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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제6강 八 佾 편 2
제14절
子曰,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
자왈, 주감어이대, 욱욱호문재. 오종주.
ㅇ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주나라는 監於二代. 2대라는 건 하나라와 은나라겠죠. 은나라와 하나라 2대에서부터 監. 본받아왔다 그런 뜻입니다. 보통 일반적인 해석으로는 비교해본다 이런 뜻인데요, 본받는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이것은 추릴 건 추려버렸다는 얘기가 됩니다. 거울을 보듯이 이렇게 감사한다 할 때 쓰지 않습니까. 하나라, 은나라 2대로부터 좋은 건 취하고 나쁜 건 버리고 함으로써 그렇게 다듬어온 것이 바로 주나라 禮다.
ㅇ 周監於二代 했으니 郁郁乎文哉. 아! 빛나는구나, 참 깊구나 이런 뜻입니다. 郁이란 것은 참 깊고도 깊구나 그 문채여, 그 모양새여.
ㅇ 吾從周. 나는 주나라 초기를 따르리라. 주나라 초기의 그 시대문화를 따르리라. 주나라 초기의 문화라는 게 별 것 있습니까. 소공 목공(?) 때까지 다 홍범구주에 따라가지고 기마종족의 문화를 그대로 다 받아들였던 거죠. 그런데 그 문화가 중국 한족적인 문화로 계속 타락해가지고 있는 거죠. 농경문화에서 계속 타락해가고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그 이후 타락과정을 지켜보시면서 괴로워하면서도 한편으로 갈등하면서도 역시 주나라 초기를 되살릴 수 있다라는 창조적으로 되살릴 수 있다라는 또 監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보이시는 거죠. 자신감보다는 어떤 면에서는 의지 표현이죠. 그래서 아직 주나라에도 그런 시대문화가 있는데 그런 시대문화의 근본적인 뿌리를 되찾기만 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그 말씀을 하셨구요. 그래서 제사의식과 관련해서는 일단 정리를 한번 하셨습니다. 정리를 하시고 또 이제 비슷한 얘기가 나오는데,
제15절
子入大廟, 每事問. 或曰, 孰謂鄹人之子 知禮乎. 入太廟, 每事問. 子聞之曰, 是禮也.
자입태묘, 매사문. 혹왈, 숙위추인지자 지례호. 입태묘, 매사문. 자문지왈, 시례야.
ㅇ 子入大廟. 이 때는 큰 대자이지만 태로 읽습니다. 선생께서는 태묘에 들어가셔서 태묘라는 건 아까 체제를 지냈던 주나라 무왕과 소공과 목공이 있었던 목공을 모시는 그 무덤에 들어가셔서 노나라의 사구벼슬을 하고 계셨으니까요. 제사를 지낼 때 주례를 하는 입장이죠. 진례를 하는 입장이죠. 선생께서 태묘에 들어가셨는데 每事問. 모든 일을 다 물으셨다. 옆에 있는 사람들한테 다 물으셨다.
ㅇ 혹자가 말하기를, 孰謂鄹人之子 知禮乎. 숙위, 누가 일렀던가. 추인지자, 추나라 땅 아들이. 공자가 태어난 곳이 추 땅이니까요, 추 땅 사람의 아들이 禮를 안다고 누가 일렀던가. 누가 추 땅 사람의 아들이 예를 안다고 일렀던가. 시대문화를 안다고 일렀던가. 비꼬는 거죠.
ㅇ 子入大廟, 每事問. 태묘에 들어가더니 모든 걸 다 물어보더라. 알긴 뭘 아느냐 이런 거죠.
ㅇ 그러니까 그걸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是禮也. 그렇게 묻는 것이 바로 禮다. 여기서 예라는 본질의 뭘 얘기하시냐 하면 예라는 것은 그렇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거 이렇게 해야 됩니까. 저렇게 해야 됩니까 하고 물어가지고 그 합의에 의해서 하는 것이 예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예라는 것은 시대문화이면서 또 한편으로 이 시대문화의 본질은 합의에 의해서 도출된다는 거죠. 지식에 의해서 굳어진 형식이 아니란 거죠. 그래서 그 다음 태묘에 들어가서는 달라질 수도 있는 거죠. 마치 신라의 화백이나 백제의 정삼(?). 고구려의 제가회의를 떠올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이 때 예라는 것이요. 철저하게 그렇게 서로 화합에 의해서 화의에 의해서 결정하고 있다 라는. 선생께서 태묘에 들어가서 모든 일을 물으시자 혹자가 일러 말하기를 누가 추나라 땅 사람의 아들이 예를 안다고 일렀던가. 선생께서 이를 듣고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물어서 합의한 것이 바로 예니라.
ㅇ 지금도 예라 그러면 시대문화라 그러면 합의를 잊어버리기가 참 쉽기는 쉽습니다. 그래서 내가 좀 안다 싶으면 그걸 막 강요하기가 쉽구요. 또 어쩌면 한 시대 자체가 점점 타락한 시대일수록 그런 합의해서 서로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합의해서 가는 것보다는 독주하는 것을 원하는 그런 분위기들이 타락한 시대일수록 많죠. 영웅을 기다리는 심리라든가 등등해서, 진짜 영웅이라는 건 그렇게 합의해가는 가운데서 크는 게 영웅인데.
제16절
子曰, 射不主皮, 爲力不同科, 古之道也.
자왈, 사불주피, 위력부동과, 고지도야.
ㅇ 그 다음에 또 그와 관련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합의에 의한 시대문화와 합의의 관계.
ㅇ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射不主皮. 활을 쏠 적에는 활을 쏘는 것은 가죽을 겨냥하지 않는다. 가죽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다. 이런 거죠. 가죽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과녁으로 하지 않고 뭘 과녁으로 하느냐. 집단 있잖습니까. 지금도 과녁은 집단이죠. 가죽으로 과녁을 하면 힘 좋은 사람은 들어가지만 힘 없는 사람이 쏘면 안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가죽을 가지고 과녁을 삼지 않는다. 이 얘기는 동시에 그런 이야기입니다. 활을 쏠 때에는 과녁의 중심에 맞추는 것. 중심에 맞추는 것을 주로 삼지 뚫는 것을 주로 삼지 않는다는 겁니다. 같은 이야기입니다. 가죽으로 하면 힘 없는 사람은 꼽히질 않잖아요. 가죽이 두꺼우니까요. 그게 그렇게 힘있게 관통하는 것을 중심으로 삼지 않고 주력으로 하지 않고 과녁의 정중앙에 맞추는 것을 주력한다. 그런 뜻입니다. 활을 쏠 때에는 반드시 가죽을 과녁으로 삼지 않는다.
ㅇ 왜냐하면 爲力不同科. 힘을 쓰는 것이 이렇게 번역하기도 하구요. 爲力이라고 번역하기도 하구요. 그 다음에 爲를 ~때문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느 쪽으로 해도 상관은 없을 겁니다. 射不主皮하는 것은 爲 ~ 때문이다. 뭐 때문이냐, 力不同科. 힘이 같은 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힘의 과가 다 부동하기 때문이다. 힘의 등급이 다 다르기 때문에 힘으로써 그렇게 하지 않는다.
ㅇ 이것이 바로 옛적의 길이었다. 옛적의 도리였다. 결국은 어떻게 정확하게 지향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지 보다 강하다 하는 게 강하게 밀어 부치느냐 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얼마만큼 힘있게 뚫어버리느냐 하는 것이 시대문화의 본질이 아니라 시대문화라 하는 것은 얼마만큼 정확하게 그 목표를 향해 가려고 하느냐 하는 그 자체가 목표라는 거고, 이것은 물론 개인적인 면에 있어서도 얼마만큼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고 집중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지 얼마만큼 힘을 키우는데 문제가 있지 않다는 것도 되죠. 물론 사회적으로도 확대시키면 사회문화에서도 얼마만큼 정말 올바른 것을 향해서 공동체가 기운을 합의하고 모아가느냐에 시대문화의 본성이 있지 그 사회의 힘을 얼만큼 키우려고 무력이라든가 이런 것을 얼만큼 키우려는데 본질이 있지 않다는 하는 것. 그것을 옛날의 도라고 하면서 빗대어 말씀하신 거죠. 그래서 사회문화 즉, 시대문화와 그 시대문화가 지향할 점에 ~
제17절
子貢欲去告朔之餼羊. 子曰, 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
자공욕거곡삭지희양. 자왈, 사야. 이애기양, 아애기례.
ㅇ 자공이 공자의 제자 중에서 뛰어난 몇몇 되는 제자인데 굉장히 인정도 많고 사려도 깊고 이런 사람인데. 자공이 欲去告朔之餼羊. 이 때 고라고 읽지 않고 곡이라고 읽습니다. 곡삭이라고 그러는데 고삭이라고 읽어도 상관은 없겠지만 곡삭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제사인데요. 어떤 제사냐 하면 매달 초하루에 지내던 제사라 하기도 했었구요. 또 다른 의미는 매달에 기운이 겹치는 매달의 기운을 상징하는 매달의 날에 지낸다고 이렇게 하기도 했는데요. 5월이면 5일에 6월이면 6월 유두에 7월이면 칠월 칠석에 8월이면 한가위에 9월이면 중양절에 3월이면 삼짓날에 이런 식으로 지낸 제사를 곡삭이라 하는 견해도 있고 또 그냥 매월 1일에 지낸 것을 곡삭이었다고 하는 견해도 있는데 다 하늘에 올리는 제사, 일종의 이것은 하늘에 올리는 제사였다면 형식은 다 하느님 하느님 하지만 성격상 이것은 땅에, 땅에 올리는 제사, 땅 제사죠. 계절별 또는 월별로 지내는 제사인데 그 제사에 쓰이는 희양, 희생양을 欲去. 없애려고 했다. 자공께서 곡삭 제사 때 쓰이는 희생양을 없애려고 하셨다. 너무 불쌍하다는 이런 뜻도 있겠고 또 너무 그렇게 자꾸 쓰자니 아깝기도 하고 그래서 생명 있는 것을 이렇게 함부로 죽일 수 있느냐 이런 뜻이 되니까.
ㅇ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사야(자공 이름이 사니까요) 爾愛其羊. 너는 그 양을 사랑하느냐, 아끼느냐. 我愛其禮. 나는 그 시대문화를 아낀다. 나는 그 공동체와 전체 우주의 하나됨을 받들어가는 그 시대문화를 더 아낀다. 너는 한 마리의 양을 아끼느냐. 그 양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한님으로부터 온 것을 한님으로 되돌려주는 것 아니냐. 사심이 끼면 양이 희생양이 되는 건데요.
ㅇ 사실은 진정한 의미의 희생양이란 것은 요즘 우리가 말하는 희생시킨다 그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죠. 희생양은 그만큼 대우도 받아요. 희생양으로 딱 결정이 되잖아요. 그러면 그 다음달 제사 지낼 때까지 한 달 동안 극진한 대우를 받아요. 예전에 삼국사기에도 보면 그렇게 극진하게 대우를 받던 것이 주로 돼지였어요. 고구려 때 곡삭에 쓰이는 것이 돼지였는데 이 돼지가 가끔 도망을 가가지고 야단을 부린 경우가 몇 번 있었죠. 그 돼지가 도망을 가면 그 관리하던 사람은 죽는 거예요. 사비(?)와 교체(?)라는 그걸 감당하는 사람이었어요. 키우다가 돼지를 놓쳐버린 거죠. 돼지가 요즘같이 집돼지가 아니고 멧돼지죠. 그러니까 달아났죠. 나중에 그 죄로 죽여버렸어요. 그 신하들을 죽여버렸어요. 그래가지고 나중에 임금이 쫓겨나는 계기가 되죠. 그것 때문에 오히려 자기가 쫓겨나죠. 고구려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적이 있었죠. 그걸 보고는 명린답부(?)라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제사장을 건드리는 것은 권력자라고 용납할 수 없다. 도망가는 것도 하늘의 뜻이고 지키는 것도 하늘의 뜻인데 용납할 수 없다 해서 임금을 쫓아내고 처단해버리죠. 삼국유사에 보면 신라 때도 돼지가 그렇게 도망간 적이 있었죠. 돼지가 도망갔는데 그 돼지 쫓으려 갔다가 보니까 돼지를 잡아놓으니까 까마귀가 나타나가지고 뭘 일러주죠. 문서를 하나 딱 던져주죠. 가서 이걸 갖다가 문서를 개합하면 두 사람이 죽고 개합하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해가지고 돼지 때문에 생긴 사건이 있었죠. 한 사람이 죽는 게 안 낫겠느냐고 뜯지 말자 그러니까 제사장이 있다가 한 사람은 임금이시고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니까 뜯어야 됩니다 해가지고 뜯었더니 딱 나오죠. 제 금개(?)를 쏴라고 되어 있죠. 활로 금개를 쏘니까 왕비하고 간통하던 남자가 튀어나온 거죠. 활 맞고.
ㅇ 여하튼 그 때도 희생 돼지가 잉ㅅ었는데 양을 쓰는 경우와 돼지를 쓰는 경우가 다 자기 족속과 관련이 되어 있어요. 돼지를 쓰는 경우에 있어서는 버면 돼지를 자기 종족의 중요한 상징으로 여겼던 종족이 아니예요. 돼지를 가지고 희생양에 썼던 종족들은 대개 새를 중시했던 종족이예요. 요즘 인류학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새를 토템으로 여겼던 많은 종족들이 돼지를 많이 썼어요. 그리고 사냥을 중시했던 종족들이 양을 썼는데 주나라는 양을 쓸 입장이 아니예요. 양을 쓰지 않고 원래 남강에서 소를 썼거든요. 소를 썼는데 여전히 양을 쓰는 습관이 남아 있었어요. 양을 쓰는 습관이 사실은 북방기마종족인 하나라의 습관이고 은나라의 습관인데요. 남아 있었습니다.
ㅇ 여하튼 그 때도 공동체 문화를 지키는 것이 나는 양 한 마리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해가지고 석가모니 제자와 공자의 제자가 만나면 할 말이 많을 거예요. 석가모니와 공자는 하실 말씀이 전혀 없을 텐데, 두 분의 제자들은 하실 말이 많을 거예요. 두 분은 하실 말씀이 없는데 왜 제자들은 말이 많을까를 생각해보면 공부거리가 될 겁니다.
제18절
子曰, 事君盡禮, 人以爲諂也.
자왈, 사군진례, 인이위첨야.
ㅇ 지도자를 섬기는데 시대문화의 禮를 다했더니 人以爲諂也. 사람들이 뭐라 여기더라. 아첨이라 여기더라. 사람들이 사기친다 여기더라. 첨이라는 게 사기라 그랬지 않습니까. 조개 껍데기에 나쁜 징조가 나오니까 그 조개 껍데기를 싹 묻어버리고 엉뚱한 것 갖고 가는 것을 첨이라 그랬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로 대신하는 거죠. 그래서 사군진례라 했더니 사람들은 오히려 아첨이라 여기더라. 그러니 예가 얼마나 무너졌는가. 사람들의 평이 문제가 아니더란 이야기죠. 아마 이것은 뒤 문장의 서론 격에 해당될 겁니다.
제19절
定公問, 君使臣, 臣使君, 如之何. 孔子對曰, 君使臣以禮, 臣使君以忠.
정공문, 군사신, 신사군, 여지하. 공자대왈, 군사신이례, 신사군이충.
ㅇ 정공께서 물으시기를,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또한 지도자를 모시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정공이 얼마나 답답하면, 정공이 물은 것은 입장이 좀 달라요. 정공이 왜 공자한테 이렇게 물었냐 하면 신하가 안 부려지거든요. 신하 세 놈이 자꾸 능가하고 안 부려지거든요. 그러니 그 중간에 있던 자기의 정신적 스승이기도 한 공자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임금이 지도자가 되어서 신하를 부리자면 어찌해야 되고 또한 신하로서 임금을 섬기자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니,
ㅇ 공자께서 대답해서 이으시기를, 낮춰가지고 공자를 쓰구요. 君使臣以禮, 臣使君以忠. 지도자께서 사람을 부리실 적에 시대문화에 따라서 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신하들의 마음 속에 감응을 일으키면 그 감응에 의해서 신하들은 저절로 모셔오게 됩니다. 정공이 물었을 때는 저놈들 비판해주기를 바라고 그랬는데 오히려 자기자신을 더 힐책하고 들어오죠. 지도자가 신하를 부릴 적에는 반드시 시대문화에 따라서 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신하들 마음 속에 시대문화를 제대로 따르는 그 마음이 전달이 되면 신하들은 저절로 진심을 가지고서 임금을 모시게 됩니다. 먼저 부자간의 관계를 확대시켜버렸죠. 먼저 신의 忠을 강조하고 싶은 모양인데 忠을 강조하지 마시오. 당신이 禮로 진심으로 다가가서 그들의 진심을 울리게 하는 것을 진정한 다스리는 부분으로 생각하시오. 禮라는 것은 바로 그렇게 사람이 사람의 진심을 울리게 하는 방법입니다.
ㅇ 그럼 그 앞에 事君盡禮, 人以爲諂也가 좀 나오죠. 나는 임금을 모실 적에 모든 禮를 다해가지고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는 거죠. 그의 마음이 또한 시대문화와 어울려서 나오게 하겠다는 거죠. 그랬더니 사람들이 그걸 사기친다 이렇게 얘기한다 하는데 시대문화라는 것은 단순히 형식뿐만 아니라 더 깊은 면에서는 사람의 깊은 마음을 직접적으로 울리는 하나의 형식이 되고 그것에 의해서만 되는 것이다. 먼저 임금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도자가 禮에 따라서 사람을 부릴 것이고 신하의 입장에서 본다면 신하도 禮에 따라가지고 임금을 섬기면 되는 것이다. 서로서로가 마음이 통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이 시대문화의 속성이 아니겠느냐.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공동체의 불문율로써 시대문화를 얘기한 거죠.
ㅇ 그 다음 음악에 관한 구절이 쭉 나오는데요. 음악에 관한 구절들, 이것 저것 사례들을 들면서 얘기를 합니다.
제20절
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자왈, 관저. 낙이불음, 애이불상.
ㅇ 關雎. 관저는 시경의 제일 유명한 첫 시조죠. 시경 관저편은 樂而不淫. 나무에 물기가 오르는 것이 樂이니까. 나무에 물기가 오르듯 사람에게 물기가 오르듯 생기가 오르되 그렇게 즐거우되 不淫. 넘치지 않고. 물이 너무 넘치면 나무에 물기가 넘치면 마찬가지로 뿌리가 물러버리죠. 꽃이 피질 않죠. 나무에 물기가 바짝 오르듯 그렇게 즐거우되, 즐거움이 넘치지 아니하고 지나치지 아니하고, 음란하다 이렇게 보기보다 지나치다 이렇게 보는 것이 좋을 겁니다. 淫도 물론 지나친 것의 한 일종이죠. 현대에서 음란도 넘친 것의 일종이죠.
ㅇ 哀而不傷. 마음을 슬프게 하나 상하게 다치게는 하지 않는다. 관저편이 그런 거죠. 아름다운 사나이가 아름다운 요조숙녀를 구하면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는 그모습이죠. 그리는 마음의 즐거움이 또 한편 그리느라 애달픔이 있는 그 노래를 말하죠. 그래서 거기에서는 살아 숨쉬는 생명의 즐거움이 보이되 넘치는 것이 보이지 아니하고 또한 그것을 그리워하면서 마음을 척척하게 하되 슬픔에 젖되 그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제21절
哀公問社於宰我. 宰我對曰, 夏后氏以松, 殷人以栢, 周人以栗, 曰, 使民戰栗.
애공문사어재아. 재아대왈, 하후씨이송, 은인이백, 주인이율. 왈, 사민전율.
子聞之曰, 成事不說, 遂事不諫, 旣往不咎.
자문지왈, 성사불설, 수사불간, 기왕불구.
ㅇ 哀公問社於宰我. 애공이 사나무에 대해서 재아에게 물었다. 물은 사람에게 물어야 되는데 잘못 물었습니다. 그 재아도 염유와 함께 그때 말썽꾸러기 제자입니다. 재아가 조금 더 심해요. 왜냐하면 염유는 가끔 나타나가지고 말썽부리고는 한참 동안 안 나타나는데 재아는 붙어 다니면서 말썽을 부려요. 근데 본성은 나쁜 사람이 아니어가지고 공자가 계속 데리고 다녀요. 재아가 겉모습은 공자랑 굉장히 비슷했다 그래요. 말하는 것도 공자와 비슷해가지고 어떤 경우에는 공자의 흉내도 많이 냈다고 그래요.
ㅇ 宰我對曰. 재아가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夏后氏, 하나라의 후예들은 하나라 사람들은 그러면 되죠. 하나라 씨족들은 소나무로써 사나무를 삼았고, 殷人以栢. 은나라 사람들은 잣나무로써 사나무를 삼았고, 周人以栗, 주나라 사람들은 밤나무를 사나무로 삼고 있습니다. 근데 주나라의 밤나무는 왜 그러냐.
ㅇ 使民戰栗. 사람들로 하여금 전율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밤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황당하죠. 栗자를 어떻게 해석하든 그렇게 해석해버리는 겁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부들부들 전율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밤나무로 사직을 했습니다. 사나무라는 게 그런 게 아니잖습니까. 사나무라는 게 자기 조상 신을 상징하기 위해서 만든 나무인데 그걸 그런 식으로 헛다리 짚어 해석한 겁니다.
ㅇ 子聞之曰. 선생께서 그걸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成事不說, 이미 한 얘기니 다시 얘기하지 말자. 이미 저질러진 성사니 불설, 다시 얘기하지 않겠다. 遂事不諫, 이미 치러 지난 일이니, 遂자도 지날 수자니까, 간섭하지도 않겠다. 旣往不咎. 이미 지나간 것인데 욕하면 뭐 어쩌겠느냐. 엄청나게 나무라시는 거죠. 이렇게 세 마디로 나무라는 건 전혀 공자답지 않으실 정도로 노하신 거죠. 사람들이 공동체의 상징성을 두고 있는 그 나무를 갖다가 사람들에게 시대문화의 합의해가는 정신을 강조한 것인데 서로 한 뿌리다 해서 합의해가고 뿌리를 찾고 이렇게 해서 하나되는 것을 강조한 나무인데 그것을 사람들로 하여금 전율하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완전히 헛다리를 짚어놓았으니 얼마나 닫닫하셨으면 지난 일이니 다시 이야기하지 않으마, 지난 일이니 다시 간섭하지도 않으마. 이미 지난 일이니 욕하지도 않으마. 이러고 말썽을 안 피우면 되는데 나중에 또 한번 피워요. 더 심한 말썽을 부려요.
제22절
子曰, 管仲之器小哉. 或曰, 管仲儉乎. 曰,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乎.
자왈, 관중지기소재. 혹왈, 관중검호. 왈, 관씨유삼귀, 관사불섭, 언득검호.
然則管仲知禮乎. 曰, 邦君樹塞門, 管氏亦樹塞門.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연즉관중지예호. 왈, 방군수색문, 관씨역수색문. 방군위양군지호, 유반점.
管氏亦有反坫, 管氏而知禮, 孰不知禮.
관씨역유반점, 관씨이지례, 숙부지례.
ㅇ 子曰, 管仲之器小哉. 이건 이제 선생이 얘기를 툭 하고 던진 거죠. 틀림없이 반론이 일어날 것을 아니까요. 그 당시에 管仲이라 그러면 최고의 경륜가로 꼽히고 있던 사람이니까요. 약간 지난 시대이긴 하지만 공자시대보다 약간 선배 격이긴 하지만, 0.5 세대 앞선 사람이죠.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관중이란 사람의 그릇됨은 참 작구나. 놀랄 수밖에 없죠. 그런데 분명히 반론이 나오죠.
ㅇ 或曰, 管仲儉乎. 어느 사람이 말하기를, 관중은 검소하지 않습니까. 관중은 검소하죠. 하고 확신을 갖고 말을 하죠.
ㅇ 曰, 공자가 받아 치는 거죠. 받아 치실 말씀 이미 다 준비해놓고 하신 말씀이니까. 다른 요점을 일러주시려고 그런 거니까.
ㅇ 管氏有三歸, 삼귀라는 것은 일종의 관중이 갖고 있던 압구정 같던 거대한 정자 이름이었습니다. 관중은 삼귀대를 갖고 있었는데,
ㅇ 官事不攝, 그리고 관청의 일이라는 것은 불섭, 攝이라는 것은 겸하다, 섭정하다 이럴 때 있는 것 아닙니까. 관의 일을 보는 사람은 섭정을 둘 수 없게 된다. 정확하게는 이런 뜻이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가신들을 말합니다. 보통 관의 일을 맡고 있는 사람은 별도로 자기 집안에 관원을 둘 수 없다. 근데 관중은 갖고 있다는 이야기죠.
ㅇ 焉得儉乎. 그러니 어찌 검소하다 하겠는가. 어찌 아낀다 하겠는가. 아낀다는 건 禮를 아낀다는 거죠. 공자의 얘기는 단순히 돈을 아낀다는 입장을 슬쩍 빗대면서 禮를 아끼는가 아닌가를 지적하신 거죠. 관씨는 삼귀대를 갖고 있고 그리고 가신을 다 거느리고 있다. 관원은 불섭해야 되는데 관원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니 어찌 儉하다 하겠느냐. 그러니까 반문에 또 반대해서 들어오죠. 禮를 모른다는 식으로 몰아가니까, 또 혹자가 물어보죠.
ㅇ 然則管仲知禮乎. 그러면 관중이 禮를 알았습니까. 禮를 알았겠죠. 禮는 모르지 않았겠죠 하니까,
ㅇ 曰, 邦君樹塞門, 나라 임금이 제나라의 임금이겠죠. 樹塞門, 수색문이라는 건 자기 집안에 뜰이 있는 것 아닙니까. 마당에 뜰이 있고 자기 집안 문이 있잖아요. 그러고 조정이나 관청 같은 데는 그 앞에다 나무를 크게 심어버리거든요. 심어가지고 밖에서 함부로 들어오지 않게 나무를 심는데 그걸 수색문이라 그러죠. 그건 제후들만 하게 되어 있죠. 개인들은 못하게 되어 있죠. 요즘은 다 제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다 할 수가 있는데요. 나무를 심어서 문을 막았다.
ㅇ 管氏亦樹塞門. 관씨는 제후도 아니면서 또 그렇게 했다.
ㅇ 邦君爲兩君之好, 나라 임금이 두 임금의 우호관계를 위해서 有反坫, 국경지대에 반점을 두었다. 국경지대에 영접대 비슷한 것을 세우고 거기서 술을 마시고는 술잔을 치워놓고 집기를 그대로 보관해놓고 돌아오는 거죠. 일종의 국경에 우호관계를 위한 판문점 비슷한 걸 마련해 두었는데, 管氏亦有反坫, 관씨도 또한 그런 걸 두었다.
ㅇ 管氏而知禮, 그러니 관씨라는 사람이 시대문화를 안다면, 孰不知禮. 누가 禮를 모른다 할 것이냐. 맞짱뜨는 것을 능사로 여기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그렇지만 않다면 능력 있는 것을 인정한다는 거죠.
ㅇ 그래서 관중이라는 사람이 너무 높게 평가 받고 그 능력 있게 평가 받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결국 언젠가는 시대문화를 파괴하고 공동체를 파괴할 것이다 라는 염려를 표시하는 겁니다. 공동체라는 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면에서 미래에 관한 문제이지 현재에 그런 능력을 보이는 것은 개인적인 사심이다. 그런 얘기도 섞여 있는 듯 합니다.
ㅇ 그 다음 가장 중요한 부분이 하나 나온 것 같습니다. 이 구절은 제4장과 연결되기도 할 텐데요.
제23절
子語魯大師樂曰, 樂其可知也, 始作翕如也, 從之純如也, 皦如也, 繹如也, 以成.
자어노태사낙왈, 낙기가지야, 시작흡여야. 종지순여야. 교여야. 역여야, 이성.
ㅇ 子語魯大師樂曰, 노나라 태사에게 음악에 대해서 강설을 하셨습니다. 子語. 말씀을 하셨습니다. 노나라 태사에게, 음악을 다루는 사람이죠. 일종의 민속을 다루는 사람, 그 책임자로써 6대 벼슬에 속하는 사람이죠.
ㅇ 樂其可知也, 음악이라는 것은 알만 하다.
ㅇ 始作翕如也, 처음에는 모든 음악에 두루두루 오음이 다 나온다. 翕(흡)이라는 건 궁상각치우, 다섯 음이 한꺼번에 다 울리는 걸 말합니다. 처음에는 다섯 음이 ‘둥’하고 다 울려 나온다. 풍성하다는 뜻도 됩니다. 풍성하게 울려 나온다.
ㅇ 從之純如也, 그 다음,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이것이 화음이 이루어진다는 거죠. 악기들이 다 다르니까 화음이 이루어진다. 이 때는 純如(준여)라고 읽기도 합니다. 준이라고 읽기도 하는데 보통 순이라고 읽고 뜻만 그렇게 해석을 많이 합니다. 점점 화음을 이룬다.
ㅇ 皦如也, 그 다음, 교여야. 마디를 이룬다. 하나하나 소절이 또는 마디가 이루어진다.
ㅇ 繹如也, 그 다음, 역여야. 그러면서 또한 맥락이 잡혀진다.
ㅇ 사람 몸 공부 하듯이 보면 쉽죠. 처음에는 온 몸을 다 놀리다가 조금 가다 그 몸을 균형 있게 놀려보다가 그러는 가운데 몸의 마디를 알다가 마디를 알고 났더니 온 몸으로 통하는 길을 전부 다 아는 것처럼 그렇게 해서 以成. 이루어진다.
ㅇ 음악이라는 건 처음에는 오음이 다 흡족하게 펼쳐지다가 또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하나하나 없어졌다 생겼다 하면서 화음을 이루고, 화음을 이루는 가운데 또한 마디가 이루어지고 마디가 있는 듯 하면서 모두 다 연결되어가지고 한 몸체를 이룸으로써 마침내 완성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얘기입니다.
ㅇ 純을 준이라고 읽는다 했는데, 바늘 뜸질할 때 이렇게 뜨고 저렇게 뜨고 하는 뜸질 있잖습니까. 수놓는 것 있잖습니까. 수놓는 걸 준이라고 그럽니다. 우리는 보통 순의 발음에 준이 있다는 걸 잘 모르는데 수놓듯이 화려한 자수가 놓여 있듯이 그렇게 처음에는 오색실을 다 꼽았다가 자수로 보면요. 그 다음 오색실이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자수가 뜨이고 그 자수가 하나하나 마디를 짓는 것 같더니 전체적으로 보니까 다 연결되어 있더라는 것이죠. 음악이라는 건 그렇게 마디가 있는 듯 연결되고 연결되는 듯 마디가 있으며 화음을 이루는 듯 오음이 다 있고 오음이 다 있는 것 같으면서 또한 화음을 이루는 것, 그것이 바로 음악이다. 이런 음악을 굳이 시대문화의 특성의 하나로 비유하신 겁니다 지금.
제24절
儀封人請見, 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從者見之.
의봉인청견, 왈, 군자지지어사야, 오미상부득현야. 종자현지.
出曰, 二三子, 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 爲木鐸.
출왈, 이삼자, 하환어상호. 천하지무도야구의. 천장이부자, 위목탁.
ㅇ 儀封人, 의땅에 의땅이라고 하면 산동의 북쪽지방입니다. 儀가 바로 기자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땅입니다. 의땅의 봉인이, 봉인이라는 사람은 사나무를 지키고 있는 일종의 社지기입니다. 사나무 지킴이입니다. 벼슬입니다. 주로 숨어있는 은자들이 그런 일을 하고 있죠. 지기 노릇은 그런 것이고 깨끗이 지켜서, 그 터나마 지켜서, 최후의 터전이나마 지키려고 하는 사람이죠. 의땅의 사나무 지킴이 벼슬을 하는 이가 와서 請見. 알현하기를 청하면서 말했다. 알현을 청하면서 말하기를 낮은 벼슬이니까 청현이라고 읽어야 하죠. 그리고 낮은 벼슬이 아니라도 맟나가지로 사람을 볼 때는 견이라고 안하고 현이라고 하니까요.
ㅇ 君子之至於斯也, 하늘 사람께서 선비께서 이 땅에 이르셨는데, 吾未嘗不得見也. 나는 아직까지도. 아직까지 상(嘗)자니까요. 未嘗不이니까 아직까지 ~를 못했다는 뜻이죠. 未嘗不得이니까 ~할 수 없었다. 내 차례가 안 왔다. 이런 이야기죠. 아직까지도 나는 찾아 뵙지를 못했다. 나한테는 아직 순서가 안 왔다. 나 좀 꼭 만나야겠다 하니까, 從者見之. 모시는 분들이 알현시켰다.
ㅇ 出曰, 알현하고 나와서 의봉인이 말하기를 二三子야, 이 사람들아 나이는 그 분이 많았겠죠. 몇 몇 사람들아 何患於喪乎. 여기서 喪이라는 것은 공자께서 벼슬을 잃으신 것을 말합니다. 공자께서 노나라 벼슬을 싫다고 내놓아버리시고 천하를 주유하실 때 만난 거죠. 산동 북으로 쭉 돌고 계실 때 만난 건데 선생께서 그런 자리를 잃어버리신 것, 벼슬 자리 잃어버리신 것에 대해서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가. 노나라 대사구 벼슬을 하실 적에는 대단했는데 그런 걸 놓쳤다고 제자들이 몇 몇 사람들이 이제 어떻게 우리 선생님 뜻을 펴시나 하고 있었겠죠. 그랬더니 무얼 근심하시는가.
ㅇ 天下之無道也久矣, 이 하늘 아래에 도가 없어진 지 이미 오래이다.
ㅇ 天將以夫子爲木鐸. 하늘은 장차 以A爲B, A를 B로 삼으려고 하신다. 하늘은 장차 선생님을 목탁으로 삼으시려고 하신다.
ㅇ 이 양반은 정확하게 봤죠. 정말로 공자는 오늘날까지 목탁이 되어있죠. 만일 노나라 대사구 벼슬만 계속 하고 있었다면 아마 안 남았을 겁니다. 이런 구절도. 6, 70대의 떠돌이 생활이 없었더라면. 그래서 이제 여기는 보충문제 비슷한 魯大師樂 해가 지고는 편마다 너 댓 개씩 나오는 그런 예문에 해당됩니다. 예문이면서 실전문제 비슷한 구절입니다.
제25절
子謂韶, 盡美矣, 又盡善也. 謂武, 盡美矣, 未盡善也.
자위소, 진미의, 우진선야. 위무, 진미의, 미진선야.
ㅇ 또 음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子謂韶, 선생께서 소음악을 일러서 말씀하시기를, 韶라는 것은 순 임금의 음악이죠. 순 임금을 찬양한 지금은 소라는 음악이 없고 정악, 아악 비슷하게 남아있는데. 참으로 아름답구나 또한 참으로 훌륭하구나. 하나 하나 아름답구나, 하나하나 사람의 마음을 깨고 들어오는구나. 그리고 謂武, 반대로 무왕을 찬양한 무를 일러서 말씀하시기를 참으로 아름답구나 그러나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깨고 들어오지는 못하는구나. 왜냐 무왕은 힘으로 눌렀죠. 아름다운 것을 펴긴 폈으나 처음에는 사람의 마음을 산 게 아니었죠.
ㅇ 이 구절은 한편으로 주 나라를 쫓겠다 하면서도 주 나라 태조인 무왕을 盡美矣 未盡善이라 했는데 요거는 참 눈여겨볼 구절입니다. 도대체 공자가 추구하고 있는 게 과연 주 나라에 그쳤던가 하는.
제26절
子曰, 居上不寬, 爲禮不敬,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
자왈, 거상불관, 위례불경, 임상불애, 오하이관지재.
ㅇ 子曰,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居上不寬하고, 위에 거처하면서 윗자리에 거처하면서 너그럽지 아니하고, 爲禮. 시대문화를 실천하려고 하면서 不敬. 스스로 마음 속에서 싹을 틔우려고 않는다면 또한 臨喪不哀한다면 상가 집에 임해서, 사람의 죽음에 임해서 슬퍼할 줄 모른다면, 장의사처럼 척척 일은 잘하는데 吾何以觀之哉. 내가 뭘 볼 게 있단 말인가. 무엇으로써 볼만한 거리가 있단 말인가. 나는 보고 싶지 않다 이런 뜻이죠. 그래서 禮라는 것의 근본이 외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다는 사실, 내면에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법으로써 사람과 사람끼리 통하게 된다는 것. 그런 통함을 이루는 전체적인 하나의 덕목을 仁이라고 규정을 내리시죠. 여기까지 시대문화를 낳은 총론으로 하면 1편인데 그 생각들은 하나하나 깊이 한번 생각해보시면 더 많은 생각들이 나실 겁니다.
◎ 보충설명
ㅇ 제3장을 구절 별로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첫 구절은 시대문화의 부재상황을 이야기하고 두 번째 문장이 시대문화의 부재가 근본적인 공동체 파괴와 관련된 것임을 지적하시고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세 번째에는 그러므로 시대문화의 그 근본에 공동의 원리, 함께하는 원리 그 仁이 깔려 있음을 말씀하신 거구요.
ㅇ 다음 구절에 가가지고는 그런 뿌리를 찾는 것을 시대문화의 뿌리라는 것이 앞에는 仁이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仁의 특징을 말씀하신 거죠. 바로 앞에서는 仁이 뿌리다 그리고 두 번째는 仁의 특징이 내면세계에서 아끼는 것, 삶을 아끼고 존재를 아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ㅇ 그 다음에 와서는 그러한 것이 결국은 하나의 시대문화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하늘과 사람의 하나됨, 사람과 사람 사이의 하나됨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사람의 대표, 하늘과 사람을 묶어주는 질서가 있어야 되는 것을 강조하신 거구요. 군장이라는 건 그런 질서를 상징하는 거죠. 그 질서가 현재 무너지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지적하셨죠. 태산에 제사 지내는 걸 용납 못하신다는 건 지금 질서가 무너지고 있지 않느냐, 하늘과 사람의 관계가 무너지고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무너지고 있지 않느냐 하는 점을 강조하셨구요.
ㅇ 그 다음 활쏘는 것을 이야기하신 구절에서는 서로 경쟁하되 양보하는 것, 사람은 주로 나설 때 나서고 나서지 않을 때 나서는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하늘이 지도자가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지도자의 덕목이죠. 또한 공동체의 윤리이기도 하구요. 이 윤리에 의해서 대표자가 뽑혀질 것을 강조하신 거죠. 그 다음 구절에서는 시대문화라는 것도 결국은 뿌리가 더 중요하다 하면서 그것을 한번 더 강조하셨습니다. 시경을 통해가지고. 이처럼 禮라는 것은 중요한 것인데 禮를 형식으로만 알아서는 안 된다 하고 강조하신 거죠. 앞에서는 禮가 무너지고 있다. 禮가 무너지면 공동체가 무너진다. 禮의 뿌리는 仁이다. 仁의 특징은 이런 것이다. 쭉 말씀하셨다가 이제 와서는 그런데 禮라는 것은 형식으로만 알면 곤란하다. 그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禮라는 것은 형식으로써 뿐만 아니라 형식 자체로서도 끊임없이 몇 대를 이어온 것이고 그러는 과정 속에서 공동체 원리로써 정착된 것이다. 하는 것을 이제 문헌 부족하다 등 등 하는데서 말씀하셨구요.
ㅇ 그 가운데서 가장 핵심적인 여러 시대를 이어온 禮의, 시대문화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사람과 하늘이 하나되는 형식이었다. 천제였다 하는데서 체제를 이야기하셨구요. 그 체 제사를 안다는 것, 하늘과 사람이 하나되는 그 원리만 안다면 세상 일이야 손바닥 보는 것처럼 쉬운 것 아니겠느냐. 사람과 하늘의 하나됨을 이야기하셨구요. 그 다음 사람과 하늘이 하나됨에 있어서 보이지 않고 느끼지 않더라도 직접 계신다고 작정하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해나가야 되지 않느냐. 그렇게 함으로써 이런 걸 확인해 나가야지 관념에 잡히지 말 것을 얘기하시면서 형식보다는 오히려 내용에 매달릴 것을 강조하셨죠.
ㅇ 그 다음에 각 집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체제와 관련된 것이 오제인데 성주 제사인데 이 성주 제사를 본말을 혼돈해서 이익을 쫓지 말 것을 시대문화라는 것은 공동체 원리를 가장 중요한 이익으로 생각하고 있지 먹는 이런 것을 이익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측면. 시대문화와 구체적인 이익과의 관계, 즉 시대문화와 공동체의 중요성 문제를 강조하셨구요.
ㅇ 그 다음에 와서는 주 나라는 이러한 의식을 쯕 발전시켜온 나라인 만큼 나는 그것을 한번 더 발전시켜보겠다 하는 의지. 전체적으로 그런 의식을 받아들이면 괜찮을 것이다 하는 당대의 시대문화의 표준을 제시하신 거죠.
ㅇ 그 다음 구절이 태묘에 들어가서 하신 건데 시대문화는 합의에 의한 것이고 어떤 지식에 의해서 앎에 의해서 추진해나가는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을 말씀하셨구요.
ㅇ 그 다음에 또 활쏘는 것에 있어서 관통시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면서 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문화라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마땅한 당위, 진리, 진실을 추구하는 공동체 문화라는 것을 말씀하셨구요. 공동체 문화의 중요성이 조그만 제물로써 희생양이라던가 또는 조그마한 인정이라든가 이런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씀하셨구요.
ㅇ 그 다음 이런 시대문화에 의해서 마음을 다져간다면 그 시대문화를 가지고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고 그 시대문화가 한 사회의 시대적 법률이 될 수 있다. 불문율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두 구절을 밝히셨죠.
ㅇ 그 다음 쭉 나오는 것이 약간 음악과 관련된 이것 저것 얘기를 하셨는데, 관저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바로 시대문화라는 것, 모든 음악이라는 것, 공동체 원리라는 것은 사람이 힘을 나게 하는 것이되 사람을 넘치지 않게 하는 것이어야 하고, 또한 사람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기쁘게 하나 그것이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넘치지 않는 공동체 문화의 자기 조절력으로써 중요한 내면세계를 이야기하셨구요.
ㅇ 그 다음 社나무의 중요성에 대해서 얘기하시는데 오히려 정반대의 이야기를 끌어내가지고 그것이 잘못 쓰일 경우에는 얼마나 무섭게 사회를 버릴 수 있는가 하는 그것은 제자의 오류를 통해서 설명을 하셨구요.
ㅇ 그 다음 관중을 예로 들어가지고 공동체 문화라는 것은 시대문화라는 것은 하나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면에서 미래를 생각하는 문화인 것이고 현재에서 이루려고 하는 성과위주의 문화여서는 안 된다 하는 점을 지적하셨구요.
ㅇ 그 다음 노태사에게 음악을 일러주시는 부분에 와서는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모두가 참여하고 공동체 문화라는 것은 모두가 참여하는 것이고 또한 그러면서 화음을 이루는 것이고 음악이 화음을 이루듯 화합하는 것이고 또한 절도가 있는 것임과 아울러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서로 구별이 있는가 하면 연결되고, 연결되는가 하면 서로 구별되니 그렇게 조화롭게 가는 것이 시대문화다 하는 것을 음악을 예로 들어서 말씀을 하셨구요.
ㅇ 그 다음 뒷부분부터는 약간의 사례를 들으셨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의봉인의 구절을 들어가지고 선생의 위치를 밝혀두신 겁니다. 시대문화에 있어서 선생의 위치죠. 여기서는 우리 선생님인 공자의 위치는 시대문화를 밝히시는 목탁이 되시는 것이다. 이렇게 밝혀놓은 셈이면서 몇 가지 생각을 더 해볼 바가 있을 거구요.
ㅇ 그 다음에 공자께서 말씀하신 얘기 – 목탁이 되는 얘기- 비록 주 나라를 표본으로 삼으셨다 하지만 추구하신 바는 거기에 머무르시지 않으셨다 하시는 이야기를 하셨구요.
ㅇ 끝에 세 구절은 보충문제라 생각하시면 되요. 제1, 2, 3장, 매 장마다 이렇게 보충문제가 나오는데 체계가 이렇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어록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은 이론서입니다.
ㅇ 그 다음 제4장은 전부 개인적인 내면의 행위와 관련된 사적인 면에 있어서의 하늘사람의 판단기준, 하늘사람의 근거, 하늘사람이 되는 원칙 이런 것에 대해 가장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사람으로써 지켜야 되는 정언, 정행, 정심, 그런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언, 정행, 정심하는 구절이 대개 제4장에 나온다고 그러면 맞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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