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글 지대를 지나가야 한다. 거머리가 많아서 신발과 양말에 담뱃가루를 묻히고 마음도 다잡아 출발했다. 내 짐을 들어주며 같이 가는 고소포터 앙팀바는 카트만두에서 처음 만났는데 첫 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영 믿음이 가지 않았다. 뼈만 앙상한 마른 체격이 허약해 보였고 바람만 불어도 휘청거릴 것만 같은 약한 다리가 부실하게 보이고, 얼굴은 가무잡잡하고 무뚝뚝했다.
포터의 역할이란 것이 무거운 등짐을 지고 험한 산길을 하루에 16Km 가까이 걸어가야 하는 힘든 일이다. 해발5000m가 넘는 산길을 오르내려야 하고, 절벽 중턱의 좁고 위험한 길도 가야 한다. 협곡의 폭포 길도 건너야 하고 매섭고 차가운 눈보라도 견디며 지나가야 하는 힘든 일이다. 그리고 성실한 태도로 등반을 도와야 하는데 처음 본 앙팀바는 영 믿음이 가지 않았다. 혹시 가다가 며칠 만에 쓰러지는 건 아닐까. 아니면 도저히 더 이상 못 가겠다고 포기할지도 몰라. 그럼 저 짐은 어떻게 하나. 나의 불신은 이어졌다. 소개해준 네팔에 사는 친구의 체면 때문에 싫은 내색을 하지 못하고 내 등반 계획을 설명했지만 별로 탐탁치가 않았다. “좋은 인연입니다.”하며 의례적인 인사를 건너면서도 불안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오늘 가는 간두룽의 정글 코스에는 담뱃가루가 필요할 거라며 시키지도 않았는데 담뱃가루를 구해와 챙겨 넣었다. 막상 카라반을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불안이 차츰 누그러져 갔다. 앙팀바에게 맡겨진 짐은 식량과 간식거리, 겨울 옷가지, 취사도구와 등반 장비 책 등을 넣은 커다란 짐이다.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길이 다 쓸려나가서 길도 아닌 자갈밭이나 흙탕길을 걸어야 했고, 잘못 발을 디뎠다가는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 질 것 같아 절벽 길을 통과할 땐 산 쪽으로 몸을 바짝 붙여 숨을 죽여야 했다. 천인단애 계곡을 이어놓은 줄사다리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며 간을 조렸다. 정글 길의 거머리는 예상대로 수도 없이 몸에 달라붙어 양말과 옷 속을 파고들었다. 걸으면서도 거머리를 때어 내기에 정신이 없었다.
걱정했던 앙팀바의 가는 다리는 나와의 일정한 간격을 꾸준히 유지하며 따라 왔고 간혹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농담을 걸기도 했다. 오후가 되면 지치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피곤한 내색 한번 않고 바싹 내 뒤를 따라 붙었다. 잠시 휴식을 할 때도 짐을 진 채 멈춰 섰다가 이내 걷곤 하였다. 허약해 보이던 앙팀바가 갑자기 장사가 되어 있는 듯 보였다. 며칠이 지나면서 오히려 내가 먼저 지쳐서 쉬어가자고 했다. 험한 언덕길에도 앙팀바는 숨소리 한번 안내고 사뿐사뿐 잘도 올라갔다.
내 불신의 기우와 불안은 눈 녹듯이 사그라졌다. 마치 상전을 모시는 하인처럼 온갖 궂은일과 잔심부름도 마다하지 않았다. 항상 내 식사를 먼저 챙겨주고 설거지도 해주려고 한다. 잠자리도 살펴주고 세수 물까지 데워다 주니 오히려 거북하기까지 했다.
앙팀바가 온 종일 고된 일을 하고 받는 대가는 7000원 정도다. 거기다 숙식비를 빼고 나면 도대체 얼마나 남을지. 그나마 일거리가 있는 날은 일년에 절반 정도라니 그의 살림살이는 도무지 셈이 안 된다. 집에는 아내와 두 아이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가 궁색한 표정을 하는 걸 못 보았다. 하루를 마치고 차 한 잔 나누며 난로 가에 앉은 그의 표정은 언제나 느긋하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내가 입던 셔츠와 바지 한 벌을 주었더니, 고맙다고 몇 번이나 절을 한다 아무데나 벌렁 누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앙팀바를 보며 제법 큰 돈을 주고 사 입은 등산복이 아까워서 앉을 때마다 자리를 고르는 내 꼴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라반을 시작할 때는 내가 훨씬 부자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그가 훨씬 여유롭게 보인다.
그들은 불편한 원시적 생활에도 아무 불만이 없었다. 그저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소박하고 인간적인 자연과의 동화에 만족하며 행복해 한다. 도시 문명인들이 우월감에 젖은 묘한 오만과 착각의 어리석음을 깨달으며,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행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영화 ‘부시맨’으로 큰 돈을 번 자연인 부시맨이 결국 도시와 부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이유를 이해할 것 같았다.
첫댓글 알파인에세이(산악수필)는 관심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