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한 낚시꾼이 텔레비전에서 자기 낚싯대는 다른 사람 것과 '틀린다'고 자랑한다. 어떤 진행자는 한 인기인의 어린 시절을 말하면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아이들과는 '틀렸다'고 강조한다. 한 디자이너는 옷에 따라 이미지가 '틀려지니' 옷차림에 신경을 쓰라고 권한다. 어떤 연예인은 "올해와 작년이 좀 '틀려진' 점이 있다면 올해 우리 귀여운 아들이 생겼다는 게 '틀려진' 점인데"라고 말한다. 진행자가 "느낌이 다르죠?"라고 묻자 이 연예인은 "틀리죠" 한다. 마치 '틀리는' 것이 좋다는 말투다. 왜 이렇게 '다르다' 대신 '틀리다'를 즐겨 쓸까? '틀리다'는 '어긋나거나 맞지 않다','사이가 벌어지다', '감정이나 심리가 나빠지다'란 뜻을 지닌 부정적인 말인데 왜 이를 자꾸 긍정적인 용도로 쓸까? 학창시절 답을 잘못 대어 '틀렸던' 쓰라림을 잊었을까? 그 반작용으로 '틀린' 것을 '좋은' 것으로 왜곡하게 되었을까? '다르다'를 써야 할 자리에 '틀리다'를 쓰는 까닭은 다르면 틀린 것으로 생각하는 왜곡된 가치 의식 때문일까? '그는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놈이니 틀린 놈이야'라는 독선적인 사고방식이 우리 속에 자리잡은 결과일까? 그렇다면 '틀리다'를 틀리게 쓰지 않음으로써 이런 독선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다른 말이며, 이를 혼동하여 쓰는 것은 틀린 언행이 될 수 있다. 바른 말이 우리를 아름답게 만든다.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22. 외래어와 외국어/ 김세중 아나운서들의 말은 반듯하고 정제되어서 빨리 말하지만 누구나 잘 알아듣는다. 그래서 흔히 아나운서를 표준말 선생님이라 일컫는다. 그런데 이따금 의아할 때가 있다. "야구팬 여러분 ... 팩스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와 같은 말에서 '팬', '팩스'의 pan을 [f]로 내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pan은 두 입술을 붙였다가 떼면서 내는 소리고, [f]는 아랫니를 윗입술에 마찰시키며 내는 소리다. 영어에는 [f] 소리가 있지만 우리말에는 없다. 그렇다면 '팬', '팩스'는 영어인가? ≪영어≫와 ≪영어에서 온 외래어≫는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fan'은 영어고 '팬'은 영어에서 온 외래어, 곧 한국어다. '애호가'쯤으로 바꿔 쓰면 좋겠지만 굳이 `팬'을 써야 할 때 말이다. '팬'이 ≪영어에서 온 외래어≫라면 그것은 곧 한국어이고 '팬'의 pan을 [f]로 발음해야 할 이유가 없다. 외래어라도 이왕이면 영어 발음 가깝게 발음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f]만 그래야 할 이유가 없고 '바이올린'의 violin도 [v]로 발음해야 할 것이고, '지퍼'의 zipper도 [z]로 소리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pan을 [f]로 소리 내는 것은 간혹 들었어도 violin을 [v]로 내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 pan을 [f]로 발음하는 것이 일관성이 없음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김세중/ 국어연구원 학예연구관 ----------------------- 23. 표준말과 문화어 표준말이란 한 나라에서 일정한 지역과 사회 집단을 기준으로 정한 보편스런 현대말이다. 같은 말의 여러 방언이 있을 때는 심의하여 가려잡기도 하고, 또한 독특한 뜻의 방언을 거두어 표준말로 정할 수도 있다. 표준말의 대상은 주로 일반어라 하겠으나, 학술용어도 심의를 거쳐 표준화할 수 있고, 외국 사람 이름이나 땅이름 등의 고유명사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남한의 표준말은 교양인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했다. 북한의 표준말인 문화어는 평양말을 기준으로 하여 인민의 혁명적 지향과 생활 감정에 맞게 문화적으로 가꾸어진 말이라고 한다. (조선말대사전, 1992) 북한 문화어에는 평안, 함경 등지의 토박이 방언에서 거두어들인 말도 많다. 서울 표준말과 평양 문화어의 근본적 차이는 언어의 표준 지역이 다른 점이다. 이는 두 지역 표준말이 공존한다는 뜻이다. 두 표준 지역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우리말 통일문제는 여기서부터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언어의 표준 지역이 둘이라면 결국 지금처럼 남북 두 표준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분단 시대를 접고 통일 시대의 표준말 제정을 생각해 보면, 당장 표준언어 지역을 하나로 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선은 〔표준말은 우리 겨레가 두루 쓰는 현대말로 정한다〕는 폭넓은 원칙에서 출발하면 어떨까 싶다. 조재수/ 사전편찬가---------------------- 24. 나한테 주어진 길?/ 이수열 `받는다'는 타동사이지만 역시 타동사인 `준다'와 맞세워 놓으면 입음(피동)의 뜻을 지니므로, 어떤 경우에도 주는 것은 `준다' 받는 것은 `받는다'고 해야 하는데, 오래 전부터 영어 기브(give)의 수동태 `be given'을 직역한 `주어진'이 만연해서 준다는 것인지 받는다는 것인지 분별하기 어렵게 표현하는 사례가 도처에 보인다. *공직에 권력이 주어지는 것은 맡겨진 책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함이다. (신문 사설) → 공직에 권력을 주는 것은 맡은 일을 ~. *공격의 찬스가 주어지면 기민하게 행동해야 합니다.(축구 중계방송) → 공격할 기회가 오면 ~. *우리 선수에게 퇴장이 주어지는군요.(중계방송) → 우리 선수를 퇴장시키는군요.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윤동주 `서시') → 내 길, 내가 갈 길 ~. 윤동주의 서시는 숭고한 시정신과 주옥같은 시어로 빛나지만 `나한테 주어진 길'은 옥에 티다. *그는 인생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자기에게 억지로 주어진 것이라고 믿어 왔다.(국어연구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의 올림말 `주어지다'의 예문) 작가 홍성원의 소설 <육이오>에서 따온 예문인데, 문장이 극도로 치졸해서 진의를 헤아리기가 심히 어려우나 `그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원망했다'는 뜻인 듯하다. 이수열/ 국어순화운동인-------------------- 25. 좋은 하루 되세요?/ 남영신 나는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오늘은 내가 무엇이 될지 궁금해한다.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나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제법 고상한 권고를 해 주기 때문이다. 어떤 여성은 아리따운 목소리로 나더러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인사한다. 백화점에 가면 나더러 "즐거운 쇼핑 되세요"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권고에 따라서 `좋은 하루'도 되고 `즐거운 쇼핑'도 되는 셈이다. 어제는 아무개·한테서 특별한 인사를 받았다. 내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잘 듣고 있노라면서 "앞으로도 더욱 좋은 프로가 되세요"라고 했다. 아마 나더러 시시한 프로가 아닌 훌륭한 프로가 되라는 뜻인지, 아니면 더욱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노력하라는 뜻인지 알 수 없었 다. 그가 내 프로를 잘 듣고 있다고 했으니 프로그램을 뜻할 것 같은데 "좋은 프로가 되세요"라고 했으니 헷갈릴수밖에. 밤에 텔레비전을 끄려는 순간에 들려온 "편안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라는 인사말을 들으면서 나는 순간 "좋은 프로 되세요"도 이와 같은 인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온 국민은 `되세요'라는 인사 덕분에 요술쟁이처럼 날마다 `좋은 하루', `즐거운 쇼핑', `편안한 밤', `좋은 프로' 같은 것이 되어야 할 운명에 놓였다는 생각도 하였다. 이런 비극이 어디 있는가? 이제 인사를 바꾸어 보자. 말이 되는 말로 바른 인사를 하는 것이 우리를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 26. 변하는 말들/ 김세중 말은 끊임없이 변한다. 새 말이 생겨나고 쓰이던 말이 어느새 사라진다. 다방보다 커피숍이 더 많이 쓰인다. 천연색 사진은 `컬러사진'으로, 자동차 열쇠는 `키'라고 하는 때가 더 흔하다. 미장원이 미용실로 가더니 이젠 `헤어샵' 쪽이 더 많다. 예식장 간판보다는 `웨딩홀'이 더 많은 형편이다. 영어 우대 풍조 탓이다. 반대 현상도 적지 않다. 미용실 대신 머리방이 나타나기도 하고, 대학에서는 서클이란 말이 슬며시 사라지고 `동아리'가 자리잡았다. 데모보다는 `시위'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1인 시위라고 하지 1인 데모라고 하지 않으니 말이다. 시위는 한자어지만 우리말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최근 들어 핸드폰 대신 `휴대전화'라고 하는 사람도 꽤 있는 걸 본다. 핸드폰은 영어를 재료로 해서 새로 만든 말이고 휴대전화는 한자어이지만 우리에게 좀더 친근한 느낌이다. 영어에서는 셀룰러폰이나 모바일폰이라 하지 핸드폰이란 말은 없으니 이 말은 그야말로 국적 없는 말이다. 하다못해 휴대폰 정도라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아예 휴대전화가 널리 쓰이는 걸 보니 무척 반갑다. 내 것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 남 것이 더 좋아 보이는 마음이 외래어를 자꾸 늘어나게 한다. 외래어가 늘어나면 우리말은 튀기말이 되어 간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김세중/ 국어연구원 연구관 -------------------------- 27. 영어투 '이뤄지다'/ 이수열 '영어투 '이뤄지다'/ 이수열 `이루어진다'는 타동사 `이룬다'의 입음꼴(피동형)이므로 국어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식인들이 한영사전에 실린 `be achieved'의 예문을 직역한 투로 표현한 문장을 퍼뜨려서 우리말글의 품위가 나날이 떨어져 간다. *그이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졌다.(한영사전, 시사영어사) → 그이는 숙원을 이루었다. *인간은 환경에 의하여 성격이 이루어진다.(표준국어대사전, 국어연구원) → 인간의 성격은 환경에서 형성한다. *이 책으로 이루어지는 교수·학습은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고등국어 상 일러두기) →이 책으로 하는 교수·학습은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 *상상으로 이루어지는 세계는 가공의 세계이다.(고등국어 상 32쪽) →상상하는 세계는 공상세계다. *일상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언어 활동은 대체로 설명과 설득의 범위에 든다.(고등국어 하144쪽) →일상 생활에서 하는 언어 활동은 ~. *언어 표현은 문장을 단위로 하여 이루어진다.(고등문법 166쪽) →언어는 문장 단위로 표현한다. *한국이 강대국들과 공존하면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사설) →~ 발상을 바꿔야 한다.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다.(신문 시론) →선거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어야 ~. 이수열/ 국어순화운동인 ------------------------- 28. 달라지는 한자말 쓰임/ 최인호 흔히 부닥치는 말글에서, '통화를 나누다, 대화를 나누다, 담화를 나누다, 대담을 나누다' 따위는 '의견을 나누다, 얘기를 나누다, 인사를 나누다'들과는 쓰임새가 좀 다르다. 곧 통화, 대화, 담화, 대담은 '通 對 談' 따위가 서술어 구실을 하여 '마주하다, 주고받다'는 뜻을 스스로 지닌 말들이다. 원체 '-하다'를 붙여 써도 모자람이 없다. 그런데도 굳이 목적격 '을, 를'을 달아 '나누다'를 거듭 쓰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한자말의 쓰임이 점차 변해가는 사례로 봐야 할 듯싶다. 달리 보면, 한자말이란 외래어의 고유어화 현상이랄 수도 있겠다. 예컨대 '피해를 입다, 피랍을 당하다, 부상을 당하다, 부상을 입다' 들이 습관적으로 쓰이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런 말도 '입음'(피동)이 겹쳐 쓰인 말들이다. 역전앞, 처갓집, 외갓집, 대갓집 역시 역앞, 처가, 대가로 충분한데도 사용 습관이 사라지지 않는데, 이중적이긴 하나 한자말이 고유어화하 는 흔적들로 보면 관용할 수 있는 경우다. 말이 이런 방식으로 쓰이는 것은 경제성에서나 됨됨이에서 달가운 것은 아니다. 역시 나은 방식은 간단히 '-하다'를 붙여쓰든지, 고유어투로 바꿔쓰는 것이다. '부상을 입다'는 '다치다' '피해를 입다'는 '피해를 보다', '대화 좀 나눕시다'는 '얘기 좀 합시다' 따위로 말이다. 최인호/ 교열부장 ------------------------ 29. 영어투 '요구된다'/ 이수열 '요구한다'는 '요구'에 뒷가지 '-하다'를 붙여 만든 타동사지만, '요구된다'는 '시키는 일은 뭐든 다 하겠다'는 영어문장(I'll do all that is required of me)에서 'is required of' 부분을 '요구되는'이라 번역한 데서 온 기형이다. 우리말 본새를 모르고 색다른 것에 정신 팔린 지식인들이 이를 즐겨 써서 국어를 영어에 종속시키면서, 게으른 농사꾼의 논밭에 짙은 잡초가 작물의 성장을 막듯 제대로 된 국어를 죽인다. *지금 '요구되고 있는 것은' 공명선거 의지입니다. 공명선거를 치르려면 흑색선전을 '근절할 집중적인 단속력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방송 뉴스) →필요한 것은/ 요구하는 것은 철저히 단속해서 근절해야 합니다. *새로운 경제팀에는 유연한 정책대응 자세가 '요구된다.' (신문 사설)→필요하다. *경제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법의 집행과 질서의 존중이 '요구된다.' (신문 사설)→법을 엄격하게 집행하고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 *간단한 언어표현에 관한 문법성을 판단하는 데도 많은 사고과정이 '요구된다'. (고등국어 상 85쪽)→필요하다. *'무한 경쟁이 요구되는' 국내외 사회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고등국어 상 393쪽)→끝없이 경쟁해야 하는 이수열/ 국어순화운동인 ----------------------- 30. 웃기는 사람? / 남영신 1960년대 초만 해도 '웃긴다'는 좀처럼 쓰이지 않았다. 웃음은 자기가 우스워서 웃는 것이지 누가 억지로 만들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우리를 웃게 만드는 사람들이 직업적으로 웃게 만드는 개그맨뿐이어서 그러는지 사람들은 이제 '웃긴다'를 더 자연스럽게 쓰는 것 같다. 얼굴이 좀 특이하게 생겨서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에 그 사람을 '웃기게 생겼다'고 하고, 언행이 좀 특이한 사람을 '웃기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말투는 상대를 참으로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누구 웃으라고 얼굴이 그렇게 생긴 것도, 말투가 특이한 것도 아닌데, 그런 사람더러 웃긴다고 하는 것이 실례가 아니 되겠는가?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래서 은연중에 의식이 수동적으로 변하고, 말까지 수동적으로 바꾸고 있는 것 같다. 서양 언어의 피동 표현을 분별없이 받아들인 지식인들의 잘못도 무시할 수 없다. 자신 없는 사람들의 사회에서는 우스워서 웃으면서도 상대가 웃겨서 웃는 것으로 표현하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언어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에 따라 웃는 본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우스운' 것을 '웃기는' 것으로 말하는 수동성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주체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