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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 화 (유선대 그리움둘릿지)
이른 아침 다섯시반 아직 일어날만 하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체조와 아침식사를 마친 후, 초보자반인 우리도 본격적인 등반교육을 시작한다.
그래서 그런지 짐이 들린 어깨도 무거워지고, 설렘 반 두려움 반 마음도 무거워진다.
딱히 어택베낭이라고 할 것이 학교가방이었는데, 영 창피하고 상태도 아니여서 70리터짜리 옆에 그물망은 헤지고 겉으론 색이 바랜 빨간 베낭을 메고 교육집합장소에 나와있다.
간단한 조회가 끝나고 출발한다. 비선대1층식당을 통과하여 계단으로 한 번을 건너 왼쪽으로 가는 계단을 냅두고 옆으로 가는 길로 어프로치를 시작한다. 어프로치는 30분 ?! 가량의 첫 어프로치 치곤 평균적이고 괜찮은 수준이었다. 바위에서 힘빼고 정신력도 약해져서 퍼지는 데 큰 도움이 됐던 천화대릿지에서의 어프로치와는 달리 유선대 그리움둘릿지는 어프로치가 그걸 끝이었고 쭉 바위로 이어진 능선(릿지)를 오르면 되서 많이 달랐다.
'그리움둘' 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들은 사연이 있어 말해보자면
원래는 그 길을 우리 조 원종민선생님이 내려고 하셨다가 3조에 계셨던 김성기 선생님이 자신에게 양보해달라고 하길래 양보해주셨다고 한다. 그 길을 올라 경치를 보면서 돌아가신 두 분을 그리워한다고 해서 김성기 선생님이 '그리움둘' 이렇게 지으셨다고 한다. 사람들은 종종 유선대릿지라고 부르지만, 원종민선생님은 길을 낸 사람이 이름을 지었으면 그렇게 부르는 게 맞다고 그리움둘릿지로 부르는 게 옳다고 하셨다
우리 초보자반 5조는 그리움둘릿지를 1피치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1~2피치 후 하강하는 지점부터 3~8피치를 시작했다. 나는 어제 장군봉 기존길 하단에서 했던 시뮬레이션 대로 A조 라스트.. 즉, 어제 시뮬레이션과 같은 순서로 등반이 시작됐다. 김팔봉 선생님이 줄을 까시고 그 뒤로 바로 원종민선생님이 올라 김팔봉 선생님을 지나 톱을 하시고
김팔봉선생님은 뒤에서 남아 A조 B조 세컨드,써드의 학생들 등반을 도왔고, 특히 어제부터 카메라를 찍는 일을 맡아 열심히 임하셨다. 그 날 나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었을 떄 확보자에 기대 연신 건방진 표정을 지었다.
반면에 박태원선생님은 뒤에서 남아 남은 폴쓰 라스트까지 여러 명의 지도를 맡으셨다. 특히나 수고를 많이 하셨는데, 그 날 이런 말을 하셨고, 그 후로도 여러번 그 말이 나돈다.
"성문아(95kg나가는 젖살도 안 빠진 이 며칠간의 교육에 있어 갑갑해보이던 같은 조의 1살 형) ~ 내가 이번년도 도르래(해외원정같은 걸 갔을 때, 무거운 짐따위를 들기 위해 쓰는 장비)를 두 번 쓰는 데, 두 번째는 오늘 너다 ~~"
나는 내 확보를 봐주신 동식이형이 텐션을 바짝 주셔서 올라오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또한, B조 라스트셨던 덕희형님은 예삿 실력이 아니셔서 뒤에서 말도 많이 해주시고 해서 도움이 됐다. 중간 중간에 한 두 번쯤에 있는 언덕같은 곳은 선생님들은 그대로 오르시고 우리는 슬링을 잡고 발에 거는 둥 퀵드로를 잡는 둥 인공등반을 하여 올랐다.
라스트라서 그런지 확보를 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암벽화를 벗고 경치를 바라봤다. 형님들은 고도감이라고 표현하셨는데, 높이 서있는 이 기분 잠시나마 선신이 된 것같아 나른해지고 졸려오기까지 했다. 오를 때 계속 내 곁에 계시던 덕희형님은 경치를 바라보며 "저기 있는 게 형제폭이죠 선생님 ~ 아 죽이는데 ~" 하시며 연륜과 등반경험이 엿보였다.
조장님 라유미누님은 B조 폴쓰로 네번째로 등반하는 데 바로 내 앞으로 등반하셨다. 하도 몸이 가벼우다 보니 못 올라간다는 엄살과 달리 위에 계신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잘 올라가셨다. 그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목소리로 "아 어제처럼 쉬운 데에서 계속 할 줄 알았는데 오늘 갑자기 .. 오후 ~ "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고개를 저으며 엄살을 피우셨다. 오늘 보니 딱따구리를 닮으셨다.
예린누님은 A조 써드로 등반하셨는데, 해양경찰 출신이시라 처음이어도 곧잘하셨다.
가끔씩 엉뚱하게 그 올곧고 정직한 공무원의 목소리로 완료 대신 "도착 ~" 을 외치기도 하고, 가지가 맞는 지는 모르지만 작은 나뭇가지를 떨어뜨리는 데 "낙↗~ 가↘지이..~" 이러시며 우리에게 소소한 웃음을 주셨다.
조장님이 손가락으로 저 위를 가르키며 "저 위에 살짝 점프를 해야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데 ~" 하는데 어제 이론시간에 배우게 된 폭발적인 순발력과 운동신경으로 점프를 하는 기술인 다이나믹점프가 떠올라 내가 "아 다이나믹 점프를 하는 건가 ~ 음 난 거기서 다이나믹 빌레이를 받게 되겠군" 하니까 옆에 동식이형이 사람좋은웃음을 지으며 "윤섭씨 이야 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 어록 생기겠는데?" 하시며 웃으셨다... 아 뭐이런 걸 다 .. ㅋ
조장님이 말했던 그 곳은 언덕이었는데, 모두가 슬링을 발에 걸고 일어서야 했던 말대로 고난이도 구간이었다. 김팔봉선생님과 박태원 선생님은 그냥 올라가셧다고 했는데, "아 이거 난이도가 좀 낮게 나온 거 같다고 장난아니라고" 등반을 마치고 산장에 들어와 선생님들앞에서 그리 말하셧다.
꽤나 나른한 등반이 끝나고 정상에 올랐다. 두번째릿지지만, 첫번째릿지와는 다르게 숨이 쉬어지는 듯 햇다.
원종민선생님이 "어 오랜만이네 ~" 하며 익살을 떠시길래 나도 능청스럽게 "아 선생님 오랜만이예요 잘 지내셨어요 ?" 라고 답했다. 참 유머러스한 분이다. 자부심도 굉장히 강하시지만..
모두 올라와선 쉬면서 행동식을 꺼내먹거나 경치를 보고 있었다. 그 떄 조장님은 나를 의식한 듯 천화대가 어디냐며 선생님께 물었다. 박태원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저게 천화대라고 일러주셨다. 나는 아 저긴가 하고 멍하니 바라봤다. 그 때 아차하셨던 듯 원종민선생님이 아 올라왔으니 주위를 둘러보죠 다들 모여보세요 하곤 저긴 어디 저긴 어디 일러주고 물어보면 다시 일러주고 그러셨다. 나는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겟고 산에 대한 무슨 느낌이 없어서 저기가 뭐라고 일러줘도 아 그렇구나 하고 헤깔리며 고개를 저어버렸다.
단체사진을 찍고 하강을 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 김팔봉선생님이 마지막으로 하강하시고 원종민선생님이 가장 먼저 하강하셨다. 내가 하강할 차례가 왔고, 어김없이 김팔봉선생님이 카메라를 얼굴에 낀 채 황윤섭씨 여기 봐요 하신다.
또 건방진 표정을 하니 "뭐야 그 건방진 표정은 ~" 하시며 웃으며 사진을 찍으셨다.
비선대길이라는 길을 통해 내려왔다. 다섯시 반정도에 산장에 도착했다.
민혜형은 먼저 와서 우리 5조 밑에 배정받은 6조 조원들이 있는 곳에 조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계시다가 내가 오니 날 보고 "힘들었냐 ~" 하고 물어보시길래 "아니요" 하고 바로 내 할 일을 하는데 "아 이 새끼 힘든데 안 힘든 척 하는 거봐ㅋㅋㅋㅋ" 나는 안 힘들었지만, 위트있게 넘어가려고 에잇 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어디에 썼는지 기억에 없는 물이 묻은 휴지를 1층과 2층을 잇는 사다리 옆에 내 자리쪽의 난간에다 던지니까 민혜형은 쌤통이다 한 듯 나를 비웃었다.
씻고, 저녁을 먹는데 고기다운 고기가 나왔다. 평소에는 친구가 안주로 만들어 그냥저냥 먹던 그 고기두루치기..
나는 황홀하고 오랫동안 기다려왓던 그 채소와 야채론 대신할 수 없는 씹힘에 환호했다. "오호 맛있어 ~"
그러니까 저기 자신의 조원들과 식사를 하던 민혜형이 "미친 놈" 이라고 또 비웃는다.. 그 옆인가 앞에 있던 막내는 평소에 그 풀떼기반찬에 편식을 하다 고기가 나와서 두 그릇을 먹는다고 민혜형에게 꾸중을 듣는다.
근호형은 식당으로 내려가는 중간계단으로 통하는 문 맞은 편에 배정받은 4조로 아저씨들에게 둘러쌓여 연습을 하고 계신다.
식사를 끝내고 쉬다 어김없이 학생장님의 "집합 5분전입니다 ~" 소리를 듣고 노트와 펜을 챙기고 산장 1층으로 내려간다.
세 번쨰 이론수업은 김성기 선생님의 "암벽등반개론"
교육에 앞서 역시나 해외원정사진을 슬라이드로 보여주셨는데, 웃음을 자아내는 선생님의 캐릭터가 이 때 시작됐다.
원정에서 찍은 독사진을 보며 능글맞은 말투와 제스처로
"아 이거 아무나 합니까 ~ 저니까 하는 겁니다."
옆모습으로 저 넓게 펼쳐진 광야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 암벽난이도할아버지가
"아 선~생님 저어~건 누굽니까 ~ ?" 이렇게 물으니까
"당~연히 저죠 ~ 저 아니면 안 찍습니다"
글로만 보면 안 웃길지 모르는데, 이 선생님은 웃기다.
한 원정사진에서는 우리 조 선생님인 원종민선생님과 다른 조 선생님인 이민호선생님과 같이 간 곳인데,
원종민선생님과의 사연이 있다.
김성기선생님버젼
"(사진을 손으로 가리키며) 제가 저 곳을 먼저 올라가고 있는데 저어 ~ 뒤에서 "같이 가 ~" 라고 원종민선생님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 목소리가 힘이 딸려서 같이 좀 가자는 것 같애서 그냥 무시하고 올라갔죠 ~ 결국 끝나고 불려가서 한 시간 반동안 맞았습니다 (모두 자지러진다) 내가 해준 밥 먹고 그 따위로 할거냐 이런 말 들으면서요"
암벽난이도할아버지가 "아 그런데 그렇게 마알 ~ 씀 하셔도 되는 겁니까 ~?" 하니까 김성기선생님이 재치있게 맞받아치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산장뒤에 한시간반 또 불려가면 되죠 뭐 ~ 죽지는 않더라고요 ~ ㅋ"
"제 뒤에는 이민호선생님이 자일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길을 잃었다가 원종민선생님하고 만난거예요 원종민선생님이 같이 갈래 하니까 이민호선생님이 원종민선생님을 보고 힘들것같아 아니요 라고 하셨었죠"
이 이야기는 마치 원종민선생님이 힘이 딸려서 못한거면서 괜히 김성기선생님을 혼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저기서 이민호선생님한테 같이 갈래라고 했을 때 그 말은 같이 (올라)갈래 의 의미인 것 같다.
그 이야기가 끝나고 다음 사진 3대 북벽에 속하는 그랑드 조라스에서
원종민선생님이 원래 이 곳을 가시려고 그 원정을 가셨다가 눈이 많이 쌓여서 그냥 쫄아서 돌아갔다고
그냥 쫄았어 라고 부른다고 하고 그리 불렀다.
사이사이 또 원종민선생님이 보여주셨던 곳에서 테라스는 호텔급이라며 자기와 자기멤버가 걸터앉아 자는 모습 등을 대비시켜주셧다. 그리 따져서 우리 비선대 산장은 7성급호텔이다 .. 원종민선생님과의 친분이 보였던 사진설명이다.
교육이 시작됐다.
"여러분 ~ 등산이 무엇입니까 ?" 암벽등반개론이라는 수업이름과 맞는 시작멘트였다.
처음엔 우리를 보다 대답이 없자 학생장님께 대놓고 물어보신다.
"학생장님 정규반을 나오셨으면 알텐데 ~ 등산이 뭐죠~ "
"음.. 말 그대로 해서 산을 오르는 것 ..?"
"예 그것도 맞죠 ~ 또 다른 분 없나요 ~ "
여기저기서 그 사이 자신감을 얻고 아무렇게나 대답하고 정리를 하신다.
"예 ~ 등산이란 산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를 등산이라고 합니다."
등정주의 -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을 중시하며 가는 길이 쉽더라도 정상에 올랐다면 됐다라는 생각
등로주의 - 벽과 같이 어려운 길, 자신이 택하며 가는 길을 가며 얻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걸 중시하는 것
알피니즘이라는 사상이 나오는데, 등로주의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북벽시대를 소개하며 학생장님에게 3대북벽을 물으셨고 대답이 없자 정규반 나오신 분이 그러시면 되냐고 한탄하셨다.
북벽이란 햇빛이 등지고 그늘이 진 거대한 벽이다.
3대북벽 - 마터호른, 아이거, 그랑드조랑스(그냥 쫄았어)
특히나 아이거북벽이 기억에 남는데 그 곳을 초등하기 직전까지 10명가량의 클라이머가 죽은 연혁을 볼 수 있었다. 그 시대에는 그 곳을 초등하는 것이 마치 국가적 위상을 높이는 것처럼 명예가 드높은 일이였다.
여러 암벽등반의 시대를 설명하다가 한국등반역사쪽으로 들어가는데,
신상만이라는 이름이 옆에 두 이름 사이로 빛났다. 대둔산에서 묵념했던 그 곳에서 들었던 이름이다.
그 세 분은 자를 쫘악 그어놓고 그대로 올라가자는 일념하에 뭉쳤다고 한다.
선생님 말로는 이 세 분은 한국산악에 있어 엄청난 발전을 자아냈고, 등반기술로는 그들을 능가하는 사람이 안 나타났다 볼 수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 분이 우리 동아리란 거에 참 ..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 뒤로는 어떤 두 명이 있었는데, 정상에 오르고 가다가 깊은 데 한 명이 빠져 구하면서 서로 죽을 뻔하다가 결국에는 어디까지 가서 살아남은 유명한 이야기.
그 외로 웅장하고 아찔한 사진들을 보여주시며 워킹만으로도 만족하고 돌아간다는 돌로미테, 사람이 많이 모른다며 추천해주시기도 했고, 미국에 있는 요세미테국립공원, 전 세계의 클라이머가 모이는 곳, 곰이 있어 식량창고가 따로 있어 얼마마다 열쇠잠금방식을 바꾸는 곳, 일정 수용인원을 둬서 그 인원이 차면 못 들어가는 곳을 보여주셨다.
그렇게 교육이 끝나고 또 조모임시간이 왔다.
선생님들이 오늘 등반에 만족해하셨다. 시스템이 잘 되있어서 잘 된거라고 박태원선생님이 말하셨고, 또 도르래 2번째 쓴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어제에 이어 음료수를 먹는다. 그러다가 조장님이 김성기선생님이 이번 수업에서 "원종민선생님과 관련해서 이렇게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좀 그 이야긴 마치 선생님이 힘이 딸려서 그렇다는 식이었는데 맞나요?" 하고 물어보셨다.
원종민선생님버전이다.
"그니까 그게 아니고 제가 아침에 이민호선생님이랑 같이 아침을 열심히해서 김성기선생님은 그걸 먹고 그 뒤에 우리가 휴지로 닦고 정리하는 데 그냥 가버리는 거예요 글쎼 다른 분 XXX라고 계셨는데 그 사람이랑 먼저
그러니까 빨리 올라간거죠 그러고 앞에 이민호선생님이 로프를 가지고 잇었는데 길을 잃어버린거에요 그래서 내가 김성기강사보고 같이가자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 어둠속에서 랜턴 불빛이 한 번 저를 비추더니 그냥 휙 돌아서 올라가는 거죠 제가 또 그러다 길을 잃었던 이민호선생님을 만나서 같이 내려갈래 이러니까 그러자고 하고 내려간거죠 제가 거기 정상을 얼마나 올라가고 싶었는데 ~ 그래서 불렀죠 .. 내가 해 준 밥 먹고 그럴 수 있냐 이런 식으로 혼낸거죠.. 그냥 쫄았어 얘긴 맞고요 ㅋ"
역시 삼자대면이 필요한 거다 어떤 상황에 있어 누구 하나 억울하지 않을라면 ..
그걸 들은 조원들은 충분히 이해를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원종민선생님과 덕희형님의 만담이 이어졌는데.. 너무 길어 드문드문 기억난다.
'서로 칼에 맞아봤다. 원종민선생님은 오는 칼을 순간적으로 손으로 쥐었다며 흉터를 보여주시고 덕희형님은 허리 가장자리로 들어오는 걸 순발력으로 피했다하셨다.'
덕희형님이 백담사 패싸움이야기 알아요 ? 하니까 곧바로 원종민선생님이 제가 거기있었다니까요 하고 낚시줄을 물은 물고기처럼 대답하셨다.
'백담사 패싸움 이야기... 원종민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 현장 가운데 텐트를 치고 계시는데, 험악한 분위기의 그 까까들이 언제 나갈꺼냐고 물어보니까 후덜덜해서 내일 나갈꺼라니까 그럼 조용히 계슈라고 답하셧다고 한다.'
덕희형님이 필두로 서로 그런 살벌한 이야기를 꺼내시다 덕희형님이 그래도 일본야쿠자가 오면 다들 숙인다 라는 말을 계속 마무리하듯이 반복하셨는데, 원종민선생님은 일본을 싫어하셔서 화제를 바꿔 일본산악은 우리 산악에는 안 된다며 한일연합산행얘기를 해주셨다
'한국산악회랑 일본산악회랑 연합해서 설악산을 등산했는데, 한국산악회가 빠따를 쳤다고 한다.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 참'
그러면서 선생님은 옛날 일제시대 떄 지진이 일었는데 이게 조센징 탓이라며 그 선조들 모두 핍박당하다 죽으셨던 사건 등 일본이 저질렀던 참행들을 풀어놓으시고, 우리가 없었으면 그들도 없다. 그 혈육들 대부분이 우리 피고 그 일본 토종은 10% 뻐드렁니 난쟁이똥자루들이다. 둥 일본을 싫어한다고 직접 말하시며 그 티를 내셨다.
내가 남은 캔맥주 하나를 건네며 "토해내세요 선생님 ~ " 하니까 모두가 웃는다.
입담이 대단하신 것 같다니까 말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재치있게 받아주신다.
그러다 조원들 중 누군가가 일본은 어차피 가라앉을 땅이라며 끝내려니까 이번 일본에 있었던 지진을 또 말하시며 만담이 다시 시작된다. 이젠 지구종말에 대해 말하신다.
'빙하기와 간빙기가 있는 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 물이 불어나는 간빙기라고..
예전엔 일본과 한국이 원래 이어져있던 땅이었다고 .. 빙하가 녹아서 이렇게 됐는데, 섬들이 다 산이라고..
지금 녹으면 설악산 이 봉우리들이 섬이 되고 다 죽는거라고 .. 조만간 뭔 일이 나도 분명 있을 거 같으시다고 ..'
그러다 북극에서 빙하가 아니라 석탄같은 걸 보셨다고 하니까 또 이번엔 이덕희형님이 옳다구나 하는 듯한 말투로 아 그건 내가 좀 알지 하면서 석탄과 지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
또 갑자기 기억나는데, 어떻게 어디서 언제 이 이야기가 나왓는지는 모르겠으나 원종민선생님은 한국산악회에 대한 불만과 부조리를 말씀하셧다.
'매해 무슨 상 무슨 상 투표하는 날이 오면 듣지 못햇던 옛날 사람들 이름만 나온다. 다 옛날 경력 가지고 운운하며 지금은 클라이밍을 안 하시는 사람들 뿐이라고 닦달하셨다. 뭐 옆에 있는 박태원선생님은 대한산악혁맹 이사를 지내시면서 현재도 이렇게 활동하시는 분이지만, 그 옛날 것 운운하며 지금은 하지도 않으면서 상을 받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봅니다.'
그 외 강사 2급 자격증 따려는 사람 중 밑에서 부상을 당하거나 의식을 잃었을때 취하는 조치따위를 하는 사람이 50명에서 2명 정도 밖에 없다는 말도 하시고 자기가 원정갈때 한 푼도 안 대준 한국산악회에 끝내 복수를 하시겠다는 말도 하셨다.
그리곤 이제 시간이 늦어진다 생각하고 원종민선생님이 마무리하시며 모두 정리를 하고 취침을 향해 모두 중앙계단으로 올라간다.
모두가 잠든 밤 .. 2층의 이 자리는 아직도 불편하다. 후덥지근 하다.. 잠이 안 온다.. 뒤척인다.. 비가 꽤 온다.. 내일의 교육이 어찌 될까 궁금해진다.. 계곡소리는 볼륨업을 해 크게 산장을 덮어온다,.
8/17 수요일 (비옴, 실내교육)
이젠 다섯시반은 무리다.. 씻지 못하고 부랴부랴 학생장님의 집합소리에 맞춰 슬리퍼를 대충 신고 눈을 비비며 체조집합장소로 내려간다. 비가 그치지 않은 이른 아침 .. 몸을 데우기 위해 처음으로 시작하는 PT체조는 일요일아침 30회를 시작으로 10회씩 증가하여 벌써 60회이다. 전혀 몸이 잠을 깨지 않은 이 시간에 오늘은 60회입니다 라는 소리에 괜히 울컥한다. 다행인 건 체조는 끝까지 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끝까지 하고 싶었으나 비가 그치지 않아 서둘러 들어가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한다.
때아닌 막간의 휴식시간이 왔다. 그 사이 덕희형님은 막둥이인 내가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니 자신도 잠을 잘 못 자겠다며
밑에 6조의 빈 자리로 옮겼으면 해서 그 사이 자리를 옮겼다. 언제 사라진지도 모르게 6조 멤버 두 명은 사라졌다. 부상 당한 사람이랑 헬기를 불러달라 했던 타조같이 생긴 사람..
아 그리고 비가 오는 가운데에서도 유석이형이 속한 1조는 구절초를 가기로 한다.
그 뒤로 선생님들은 비가 더욱 세차게 오는 걸보고 구조하러가야 되는 거 아니냐고 갸우뚱하신다.
선생님들은 비가 오는 오늘의 교육의 진행을 정리하기 위해 회의를 하고 끝내 오전 실내교육 오후 영화감상 및 설악산에 얽힌 여러얘기로 하기로 한다.
여태까지완 다르게 교육집합을 실내에서 하게 되었다.
2층잠자리를 마주하고 있는 걸상같이 이어져있는 잠자리에 학생 모두가 둘러앉는다. 난 맨 왼쪽 5조 6조와 같이 앉아있다.
더 왼쪽엔 선생님들이 앉아있다. 이민호선생님은 책읽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 외 몇 분은 더 왼쪽으로 이어져 오른쪽으로 꺾으면 보이는 선생님방에서 잠을 이룬다.
우리 조 선생님인 원종민선생님이 교육을 하신다.
교육의 내용은 위급상황시 탈출요령이나 장비대신을 위한 슬링이용법등을 주로 하셨다.
어느 한 동작으로 인해 자기마저 큰 일이 발생하는 그런 상황들도 일러가며 세세히 알려주셨다.
6조 막내는 집중이 되지 않는지 고개를 숙이고 존다. 그걸 보고 수염이 거뭇거뭇한 늑대같이 생긴 박충길선생님이 꿀밤을 먹인다. 민혜형은 그걸 봤는지 창가쪽으로 쭉 뒤로 물러서 편히 잔다.
학생들이 늘어선 그 가운데에서 사다리를 가지고 자일을 연결하고 교육을 하시느라 우리 쪽에서 교육을 하시면 저기 오른쪽은 안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오른쪽도 신경써달라는 불만이 나왔고 그 쪽으로 돌아서버렸다. 쭉 .. 그렇게 등밖에 보이지 않아.. 교육에 집중할 수 없었다.
잠시 쉬는 시간 .. 민혜형은 일어나자마자 먹을 걸 찾는다.
그러곤 또 교육이 시작됐는데, 여전히 내게 등을 보이는 원종민선생님이다.. 나도 졸았다.
금새 시간은 가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직 비는 그치지 않았고 내가 말했던 그 왼쪽 문 밖으로 이어진 테라스. 샤워장과 씽크대가 있고 두 개의 테이블 여러 의자가 구비되어있는 곳 문 바로 옆에는 아래로 통하는 낡은 철제 계단이 있는 곳.
그 곳에서 여러 조들은 우산을 치켜멘 체 라면을 끓여먹는다.
근호형이 속한 4조는 신속하게 씽크대앞에서 끓여먹고 금새 정리하시고,
민혜형과 내가 속한 6조와 5조는 두 테이블을 차지하고 우산들을 펴놓은 채 라면을 끓여먹는다.
6조는 4명뿐이 없었지만, 큰 들통같은 데다가 끓여버린다. 느낌 그대로 제일 오래 그 자리에 머물면서 먹는다.
우리 5조는 두 개의 코펠을 이용하여 끓이고 먹고 국물 버리고 다시 물채워 끓이는 짧게 먹고 먹는 방법을 택했다.
우리 조는 스팸을 넣어보기도 했고, 골뱅이를 넣어보기도 했다. 나는 골뱅이가 라면과 어울릴 줄 알았는데 진짜 안 어울렸다. 내가 넣자고 강추해서 준호형껄로 넣긴 했지만, 티는 안 냈지만 영 아니었다. 스팸은 스팸 먹는 맛으로 그냥저냥 맛있었다.
옆에 6조는 형들이 등산학교 들어올 떄 주신 김치를 민혜형이 가져와 쓸어넣고 김치라면을 하다가.. 또 계란을 어디서 가져와 계란을 투하하여 라면을 했다. 디게 오래 걸린다. 갑자기 뜬금없는 얘기지만 민혜형은 짠거 매운 거 좋아한다.
우리 조는 그 옆에서 다 먹고 치운 후 종수형님이 가져온 10개 가량의 카푸치노팩을 가지고 여유를 부리며 고급스럽게 끓인 물에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 후로도 6조는 이제야 먹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내사랑아이거라는 영화감상을 하게 되었다. 영화상영전 그 시대배경과 그 주위 시설등을 일러주셨다.
그 주위로는 관광을 위해 호텔이 있었고, 그 곳에선 아이거북벽에서 등반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고 하고, 또 4000m 정상을 잇는 기차도 있다고 한다. 그 기찻길을 뚫는 데 아이거북벽을 통과하여 그 아이거북벽에 구멍을 만들어 그 곳을 통해 잔해물을 버렸다고 한다. 그 곳은 아이거윈도우라고 불리어 관광장소가 된다.
민혜형은 이 영화를 봤었다고 한다. 그 사이 민혜형은 그 처리하기 골치 아프던 감자를 삶기에 신경이 곤두서있다.
영화의 결말은 오스트리아에서 온 두 명과 독일의 두 명 모두 다 죽는 비극이다.
셋을 떠나보내고 남아있다 희망을 볼 수 있던 토니쿠르츠는 마지막에 줄이 짧아 하강을 하다 걸려 대롱대롱 매달려 죽는다.
실제로 1m 만 더 내려왔어도 구조되었다고 한다.. 뭔지 모르겠는데, 괜히 감동을 먹었다.
영화가 끝나고 민혜형이 매트리스에 얼굴을 문대고 자다가 깨서 일어났는데, 자국이 선명하다.
조금 쉬고 원종민선생님이 슬라이드로 사진을 보여주며 설악산에 내려지는 여러 이야기들을 하신다.
요들산악회 라는 산악회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인데, 석유길이란 이름이 붙기까지 일어났던 일들,
그 당시 토왕성폭포를 오르는 일이 거의 불가능이라고 여겨져 등반을 꺼렸는데, '검은 표범'이라고 불리우던 그 산악회멤버가 서양에서 그 10핀짜리 아이젠이 수입되서 그걸 신고 토왕성폭포 하단에서 엄청나게 시간단축을 해 자신감을 얻은 뒤
초등을 하려고 했는데, 결국 어떤 일에선지 추락사로 돌아가셨다고 하는 이야기 등등..
교육은 끝났고 좀 이따가 1조가 돌아왔다. 구절초를 가려했으나 그 바로 앞에서 포기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원래보다 일찍 저녁을 먹고 쉬는 시간이 길어졌고, 나와 근호형은 숫자야구라는 게임을 한다.
서로 네자리숫자를 적은 뒤 서로 상대방의 숫자를 맞추기 위해 네자리숫자를 부르면 그 상대방은 그것과 자신의 것을 확인한뒤 각 자리의 순서와 숫자가 맞으면 스트라이크, 숫자만 맞으면 볼 이라고 칭하여 알려주며 그걸 이어가며 끝내 상대방의 숫자를 맞추면 이기는 게임이다.
그 사이 민혜형도 자리를 함께했고, 6조 막둥이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유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자리에서 나는 웃다 죽지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웃었다.
이론수업시간이 왔다. 오늘은 강의를 하지 않았다.
원종민선생님이 원정갔던 사진에서 대자연에 감동을 먹어 울음을 터뜨렸던 그 사진을 영상이 있으시다며 영상을 보여주셨다. 영상이 길어서인지 그 부분을 찾으시느라 버벅이셧다. 헬리콥터에서부터 착륙해 우는 장면까지 웅장함에 둘러쌓인 영상을 보았다.
영상을 본 뒤, 뭘 햇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무튼 9시 쯤 되서 교장선생님이 오셨다. 그러고 좀 있다가 10시가 가까운 시간에 조모임시간이 됐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이 떈 원종민선생님이 또 다른 이야기를 해주셨다.
예전에 자신이 토왕성폭포를 오르는 걸 목표했었는데, 마치 뛰었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빠르게 오르고 보니 뭔가 허무를 넘어 어색한 느낌마저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나중에 산에 눈이 엄청 쌓였을때 토왕성폭포를 올랐는데, 다 올라보니 여자가 한 20명 있다고 후배가 그래서 거짓말을 하나 해 올라와보니 진짜 있었다고 한다. 길을 잃어서 이 쪽으로 오게됏다고 한다. 그래서 원선생님은 길을 안내해줘서 탈출했다고 한다. 그 사람들은 참 행운이엇던것이다.
눈이 많이 쌓인 상태라 마치 하나하나가 높은 계단이 돼 떨어뜨렸다고 한다. 막 떨어지다 하더라도 충격흡수가 되 탈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구조관련해서 이야기가 나오자 박태원선생님이 거드셧다. 산은 여름에서도 밤에 얼어죽기쉽다고 하시며 또
산에서 119로 구조요청을 하면 119에선 어디냐고 물어놓고 말하면 그 곳을 모르고 민간구조대에 연락을 취한다고 하셨다.
뒤늦게 김팔봉선생님이 토왕성폭포에 대한 이야기를 하셧다
"토왕성폭포등반관련해서 다큐멘터리를 찍는 일이 있었는데, 선배가 밑에서 후배가 올라가는데 못 올라간다고 있는 욕 없는 욕 다 해가면서 어떻게 올라가는진 가르쳐주지도 않고 계속 그러다 그 위에 있던 후배가 못 올라가고 내려오니까 그 토왕성폭포에 보면 동굴이 잇는데, 거기로 후배를 데리고 가더래요 ~ 그러더니 좀 있다 외마디비명이 막 들리는데 촬영을 할 수 있겠어요 접었죠 ~"
시간은 금방 흘렀고, 취침을 위해 다들 올라갔다. 내일은 비가 오더라도 등반을 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가 잠든 밤... 1층으로 옮긴 새 잠자리 ... 1층이 추운건지 .. 비가 와서 추운 건지 .. 덜덜 떨면서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가 잠을 잤다.
이 날부터 우린 벌써 5일이 지났냐며 끝나가는 교육을 새삼 느낀다.
8/18 목요일 (형제봉릿지)
체조시간은 점점 힘이 부친다.. 눈을 뜨기 힘들고 진행을 따라가기 힘들다.. 비가 아직 그치지 않았지만, 체조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안개비라며 금방 그칠 거라고 우릴 안심시키셨다. 근데, 너무 춥다.
꽤나 익숙하게 장비를 챙기고 물을 담고 자일 한 동을 베낭에 넣고 집합장소에 집합한다. 이 날 난 손가락마모상태가 심해 유석이형한테 테이핑을 부탁했는데, 유석이형도 급한 나머지 테이핑이 좀 허술했다.
어프로치를 시작했다. 3,4,5조가 한 곳에서 맞닥뜨렸다. 선생님끼리 자기네는 어디를 올라간다며 고개를 치켜들며 말하셧다. 원선생님의 원래 5조 목적은 형제봉을 찍고 내려와서 장군봉을 또 찍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날 형제봉을 찍고 내려오는 것만으로도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이 날 형제봉릿지는 안개가 껴서 주위광경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한 테이핑은 금방 손가락이 돌게 했고, 아예 풀러서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설악산바위 암질은 거칠기 때문에 비가 와도 암벽등반을 할 수 있는데, 단점은 바위가 살아있어 베인다는 점이다.
이 날 기억나는 건 형제봉이라고 일컬어지는 큰 정상을 찍고 내려와 작은 정상 한 두 피치 정도를 올라가는데, 올라가기 난관이었던 곳이었다. 나는 여기서 준호형을 비롯해 예림이누님 성문이형에게 손과 어깨를 내줬다. 종수형은 내가 도울 수 잇었는데도 불구하고 혼자 올라가셨다. 발을 믿고..
다른 분들은 내 어깨가 거뜬했는데, 성문이형에겐 어깨가 '아 무게가 있구나' 하는 느낌으로 정신을 차린듯이 끌어올렸다.
예림이누나의 대추, 조장님이 먹던 천하장사소세지를 먹곤 내 차례가 왔다. 난 박태원선생님과 동식이형의 손을 발판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며 "아 엘리베이터 좋다 ~ " 라는 말을 뱉었는데, 밑에 있던 대기조가 자지러졋다.
위에선 김팔봉선생님이 댕겨주셨는데, 목에 살짝 걸려서 순간 "목졸려요 선생님 켁켁 ~" 외치며 또 모두를 웃겼다.
상황을 심각하지 않고 유머스럽게 풀려다보니 괜스레 잘 올라가졌다.
모든 등반이 끝나고 내려왔더니 7시 20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내려온 건데, 그 떄까지 사장님께서 식사를 대기시켜주셨다.
내려오자마자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이 날 저녁은 기억나는데, 카레였다.
저녁을 먹고 시간만큼이나 고단했던 등반을 마친 후의 작은 뒷풀이를 가졌다.
박태원선생님은 바로 샤워를 하고 오셨는데, 우리 쪽으로 오시면서 냄새가 장난아니라고 하셨다.
느껴진다. 된장남의 기운이..
이 날 바위가 살아있었다는 둥 비가 그치지않고 계속 왔다는 둥 이래저래 오늘 등반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등반도중 무리를 하셔서 강종수형님이 갈비뼈에 무리가 가 웃지를 못하신다.
짧게 뒷풀이를 마친 후, 모두 씻으러 갔고, 그 사이 늦춰진 시간에 어떻게 할지 선생님들은 강사회의를 하셨다.
모두가 다 씻고, 뒤늦은 시간에 이론수업이 시작됐다.
네번째 이론수업 전양준 선생님의 '인공등반기술'
이 수업에선 등반의 종류 및 그렇게 궁금했던 암벽난이도에 대한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알피니즘에 대해 한 층 더 깊게 배울 수 있었다.
알피니즘은 고난을 겪는 것만 아니라 도전, 새로움 이라는 단어에도 매칭이 된다고 하셨고,
등반이 아닌 다른 여러분야에서도 행해진다고 하셨다.
박칼린, 안철수, 스티븐 잡스등 여러분야의 성공한 사람들을 예로 단어와 매칭해서 설명하셨다.
또 이 시대의 최고의 알피니스트라고 하시며
아기가 본능적으로 어디를 오르려는 사진, 그리고 발을 손 위에까지 올려다놓는 경지로 발을 손으로 사용하는 세계적인 한국여성클라이머의 사진을 보여주셨다.
그 외 선생님 사적인 얘기로 암벽을 다시 시작하게 된 얘기도 해주셨다.
난 왼쪽 맨 앞에 근호형 뒤에 민혜형 막둥이 이렇게 앉았는데, 그 주위로 엄지보다 조금 더 큰 귀뚜라미?!가 출몰햇다. 몇 번 잡으려다 난 포기햇다. 징그럽고 무서웟다.
그러나 근호형과 막둥이는 곤충에 연이 있는 듯 서슴없이 잡고 관찰했다.
교육이 끝나고 조모임시간이 됐다.
우리는 내일 적벽간다는 얘기를 들엇는데, 확인차 또 선생님께 물어봤다.
원종민선생님은
"당연하죠 5조 자존심이 있는데, 마지막 적벽으로 깔끔하게 끝내야죠 ~" 하셧고
박태원선생님은
"저흰 사람을 이렇게 구분합니다. 적벽을 안 갔다온 놈 ~ 젹벽을 갔다온 분 ~" 이라 하셨다.
모두 섬찟섬찟하는 가운데, 덕희형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덕희형님은 적벽을 가기 위해 등산학교를 오셨다해도 무방할 정도로 꿈이라고 하셨다.
박태원선생님은 내 손을 걱정하시며 내일은 빡빡하게 테이핑해주시겠다고 하셨다.
김팔봉선생님은 매번 내 손을 보면 한숨을 쉬며 안쓰러워지신다고 하셧다.
내 다리도 반바지에 상처가 심햇지만, 오늘 바위가 살아서 날카로운 상태에 끌려올라간 성문이형의 다리는 가관이었고 이야기의 화제가 되었다.
박태원선생님은 등반할 떄 도중도중 잣나무열매인가 .. 아무튼 열매들을 따셨는데, 덕희형님이 담금주하려고요 하면서 물으셨다. 덕희형님은 술에 관한한 참 모르는 게 없었다.. 여간한 나무도 구분하실 줄 아셨다.
아까 그건 무슨 나무 아니였나 에서는 박태원선생님과 가벼운 언쟁이 있었지만, 박태원선생님이 한 수 위였나보다. 금방 논리로 이기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취침시간이 왔다.
모두가 잠든 밤.. 나도 잠든다.
8/19 금요일 (적벽구간 삼형제봉릿지)
대전으로부터 춘천, 속초에 와 속초시장, 이마트, 야영장,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흘러 벌써 실제 마지막 등반교육날이다.
새삼 감회가 차오르며 체조를 하러나간다. 어제까지 비가 왔었나 싶을 정도로 날이 맑아졌다. 이제 비선대산장에서 고개만 들면 보이는 적벽 그 곳을 오르려 한다.
모두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과 안도감을 안고 삼형제봉릿지를 시작했다.
이 날 순서는 약간 달라졌다. 성문이형이 위에 있는 김팔봉선생님의 안정권에 들게 좀 더 순서를 앞으로 땡겨서 갔고 나는 어제 갈비뼈에 문제가 온 종수형을 라스트로 후등확보를 봐주기로 한다. 내 앞은 김예린누님이다.
이 날 릿지등반의 포인트는 바로 밑으로 조그만하게 보이는 비선대산장과 다리사이사이로 흐르는 계곡이 훤히 보이는 광경이었다. 우리가 빠져나온 곳을 그렇게 보자니 나는 더욱 더 내려다보기를 빈번하게 했다.
그리고 날이 맑아서 저 암벽에 매달린 다른 조도 잇었는데,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다.
조장님은 오라버니와 언니?!를 알아보며 소녀같은 목소리로 외쳐댔다. "오라버니 ~~~ "
이제 나는 저절로 음성이 지원된다. 흉내도 가능하다. ㅋ
이 날 등반은 눈은 호강햇지만, 다른 날보다 더욱 힘들었다. 동식이형의 텐션이 없었고, 후등확보를 교육사상 처음 봐주는데 펌핑날것같고 숨이 안 쉬어진다. 물론 다른 날보다 암벽이 가파르다고 느끼기는 했다.
이 날 난 거의 퍼지다시피했다. 숨을 몰아쉬어가며 한발짝 띠고 한발짝띠고 참 덩치만 컸지 사내자식이 체력이 없다.
이 날 정상도 찍고 사진도 찍고 겸사겸사 주위를 둘러보다 하강을 한 번 하고 마지막 60m하강을 하는데 후덜덜해서 내려와서는 땀이 뻘뻘 났다. 3번 정도 하강하는데만 2시간 30분이 걸렷다.
이 날 등반이 끝나고 내려오는 길은 어찌나 발걸음이 가볍던지 .. 나 외 모두가 느꼈을 것이다. 5시 30분쯤해서 산장에 도착했다.
한시빨리 씻으려고 내 슬리퍼를 찾는데.. 슬리퍼가 없다.. 저번에도 내 자리 아닌 데에서 발견하긴 했는데 이번엔 보이지가 않는다. 한참을 찾았다. 설마 민혜형은 아니겠지 하고 있었는데.. 설마가 사람잡는다.
딱 나타났다. 난 뭣보다 발에 눈이 갔다. 내 슬리퍼다.. 난 한참을 찾았다고 통성을 했더니 하는 말이 글쎄..
"난 니 껀줄 알고 신고 다녔는데 ?"
허 참 .. 이 형 가족일세
그러다 내 말은 무시하고 남은 식량 감자며 오이며 필요하냐며 물어본다. 필요없다니까 홀랑 어디로 가져간다.
아 좋은 일하나보다 싶어 남은 라면도 다 줘버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른 대학산악회가 왓다고 소개시켜줄테니 내려와보라고 한다.
강남대산악회에서 어디로부터 건너서 왔다고 했다. 기억이 잘 ... 안 난다.
06학번 대장을 필두로 09여자 한 명 11삼형제 .. 11얘들이 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한 명은 홀쭉하고 한 명은 보통 한 명은 통통하다.
민혜형이 그새 교육을 시켰는지 11학번인 나를 두고 한명씩 일어나서 소개를 한다.. 무슨 일인지 참 ..;
내가 그 상황이 어색해서 그새 민혜형이 뭘 한 거냐고 쳐다보니까 난 아무것도 안했다며 오리발을 내미신다.
민혜형이 소개를 끝나고 올라오는데 쟤네보단 .. 내가 듬직하다 하신다. 나도 안다.
아무튼 남은 식량 잘 넘겨주셨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
민혜형은 오늘 내가 화요일날 갔다왔던 그리움둘릿지를 1시에 끝냈다고 한다. 그렇게 놀다 자다하고 있는데 교장선생님이 강남대산악회가 왓다고 민혜형을 꺠운 모양이다. 참 교장선생님은 처음 온 날부터 민혜형을 보며 아빠미소를 연신 뿜어낸다.
이 날 우리 조에서 동식이형이 먼저 떠나신다고 하셨다. 휴가일차를 잘못 해서 하루가 겹친 것이다.
저녁을 먹고 동식이형을 위해 자리를 만들었다.
분명 동식이형을 위해 자리를 만들었는데, 덕희형님을 필두로 다른 얘기들만 하신다.. 저 끝에 동식이형이 쓸쓸히 캔맥주를 들이킨다.
유독 그게 눈에 띄었다.
동식이형은 처음 그리움둘릿지할때 전 날 장군봉기존길하단에서 했던 초보자코스훈련을 생각하다 예상을 넘어섰다 하셧지만, 매번 열심히 교육에 임하셨고, 참 친근하게 대해주셨다. 비가 오는 것에도 아쉬워하실 정도로 교육에 임하는 태도가 20살인 내가 민망해질정도로 열정이 차고 넘치셧다.
자리가 끝났지만, 우린 형을 보내지 않았다. 오늘은 실제 교육 마지막날이라 이론수업이 없고 각 조마다 간담회를 연다.
그래서 그 간담회까지만 같이 하자고 했다. 형도 그렇게 했다.
의도되진 않았지만, 조모임이 잦다보니 할 얘기가 없어졌고, 원종민선생님은 내 옆에서 이상형월드컵을 하셨다. 실제로 폰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거리를 측정후 가까운 여성을 골라 하는 것이엇는데, 거침없는 선택의 우승은 일본여자였다.
자신이 선택하고도 아 일본여자였냐며 다시 하자고 하셨다.
간담회가 끝나고 올라갔는데, 이상하게 조원 아무도 없다. 한 10분쯤 있다가 내려가보니 어둡고 추운 산장 바깥에서 또 자리를 잇고 계신다. 동식이형은 여기서 맥주 한캔만 마시고 박태원선생님과 가기로 한다.
이 자리 쯔음에선 종수형님이 말이 많아지셨다. 초반에는 말이 많이 없으시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시는 줄 알았는데, 꽤 유머스러운 분이었다. 그 떄보니 ㅋ
그 떄서야 우리는 대놓고 조장님과 오라버니 사이를 두둔하며 궁긍해했다. 오늘 릿지에서 박태원선생님이 물어서 대충 X-친구라고 얼버무리긴 했어도 참 각별한 사이인 건 모두가 아는 일이다. 지금도 민혜형 근호형도 궁금해하는 미스테리이다.
외모도 닮아서 진짜 친오빠인줄 알았다고도 햇는데, 난 성격도 닮았다고 했다.
실내교육할때 둘이 꼭 붙어서 선생님 앞에서 같이 동작을 따라하는 걸 흉내냈는데, 다들 끄덕거리며 자지러지셨다.
종수형님은 내게 자꾸 센스가 있다며 직설적으로 나에 대한 이미지를 내비추어주신다. 모두들 인정하는 지 끄덕이며 웃었다. 동식이형은 내 웃음소리가 웃기다며 연신 날 보며 웃으셨다.
자리는 그렇게 웃음이 이어지는 상태에서 끝났고, 박태원선생님과 동식이형을 보내드렸다.
그 뒤로도 자리를 이은 것 같은데, 무슨 얘기를 햇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리고 깜깜한 기억속에 난 잠이 든다.
모두가 잠든 밤.. 끝이 다가온다.
8/20 토요일 (인공등반교육, 졸업식)
오늘은 저 다리밑에서 인공등반교육을 하고, 짐정리를 한 뒤 위에서 산장지붕에서 수료식을 한 뒤 모든 공식일정을 마치기로 한다.
어제 몇 명을 떠나보내 몇 명이 없지만, 다들 가벼운 맘으로 교육집합장소에 나와있다.
이번 교육은 경험자반 초보자반 나누어 실시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각 조마다 명 수를 비슷하게 짜맞춰야했다.
민혜형의 6조는 그나마 있던 6명도 적었는데, 부상 자퇴 등 2명이 빠져 4명이 되었다.
그래서 어제 1명이 나가 7명이 된 우리 조에서 한 명이 가야했는데, 김예린누님이 봉사를 해주셧다.
옆에서 하늘같은 선배가 잇는 곳으로 와야 되는 거 아니냐 햇는데
나는 하늘같아서 그래서 안 간다고 단언했다. 그러냐며 킥킥 웃어대며 조배정을 마쳤다.
벨트와 장비를 차고 교육장소로 모두 이동했다. 다리에 옆으로 새는 계단이 있는데, 문은 닫혀잇었다. 다들 그냥 넘어간다. 이 날 교육내용은 이러하다.
텍사스식 주마사용법
요세미테식 주마사용법
푸르즈크 매듭이용해 위로 올라가는 법
볼더링
확보물설치및 레더사용법
도르래장비나 카라비너를 이용한 제트홀딩?!
교육당 30분씩해서 11시까지 마치기로 되있었다.
첫번째론 체조를 담당하셨던 손용식선생님과 서형찬선생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푸르즈크매듭을 이용해 수직으로 올라가는 방법을 배웠다. 체중때문에 힘이 실려 매듭이 잘 안 풀려 고생했다. 알아도 이리 능숙하지 못하다면 참 막막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론 김성기선생님과 김팔봉선생님이 계시는 내려왓던 계단으로 다시 올라가 제트홀딩을 배웠다.
김성기선생님이 말하시기를 이런 게 있다라는 것만 아는 거지 완전히 숙지할 필요는 없다하셧다.
그래서 그런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용도는 드는 힘을 작게 만들어 대암벽에서 짐따위를 들어올릴떄 사용한다 할 수 있다.
세번째론 바로 내려가면 보이는 큰 바위 왼쪽에 이기범선생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 요세미테식 주마사용법을 배웠다. 한 발 한 발 번갈아서 올라가는 방법인데, 조작미달로 내려올때 주마를 잘 못 풀어서 혼이 났다.
옆에선 6조의 막내와 권오준아저씨가 볼더링앞에서 서로 오르기를 경쟁하고 잇었다. 산장에 잇을때면 자주 턱걸이대결을 펼치곤했다.
네번째론 바로 옆에 방금 6조가 했던 볼더링코스라고 해서 한 세 네 스텝정도 나오는 곳이었는데, 우리 조는 다들 다치고 뭐하셔서 도전하기를 꺼렸다. 나도 어제 퍼지다시피해서 나서지 못햇는데, 역시나 조장님 5조 자존심을 내세우시며 도전하신다.
다섯번째론 이 바위의 오른 편 전양준선생님이 계시는 곳에 후렌드와 너트를 이용해 확보물설치후 레더를 이용해 올라가는 인공등반법이다. 6조가 지나간 곳에 선생님은 민혜형을 바라보며 큰 산을 지났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네 선배가 못했으니 네가 잘 배우고 가야한다고 당부하셨다. 한 쪽에선 확보를 봐주고 나는 이 교육에 집중했다. 처음으로 확보물설치를 하며 레더 두 개를 이용해 2m쯤 올라갔다 내려왓다.
여섯번째 마지막으로 유석이형과 수염이 거뭇하신 박충길선생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텍사스식 주마사용법을 배웠다. 두발을 동시에 일으켜서 쥬마를 올리며 올라가는 방법인데, 나는 요세미테식보다 이게 맘에 들었다.
모든 교육을 마치고, 산장으로 짐을 싸러 올라갔더니, 우리 조원들은 이미 와서 짐을 싸놓고 쉬고 있었다...;
모두 짐을 싸고 수료식을 위해 적벽이 저 위에 보이는 지붕위에 올라섰다.
그 사이 민혜형은 선생님들에게 장비를 얻었다. 무슨 청년을 위한 기부같은 형식적인 이유를 대가면서 말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간단히 하고 애국가를 부른 뒤 수료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조부터 차례대로 나와 수료증과 그걸 담을 갈색봉투를 건네받았다.
그리고선 간단한 수상을 했다. 안전상, 우수상
우리 조의 종수형님과 4조의 우리 근호형이 우수상을 타셧다.
우수상의 10만원대 고급 릿지화 되시겠다. 민혜형은 자신에게 상이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에 심하게 부정하셨다.
어제 마지막 교육 날 근호형의 4조가 등반이 빨리 끝났는데, 거기서 많이 어리고 산악회대장을 맡은 근호형에게 선생님이 더 알려주시려고 장군봉 기존길 하단에 데려가 더 교육을 해주셨다고 했다.
민헤형은 그거 때문이라고도 하고, 우리가 불쌍한 컨셉으로 가서 형한테 대표로 준 거라고도 했다. 여러모로 현실부정했다.
모두 내려간 뒤 유석이형이 불러서 산악회라 하여 적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선 다시 내려와 베낭을 멨다.
그.렇.게 사실상 교육의 모든 일정은 끝났다. 물론 이것이 끝나고 점심식사를 회식을 하기로 되있는데, 우리는 동건이형차를 타고 바로 떠나기로 되서 회식에 참석하지 못햇다.
코오롱등산학교에서 가져온 자일을 어디까지 운반해줘야하는 일이 남았었다. 나와 6조 막내는 자일 몇 동이 든 가방을 양쪽에서 한 손으로 들어가며 운반을 했다. 그냥 걸으면 그렇게 짧은 거리도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서로 2~3번 위치를 바꿀 정도로 힘이 들었다.
자일을 다 운반한뒤 좀 더 내려가서 동건이형을 만날 수 있었다. 만나자마자 슬리퍼를 신고 나온 나의 건방짐을 꾸짖으셨다. 민망한 웃음을 내비출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밥은 먹었냐며 안 먹었다고 하니 손에 들려잇던 옥수수를 건네주셧다.
벤치에서 민혜형과 근호형을 한참 기다렸다. 그 사이 우리 조원 형님들도 지나가고 선생님들도 지나가고 하는데, 종수형님이 오늘 우수상으로 받은 들고 있던 릿지화를 내게 주셧다. 잘 쓰라고...
근데, 왠지 줄 것 같은 느낌이 와서 손이 먼저 나가있었다.. 아니었으면 굉장히 뻘쭘했을텐데..
무튼 예감이 들어맞았고, 종수형님이 막내 잘 쓰라며 릿지화를 흔쾌히 주셨다.
좀 이따가 민혜형이 내려와서는 너 그거 뭐냐며 왜 나만 없는 거냐며 또 현실을 부정하셨다.
그리고 또 민혜형은 동건이형이 마중나와준걸 보고 수련회 끝나고 아빠가 데려와준 것 같다는 느낌이라 하셨다.
유석이형이 곧 내려온다는 말에 그럼 만나서 같이 가자하셨다. 곧 김팔봉선생님과 유석이형이 내려오셨고
유석이형과 동건이형이 같이 빨리 앞으로 뻗어갔고, 김팔봉선생님과 우리 셋이 가는데, 우리 셋의 대화를 들으며
김팔봉선생님은 민혜형에게 평가를 내린다.
"아 대단한데 ~ ? 위로는 치고 밑으로는 쪼고 ?"
근호형과 나는 금방 이해했으나 민혜형은 금방 이해하지 못하다 나중에 이해했다.
주차장에 다달아 김팔봉선생님과 이별인사를 했고, 동건이형 차를 타고 유석이형 차가 있는 곳에서 또 사진을 몇 방 터뜨리고 유석이형과도 이별인사를 했다.
유석이형과 동건이형 차를 타고 유석이형 차가 있는 주차장을 가는 사이 설악산에 유석이형이 아내되시는 분에게 바친다고 하여 투유라고 지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원종민선생님을 보고 버럭삐침까칠이라 하여 버삐까 라는 코스이름이 있다는 것과 예전 그 원정에서 김성기선생님이 외면하고 올라갔던 그걸 떠올려 돌아선GP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GP는 김성기선생님의 별명인데, 추측하시면 알 수 있다.
그렇게 드디어 우리는 일주일도 더 전에 왓던 길을 되돌아나간다. 속세와 맞닿는다..
설악산종강산행떄 동건이형이 말씀해주신 무장공비사건의 진실, 동건이형이 계속 근무하셨던 현장을 보여주시겠다며 인제 용대리에서 맛잇는 황태정식을 먹고 그 곳으로 들어간다. 여기저기 짚어주시며 설명을 해주셧다. 다리에는 총알자국도 잇엇다.
원래 하계가 펼쳐지려 했던 용대리 휴양림도 보여주셧는데, 처음엔 몽골탐험촌?! 같은 게 보였고 강가를 주위로 펜션들이 있었다. 더 위로 가선 민간이 아닌 국립공원인가에서 운영해 펜션비가 아주 싼 곳을 소개해주셨다.
그러곤 그 날 유성으로 이사오신 성만이형 집들이시간을 맞추기위해 곧장 대전으로 갔다.
몇 시간이 지나 친숙한 풍경이 보이고 학교가 보인다. 충대 신호등을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우와 대학생이다' 라고 우린 창문너머에서 감탄한다. 동방에 대충 짐정리를 하고 집들이를 위해 성만이형 집으로 갔다.
아파트들 사이로 우리 셋은 연신 오 아스팔트 ~ 오 오 하며 별거 아닌 것에 감탄을 해댓다.
성만이형이 오길 기다리며 우리는 집 앞 놀이터에서 놀았다. 성만이형 아들되는 아이와 동생처럼 보이는 여자아이도 나와있었다. 신기한 게 많았다. 네 방향으로되서 시소 처럼 되서 밑에 스프링이 달린 요상한 기구가 있었는데, 민혜형과 마주보다 한 번 탔는데, 영 창피해서 내렷다. 그리고 그 비슷하게 밑에 스프링이 달려 혼자서 탈 수 잇는 기구가 잇었는데 민혜형은 아주 신나하며 그걸 탔다.
난 그네를 탔는데, 그네가 장난 아니었다. 이렇게 재밌을 수 없다.
좀 시간이 지나 집에 올라가게 됬는데, 소파에 앉은 우리가 너무 어색하다. 어디에 손을 놔야할지 모르겠다.
내 오른쪽 무릎에선 진물이 난다. 3번 정도 화장실을 들른다.
이 날 내 두 손바닥과 두 다리의 사진을 찍었는데, 형들은 그걸 보며 와 이거 완전 부검사진인데 하고 감탄 아닌 감탄을 하셨다.
거기서 먹은 복숭아, 갈비는 그 날 잊을 수 없었다.
집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
아 형들은 집에 들어가서 부모님이 보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걱정했지만,
내가 가진 열쇠로 풀 수 있는 곳 말고 다른 곳 까지 집문을 잠궈놔가지고 내가 문을 두드리며 짜증을 내며 들어갔더니, 걱정은 커녕 알아서 하고 자라고 하셨다. 그 다음날도 걱정은 안 하셨다. 그런가보다 하신다.
후담
등산학교가 끝난 지 2주가 넘은 지금.. 기억이 안 나 이만큼 적은겁니다.. 더 적을 수 있지만 아껴두겠습니다.
최근에는 또 등산학교에 같이 5조를 했던 형님들과 서울 마포에서 만나 모임을 했는데, 조장님이 제 산행일기를 즐겁게 읽으셨다고 하셨고, 2탄을 바라시더라고요. 술자리가 잦은 요즘.. 뻘뻘거리다 이제서야 씁니다. 이제서야 산행일기를 마칩니다. 해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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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도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전 이만 갑니다. 힘내세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