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와 자장면(?)을 사랑한 난장이
해방 뒤 한국의 현대사에서 최강의 권력기관이었던 적이 있었다. 권력의 핵심부에서 독재 권력의 하수인노릇을 가장 충실히 수행한 적이 있었다. 설립목적을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간첩'으로 몰리던 적이 있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그 기관. 국군보안사령부. 지금은 '국군기무사령부'로 이름만 바꿨다. 군수사기관인 보안사가 지난(70~80년대) 여름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적지 않다. 백설 공주를 사랑한 게 아니라 국보법을 사랑한 난장이, 국군 보안사. 보안사(현 기무사)가 경부고속도로로, 정부종합청사로, 자장면(?)으로 숱한 간첩을 만들어내며 '대박'을 터뜨린 사연을 이야기하면 이렇다. 그 자장면 논리가 아직도 이어진다는 서글픔과 함께.
84년 남매간첩단사건, '나경애'를 '나경혜'로
군수사기관인 보안사는 1981년 경 체포한 어느 남파간첩한테서 "나경애라는 여자간첩이 고향에 다녀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수사관들은 처음에는 이 이름으로 전국의 호적을 뒤졌으나 그럴듯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자 '나경혜'를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고 이쪽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나경혜는 나종인의 누나였다.
수사관들은 근 4년 간 이 가족들을 미행하다가 별 단서가 없자 보안사 송파분실로 연행하여 조사하기 시작했다. 일가족 수십 명이 이때 조사를 받았는데 시동생과 시누이가 이때 받은 고문으로 아직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보안사』(소나무)를 쓴 김병진씨는 일본에서 쓴 기사에서 나종인씨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5계 수사관들에 따르면 나씨는 지독한 놈이었다. 한겨울 알몸으로 밖에 내놓고 얼어붙게 해도 자백을 안했다고 한다. 고춧물을 먹여도 안 되고 전기에 달아보아도 안 된다고 했다. 그들은 일단 나씨를 석방하기로 했다. 나씨는 어느 회사의 거래를 일본어로 했는데 그 감청테이프를 내가 번역했었다. 상거래 이야기 말고는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씨는 다시 연행되었다. 5계는 나씨를 계속 범인이라고 우겨 조서를 꾸며 송치하였다."
특히 이 사건의 공소 내용을 보면 공소시효가 15년이기 때문에 모든 행위를 13년 전으로 묶어 놓았다. 나씨는 최종형이 15년으로 확정되어 대구교도소, 대전교도소 등에 옮겨 다닌 뒤 만기를 며칠 앞두고서야 풀려났다. 이 사건을 맡은 상고심 이범열 변호인은 "일본에 산다는 임갑순을 붙들지 못한 상태에서 또 임이 북한 공작원이라는 확증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법원이 그런 판단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그는 평소에 간첩 사건재판에서 7년 선고가 나면 사실상 무죄라고 보며 이는 판사가 수사기관이 겁이나 무죄인줄 알면서도 양형을 낮추는 정도밖에 못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여 설명하기도 했다.
체포 1년 뒤, 신문 방송 등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된 사건. 20년 전 이맘때 일이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가장 터무니없는 것은 1984년 10월5일에 연행하여 7개월간을 불법으로 수사했고, 다음 해인 1985년 4월27일에 기소한 뒤 그 해 11월1일에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람들 5~6명을 나열하고 간첩단으로 확대하여 TV와 각 일간지에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던 것.
보안사의 발표문에서 "북괴는 고향방문단 교류 등 남북대화에 응하면서도 대공경각심을 해이시키려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코걸이 귀걸이' 국보법을 짝사랑한 보안사
국보법을 사랑한 난장이, 보안사. 보안사가 쏘아 올린 것이 '자장면'이라면 세상 사람들이 믿을까. '코걸이 귀걸이'를 사랑한 보안사.
조작된 간첩사건에는 모두 국가기밀누설이라는 혐의가 들어있다. 국가기밀은 우리 국민에게 상식적으로, 일상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라 해도 그것이 북한에 알려져서 북한을 이롭게 할 경우, 그것이 다 국가기밀로 되어있다. 아무리 사소한 사실이라도 북한에서 알아서 불리할 것은 없다. 모두가 이로운 것이다. 이 정도 되면 모든 게 국기기밀이다. 나종인씨 사건뿐만 아니라 다른 사건에서도 '코걸이 귀걸이'는 계속되었다.
법원의 판례를 보면 일본에 가서 경부고속도로가 4차선이다라는 얘기(신귀영씨 사건)나 정부종합청사가 과천에 있다는 말을 하거나, 한국의 자장면 값이 싸고 맛있다더라는 이야기를 해서 한국의 물가시세를 반국가단체에 알리면 영락없이 '간첩'(김병진씨가 쓴『보안사』)이다.
그래서 70~80년대 재일동포관련 간첩사건을 만들기는 보안사 수사관들에게는 갓난아기의 손목을 비트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70~80년대 재일동포나 일본관련 간첩사건들은 거의가 보안사(현 기무사)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74년 4월25일 김포공항에서 입국수속을 마친 뒤 보안사로 연행돼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된 최철교, 조총련간부를 둔 죄로 무기형을 선고받은 김태홍, 아버지를 찾아 일본으로 밀항하여 조총련계고교를 다니다 발각돼 무기형을 선고받은 강희철, 재일대사관에서 열린 신년회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나타낸 것이 화근이 되어 무기형을 선고받은 조상록, 조총련계 형과 만나 경부고속도로가 4차선이라는 국가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15년형을 받은 신귀영(부산시경 연행) 그리고 그외 김장호, 손유형, 김병주, 이헌치(무기에서 20년으로 감형), 고창표(15년 선고), 유종안, 김철(7년 선고), 신상봉, 최해보 등.
국가보안법보다 더 심각한 보안관찰법
재일동포들과 일본관련 '간첩'들은 그 뒤 만기 출소일 전에 모두 출소했다. 만기를 채우기에는 수사기관과 검찰, 법원이 미안했든지 사형수, 무기수들 모두 그 전에 나왔다. 재일동포들은 일본에 돌아갔다. 나머지 일본관련 '간첩'들은 국내에 자리잡았다. 출소로 끝나면 이 이야기는 끝난다. 하지만….
출소 뒤에도 감옥은 계속된다. 일본관련 출소자들은 전국 곳곳에서 살고 있다. 국가보안법상 보안관찰해당범죄 관련 출소자와 마찬가지로 보안관찰 대상자다. 그들은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보안관찰법에 따른 경찰의 감시와 통제 속에 있다. 담당 경찰의 전화와 미행 감시가 그들을 반긴다. 그 뒤 보안관찰 대상자신분에서 승진(?)할 수 있다. 법무부 차관이 위원장으로 있는 보안관찰처분심의위원회에서 보안관찰 처분을 받으면 보안관찰피처분자로 승진된다. 본격적으로 평생 '보안관찰'딱지가 붙어 다닌다.
피처분자는 대상자와 마찬가지로 이사할 때마다, 일자리를 바꿀 때마다 3개월에 한번씩 정기신고를 강요받는다. 2년마다 보안관찰 처분이 갱신된다. 다른 '간첩(?)'을 만나지 말라고 한다. 헌법상 보장된 정치적 의사표현도 제한받는다. 사전에 어떻게 알았는지 보안법철폐집회나 정치집회에 참가하지 말라는 담당경찰의 전화가 이어진다. 21세기 사람들에게 일제 시대 '조선사상범 보호관찰령'과 '사회안전법'을 모태로 한 보안관찰법을 덮어씌우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차선과 자장면 값을 발설하지 말라고.
웃기지 마라. 사상전향제도는 없어지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종인, 강희철, 조상록, 신귀영 씨 등이 '보안관찰'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다. 국가보안법과 보안관찰법의 핵심은 사상전향을 강요하는 것이다. 김대중정권 시절 98년 7월1일, 사상전향제도를 폐지시키고 준법서약제로 바뀌었다고 선전해댔다. 노무현정권 시절 2003년 7월7일, 법무부가 준법서약제도를 폐지한다고 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검찰은 2003년 11월경 송두율 교수에게 끊임없이 전향과 반성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2003년 11월5일) 사상전향제도와 준법서약제는 없어지지 않은 것이다.
따로 국밥인 것이다. '위'에선 폐지했다고 하지만 검찰의 '입'과 관련법규는 요지부동이다. 더 자세히 보자. 보안관찰법 제11조 1항에는 보안관찰 면제결정대상으로 여전히 준법정신확립을 강요하고 있다. 보안관찰법 시행령 제8조 6항에는 보안관찰 대상자 출소시 신고사항으로 '사상전향여부'를 강요하고 있다. 또 사상전향제도의 법적인 근거가 되는 수형자 분류처우규칙(법무부장관령 제111조)은 수형자를 분류해 승급케 하면서 '확신범으로서 그 사상을 포기하지 아니한 자'를 적용범위에서 제외시키는 위 법령 제2조 1항 5호를 폐지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웃을 일이 있다. 대법원 '보안관찰'관련 판결!
20년 전 나종인씨 사건 당시 보안사의 발표문과 비슷한 판결문이 나왔다. 그것도 대법원에서. "북괴는 고향방문단 교류 등 남북대화에 응하면서도 대공경각심을 해이시키려 하고 있다."는 내용과도 비슷한 대공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판결문이다.
2004년 3월26일, 대법원 2부는 2000년 2월16일 보안관찰관련자 85명이 보안관찰 대상자수, 피처분자수, 면제자 수 등의 보안관찰관련 자료정보비공개 결정취소소송을 한데 대한 4년만의 답변이다. 대법원은 역시나 "보안관찰처분 대상자의 지역적 분포상태를 포함한 그 통계자료는 북한의 대남전략에 있어 유용한 자료로 악용될 우려가 없지 않다"며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관련자료가 공개되면 북한이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 뒤 2004년 11월 24일의 파기환송심에서 서울고등법원 제5특별부(이종찬 판사)는 원고의 소를 기각하며 법무부의 손을 들어 주었다. 당사자들은 또 상고를 준비 중이다.
위 소송은 1999년 10월20일, 이혜정·우용각·문규현 등 보안관찰대상자, 피처분자 85명이 보안관찰관련 각종 자료의 정보공개를 요청해 1999년 11월18일, 법무부가 비공개결정(법무부장관 전결 검찰국장 한부환 명의)을 내리자, 당사자들이 2000년 2월16일 보안관찰관련 자료정보비공개 결정취소 소송을 한 것이다.
제2의 국보법, 보안관찰법도 폐지해야
보안사(현 기무사)의 20년 전 '대박'은 로또복권처럼 담당수사관을 승진시켰는지 모른다. 잠시 신문 방송을 통해 대공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보안사(현 기무사)가 쏘아 올린 '자장면'에 '간첩'이 된 사람을 체포도 모자라, 고문도 모자라, 간첩딱지도 모자라, 감옥 살리고 이것도 모자라 전향공작에다 출소하자마자 영원히 보안관찰까지 가능케 한 국가보안법 장사를 중단시켜야 한다.
경부고속도로가 4차선에서 일부 6차선, 8차선으로 넓혀지고 있는 데, 정부종합청사가 과천에도, 대전에도 자리 잡았는데, 한국의 자장면 값이 오르내리는 데. 오직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보안사(현 기무사)와 대법원, 일부 고등법원이 아직도 자장면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