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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꽃도 때로는 미치고 싶다.
나오는 사람
경석-특목고 2학년
한무-특목고 2학년
예록-특목고 2학년
현정-고 3학년
종석-초 6학년
여학생 3명-가나다로 분장,가면쓰고 등장 준비
아버지-경석이 삼남매의 부
어머니-경석의 모
택배아저씨1.2.3
때-현대
무대-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이 공부하러 오는 논술학원이다. 교실을 들어서면 정면에 칠판이 있고 중앙에는 길게 둘러앉아 서로 토론 할 수 있는 원탁 테이블이 있다.
제 1 장
수업을 시작하기 전이다. 이 학원의 특성인 고사성어(故事成語)를 아이들이 천자문을 외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차례대로 암송한다.
경석-甘呑苦吐(감탄고토)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한무-見金如石(견금여석)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예록-見蚊拔劍(견문발검)모기 보고 칼 뽑기.
현정-鯨戰蝦死(경전하사)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종석-鷄口牛後(계구우후)소의 꼬리보다 닭의 입이 되라.
경석-囊中取物(낭중취물)식은 죽 먹기.
한무-堂狗風月(당구풍월)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
예록-燈下不明(등하불명)등잔 밑이 어둡다.
현정-晩食當肉(만식당육)시장이 반찬이다.
종석-亡羊補牢(망양보뢰)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경석-吾鼻三尺(오비삼척)내 코가 석 자다.
한무-烏飛梨落(오비이락)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예록-覆水不收(복수불수)한 번 엎지른 물을 어찌 주워 담으랴.
현정-上濁下不淨(상탁하불정)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종석-西瓜皮脂(서과피지)수박 겉핥기.
경석-識字憂患(식자우환)아는 것이 병이다.
한무-於異阿異(어이아이)어 다르고 아 다르다.
예록-言中有骨(언중유골)말 속에 뼈가 있다.
현정-猫項懸鈴(묘항현령)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종석-泣兒授乳(읍아수유)울지 않는 아이 젖 주랴.
경석-魚混全川(일어혼전천)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개천을 흐려 놓는다.
한무-積小成大(적소성대)티끌 모아 태산.
예록-前程九萬里(전정구만리)앞길이 구만리다.
현정-鳥足之血(조족지혈)새 발의 피.
종석-追友江南(추우강남)친구 따라 강남 간다.
경석-漢江投石(한강투석)한강에 돌 던지기.
한무-牛耳讀經(우이독경)소 귀에 경 읽기.
예록-畵中之餠(화중지병)그림의 떡.
현정-難上之木 不可仰(난상지목 불가앙)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
종석-待曉月 坐黃昏(대효월 좌황혼)우물에 가 숭늉 찾는다.
잠시 후 선생님등장, 손에는 교재를 들었다. 학생들, 외우던 고사성어를 멈추고 자세를 바로 한다.
경석-아! 피곤하다.(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선생님-고단하지?
경석-(그것도 말이라고 하십니까? 하는 표정으로) 항상 그렇죠 뭐.
선생님-(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비타민 C 없어.
학생들-(합창하듯) 허어크 낡스알 !
경석-선생님, 오늘은 저에게는 좀 뜻 깊은 날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어머 니 양수물 타고 이 세상에 나온 날이기도 하고요. 또 비로소 성년이 되는 날 이기도 하거든요.
현정-놀고 자빠졌네, 임마, 범생아,! 수제비 물에 뜨는 소리 말고 공부나 해.
경석-누나, 고3이면 오비삼척(吾鼻三尺-내 코가 석자다.)이라, 자기 앞가림 자 기가 다 하는 것인데, 고작 1년 그것도 유학이랍시고 어쨌거나 넓은 미국 물 을 먹고 왔으면 조금 겸손해 질 수 없어,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되는 게.
현정-이놈 봐라, 임마 우리 집에서 내 역할이 엄마의 역할 분담인거 몰라. 공무원 인 아버지 월급 쪼개 가지고 너, 나, 막내인 종석이 삼남매 뒷바라지 하며 강남 1번지에서 하루 종일 동분서주(東奔西走)하시는 엄마를 생각해봐 이 새꺄. 안됐지만 우리가 엄마 아빠에게 효도하는 길은 오직 공부밖에 없어.
경석-제발, 참견하지 마, 엄마의 꼭두각시 역할 지겹지도 않냐? 큰물에서 놀 다온 누나까지 왜 이래(비참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숨 좀 쉬고 살게 내 버려 둘 수 없어
현정-너 일분일초라도 방심하면 우리 집이 어떻게 절단 나는지 알지? 너는 엄마 아 빠의 희망이자 절망이야, 네가 일류대학에 진학 못하면 그게 어디 너 혼자만 의 문제인줄 알아, 오경석 명심해, 앞으로 너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년이야.
경석-누가 그걸 모른데.
현정-그러니까, 이 자식아, 지금까지 잘 버텨온 것처럼 범생이면 범생이 답게 굴어, 깝죽대지 말고. 생일은 그렇다 치고, 또 성년의 날은 무슨 얼어죽을 성년이야.
경석-야! 누나야 ,너 내 누나 맞아, 자기 동생이 지금 몇 살인지도 모르고.
현정-얘 좀 봐, 오늘 성년이 되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봐, 책에 없는 철인 눈깔 을 하고 몽타주에 심줄까지 돋우면서 누나에게 평소 안하던 버릇을 다 하고. 경석-난 암만혀도 일류대학 의대에는 자신이 없단 말이야!
현정-허허 갈수록 첩첩산중(疊疊山中)이라더니!
그러니까 더욱더 오로지 일편단심(一片丹心) 공부만 전념해야지, 몽룡이 오빠 가 춘향이 언니를 비롯하여 허구헌 몸짱들을 뿌리치고 일로매진 주경야독(晝 耕夜讀) 하야 암행선상이 됨으로서 결국은 춘향이 언니를 구원했듯이 꿈 야그 는 나중에 하고 지금은 그저 우리부모 맘고생을 보상해줄 그 은혜 갚을 방도 로 아무 내색말고 공부만 디지도록 씩씩하게 엄청 해주드라고 잉, 그러고 그 원풀이는 일년 후 대학에 붙고 나서 확 풀어버리드라고 잉.
경석-나도 누나처럼 미끄럽게 미국으로 들랑날랑 교환학생이나 갔다 왔으면 좋겠 네.
현정-(깜짝 놀라며)뭐, 뭐라고 너 지금 뭐라고 그랬니?
경석-그깐놈의 대학 안감 어때! 앉으나 서나 머리에 쥐가 날라고 하고, 어떤 때는 뇌가 바짝 마른 라면처럼 오그라든다니까.
현정-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나라 최고의 특목고 그것도 전교 회장님의 입에서!......
경석-아무렴 어때, 자꾸만 이게 아닌데, 이게 사람 사는 게 아닌데라는 소리가 들리 는 걸, 나도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순간순간 팍 뒤집히는 때가 있단 말 이야
현정-(하얗게 질려서 정신을 못 차리다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어린애 달래듯이)
유치원 때부터 너는 천재라고 했데. 지금까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 (異口同聲)으로 영재교육을 시켜야 된다고 했지만, 엄마는 본인이 평범하니까, 너를 보통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 했다더구나!
그런데 너와 나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부터 엄마는 자기의 인생 전부를 자 식들의 미래에다가 걸었다고 했어. 어찌된 영문인지 그때부터 우리는 선생님 들에게 총애를 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공부도 줄곧 일등만 하다 보니 자 연스럽게 엄마도 학부모 임원회를 총괄하는 입장이 되었다고 안 하냐,
다행인지 불행인지 너와 이 누나는 줄곧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면서 이제는 우 리집안의 절대적인 기대와 희망이라는 책무를 떠안게 되고 말았으니 어쨌거나 엄마 아빠의 뒷바라지로 오늘이 있게 된 것 아니냐. 그런데 뭐가 어쩌고 어째, 대학 안가면 안 되냐고!
엄마가 병원 신세를 져야 정신을 차릴래.
경석-엄마는 아직도 나를 어린애 취급 한단 말이야, 대견하다느니 어른스럽다 느니 하면서 무조건 엄마 마음에 들게만 행동해야 한다는 것 다 귀찮아죽겠단 말 이야.
현정-호강에 코푸는 소리 말고 공부나 해, 이 자식아!,
경석-나는 사춘기도 없는 줄 알아?
나는 남자도 아닌 줄 알아?
나도 머리도 있고, 가슴도 있고, 울고 싶을 때도 있고, 웃고 싶을 때도 있다고, 좋다는 말 싫다는 말도 할줄 안다고, 누나까지도 항상 나를 어린아이 취급만 하고 있잖아!
현정-아니 얘가, 보자보자 하니까! 내가 언제 너를 아이취급 했다는 거니?.
경석-(절규하다시피하며)나는 나 자신을 억제하기가 힘들어, 나는 공부만 아는 바보 천치가 아닌 진짜 사람으로 살고 싶단 말이야, 나도 사람이란 말이야, 무엇이 든지 예, 예 ,만 하는 싫어도 좋은 척, 힘들어도 웃어주고, 참고 견디기만 하는 시계 속 뻐꾸기 같은 존재가 아니란 말이야!
현정-(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듣기 싫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지금 여기가 어디라 고 눈치코치 없이 야단이야, 너와 나만 있는 곳이니? 창피하게 똥인지 된장인 지 가리지도 못하는 주제에.
경석-피장파장 아니야, 그렇게 따지는 누나는. 누나라고 매번 봐주니까,
현정-시끄러!, 말하지 않기다. 응-
제 2 장
같은 장소. 무대가 밝아지면서. 형제간에 언성이 높아지고 교실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잠시 지켜만 보고 계셨든 선생님이 마른기침을 하며 이제 그 정도면 되었다는 신호를 하신다.,
선생님-우애가 돈독하구나! 부럽다. 형제간에 관심이 많구나. 오늘이 가기 전에는 끝이 안 날줄 알았는데 선생님의 수업시간에 체면이 서게 해 주어서 고맙구 나!
현정-선생님 죄송해요. 본의 아니게 수업시간을 방해 했네요. 화나셨군요.
선생님-아니다. 지금은 논술시간이야, 선생님도 너희들의 대화를 듣고 공부가 많이 되었어.
경석-(범생답게) 죄송합니다.
선생님-그래 이제 됐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의 토론 주제는 청소년의 자살이다. 그 것도 특목고 학생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니 그나마 너희들에게는 남의 일 같지가 않겠지? 현정이는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둔 고 3이고, 경석, 한무는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공부를 많이 시킨다고 알려져 있는 특목고의 전교 회장 부회장이고, 또한 예록이는 세계 문물을 수년간 접하고 돌아온 특목고 재원 이고, 훈준이는 우리나라 최고 기업이 경영하는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고, 태 호는 곧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나갈 예정이고, 얼마 안 있으면 중학생이 되는 우리 종석이도 곧 외국으로 나가 여러 해 익혀온 특기를 살려서 골프 학교를 다닐 예정이라고 했지? 어쨌든 오늘의 주제는 청소년의 자살이지만, 서술형 논술의 여러 영역 중에서 이번에는 말하기로 하겠다.(이때 쉬는 시간 벨 소리 가 크게 울린다. 이렇게 많은 관객이 많이 참여 하셨는데 읽고, 쓰고, 듣고, 할 시간이 어디 있겠느냐)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다음 시간에 또 봐요.(학생들 차렷 자세로 가 볍게 목례를 한다,)
(효과- )
제 3 장
한무-(선생님을 대신하여)성취 기준은 유추를 통해 참신한 내용을 생성하도록 해라.
경석-(선생님을 대신하여)평가 기준은 유추를 통해 참신한 내용을 생성하되 구체적 인 말하기 상황을 활용해라.
현정-(선생님을 대신하여)채점 기준은
첫째 ㉮(가의 글자를 가면으로 쓰고 등장한다.)
㉯(나의 글자를 가면으로 쓰고 등장한다.)
㉰(다의 글자를 가면으로 쓰고 등장 한다.)
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 자신의 경험과 주위를 돌아보고 바람직한 결론을 이 끌어내도록 한다.
둘째 ㉮㉯㉰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 자신의 경험과 주위는 돌아보았으나 결론 은 이끌어 내지 못했다.
셋째 ㉮와 ㉯와 ㉰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 자신의 경험과 주위를 돌아보고 결 론에 도달하는 내용이 적절하지 못했다.
경석-(선생님을 대신하여) 유의 사항은 ㉮,㉯,㉰의 셋째 문항을 참고 자료로 하여 나와 주위를 돌아보고 참신한 내용을 생성했는가 묻는 문제이다. 나의 경험 에 비추어 초점(카메라 폰을 들고 나와 관객 중에 가장 마음에 든 사람을 골 라 사진을 찍는다.)에 맞추어라.
선생님-그러면 지금부터 ㉮㉯㉰를 본인이 직접 소개하겠다.
(선생님 퇴장하고, 얼굴에 가면을 쓴 ㉮㉯㉰가 한꺼번에 등장하여 차례대로 선다. ㉮㉯㉰의 순서대로 무대를 한바퀴 돈후 또 한바퀴 돈다.)
㉮-청소년들이 병들고 있다.
(얼굴에 ㉮라고 써서 만든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손에든 두루마리 프랭카드를 펼쳐 보인다.)
㉯-대학입시에 절망하는 엄마들
(얼굴에 ㉯라고 써서 만든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이윽고 손에는 두루마리 프랭 카드를 펼쳐 보인다.)
㉰-특목고 살인경쟁 내몰린다.
(얼굴에 ㉯라고 쓴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손에는 두루마리 프랭카드를 펼쳐 보 인다.)
(셋이 차례로 무대를 돈 다음 ㉮㉯㉰의 순서대로 줄을 맞추어 선다.)
㉮-(무대 중앙으로 나온다.) 청소년들이 병들고 있습니다.
재능이 특출 난 학생들에게 개인능력에 맞는 ‘학습기회 부여’라는 취지에서 도입된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에 한해 시행된 조기졸업제의 변질이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고 재학생 및 학교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조기 졸업제 필요성은 학생들도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우수학생의 학습능력을 개발한다는 긍정적 효과보다는 최근 들어 ‘대학 조기진학’이라는 한 방편으로 변질돼 가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 00 과학고 3학년은 138명중 112명이 조기 졸업했으며 서울 00과학고 3학년은 135명중 103명이 조기 졸업했습니다. 경기 지역 과학고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학생 50~70%가 조기졸업하고 있으며 그 수는 해마다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과학고에 몸담고 있는 한 현직교사마저도 “차라리 조기졸업제도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고 토로할 지경입니다. 서울 특목고의 한 학생은 “이제는 아예 2학년이 정상졸업이고, 3학년은 후기 졸업으로 인식되고 있어요. 그러니 3학년 진학하는 것이 마치 경쟁에서 밀린 것처럼 비춰지고, 일부 학생들은 사람까지 피하는 등 심리적 압박감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고 토로합니다.
㉯-(무대중앙으로 나와서 대학입시에 절망하는 엄마들)
“안타깝데이. 너무 안타안타깝데이. 일반 고등학교로 전학하면 전교 1등 할 수 있는 얼라였는기라.”
“하나뿐인 자슥이 ‘엄마! 맘 편히 사세요!’란 쪽지를 남기고 자살했는디, 에미가 그 자슥을 앞서 보내놓고 워떻코롬 맴 편히 살 수 있것써라 잉. 아그들이 너 무 허약혀서 참말로 걱정이랑게”
“남의 일이 아닌게비어. 바로 내가 지금 우리 애에게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아 닌지 걱정이네.”
서울 00고 총 학생회장 이모(18)군의 성적비관 자살 보도가 나간 12일 저녁, 아 내가 들려준 ‘이웃 엄마’들과의 대화 내용입니다. 자녀의 특목고 진학을 학수고 대하는 엄마들에겐 충격이었고,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날 아침엔 사회부 데스크로 한 엄마가 전화를 해왔습니다. 고교생 아들을 두었다는 이 엄 마는 “183㎝의 키에, 얼짱에, 기타 연주에, 과학고 총 학생회장에, 갖출 것 다 갖 춘 팔방미인(八方美人)이 자살을 택하도록 한 게 뭔지, 성적이 뭔지…”라면서 전 화선 너머로 흐느껴 울었습니다.
신문사 사회부는 이달 들어 ‘교육 문제’에 대한 엄마들의 호소가 부쩍 늘었습니 다. 전국의 엄마들이 ‘교육 열병(熱病)’을 앓고 있습니다. 그중 으뜸은 2008학년 도부터 시작하는 새 대학입시 제도에 따른 내신(內申)성적문제입니다. 현 고교 1 년생부터 적용하는 학교 성적의 대학입시 반영은 학생들에게 모든 과목을 다 잘 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엄마들은 새로 바뀐 내신 제도를 ‘공부’하느라 지금 여념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진저리치는 어느 엄마의 이메일엔 가슴앓이가 그대로 묻어있습니다.
“정말 부모는 등골이 휩니다. 잠든 아이의 얼굴은 아직 못다한 숙제떄문에 얼굴 이 잔뜩 찌푸려져 있습니다. 수행평가 떄문에 컴퓨터, 음악·미술·체육 등 예체 능도 신경을 써야 한다네요. (남편) 월급은 그대로인데… 그나마 하고 있는 영어·수학 과외비 딱 맞추어 놓았는데… 어떡합니까? 이 교육현실을… 정말 이 나라를 떠나고 싶네요.
㉰-(중앙무대로 나온다.)특목고 살인경쟁 내몰린다.
무한경쟁으로만 내몰린 우리 교육의 처절하고 슬픈 자화상이 특목고 교정을 뒤 덮고 있습니다.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기 위한 특목고 입학 경쟁이 학생들을 사지(死地)로 내몰고 있습니다. 10일 오전 2시께 서울과학고 3년생 L모 군이 자신이 살던 서 울 노원구 한 아파트에서 투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경찰은 L군이 자신의 공책 뒷면에
`엄마! 맘 편히 사세요.`
라는 짤막한 유서를 남긴 점, "최근 학업성적 부진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는 가족, 친구들의 진술로 미뤄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청소년들이 병들고 있다. ㉯ 대학 입시에 절망하는 엄마들 ㉰ 특목고 살인경쟁 내몰린다. 프랑카드를 들고 무대를 두 바퀴 돈 후에 퇴장한다. )
제 4 장
한무-(따뚯한 관심만이 모두가 살길이라고 쓴 머리띠를 두르고)
‘어디 세상 무서워서 살겠나…….’
저는 00외국어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학생 간부로 남의 일 같지가 않 습니다. 경쟁에서 이겨야 된다는 중압감, 주위 사람들의 기대와 시선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인생을 더욱 강한 자신으로 살아가야 합 니다. 포기하면 안됩니다. 지금까지 애써 살아왔던 나와 주위사람들과의 관계 를 한순간의 죽음에 맡길 수가 없습니다. 억울해서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학 생으로서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든 이겨내는데 지혜를 모와 봐야 합니다.
훈준-(교육 강대국으로라고 쓴 머리띠를 두르고)
미래의 사회인으로서 자질 향상이라든가 개발보다는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 기, 수학 문제 하나 더 푸는 것으로 우열가리기가 불러일으킨 교육환경은 앞 으로도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서 빨리 교 우 관계 공동체 생활을 통한 이성적 교육 가치관이 자리 잡혀 건실한 학교 생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석-(인제양성체제로의 전환이라는 머리띠를 두르고)
어휴... 어휴.....
새벽 5시 50분에 눈을 뜨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도 모를 한숨이 새어 나옵니다. 아침 점호를 받으러 나가기 전 아직도 캄캄하기 만한 하늘을 올려 다 보면 감옥 같은 기숙사의 창 밖으로 마치 나처럼 허리가 휜 초승달이 가슴 을 시리게 합니다. 나는 대한민국의 특목고 학생입니다. 내가 하루를 어떻게 사는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가?
오직'공부'
이 두 글자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고등학교 2학년인 지금까지 나의 목을 옥죄면서 따라다닌 나의 수식어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0교시 특강 후 1교시부터 7교시 수업을 끝마친 후 2시간 특강의 연속. 그 이후 3시간의 자습시간.' 이것이 나의 하루 일과입니다. 아침부터 공부만 하는 나에게는 10 분의 쉬는 시간이 꿀맛 같습니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려고 줄을 섰을 때도 수시로 급습하는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영어 단어 책을 들고 암기를 합니다. 식사 후 옆자리에서 친구가 공부를 하고 있으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 도 모른 사이 책에다가 눈을 고정시킵니다.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감 때문입니다. 특강시간에는 ’주위에 있는 아이들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얻 어 가면 손해라는 생각에 온 신경을 강의시간에 매달립니다. 마지막으로 자 습을 하다보면 이제 어서 빨리 침대에 눕고 싶다는 마음만 간절해집니다.
한무-각종 신문에 난 기사들을 보고
“요즘 애들은 너무 나약해졌어.”
하며 혀를 차는 어른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들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우리 학교는 전국에서 공 부를 가장 많이 하는 학교로 손꼽습니다. 새벽 5:50부터 밤 11:30 혹은 새벽 1시까지 공부를 합니다. 이런 생활 속에서 내 정신이 무디어졌는지 비교적 잘 버티고 있는 편입니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여러 가지를 경험 하면서 내 마음을 스스로 다져왔습니다. 이겨내야 한다. 살아야한다고 말입니다.
훈준- 어느 한 사람을 볼 때, 성적으로만 그 사람을 따지는 등 다른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결국 재능을 찾아주어야 하는 학교에서 이미 그 재능 을 감출 수밖에 없습니다.
경석-가끔 내 생활을 돌아다보면 그렇기 한심할 수가 없습니다. 친구에게 경쟁심이 나 갖고 몇 분이 아까워 도서관으로 뛰어가는 자신이 초라하고 부끄럽습니다. 언제부터 내가 성적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 고 있는지 잔뜩 주눅이 들어 어깨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 버렸 습니다. 스스로
‘공부는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나는 청소년기를 좀더 가치 있게 보내겠다. 공 부에만 찌들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처럼 살진 않겠다. 나는 다르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특목고의 저주에 중독되어 어느새 성적걱정을 하고 있습니 다. 나의 이중적인 마인드에 수치심 느껴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나는 지금 내 자신에게 당당하지 못합니다.
요즈음
‘아! 그 애들은 결국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후회 없는 선택을 했구나!. 맞아 나도 너처럼 자살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어. 잘 가라 친구야!’
라고 독백을 할 뿐,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도 의지도 없습니다. 괴롭고 답답할 뿐입니다.
훈준-서울 안에 있는 대학이 아니면 취업이 안 된다는 사람들의 인식과 압박으로 학생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현실을 벗어나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한창 자유롭게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습의 재미를 알아가는 초등학생 부터 강도 높은 학습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늦게까지 공부하다 학교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학생들을 보면 이건 교육이 아니고 살인 경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바 라며 어떤 기대를 걸고 있는가? 청소년다움, 청소년에 거는 바램이 왜 이렇게 왜곡된 것인가, 기성세대들의 가치관은 어떤 것인가.
경석-나 역시도 전교 회장이라는, 그것도 신설 외국어 고등학교 제1회 회장이라는 직책에 사로잡혀서 그 중압감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성적도 남보다 월등해 야 했습니다. 잠을 줄여가면서 동분서주(東奔西走)해도 부족한 것 뿐이었습니 다. 내가 나를 못 견뎌 할 때에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가 기울여지 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어?‘
라고 마음속으로 셀 수도 없이 다짐을 했습니다. 모처럼 기숙사에서 나와 집 으로 올 때는 뒷산으로 올라가서 고함을 질렀습니다. 절규였습니다. 현재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생각을 거듭 해 보았습니다. 주위가 떠올랐습니다. 나의 가장 따뜻한 안식처 어머니를 생 각하면서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현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길이었습 니다.
한무-이 사건의 초점에 맞추어 내가 힘들었던 때를 떠올려 보면, 1학년 2학기 때였 습니다. 여름방학동안 거의 24시간을 공부하는데 투자를 하고나니 사는 것 같 지가 않았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에 파묻혀 비몽사몽(非夢似夢) 했습니 다. 그러다가 ‘공부기술’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은 한국인 유학생이 공부 기술에 대해 쓴 책이었습니다. 공부에 찌들지 말고 공부하는 기술을 터득하라 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미국에서 두 개의 명문대를 동시에 다니고 틈만 나 면 미술관을 가는 등, 문화, 여가생활을 최대한 즐긴다고 했습니다. 책을 통해 그의 삶을 간접 경험 하면서 ‘지금 나는 무얼 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니 나는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틀에 맞춰진 생활을 하면서 나의 인생을 살 지 않았습니다. 교우관계는 좋았지만 그들에게 나는 진실로 대하지 않았습니 다. 때와 장소에 따라 적당하게 비위를 맞추어줄 뿐이었습니다. 진정한 나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이런 내가 싫었습니다. 부모님, 동생, 친척들, 학교 친구 들, 선생님들과 스스럼없이 대하던 내가 특목고에 들어오고부터 나의 이름 석 자로 삶을 사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경석-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나는 우리나라 엘리트 교육이 변화되기를 바라고 있습 니다. 이 사회에서 지식인들이라고 해 보았자 결국은 입시경쟁에서 살아 남 으려고 나처럼 오로지 한 우물만 파온 어리석고 고지식한 사람들이 아니겠습 니까? 앞서간 성인들은 청소년기를 인생의 황금기라고 누누이 말해주고 있습 니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인생의 황금기란 평범한 진리일 것입니다. 21세기 는 지구촌시대입니다. 교육을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 떻게 볼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틀 속에다가 인생의 황금기를 가두 어 놓고 어떻게 세계를 주도해 나갈 리더가 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경석-서울 한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말 그대로 나는 촌놈입니다. 집에서 30분 거리 인 서울 역 한번 가본 적이 없습니다. 법원이나 검찰청, 63빌딩, 하물며 집 근처인 양재 숲에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옷을 사 입으러 압구정 동대문, 이 태원 로데오거리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오직 집과 학교뿐입니다. 그것도 일주 일에 한 번 있는 등하교시 때에도 어머니께서 차를 가지고 오시니, 대중교통 을 이용할 기회조차 없는 것입니다. 이론이야 대열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는 하지만 24시간 공부에 투자를 하다보니 우선 체력이 허약합니다. 실제 경 험이 부족하니 특목고와 명문대를 거쳐 사회진출을 한다고 한들 과연 첫 관 문인 인간관계라도 제대로 해 낼 수 있을지 두렵기만 할 뿐입니다.
한무-이 때에,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도 살아가면서 모든 사실들에
‘왜?’
라는 질문을 던지며,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와 그 친구 는 자습시간 마다 서로의 고민과 여러 현상들에 대해 나름대로 심각한 토론을 하곤 했습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그와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위안이 되었습니다.
목적도 없이 어느 길을 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방황하며 고민을 하다가 마음의 문을 열고 직접 경험 간접경험을 해보기로 했 습니다. 여러 책과 사람들을 만나기도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와도 많은 상담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이 모든 것들이 남의 이야기였습니다. 내가 나를 다 잡아야겠다는 갈등 속에서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이었습니다. 그 책은 죽음에 관한 책이었는데 그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우선은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중에 무엇을 할지는 몰라도 지금 노력하여 준비를 해 놓는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석-물론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공부 이외에는 고등인간으로서의 자질이라든가 소양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입니 다. 우리나라의 엘리트 교육체제가 특목고를 통한 인재 양성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 일반인, 지식인(인텔리전트 그룹), 그리고 짱계층 (Leaders Group) 의 세 가지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 다것입니다. 그렇게만 학습될 수 있다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목숨을 버리는 불상사는 줄어들 것이고, 학교는 자기 소양을 길러내는 기초 교육장 으로서의 자리를 찾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무-삶을 살아가면서 나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맞서는 현실이 너무 고달파서 내가 좌절할 정도가 되면 안 됩니다. 사회에서 벌어지 는 모든 현상들을 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면 이번 사건과 같은 끔찍한 일 은 반복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방황하고 좌절할 때에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 주 고 격려와 사랑으로 감싸준다면 청소년을 파멸의 길로부터 구할 수가 있을 것 입니다. 꽃 한 송이 채 피워 보지 못하고 쉽게 져버린 청소년들에게 국가와 사회는 사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을 위한 제도가 아닌, 인간을 망치는 제 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 모두 미래를 위해 밝 고 맑은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때입니다.
훈준-최고만을 추구하고 돈, 명예 등을 추구하는 물질적 사회현실이 붕괴되고 도덕 적, 희생정신 이해심등 교육 당국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관점에서 이러한 문 제를 꾸준히 회복한다면 세계적인 교육 강대국으로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경석 한무 훈준 퇴장하고 책상위에 있는 컴퓨터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선생님과 현정 그리고 종석이가 등장한다.)
현정-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저희들의 곪은 상처를 치료해주셨습니 다. 오늘 논술시간에도 ‘자살’이라는 주제를 놓고 우리 모두 홀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구석구석을 스스로 끄집어 내어놓도록 도와주고 계십니다.
종석-누나, 공부만 해야 하는 형들이 불쌍해!
선생님-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누구에게나 주어진 길이 있단다. 형들은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열심히 가고 있을 뿐이란다.
어쨌든 오늘은 경석이의 생일날이기도 하지만 한무와 훈준이 모두 성년이 되는 날이구나! 오직 공부에 매달려 한 번도 발산해보지 못한 청춘의 끓는 피를 그 애들은 어떻게 해소 시키는지 우리 한번 감상해보도록 하자꾸나! 어서 풍악을 울려라.
(컴퓨터의 볼륨을 있는 대로 높인다. 컴퓨터에서 피천득의 청춘예찬을 패러디 한 수필이 선생님 목소리로 목청을 가다듬고 흘러나온다.)
선생님- 청춘! 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아라.
청춘! 너의 피가 끓는다.
청춘!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같이 힘 있다.
청춘! 이것은 인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이다.
청춘!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고,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속에 든 칼이 다.
청춘! 너의 피가 끓지 않으며 인간은 얼마나 쓸쓸하겠느냐? 얼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배경음악이 조용하게 깔린다.)
현정-(선생님의 말끝을 이어서)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풀밭에는 속잎이 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봄날의 천지는 얼마나 기쁘냐, 또한 얼마나 아름다우냐?
종석-(겸연쩍은 듯이 머리를 박박 긁으며 종이에 씌어진 대사를 보고)이상! 우리의 청춘이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이상! 이것이야말로 무한한 가치를 가진 것이다. 사람은 크고 작고 간에 이상이 있음으로써 용감하고 굳세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겸연쩍어서 머리를 긁는다.)
선생님-석가는 성산에서 고행을 했고
현정-예수는 광야에서 방황을 했다.
종석-공자는 천하를 철환(수레를 타고 돌아다님)하였다.
선생님-밥을 위해서,
현정-옷을 위해서
종석-미인을 구하기 위해서 그리 하였는가?
훈준 경석 한무-(한꺼번에 무대로 뛰어나와 한 목소리로)아니다. 그들은 커다란 이 상, 곧 만민을 품에 안고, 밝은 길을 찾아주며, 행복하고 평화스러 운 길로 인도하겠다는 이상을 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현정. 종석. 훈준. 경석. 한무 모두를 가리키며)
보라 청춘을! 이들의 이 튼튼한 몸짱을, 생생하게 빛나는 피부를, 이들의 눈 에서 무엇이 타오르는가? 우리의 귀는 청춘의 찬미를 듣는다. 청춘은 인생 의 황금시대다. 황금시대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기 위하여, 이 황금시대를 영원히 붙잡아 두기 위하여, 힘차게 노래하자 아자 아자 아자!
(컴퓨터의 볼륨이 있는 대로 커지고, 요즘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원탁을 한 쪽으로 밀어 붙이고 갖가지 묘기들이 펼쳐진다. 한무 훈준 경석이 빽댄스로 요란하게 몸을 흔든다. 괴성을 지르며 스트레스를 푼다.)
종석-(컴퓨터 볼룸을 줄이며)긴급 공지 사항입니다. 선생님께서 성년의 날을 맞이하 여 경석, 한무, 훈준이 형에게 아주 마음에 든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이 선 물은 아주 귀한 선물입니다. 오늘 이 시간을 위해서 특별 제작한 것입니다. 어 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금방 깨질 수도 있고, 오래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선물 증정식이 있겠습니다.
(갑자기 세대의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게 들여온다. 택배 아저씨 세 명이 등 장한다. 세 개의 포장지로 싼 물건이 무대위로 운반된다.)
종석- (택배에게)수고하셨습니다.(물건을 받고. 좌중을 둘러보며) 그럼 지금부터 세 형에게 선생님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선물 증정식이 있겠습니다. 훈준. 한무. 경식이형 어서 나오세요.(이때 세 명 들어와 나란히 선다)
선생님-(훈준이 어깨를 다독여주며)공부하기 힘들었지. 깨지지 않게 잘 다루도록 해 라.
훈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선물를 받으며)고맙습니다.
선생님-(한무의 어깨도 다독여 주며)힘들지.
한무- (받으며)고맙습니다.
선생님-(경석이의 어깨를 다독여 주며)축하한다.
경석- (평소에 엉뚱하다고 느낀 선생님을 의아하게 쳐다보며)
고맙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퇴장한다.)
(경석 한무 훈준이 한꺼번에 선물을 뜯는다. 느닷없이 세 명의 여학생들이 포장지를 뜯고 나온다. 관중석에 박수 유도한다. 세 명의 여학생들은 한무 경석 훈준이 옆에 선다. 세 명의 남학생들은 갑작스런 선물에 당황하며 부끄러워한다)
세 명의 여학생-우리는 오늘 선생님의 특명을 받고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는 선생 님의 제자들입니다. 세 명의 남학생이 아주 뜻 깊은 날이라고 해 서 즐겁게 해주라는 명을 받았습니다.(무대를 주도한다. 다시 요란 스런 음악이 흘러나오고, 올해 성년이 된 친구들은 무대로 올라 오라는 팻말을 들고 세 명의 여학생들은 무대를 한바퀴 돈다. 객 석에서 성년이 된 여학생들이 무대위로 올라온다.
모두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된다.
(잠시 음악이 줄어들고 현정 종석이 선생님이 손수 케이크와 포도주 각종 음료수를 가지고 등장한다. 아이들이 노는 한가운데 케이크에 불이 켜져 있다.)
경석-(여친과 함께 손을 잡고 나와서)
선생님 감사합니다. 누나 그리고 막내야 고맙다.(말을 해놓고 목이 메어 감격의 눈을 흘린다.)
제 생애 최고의 날입니다.!
(누구에겐가 모를 울분과 기쁨과 슬픔과 만감이 교차되는 감정으로)
한무-(여친과 함께 나와서)선생님 감사합니다. 누나 그리고 종석아 고마워.
자리를 빛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늘에 대고)
흔준-(여친과 함께)감사합니다.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지고 모두다 빙 둘러서서 노래를 한다. 생일 축하합니다. 일동합창-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오경석 생일축하 합니다.
(경석이가 여친과 함께 케이크에 불을 끄고 케이크를 자른다. 마지막으로 컴퓨터에서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대로 멈추었던 춤판이 다시 익어간다. 광란의 춤판 속에서 징 꽹과리 북 장고로 진짜 풍악을 막 울리는 찰라, 찌이익 출입문이 열린다. 난데없이 경석이 부모님이 등장한다. 부모님이 학교에 진학상담을 하러 가셨다가 모처럼 논술선생님에게 경석이의 장래문제를 협의하려고 학원으로 오신 것이다. 단 한번도 경석이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어머니는 난장판이 된 현장을 목격하고 경악을 한다.)
아버지-(주위를 보고 놀라며)이게 어떻게 된 판이냐 응?
한쪽 구석으로 숨었던 현정과 종석이가 달려 나와서 아버지에게 매달린다.
현정-아버지 전후사정은 이따가 말씀 드릴테니 일단 흥분을 자제해 주세요.
종석-아빠! 누나 말대로 잠깐만 판단을 보류해 주세요. 녜.
어머니-아니 여보! 이럴 수가.......나는 내 자식에게 이런 일이 있을 줄 상상도 못했 어요. 이게! 이 샴페인하며 저 헝클어진 복장, 아니 또(경석이 옆에 있는 여 자아이를 가리키며) 너, 너는 누구- (차마 말을 잇지 못하며) 이런데도 학원 이라고 내가 눈이 삐어도 보통 삔게 아니예요. 어쩌다가 이런 형편없는 선 생을 선택 했는지......
(지켜보던 아버지, 고개를 숙이며 잠시 생각을 하던 아버지, 침착한 목소리로 말문을 연다))
아버지-(아내에게)여보 잠시 나가 있구려. 내가 다 뒤처리를 할테니.
경석이 어머니 칼날처럼 싸늘한 표정으로 어머니 퇴장.
아버지-(침묵으로 잠시 아이들과 선생님을 번갈아 보더니 갑자기) 푸하하하하하하~
(파안대소破顔大笑를 하더니 선생님 앞으로 다가와 엄숙하게 땅에 엎드려 넙죽 절을 한다).
선생님-아니! 경석이 아버지(아버지의 느닷없는 행동에 흠칫 놀라며 눈이 휘둥그레 진다. 얼떨결에 경석이 아버지의 손을 잡아 일으킨다)
아버지-선생님 이 은혜 백골난망(白骨難忘)입니다. 그 동안 나와 우리 애들은 공부 에 치여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습니다. 아내의 비위를 맞추다 보니 아이 들에게 불필요한 말 한마디, 흐트러진 행동 하나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 자신이 죽도록 싫었지만 습관처럼 몸에 익어버린 삶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죄송합니다. 아이들의 입장에 서 있다가 보니까 주제넘게.
아버지-(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로)아닙니다. 그동안에도 아내를 통해서 매번 느꼈지만, 선생님처럼 용기 있는 분이 우리 아이들 곁에 계시다는 게 행복 합니다.
뜻밖의 말을 들은 선생님 어리둥절 어찌할 바를 모른다.
선생님-두 분에게 잠시라도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나이를 먹었다고는 하 나 항상 저의 행동이 미숙합니다. 널리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아버지-마침 오늘이 우리 경석이의 생일이군요. 그리고 성년이 되는 날이군요. 세세 한 것까지 챙겨서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도와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 니다. 아! 그리고 우리 경석이만 성년이 되는 날입니까? 훈준이 한무 또 다 른 여러 친구들이 있군요.
(주위를 둘러보며)
얘들아, 다들 이리 오너라, 이렇게 행복하게 해주는 선생님을 모시고 오늘은 그까짓 공부 다 제쳐두고 이 아버지와 함께 실컷 놀아보자, 대학교 수학능력 시험을 치를 때까지 다시는 아무 갈등이 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만큼 실컷 말 이다.
구석자리에 서 있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등장을 한다.
아버지-내 아들 경석아! 자식아, 엄마 등쌀에 힘들었지, 엄마도 너희들에게 일일이 신경 쓴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란다. 너희 셋 키우면서 엄마의 인생 을 다 바친 거 알지? 아버지는 바보천치가 아니다. 너희들이 바른길을 갈 때까지 참고 견디고 기다려 왔을 뿐이란다. 엄마가 왜 하루 24시간 너희들 에게 긴장을 늦추지 않는지 그 뜻을 알기만 하면 그만이다. 자 이걸(한쪽 손 에 들고 있던 선물을 현에게 내민다.)풀어봐라, 네 맘에 드는지
경석이-(풀어 보는 선물 꾸러미 속에서 최신식 디카폰이 나오자 경석이, 감격에 찬 목소리로) 아버지!
아버지-(와락 경석이를 끌어안으며)경석아, 이 녀석!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지.(옆에 서 있는 훈준와 한무를 끌어안으며) 이놈들아, 이 착하고 이쁜 놈들이 어쩌 다가 우리 경석이랑 친구가 되었냐? 고맙다. 고마워. 끝까지 의리 있는 친구 가 되어다오. 응!(어깨를 다독여 준다.) 어서들 풍악을 울려라!
컴퓨터 음악이 잔잔하게 깔리다가 빠른 음악으로 전환이 된다. 동서양의 음 악이 합주를 한다. 사물놀이 패가 나와서 마당을 돌고 돈다. 상모가 원을 그 리며 돈다. 모인 사람 모두가 원을 그린다. 원이 된다. 하나가 된다. 모두 꽃 이 되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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