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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전새삶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하나님의사람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된 적은 없습니다.
이 <회개>라는 작은 책은 로이드 존스 목사님께서 주일 저녁 강단에서 4주간에 걸쳐 시편 51편을 강해한 것입니다. 로이드 존스는 다윗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확인할 수 있는 기독교의 핵심적이며 보편적인 진리를 우리가 담대히, 겸허히 맞닥뜨리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메시지 전체에 영혼 사랑의 울림이 가득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그는 가감 없는 진리를 선포하는 데 있어 현대인인 우리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기도 합니다. 그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진리를 진리로 믿고 온전히 선포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을 때 우리는 다소 불편합니다. 우리의 부패할 대로 부패한 본성과 죄로의 경향성을 찾아내어 째고 잘라내기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사랑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영혼에 유익하기 때문이지요.
로이드 존스는 오늘날 기독교의 위기는 기독교를 구성하는 체계와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시편 51편을 선택한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시편 51편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명제적인 교리적 진술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시편 51편의 역사적 정황을 먼저 이야기한 후,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방식이 성경에 들어 있으며 오늘날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성경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회개라는 주제가 그 가운데서도 무척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복음이 드러내는 위대한 구원을 맛보기 전에는 몇 가지 선행조건―즉 우리가 반드시 깨닫고 이해하고 또한 믿어야 하는―이 따르는데 그중에 첫 번째가 바로 회개라는 것이지요. 그는 현시대가 복음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이 강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회개’로 우리를 초청합니다.
계속해서 로이드 존스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맛본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회개의 표징을 드러냈다고 말합니다. 성경과 교회사 모두에서 말이죠. 따라서 회개 없는 구원은 없다고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그는 연이어서 회개의 중요성과 필요성이야말로 성경이 논쟁하지 않는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란 불가능하며, 회개 없이(오늘날 변질하여 버린 사과하기와 유감표명과는 다른 진실한 참회)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결코 알 수 없다고 역설합니다.
그 증거로 예수님의 첫 메시지가 바로 ‘회개하라’였음을 보여주고, 세례 요한도 그리했으며, 성경의 여러 사건을 보여주면서 모든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까지의 단계에서 회개가 반드시 요구되고 선행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로이드 존스는 이 책에서 이 회개에 대한 교리를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첫째, 회개는 죄의 자각 혹은 인간의 죄성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그는 먼저 현대인인 우리가 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온전히(충분히)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복음을 알지 못하고 거부한다고 지적합니다.
“성경은 단언합니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하나인데 너희가 이를 무시하고 있다! 그것은 죄의 문제다. 개인의 문제든, 대인 관계의 문제든, 국제관계의 문제든, 온갖 문제의 원인은 죄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은 죄의 문제가 보편적이며 현실적이고, 도덕적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믿지 않기 때문에 거부하고, 알지(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의 교리들을 어려워합니다. 세상이 이토록 삐뚤어져 있고, 우리 자신도 우리의 문제에 대해 전혀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성경이 말하는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아 로이드 존스는 하나님과 함께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개인적인 문제든, 세상 전체의 문제든 이 문제들에 대한 소망은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죄인들을 위한 복음입니다. 인간이 자신을 죄인으로 인식하지 않는 한, 복음은 인간과 무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죄인으로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성경은 회개하지 않은 인간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은 무엇보다도 회개를 촉구하며, 이 같은 방식으로 무서운 죄의 교리를 다룹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거쳐야 할 첫 번째 과정은 자신의 본성이 부패했음을 깨닫고 그것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로이드 존스는 이 첫 번째 과정을 다섯 단계로 다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던 일을 반드시 멈추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우리가 저지른 일의 성격이나 본질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죄과’와 ‘죄악’, ‘죄’라는 세 단어로 그 의미를 설명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자신의 삶과 행동이 하나님의 목전에서 그분의 뜻을 거스르고 있음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양심의 가책과 회개의 본질적 차이를 보여줌으로 우리의 비성경적인 안전의식을 책망합니다.
네 번째 단계는 자신이 어떤 변명이나 구실도 내세울 수 없음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옥에 떨어져 마땅하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옥에 보내시더라도 뭐라 따질 입장이 못 된다. 마땅한 일 아닌가!” 바로 이것이 진정한 회개라고 말합니다. 죄를 깨닫는 사람은 반드시 이 단계를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자신의 본성이 날 때부터 악한 것임을 깨닫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가 자신 안에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인간 자체가 문제임을 인식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현대적인 죄의 개념에서 성경적인 죄의 개념으로 독자들을 환기시킨 로이드 존스는 2장에서는 회개를 통해 구원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들을 다룹니다.
특별히 로이드 존스는 이곳에서 회개란 자신이 지은 죄의 형태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사람들은 도덕적 문제들을 흔히 ‘용서할 수 있는 죄’와 ‘용서할 수 없는 죄’로 각자의 기준에 맞추어 판단하는 경우가 있는데 성경은 이것에 대해 무척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돌이나 가벼운 돌이나 모두 물에 빠지는 것처럼 죄의 문제 또한 그러한데, 사람들이 말하는 논리는 무거운 돌은 가라앉고, 가벼운 돌은 물에 뜰 것이라는 것입니다. 둘 다 돌임에도 말이지요. 죄는 죄일 뿐이지 하나님 앞에서 가벼운 죄, 무거운 죄의 개념이란 결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이것에 대해 로이드 존스는 이러한 현대인들의 태도와 대조적으로 영적거장들의 태도가 어떠했는지 보여준 후, 오늘날 심리학적으로 복음을 다루는 것이 어떤 면에서 성경적이지 않은지를 비판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회개와 구원이 일어날 때마다 반드시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에 대해서 언급합니다(로이드 존스는 우리의 삶과 체험을 통해 이러한 특징들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표를 떼어 버리는 것이 낫다고 강하게 말합니다!).
첫 번째는 회개하는 사람은 자신을 직시하고 살핀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의 상태와 처지를 살핀 후 절망에 빠져 그에 따른 회개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용서를 바라는 애절한 마음이 있다는 것이며,
네 번째로 자신이 전적으로 무력한 존재라는 자각과 의식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는 여기서 1장에서 잠시 다루었던 양심의 가책과 진정한 회개의 본질적인 차이를 다시 한 번 언급합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는 절망 속에서 하나님만이 유일한 복음임을 깨닫고 그분을 간절하게 원하지만, 양심의 가책만을 느낀 사람은 절망도 복음도 소망의 의미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3장에서 로이드 존스는 진심으로 회개하는 죄인들의 간절한 욕구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거듭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추구하는 것인데 이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그도 인정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멈춰 서서 우리 자신을 살피고 죄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어떤 성향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유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이겨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그’자도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멈춰 서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이 회개와 거듭남의 교리에 대해서 반감을 갖게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인간은 부패할 대로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력하며 부패할 대로 부패하고 죄가 많아 개선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고발하는 교리를 생리적으로 싫어합니다.” - p.84
이것을 조금 다르게 말하면, “중생의 교리는 우리 스스로 온전케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선언을 함축적이지만 매우 분명하게 전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교리에 반감을 갖습니다.” - p.84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으로 위로받고 있고, 잘하고 있고, 잘 살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깨어졌고 부서졌으며 거듭났다고(실제로는 ‘개선’ 정도이면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항상 그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것이 아닙니다.
다시 이것을 조금 다르게 말하면(그러나 좀 더 심오한 차원에서), “내가 하나님을 마주 대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p.85
또 다른 설명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실상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p.86
(사람들에게 죄에 대해서든, 현 상태에 대해서든 지적하면 그들은 감정을 상해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으로 나아옵니다. 이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제 자신이 직시하여 똑바로 본―이 아니라 자신에 대하여 불편하게 말한 상대방이 최대의 문제가 됩니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종종 감정이 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며 이해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그러한 감정이 생기는 것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말입니다. 시편 51편의 주인공인 다윗의 경우를 볼 때, 또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의 경우를 볼 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어떠한 태도와 단어를, 자세를 가지고 전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깨어지는 사람은 하나님 아래서 자신을 다루지, 자신의 감정과 자신이 그동안 쌓아왔던 것들을 하나님 위에 두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또 하나 생각한 것이 있는데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에게서는 이중성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위로로 받아들이고 기뻐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렵고, 죄책감에 시달릴 때는 이러한 약속을 위로로 받지만,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께 드려야 하는 것 앞에서는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갈등하고 어려워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그가 거듭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거듭남의 교리가 반감을 사는 몇 가지를 설명한 후, 이것이 궁극적으로 인간이 교만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교만, 자기만족, 자긍심, 그리고 자기 과신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 즉 거듭남의 교리는 거북한 교리이며 자존심 상하게 하는 교리이지만 기독교 교리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 거듭남의 교리의 핵심이 바로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시 51:6, 10) 이 두 구절에 완벽하게 묘사되어 있다며 우리가 거듭나야 하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이어갑니다.
우리는 왜 거듭나야 합니까?
첫째로, 반역과 위선을 일삼는 우리의 본성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이것들을 결코 다스릴 수 없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지식과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방법과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빛을 비추어주셔서 우리를 발가벗기시고, 똑똑히 보게 해주신 후, 하나님의 지혜와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해주셔야만 합니다.
이러한 단계를 거치면서 우리는 이제 자신에게 정결한 마음이 필요하고 새로운 성품이 필요함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소서!”
로이드 존스는 3장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소서.’ 진심으로 이렇게 기도하면 누구나 틀림없이 응답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는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깨닫고 그리스도께 순복하는 사람은 다시 태어납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 곧 하나님이 주시는 삶을 살아 냅니다. 하나님께서 문제의 핵심을 해결해 주시기에 그는 자신 안에서 새로운 시각, 새로운 힘, 새로운 소망, 새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 p.99
4장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으며 거듭났을 때 나타나는 결과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에 대한 것을 다룹니다.
여기서 로이드 존스는 먼저 앞쪽의 세 설교를 다시 한 번 정리하면서 성경의 가치를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하나님을 알 길이 전혀 없다”라며 이것이 유일한 시금석이자 유일한 기준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 말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하시는 말씀 앞에 즉각 무릎을 꿇는 것이며, 독생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며, 그분께 우리 자신과 우리 생명을 바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이제 1장부터 살펴본 시금석들의 마지막 시금석에 대해 로이드 존스는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을 믿으며 거듭났을 때 나타나는 결과 중 첫 번째는 즐거움과 기쁨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이 기쁨이 인간적인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적이고 영적인 것임을 증거합니다.
이어서 사람들이 이러한 즐거움과 기쁨을 맛보지 못하는 원인들을 다룹니다. 첫째, 죄 때문에 그러하며, 둘째, 구원의 길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에 그러하며, 셋째, 주님이 아니라 자신만을 바라보는 일에 몰두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두 번째로, 언제나 자아를 철저하게 불신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나를 붙드소서!”라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간절히 바라며, 다른 모든 사람도 그렇게 살기를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탁월한 영혼의 의사, 마틴 로이드 존스. 저는 그의 책을 읽을 때 항상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런 멋진 사람을 내 앞에 두셔서 배울 수 있게, 방황하지 않게 해주심에 말이지요. 그리고 이런 사람을 통해 오로지 하나님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게 하심에 또한 감사드립니다.
그의 애절한 외침처럼 성경에서 강력하게 선포하는 기독교 핵심 교리 중 하나인 회개의 문제는 특별히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더욱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회개 없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개선과 거듭남은 다릅니다. 사과와 회개도 다릅니다. 우리는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패할 대로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그 어떠한 소망도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복음이 되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치유하실 수 있고, 온전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과 연합하는 길의 첫걸음에는 반드시 참된 회개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철저히 불신하고, 우리의 모든 교만과 자기 사랑을 내려놓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울부짖어야 합니다. 나를 붙드소서! 나를 정하게 하소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우리에게 구원의 즐거움과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이기지 못해 우리 이웃들에게 전하고야 말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