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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종주((2003.9.16~19)
장마가 끝날 무릅에 마침 여름방학이 시작되어 대학생들이,
인터넷에 지리산 대피소 예약쇄도로 일정을 못잡다가
겨우 9월16일에, 뱀사골산장,17일에 세석평원 대피소에 예약이 되었다.
역시 주위사람들의 만류도 있었지만 우리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나는 지리산종주를 3번하였다 첫번는 83년 9월13일~15일에 화엄사에서 유평까지.
2차는 86년8월7일에서 9일까지 중산리에서 화엄사까지
3번째는 88년1월30일~2월2일에 걸쳐 유평에서 화엄사까지
역종주를 한적이 있으며 지리산을 수없이 올랐다.
젊어서 산행과 운동(테니스.베드민턴)을 너무 지나치게 하여
퇴행성관절염으로 부득히 운동을 중단하고, 근교산을 찾아 가벼운 산행을 하여왔다.
그동안 무리하지 않은 산행을 하고 운동도 탁구로 전환하여
관리를 잘해서 퇴행성관절염은 놀랄 정도로 호전이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산행 하루전일(15일)에 허리에 통증이와 산행을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나는 삼촌에게 실망을 주워서는 아니된다는 一念으로 동네 정형외과에서
치료를 받고 온천장 녹천탕에 가서 목욕을 하였다.
오후에는 한의원에서 침을맞고 물리치료을 받았지만 담이 풀리지 않았다.
와이프는 포기하라고 성화가 대단하다. 그래도 나는 포기를 할수없었다.
그시간에 시내버스가 운행하지 않아 택시를 잡아 타는데 요금이 9,000원이다.
버스로 가면 700원이면 되는데, 너무나도 아깝다.
나는 평소에도 특별한 일이 없는한 좀처럼 택시를 타지 않는다.
구례행 버스 옆자리에 등산복 차림의 아가씨2명이 타고 있어,
어느 산에 가느냐? 물어니 놀랍게도 지리산 종주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그만 배낭이 준비물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나는 최대한 짐을 줄이도 기본적인 용품(코펠.바너.식품.부식.옷가지등)만 해도
큰배낭에 가득한데 아가씨들이 지리산을 너무 앝잡아 보는것이 아닌가?
나는 무모한 짓라고 친절하게(?) 충고까지 하였다
(지리산종주가 어디 장난 인줄아는가?)속으로 걱정이 되었다.
구례에 09:45분경에 도착하였다.
성삼재 올라가는 10:00행 버스로 바로 연결되여 시간의 낭비가 없어 다행이다.
성삼재까지 버스요금이3,200원이고 약40분 걸린다.
천은사 입구에서 국립공원 입장료2,600원을 받는다.
나도 敬老 라고 하니 그렇게 안보인다 하면서 통과는 하였으나,
지리산 산신령님을 속이는것 같아,마음이 편치않았다
천은사를 기점으로, 노고단까지 이어진 20㎞의 비경의 도로가 잘 다듬어져 있다.
그 옛날 성이 다른 3명의 장군이 지켰던 고개라 하여 성삼재(1,102m)라 했다.
아슬아슬한 도로와 까마득한 벼랑 위로 길이 나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 白眉다.
40분만에 성삼재에 도착(11:15)하였다
성삼재에 주차장과 휴계소,전망대가 있다.
우리는 약40분만에 노고단 대피소까지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은 2차선道路로 널적하게 잘 다듬어져있다. 차량은 통제하고 있다
노고단 대피소는 호텔을 방불케 하였다. 여기서 잠시 쉬면서 사진을 촬영하였다.
수많은 봉우리들 중에서도 영봉(靈峰)으로 노고단 아래 펼쳐지는 '구름 바다'의
절경(絶景)은 가히 지리산의 10景(老姑雲海)중 하나임을 실감케 했다.
노고단은 지리산 종주 코스의 출발점이다.
우리도 이곳에서 임걸령-반야봉-토끼봉-벽소령-세석평전을 거쳐
천왕봉에 이르는 장장45.5㎞의 지리산 능선길을 밟을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면서 흥분이 된다.
11:40분에 노고단를 출발, 돼지평전을 걸쳐 임걸령까지 3.2Km는 하이킹코스이다.
돼지평전의 표시판에 멧돼지가 많이 출현하여 돼지평전이라 부른다면서
지금도 돼지가 출몰하니 숲속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다.
믿든지? 말든지? 임걸령 도착이 13:10분이다.
우리는 여기서 라면을 끊여 햇반과 같이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1983.09.13 박찬식씨와 나는 이곳 임걸령에서 비를 맞으먼서 야영을 했든 곳이다.
20년전에는 자연 그데로 샘에서 물이 솟아나고 있었는데
지금은 주변을 깨끗하게 단장하고 파이프에서 물이 철철 흘러내린다.감회가 새롭다
임걸령은 해발 1,320m의 높은 高嶺임에도 불구하고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의 능선이 동남풍을 가려주어 산속깊이 자리한 아늑하고
조용한 천혜의 요지이며 샘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솟고 물맛 또한 좋기로 유명하다.
이곳은 옛날에 의적이나 도적들의 은거지였던 것으로 유명하며
특히 의적 임걸(林傑)의 본거지였다 하여 임걸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임걸령(02:10출발)에서 반야봉을 향해 가파른 능선을 올라가는데 식사하고
곧바로 산행이 시작되어 숨이 차지만 2㎞지점에 노루목 삼거리까지는 35분만에 달리었다.
노루목은 반야봉에서 내려지르는 산줄기가 산중턱에서 잠깐 멈추어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피아골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天然의 岩頭가 展望臺를 이루고 있어 부르게 된 이름이다.
해발 1,500m의 노루목 암두에서 피아골을 내려보노라면 원시림 속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반야봉을 갈것인가? 아니면 바로 삼도봉으로 갈것인가?
망설리다가 반야봉으로 올라갔다 노로목에서 반야봉까지 1Km는 종주산행시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장거리코스에 지쳐서 반야봉을 거치지않고 삼도봉으로 빠진다.
노로목에서 15:00에 출발,반야봉 등산로는 결코 만만한 코스가 아니다.
중간지점에 배낭을 감추워놓고 빈몸으로 올라갔지만 꽤나 땀을 흘리었다.
반야봉에 올라오는 등산인 거의가 배낭 없이 올라온다.
삼도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짜피 빽코스 해야 하므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올라오는 바보는 없다.정상까지 오는데 45분이 소요되었다
해발 1,732m로 지리산 3대 주봉의 하나인 반야봉은 노고단에서 임걸령으로
뻗어 나가는 높은 능선으로 이어지는 지리산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반야봉의 비경은 정말 장관이다.
정상에는 돌탑이 있고, 동쪽으로는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연봉들이 조망되고,
서쪽은 노고단, 북쪽은 달궁계곡이다.
반야봉은 지리산 10경중의 하나인 '반야낙조(般若落照)'로 유명한데
아직 저녁무릅이 아니라 낙조는 볼수 없었지만 날씨가 너무 좋아 지리산 이 한눈에 다 둘어온다.
오후4시에 내려오는데 이때부터 삼촌은 무릅통증을 호소하면서 제데로 걷지 못한다.
같이 산행을 하면 서로가 부담이 될것같아(삼촌提意) 내 페이스 데로 먼저 와서
어느지점 쉬고 있으면 삼촌도 자기 능력에 맞추워 천천히 산행하여
만나는 방식으로 자연히 합의가 되었다.
나는 먼저 삼도봉에 오니(05:10) 서울 산악회에서 온 여자 등산객15 여명이 쉬고있다
(노로목에서 직행).일정이 우리와 꼭 같아 산행을 같이 하면서 간식도 얻어먹었다.
三道峰(1550m)은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전라북도의 경계이다.
경상남도의 산청군·함양군·하동군 등 3개군과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의
구례군 5개 市郡, 그리고 15개 면의 행정단위로 지리산은 그 구역을 구분짓고 있다.
삼도봉에서 화개재까지 경사가 심한 곳마다
나무계단이 설치돼어있어 하산하는데 별로 힘이 들지않았다.
화개재에는 옛날과는 달리 생태계 보존을 위하여 나무로 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오랫만에 오니 지리산도 많이 변하였다.
한참을 기다리도 삼촌이 내려오지 않아 걱정이되어 삼도봉쪽으로 올라가니
절뚝거리면서 내려오신다.이거 야단났다. 종주는 아무래도 물건너간 것 같았다.
花開재는 천왕봉∼노고단의 지리산 주능선 가운데 해발고도(1360m)가 가장 낮다.
화개(花開)가 바라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동서(東西)로 각 2km의 거리에 있는 토끼봉과 삼도봉의 비슷한 높이의 두 봉우리 사이에 있다.
오후5시10분경에 화개재에 도착하였다.
반야낙조를 못본 대신 우리는 화개재에서 지리산의 저녁노을에 만취되여 시간가는줄 몰랐다.
화개재에서 200m 내려가면 80여 명 정도 수용 할 수 있는
아담한 뱀사골산장이 나온다.(18:30도착)
여기에서 우리는 부산서 같이온 아가씨들을 만났다.
당초계획은 연하천산장인데 아무래도 무리가 될것같아 노고단에서
연하천은 취소를하고 뱀사골산장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다는것이다.
역시 젊은이 답게 행동이 민첨하군!
그런데 여기서 달랑 작은배낭 하나면 짊어지고 와도 되는 이유를 알았다.
산장에서 모든것을 다 해결 할수 있다.5,000원(햇반3,000원 라면2,000원)이면
한끼 식사가 해결되고 커피나 술그리고 간식까지도 죄도 사먹을 수가 있었다.
결코 비싼 가격도 아니다. 정말 편리한 세상이다.
무거운 코펠. 바너等 장비와 음식물을 가지고 올필요가 없이 돈만 가지고 오면 된다.
나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다.
오늘저녁은 푸짐하게 준비하여 소주하고 먹으니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우리옆에는 독일 미스2명이 같이 식사를 하게되었다.
삼촌은 지도를 가지고와 그들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역시 외국인에 대한 호감은 대단하신 분이다.침랑을 포함하여 산장숙박료는 5,000원이다.
오늘이 월요일이 되서 자리도 많이 있어 편안하게 잠을 잘수가 있었다.
9월17일(둘째날)
어제 종일 산행을 했는데도, 지리산의 정기를 받아선지 허리통증은 거의없다.
아침은 연하천산장에서 먹기로 하고 6:50분경에 산장을 출발하였다.
지리산의 아침공기는 너무나도 깨끗하다.
토끼봉를 타는 기분은 그렇게 가벼울 수 가 없다.
화개재에서 토끼봉까지 2Km를 40분만에 올랐다,
대구에서 혼자오신 申社長은 먼저 올라와 사진촬영을 하고있다.
지리산 산행을 단독으로 하는분이 이외로 많다.
나도 내년봄 철쭉 필무릅에 혼자서 종주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토끼봉의 유래는 주변에 토끼가 많다거나 봉우리가 토끼모양이라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고,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쪽(正東) 방향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으로서,
토끼묘(卯), 모방(方)을 써서 토끼봉(卯峰,묘봉)의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삼촌이 올때까지 사진을 찍고 주위 경관을 감상할 수 가있었다.
뒤돌아보니, 반야봉과, 노고단이 훤히 보이고,
천왕봉, 세석평전, 명선봉으로 지리산의 연봉들의 위용도 일품이다.
역시 삼촌은 올라오시는데 힘들어 보이지만 너무 좋다고 감탄사를 연신 내뽑는다.
연하천에서 기다리겠다고 약속을 하고 8시10분에 나는 먼저 달리었다.
내체력이 너무 좋아진것 같아 나자신도 놀랐다.
사실 도전할때만 해도 많이 걱정을 했는데,지금의 몸상태는 최상이다.
토끼봉에서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구상나무 숲을 내려서면
갖가지 잡목숲을 지나 완만한 능선안부가 이어지다가 고사목이 쓰러져
나뒹구는 경사길을 오르게 되고, 그 뒤 평평한 능선길이
한동안 계속되다가 돌밭 길을 오르면, 총각샘에 이른다.
총각샘은 고갈되어 물 한방울이 없다.
명선봉에서 연하천산장 내림길은 상당히 가팔라 하산하는데 힘들었는데,
현재는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등산하기에 편리하게 하여 놓았다.
주목나무 군락지 보호를 위하여 계단주변에 울타리를
조성하는등 자연보호에 노력한 흔적이 있다.
연하천산장은 지리산 종주산행에 지친 등산객들의 정다운 쉼터 이다.
항상 옥류가 흐르고 울창한 원시림 사이로 감도는 운치는 최고이다.
물좋은 지리산 중에서도 가장 물이 좋고 차갑기도 으뜸이 되어
빨치산의 본거지가 된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제 오염이 되어 악취와 함께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파리떼 극성으로 실망이다.
나는 연하천에 9시10분에 도착하였다.한시간이 넘어도 삼촌이 오시지않는다.
아침밥을 준비할려고 해도 코펠이 삼촌배낭안에 있어 할수도 없고,
마냥 기다릴수가 없어 마중을 나섰다.명성봉밑 나무계단에서 만났다.
연하천 산장에서 햇반과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였다.
역시 부산 아가씨들은 산장에서 買食을 하고 먼저 떠나고,
뱀사골산장에서 만난 독일 아가씨들은 산장앞 태양이 내려쪼이는 곳에서
일광욕을 하면서(사람들은 모두 그늘을 찾는데) 지도를 열심히 보고있다.
비교적 완만하게 오르내리며 가는 등산로는 대부분 돌밭이다.
형제봉 정상 부근 아래에서는 10여분간 급경사를 오른다.
형제봉에서 한참을 내려가 다시 올라가 산허리를 돌아간다.
돌과 바위인 등산로가 너덜지대로 이어지는 길이 험하다.
형제봉에서 한참을 가니 벽소령대피소(12:30도착) 이다.
능선 안부에 새로이 건축된 벽소령대피소는 깨끗하고 규모가 크다.
여기서 부산아가씨들로 부터 과자와 빵을 얻어 먹으니 기분이 이상하다.
작은 배낭에 간식만 준비했는지?
독일 아가씨들도 많이 지쳐 보인다.
벽소령 대피소에서 배낭을 두고 또 삼촌 마중을 갔는데,기진맥진 상태이다.
마침 진통제를 준비 한것이 있어 한알 복용 하였드니
무릅에 통증도 덜하고 상태가 좋다고 하신다.벽소령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대피소에서 30m 아래에 있는 샘터에서 갈증을 풀고 수통에 물을 채운다
돌밭과 너덜지대를 1시간 걸어오느라 힘들었던 다리를 쉬게 해주는 것 같다.
선비샘 도착이 오후2시45분이다. 1986년8월8일 지리산를 종주하면서
선비샘(그당시는 옹달샘)을 보고는 너무나 실망을 하였다.
水量도 아주 적었고 물도 시원하지 않으며 옹달샘 돌담사이에 쥐를 보고 실망한적이 있었다,
주변도 정비가 되지 않아 "선비샘" 그 이름이 아까웠다고 외치는데
이제 샘터주변을 깨끗히 정비하여 널쩍하게 조성되였고,
고무호수에서 나오는 물이 풍부하면서 아주 시원하다.
삼촌은 오지않고,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시장하다.
삼도봉에서 만난 서울 산악회 아주머니들과 같이 동행을 하는데
38년생(66살)아주머니가 셋이나 있었다.
우리나라 有名한山은 거의 다 가보았고, 작년에는 설악산 용아장성을 등정했다고 자랑을 한다.
나도 85.5.25~27일에 수렴동계곡에서 용아장성을 타고 봉정암으로
내려온적이 있어 서로 대화가 되었다.
선비샘에서 아주머니들로부터 간식을 얻어 먹어, 허기는 면할 수가 있었다
돌밭과 너덜재대를 통과하며 30분을 가다가 나무계단을 밟아 올라가는데
경사도 가파르지만 그 길이도 만만찮아 올라가는데
무척 힘이 들었지만 나는 단숨에 올라서니, 전망이 시원한 봉우리에 닿는다.
지금까지 화창한 날씨가 점점 흐리지면서 안개가 온산을 덮는다.
삼촌은 진통제를 몇알 자시고는 위장장애를 일으키 몹씨 괴로워 하신다.
여기서 부터는 일기도 불순하고, 저녁무름이라 삼촌과 같이 산행을 하였다.
영신봉까지 겨우왔다, 세석대피소까지는 700 m로 비교적 완만하게 돌아내려간다.
세석평전이 눈앞에 펼쳐 지고, 세석대피소가 구름에 쌓여 보일 듯 말 듯 한다.
도착하였으니 장장 11시간20분이 소요되었다.
정말 악전고투끝에 죽을힘을 다하여 왔지만 내일이 걱정이다.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삼촌은 저녁식사도 마다 하신다.
난 취사장(舊산장)에서 라면을 끊여고 햇반을 떼워 술한잔을 할려고 하는데
아!뿔싸 술병이 없다. 뱀사골산장에서 술병을 두고 왔는 모양이다.
너무나 아쉬었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삼촌은 억지로 물에 말아 저녁을 조금 자시고 나니 기운이 나시는 모양이다.
식수는 대피소에서 50여m 내려가야 있다.설거지를 하고
산장으로 오는데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영롱한 빛을 발산하다가 어느순간에
구름이 몰려와 자취를 감춘다.아주 변화무쌍한 날씨이다.삼촌은 그래도 감동하신다.
지리산일대는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016은 통화가 될때도 있다고 대피소 직원이 말한다.
마침 나의 핸드폰이 016 이므로 몇번을 시도 하였으나 부산은 통화가 되지않고
진주 창규동생과는 어쩌다가 통화가 되었다.사람들은 다른회사한데, 욕을 퍼붇는다.
내일의 코스는 일단 자고나서 콘딕숀에 따라 결정하기로 하고
고된 하루의 산행을 마치었다.(숙박비는 담요2장포함하여 1인당 5,000원)
아직 갈길은 아득한데 삼촌의 건강과 날씨로 걱정이 태산이다.
삼촌은 어제보다는 좀 괜찮다고 하지만 퇴행성관절염으로 무리한 샨행인데 좋아질 수가 없지요?
독일 아가씨들은 거림으로 빠지고 부산아가씨들은
젊은 청년들과 어울려서 먼저 천왕봉으로 떠난다.
우리는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일단은 천왕봉까지 가서 하산코스를 결정 하기로 했다.
세석을 오전8시35분에 떠나 오름길로 들어선다.
계단을 따라 오르니 우뚝 솟은 몇 개의 바위가 있는 촛대봉이 나온다.
세석대피소에서 촛대봉까지 700m, 촛대봉을 오른 뒤 다시 내려가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를 내려 왔는지 다시 또 오르막 길이다.
계속 오르다 보니 바위들이 우뚝우뚝 솟은 연화봉이다.
연화봉에서 장터목대피소까지는 800m,로 거의 평탄길이다.
장터목산장에 오전9시10분에 도착하였다 장터목산장은 옛날것은 그데로 두고
최근에 현대식산장을 신축하여 거의 호텔수준이다
화장실에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전부 좌변기가 설치 되어있다.
고속도로 휴계소 화장실 수준이다.(세석산장은 대변기중 하나만 좌변기)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도 이제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8월 중국배낭여행시 장백폭포의 공중화장실 생각만 해도 속이 매스껍다.
장터목은 해발 1,750m로 옛날 천왕봉 남쪽 기슭의 하동주민과
북쪽의 함양 마천주민이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한 장터가 섰다고 한다.
등짐을 지고 올랐던 사람들에게는 그 거리가 더욱 멀고 힘이 들었을 것이다
장터목일대는 운무에 쌓여 주위경관은 아예 볼 수가없다.
산장 매점에서 간식(5,800원)을 구입하고 천왕봉을 향하였다.
포항에서 왔다는 40대 초반되는 2분과 우리는 세석에서 같이 출발하여 장터목 까지 동행하였다. 그들도 오늘 저녁에 치밭목산장에서 잘 계획이라고 한다.
나는 사실 치밭목산장에 민병태가 있지만 그곳은 예약도 되지않고,
전화(핸드폰)가 되지않아 ,잠자리 걱정을 아니할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것이 포항팀이 먼저 치밭목산장에 도착하면 민병태 山隊長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자리2개를 마련해달라고 부탁을하였다.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 오르는 길엔 고사목으로 유명한 제석봉을 지나게 되는데
짙은 비구름으로 아무것도 볼수 없어 아쉬움만 지니고 제석봉을 스쳐지난다.
제석봉이 고사목으로 유명하다 도벌군들이 증거를 인멸하기위하여
불을 질렀다고 하니 참으로 가슴 아픈일이다. .
나는 먼저 통천문에 와서 삼촌을 기디리고 있다. 하늘을 오르는 문"이다.
천연 암굴로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고는 지날 수 없다.
예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출입을 못한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지금은 철제사다리를 놓아 등반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삼촌이 한참 만에야 올라오신는데 피로의 기색이 역역하다.
그래도 올라 올때가 무릅통증이 덜 받는다고 하신다.
천왕봉에 도착이 12시30분이다. 비가 금방 쏟아질것 같다.
나는 1984년6월2일 천왕봉 日出을 보기위하여 천왕봉 북벽바위 틈새에서 벼박을 하고
다음날 천왕봉에서 동쪽 엷은 구름속에서 불덩어리가 솟아오르는 황홀함을
보았기에 더이상 욕심을 내지 않아도 된다
지리영봉의 장엄함을 찬탄했고 노산 이은상선생은
"보라, 나는 지금 천왕봉 머리에 올랐노라. 구름과 안개를 모조리 다 헤치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 되어 하늘 위에 올랐노라.
삼촌은 그런 몸을 가지고도 대원사쪽으로 下山 하자고 하신다. 정말 대단한 集念이시다.
천왕봉에서 대원사 표지판을 따라 한참을 안부까지
내려가다 올라가니 30여분만에 중봉에 이르렀다. 비가 내린다.
배낭카바를 씌우고 우비를 걸친 후 치밭목 산장쪽으로 내려섰다.
중봉에서 써래봉으로 가는 길은 지리산 여러 능선중
가장 바위가 많은 길이며 전망도 좋은 길이다.
그러나 비로 인하여 전망을 볼수도 없으며 오직 종주를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내려왔다.
삼촌은 배낭카바도 안쒸우고 그냥 비를 흠뻑 맞는다.
비옷을 입어세요 해도 괜찮다고 하신다.그고집 누구 꺽으려!
나는 중봉에서 부터는 삼촌과 산행의 보조를 같이 하면서 내려온다.
비도 내려고, 이코스는 등산인이 거의 없어 길을 잃을 염려와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삼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치밭목산장에 오후4시10분에 도착 소낙기 한줄기 퍼붇는다.
나는 관리인 민병태를 한번도 만난적이 없으나,자기형 의웅이하고
국화빵이라 금방 알아볼수가 있었다.
비가 내려 밖에 못나가고 좁은 산장안에서 취사한다고 다들 분주하다.
병태는 먼저온 포항팀이 이야기를 해서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기대만큼 친절하게 대해 주지 않아 서운했다.....
그 후에 안 일이지만 천성이 그런사람이라고 한다.
삼촌은 어제부터 제데로 먹지 못해 체력이 많이 소모되여 허기가 요동하는 모양이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맞아 온몸이 땀과물로 번복이니 그 고통이 오죽 하시겠나?
우리가 준비한 라면과 햇반은 이미 바닥이 났고,
이산장에서는 설상가상으로 햇반을 팔지 않는다.
평소에 여유있는 삼촌이 당황하시는 모습이 역역하다.
"누구 쌀좀 없소" 반응이 없다. 조금후에 병태가 저녁은 우리하고 같이 먹읍시다.
하는 말에 나는 너무 고마웠다. 배는 고파 오는데 한참을 기다리도 소식이 없다.
이옥코 병태를 보조하는 젊은이가 식사하려 방에 들어가자고 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 에다가 반찬도 여러가지 준비 되여있다.
펙소주와 함께 식사를 하였다.소주3병을 마시고 나니 그나하게 취한다.
그기다가 원두커피까지 얻어먹었다. 동규.창규동생 덕분으로 우리는 VIP 대접을 받았다.
병태는 국립공원관리와 생태계 보존등 자기의 철학를 피력하면서,고충을 토로한다.
수많은 사람을 對하는지라,다들 만족하게 해줄가 없다는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바닥에 까는 따뜻한 메트리스까지 제공하여 우리는 편안하게 잠자리를 할수 있었다.
9월19일(넷째날)
오늘은 마지막날로 시간여유가 있어 늦게까지 자리에 누워있다가 산장밖으로 나오니,
날씨는 화창하게 개여 깨끗한 동쪽하늘에서 붉은 해가 솟아오르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해발 1,450m의 치밭목산장은 원시수림(原始樹林)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지리산에서
가장 잘 보존된 지역중 한 곳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어제저녁을 잘먹었기에 아침을 먹지않고 7시35분에 산장을 떠나오면서
약간의 사례금을 주니 한사코 거절하여 보조하는 분에게 억지로 주고 내려막길로 들어섰다.
한결 발걸음이 가볍다. 역시 삼촌은 자기 페이스 데로 천천히
내려오시라고 하고 산죽 사이로 이어진 내리막 돌길 등산로를 내려오니
급사면에 철계단이 설치 되어있고 있다. 계단을 내려서니 이정표가 보인다.
(표고1,000m,천왕봉5.1km,치밭목대피소1.1km,무제치기폭포0.1km,대원사6.6km...)
무제치기폭포는 계곡으로 100m를 더 내려가야 한다.
배낭을 이정표앞에 두고 계곡으로 내려서니 왼편으로 수량은 적으나
높이 60~70m 정도의 3~4단 바위로 이루어진 무제치기폭포가 나온다.
폭포밑에서 위로 쳐다보니 위에서 폭포를 볼수있는
큰바위는 계단위에 있는데 이미 통과하였음을 알았다.
난 삼촌에게 무지치기폭포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그곳은 "위험! 출입금지"란 표시판를 로프에다가 달아 놓았기에 그냥 지나가기 십상이다.
그때까지도 삼촌은 오지않아 기다리다가 삼촌에게 안내를 하고 사진을 찍고 하산한다.
삼촌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탄성을 지르신다.
갈림길에서 어제 포항팀중 한사람이 써리봉에서 내려오면서
썩은 나무가지를 잡아 부러지는 바람에 손목뼈에 금이가 어제밤 산장에서
내옆에 누워 신음하는 소리를 듣었다.
진통제를 들릴까요? 자기도 있으면서 몸에 좋지않을 것같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삼촌은 계속 진통제를 복용하고 왔는데....
사실 나는 이곳에서 새재쪽과 유평으로 내려간적이 있기에 내가 생각하기에는
유평쪽은 지루하지만 환자가 가기는 오이려 새재보다 수월하고
유평마을에서 택시 타는데도 편리할것 같다고 은근히 권하면서 결정은 본인이 하시요.
그들은 망설이다가,유평쪽을 선택하여 내려간다.
물론 우리도 유평쪽 으로 내려오눈데 내가 생각 한것보다 훨씬 難 코스이다.
줄곧 환자가 걱정 이된다.
그래도 이코스는 고주넉해 호젓한 산행을 즐길수 있는 코스이다.
유평리 밤길마을에 오전11시15분에 도착하여 식당을 정해놓고
대원사 계곡에서 목욕을 하면서 종주에 쌓인 피로를 씻었다.
땀과 비에 흠뻑젓은 옷을 갈아입고 식당에 돌아와 한참을 기다리도 삼촌은 오시지 않는다.
걱정이 되어 다시 마중을 나섰다. 이윽코 체력이 떨어지고 지쳐 힘이 들어 스틱에 의존하여 12사30분경에 내려오시는 삼촌을 보고 박수를 보내었다.
정말 대단한 정신력으로 지리산 완전종주를 해내었다
우리는 식당에서 파적과 막걸이를 한잔하면서 3박4일의 피로를 풀면서
아침겸점심을 먹고서는 덕산까지 택시(14,000원)를 대절하여 내려와
삼촌은 바로 부산으로 가시고 나는 매미태풍으로 넘어진
농장의 감나무를 세워는 작업을 내일 해야함으로 덕산 처남댁 으로 向 하였다.
★종주를 마치고
지리산 종주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줄 알았는데 아직 나의 체력으로
종주를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 내년봄 철쭉 필 무릅에 단독 종주를 결심했다.
지리산 마지막 종주산행을 15년전인 88.1.30~2.2(3박4일)에 하였을때는
산장의시설은 너무나 빈약하였는데 지금은 호텔수준이고,
그당시에는 등산로 위험한곳에 안전시설이 거의 전무하였는데
이제 곳곳에 나무계단과 철다리 그리고 로프를 설치해놓아
지금은 옛날에 비하면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산행이다.
특히 겨울종주를 할려고 하면 배낭의 무게는 만만치않다.
무려 40kg정도가 된다. 지금은 성능이 좋은 장비가 많았지만
그때는 알콜로 예열하는 석유바너. 코펠.침랑 의류.식료품등 오죽 짐이 많았나?
이제 산장에서 다 해결 할수 있으니 부산의 아가씨처럼 달랑 옷가지만 준비하면 된다.
세상 참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