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마지막 날, 춘천 갈 채비를 하다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상조회장이었다. 김00선생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겠느냐고 한다. 전남 고흥이었다. 잠시 망설였다. 몸은 가지 말자 하는데 마음은 가라고 했다. 가겠다고 하니 상조회장도 조금 놀라는 기색이다.
12시에 6명이 상조회장 차를 타고 출발했다. 햇빛이 어찌나 좋은지, 오랜만에 먼 곳을 가서 그런지 여행 기분이 들었다.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교통량이 적어서 막힘없이 내달릴 수 있었다. 깔깔거리며 웃다가 사이사이 잠깐씩 졸다가 오후 5시 무렵에 순천에 도착했다. 잠시 순천만 갈대숲을 보고 가자 하니 모두 좋아라 했다.
몇 년 전 미명의 새벽에 이곳에 왔었다. 그 땐 갈대숲 사이로 목책 산책로가 없어서 그저 발돋움으로 어둠을 웅시하며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끝 간 데 모르게 펼쳐진 갈대숲에서 일렁이는 바람의 기척을 들으며 마음 한 구석에 끼적끼적 낙서를 했다.
먼동 트는 하늘가 120만 평의 갈대밭 / 아직 철새도 날아오지 않은 11월 바람만 가득하고 / 억겁의 세월을 거슬러 한 생명의 들숨과 날숨이 / 구멍구멍마다 고여 있는 시커먼 눈동자를 보라 / 사진에라도 찍힐까 새벽 안개 틈새로 피어올라 / 뻘흙 묻힌 바짓가랭이에 가루로 달라붙는 시간의 꿈
저물녘 바람끝이 차다. 한 뼘도 남지 않은 야윈 겨울 햇살을 받으며 갈대숲이 흔들렸다. 흔들릴 때마다 숲을 이룬 갈대들은 제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듯 오롯이 홀로였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저 갈대들이 어찌 각각의 존재임을 알 리 있을까. 숲을 이루었을 때는 단지 멋진 풍경이었지만, 바람에 흔들리며 각자의 몸을 보여줄 때는 물기가 다 빠져나간 앙상한 몰골의 슬픈 존재였다. 슬픈 것들이 서로 몸을 의지해 서걱이는 소리를 시인 신경림은 속으로 조용히 눈물 흘리는 울음으로 들었다. 귀 밝은 시인이기에 그리 들렸을 게다. 시인들은 타인의 슬픔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그 민감성은 고요하게 상대를 보듬어 주는 눈빛이다. 조금도 채근하거나 윽박지르거나 하지 않고, 그저 그 슬픔을 있는 그대로 알아주고 아주 조금 같이 느껴주는 마음이다. 시인이 아닌 나는 그 자리에서 갈대가 우는 소리를 들었던가?
서산마루에 2008년의 마지막 해가 걸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서산마루에 노을이 내려앉고 어둠이 깊어지는 하늘에 한 무리의 새들이 지나간다. 벌교를 지나 좁은 국도를 지나는 사이 작은 마을들이 불을 밝히고 새들이 지나간 하늘엔 별이 떴다. 고흥은 이제 지척인데도 참 아득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뜨고, 한 해가 저물고, 새들이 어디론가 날아갔다.
문상객들이 많았다. 김00 선생님은 이렇게 먼 곳까지 오실 몰랐다며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른다. 어머님의 손은 참으로 따뜻했다. 먼 길이지만 오기를 잘 했다. 이제 막 사회인이 된 딸의 직장에서 상사가 문상을 왔다. 마냥 철부지인 줄만 알았는데 직장에서 제 몫을 잘 해내는 것 같아, 딸을 바라보는 그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뿌듯할까. 지난 8월 말에도 순창까지 할머니 문상을 갔었다. 그 때 그 부모님의 눈빛도 그랬다. 내가 굳이 이 먼 곳까지 문상을 온 이유도 바로 그거였다. 사실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애도하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다만 나와 함께 근무하는 젊은 선생님의 낯을 세워주기 위해서 문상을 한다. 아마도 나이 지긋한 선생님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이 먼 곳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전라도는 상갓집 음식도 잔칫집 음식처럼 맛있다. 전골까지 곁들인다. 조미료 범벅에 뻘겋기만 한 육개장을 안 먹어도 된다. 배불리 저녁을 먹고 여수로 향했다. 일행 중에 이제 2년차인 여수가 고향인 선생님이 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여수에 내려주고 우리는 바닷바람을 잠시 쐬고 올라가기로 했다. 여수 선생님은 그새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부모님이 모두 나오셔서 맛있는 회를 사주셨다. 미안하기보다 고마웠다. 막내딸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시선은 그저 대견해 죽겠다는 듯했다. 도대체 부모란 무엇인가, 잠시 부모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처음 교사 발령장을 받았을 때와 교감으로 승진했을 때 우리 부모님들도 저런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셨겠구나. 그런데 나는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자랑스러워하는 엄마를 타박했고 학교에 오시고 싶어 하는 것을 못 오게 하였다.
10시 30분 여수를 출발했다. 불야성을 이룬 여천공단을 지나치면서 잠이 들었나 보다. 눈 뜨니 담양 근처를 지나는데 눈발이 거세다.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이다. 자동차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헤드라이트에 비친 눈발은 어찌나 센지 무섭기조차 하다. 운전자는 조바심을 내는데 우리는 바깥 풍경에 사로잡혀 감탄사를 연발했다. 캄캄한 밤 천지가 온통 새하얗다. 하얀 눈 풍경 속에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뭉개진다. 아득한 저곳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불러내는 것 같다. 그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어떤 곳인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가야 할 곳 같다. 맞은편 하행선을 달려 내려오는 차들의 불빛들이 영롱한 무늬로 느껴진다. 우리가 가는 저곳을 다녀오면서 황홀해하는 것 같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니 무릉도원에 복숭아꽃잎 대신 눈꽃이 피었다. 정읍휴게소였다. 2008년이 2009년에게 자리를 내주고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았다. 고요했다. 시간의 골짜기를 하얀 눈이 뒤덮었다. 아무 미련도, 어떤 기대도 없이 시간과 시간이 악수를 하고 각자의 방향으로 흘렀다. 흐르는 흔적 위로 흰눈이 내렸다.
전라도를 빠져나오자 눈발이 가늘어지더니 중부권은 맑기만 하다. 텅 빈 거리 가로등만 환한 서울의 밤풍경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같다. 서늘한 고요와 시린 고독 속에 서울은 잠들어 있다. 간혹 순찰자만이 지나간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4시가 다 되어 간다. 길 위에서 가는 해를 배웅하고 오는 해를 마중했다. 아직도 꿈결 같다.
첫댓글 " 맑고 빛나는 것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언제나 큰 기쁨입니다. 시, 사랑, 추억, 무지개, 들국화, 길, 시간...." (곽 재구 님의 "아름다운 포구 구만리 " 中에서 ) 문상 다녀오는 길 위에서의 미루님의 새해맞이의 "여운"이 제게도 전해지네요..^^*
'길'과 '시간'에 공감합니다. 길이 없다면 삶이 얼마나 쓸쓸할까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면 삶이 얼마나 무서울까요.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미루님의 글이 잔잔한 여운을 줍니다...
그래서 길은 영원하지요. 영원하기에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지요.
미루님의 꾸밈없는 따뜻한 마음과 인격이 글에 묻어나와 읽는 사람을 감싸주는 느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사실 나는 조금 까칠한 사람인데 공적인 관계에서 드러내지 않으려고 할 뿐이랍니다.
새해를 일행과 같이 길위에서 맞으시는 모습이 떠오르는 듯합니다. 로드무비+버디무비 두편의 영화같은 장면으로...
영화가 되려면 한 남자가 등장하여 어정쩡한 로맨스 구도를 만들어야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