에서 전화를 받습니다. 매기가 혀를 깨물고 자살을 시도했다는 겁니다. 프랭크가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병실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었고, 의사들은 매기가 또 다시 자살을 시도할까바 아주 강한 진정제를 매기에게 투여합니다. 진정제를 맞은 매기는 육체와 함께 정신마저 폐인이 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프랭크는 진정으로 그녀를 위해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 프랭키는 마침내 결심을 합니다.
결론
1) 동영상 4( 메기의 산소 호흡기를 치우는 프랭키 3분40초)
2) 참 희망 그리스도
‘나의 생명 나의 핏줄’ 무쿠슈라의 뜻입니다. 프랭크는 자신에게 삶의 희망을 주고 살아야할 동기를 부여해준 매기를 ‘나의 생명 나의 핏줄’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지금 프랭크는 ‘자신의 생명’이라는 매기의 산소 호흡기를 떼어냅니다. 아니 그것은 매기를 위한 산소호흡기가 아닌 프랭키 자신의 산소호흡기를 떼어낸 겁니다. 그리고 이 고통으로부터 매기를 자유케 해줍니다.
이 영화는 참 아름다운 휴머니즘 영화입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 너무나도 공허하고 허무한 영화입니다. 프랭키와 매기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싶어했고 모든 것을 걸었던 희망이 무엇입니까?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였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입니까. 그런데 공허하게도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매기가 자신의 희망으로 여겼던 프랭키는 매기가 또 다시 좌절에 빠져 죽고 싶어했을 때 고작 해줄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의 목에서 산소기를 떼어주는 것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이 세상에서의 희망이 고작 우리에게서 해줄수 있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18)그는 혼자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
(19)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을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20)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21)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의 쌓아둔 재물이 전부인지 알았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최후를 맡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 역시도 언젠가는 죽음과 대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을 때는, 부자가 그토록 추구했던 재물과 그의 희망이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자랑합니다. 역사를 보면 권력을 잡기 위해 수 많은 악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알렉산더, 징기스칸, 나폴레옹, 히틀러, 모택동 이들 모두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정보부장에게 피살당했습니다. 그리고 11월3일부터 9일장이 치러졌습니다. 삼권을 장악했던 절대 권력자의 국장이었던 만큼 그 규모와 장엄함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대한민국대통령박정희’라 쓰인 명정 위에 태극기를 덮은 관이 하관되자 먼저 횡대를 덮고, 역시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란 휘호가 새겨진 대리석을 그 위에 다시 덮었습니다. 그리고 유족들과 삼부 요인들의 순서로 취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관 위에 쌓인 흙을 다지기 위해 유택 속으로 들어간 사람이 누구였는지 아십니까? 그 누구도 아닌 국립묘지 인부였습니다. 수십년간 절대 권력을 휘두른 절대권력자의 마지막 장례순서가 인부가 관위로 올라서 흙을 다지기 위해 그것을 밟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처다도 보지 않았을 인부에게 밟히면서 마지막을 맞은 박정희 대통령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권력을 움켜지려고 했습니까? 얼마나 허무합니까?
대한 민국처럼 성형천국이 세계에 또 있을까 의문이 들곤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를 자신의 희망, 자신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이를 많이 먹어 환갑을 넘은 왕년의 연예인들이 변해버린 자신의 외모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계속 얼굴에 칼을 대고,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마약에도도 손을 댑니다. 얼마나 헛되고 자신을 망가뜨리는 희망입니까?
신학대학교에서도 시험기간만 되면 분위기가 험학해 집니다. 왜 우리는 이까짓 점수 몇점 때문에 친구들과의 인간관계까지 등한시 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까?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기대하고 평생을 살았던 부모가 어느날 자식이 더 이상 자신들의 말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공허함을 느낍니까?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십니까? 그 희망이 정말 가치있는 겁니까? 무엇을 위해 그것을 희망하고 계시는 겁니까? 프랭크와 매기는 서로를 정말로 사랑했고, 서로를 정말로 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랭크와 매기는 서로를 위해 해줄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산호호흡기를 떼어주는 것뿐이었습니다.
오늘 구약 본문말씀을 보십시다.
[시 39:5-시 39:7]
(5)주께서 나에게 한 뼘 길이밖에 안 되는 날을 주셨으니, 내 일생이 주님 앞에서는 없는 것이나 같습니다. 진실로 모든 것은 헛되고, 살아 있는 사람일지라도 한낱 입김에 지나지 않으니, (셀라)
(6)걸어다닌다고는 하지만, 그 한 평생이 실로 한 오라기 그림자일 뿐, 재산을 늘리는 일조차도 다 허사이니, 장차 그것을 거두어들일 사람이 누구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7)그러므로 주님,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내 희망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시편기자는 우리의 삶은 한 뼘 길이 밖에 안된다고 말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하나님을 떠난 모든 것이 헛되고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시편기자는 인간이 실로 한 오라기 그림자 뿐이라고 말합니다. 재산을 늘리는 것도 다 허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리는 결론은 ‘내 희망은 오직 주님뿐입니다’입니다. 여러분의 희망을 위해 하나님을 조종하고,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주님을 여러분의 가장 중심에, 여러분의 희망으로 모십시다.
주님을 위해 내 모든 것을 포기할 때, 그리고 그 자리에 주님으로 나를 가득 채울 때, 오히려 바로 그때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포기했던 꿈까지도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겁니다.
주님을 우리의 중심에 모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