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시학>, 2010년 가을호.
<서정시학 집중 조명>
니트의 딸 외 4편
배성희
발목 하나만 떨어뜨리고, 도망가는
아버지를 잡으려했다 쾅 닫힌 문틈에
손가락이 잘린 엄마, 무서워
이게 뭐야 소리 없이 울었다
딸아 세상은 눈감아 줄 거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그 자막으로 짜여진 불구의 니트를 벗고 싶었다
거울 앞에서 손거스러미만 물어뜯던 날, 지나고
이 겨울, 너를 찾아낸 곳이
어째서 길게 휘어진 터널인가
밤길만 걷자고 만난 것은 아닌데
멀리 희미한 램프 하나뿐
우리 포옹이 깊을수록 눈사람처럼 녹아
투덜거리는 너, 뜨거운 숨을 거두려하고
니트 보푸라기에 매달린 루미나리에는
날짜변경선을 어떻게 스쳐갔을까
풀었다 감았다 되풀이하는 손
언제쯤 녹슨 뜨개바늘을 내던질까
너를 외발로 보내진 않겠어
이 자리에서 끝까지 지켜보기를
내가 반대쪽으로 걸어갈 때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검붉게 풀어지는
외길이 남거든
리듬의 발견
비포장 낯선 길 타는 냄새가 나요 소리를 질러도 텅 빈 버스는 달려, 가속페달에 힘을 주고 놈은 퀵퀵, 튕겨나간 고슴도치들 온 방을 쏘다니고 가위눌려 볼 때마다 세 시. 아침은 멀었는데 미친 버스는 멈추지 않아 아토피 살을 긁어대지 말란 말이야
퀵퀵 달아오른 놈이 몰고 오는 지진, 허리케인을 믿지 않아 부풀어 초조한 풍선들 펑, 터지고 쏟아져도 외면할 거야 반짝이 색종이 대신 무엇이 척추를 무너뜨릴지 무엇이 타오를지 난 알아, 놈은 퀵퀵 나는 슬로우
얼마나 간절한가 내가 움켜쥔 것이
놈의 손가락이기를 머리카락이기를
나의 리듬을 존중한다고? 풀어지지 않으려 단단히 감긴 테이프, 슬로우 숨결을 가다듬지 나의 엔진은 달려도 과열은 없어 쇠바퀴에 채이는 돌조각처럼 놈의 속도가 유리창을 깨부순다 해도, 주먹 쥐고 앙다문 내 입술이 죽어도
기억해, 우리는 계속 따로 간다는 것을
팽팽한 가죽에 갇힌 맹수의 발톱 할퀴어대지만 나에겐 너무 소중한 놈 완벽하게 질긴 가면을 쓰고 매캐한 연기만 피우는 희나리 어긋나는, 리듬이야
댄싱 하트
놀라워, 다이아몬드 스텝이
헤비메탈 리듬에 딱딱 맞다니
불빛 흐린 방에서 거울을 보며 댄스
암반응으로 홍채가 열리는 순간
그 눈동자는 사랑을 머금고 있을 뿐인데
갈구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기를 댄스
오래 일했지만
한 푼도 못 받아 열 받습니까 댄스
트럭이 지나가면 부르르 떨리는 다리 위에
서서 기다리며 댄스
두 손으로 장미를 바치는 사람이 나타날 거야
지금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다고 하자
그러나 그것의 끝을 누가 알겠어 댄스
전갈자리 O형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성격
어차피 모두 원래대로 될 거야
중간에 무슨 일을 겪어도
사랑은 내 안에 늘 존재하는 것
쉬지 않고 오므렸다 펼치는 해파리처럼
계산 없이 출몰하는 불꽃처럼 온갖 리듬에 맞춰
나 홀로 신나게 대 댄 댄스
습지의 밤
짙은 안개를 둘러쓰고 툭
툭 부러진 꿈들이 습지로 기어든다
헐어버린 위벽처럼 갈라진 표면 틈새
바람과 별빛이 들고난 늪에는 마블링 흔적이
살아 뭉클하다
나는 두꺼운 가죽을 뜯어내고
우둘투둘한 살갗을 바닥에 문지른다
시계반대방향으로 혀를 구석구석 굴려
침을 가득 고이게 한다 천천히
나눠 삼키고 눈알을 뒤집어 감는다
지금은 아가리가 절반인 짐승이지만
이브였다 나는
미지근한 곤죽이 저 홀로 달아오르면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번갈아 빤다
가슴도 엉덩이도 없이 오그라든 팔다리
비틀고 질척인다 늪의 숨결은
거칠어진다 기묘한 수초들이
물버드나무 뿌리를 휘감을 때
화염도 빙하도 하나인 육체
진땅이 거듭 되살아나고,
잠수종
한낮의 태양이 문을 닫고 나갔다 계속, 쿵쿵 울리는 가슴을 무시하고 까만 그물스타킹을 신었다 손가락 끝으로 구멍 하나하나를 찌르면서, 확대렌즈로 찍은 달팽이 구애 장면만 거듭 돌려보았다
그해 겨울은
죽어가는 산세베리아 줄기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낮게 뜬 구름자락이 창문 틈으로 스며들어 입 냄새가 길게 남았다 이불 바깥은 차디찬 강물, 겨우내 누워있을 이유로 충분했다 달빛도 호프만의 뱃노래도 없지만, 물뱀은 짝짓기를 했다 그 옆에서 오래오래 진저리치며 오줌을 누고
나는 깊어졌다
시간이 접히거나 펼쳐지는
공간을 느끼고 싶었다
체리 맛 분홍시럽에 흠뻑 젖은 채 쓰러져, 생각하는 단어모양 그대로 팔다리가 붓처럼 흐느적거렸다 추위와 어둠의 소용돌이 가운데
그 모든 겨울을 보내고
산세베리아는 말라비틀어졌다 마지막 고개를 쳐들고 있던 유일한 줄기, 그것이 누구이든 나였다* 짙은 그늘에서도 광합성 하는 엽록소
내 상처의 정수리에
푸릇푸릇 심지를 키우던
* diving bell : 잠수부를 수면에서 수심이 깊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기구. 내부의 압력은 연결된 공기펌프와 수압에 의해 저절로 조절된다
* 그것이 누구이든 나였다 : 임영태 소설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에서
(『문학나무』 2010년 여름호)
배성희(裵城希) : 서울 출생. 이화여대 생물학과 졸업. 2009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현재 과학교사.
<대담>
맹문재 : 배 선생님, 안녕하세요. 문단의 행사장에서 한두 번 스쳐지나가며 본 것 같네요. 뒤늦었지만 등단을 축하드리며, 앞으로 좋은 시를 쓰시길 기대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배성희 : 선생님, 안녕하세요. 여름방학 기간이라서 모처럼 여유를 집에서 즐기고 있어요. 첫 시집 준비를 위해서 원고 정리를 해요. 늘 생각하느라고 외출할 때도 도표로 만든 제목들을 수첩에 붙이고 다니면서 보고보고 또 본답니다. 저에게 시라는 존재는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도도하고 매혹적인 애인 같아요.
맹문재 : 누구나 등단을 하고 첫 시집을 내게 되면 기쁘기도 하고 걱정도 되지요. 시를 쓰는 것만이 아니라 독자들로부터 평가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지요. 요즘 심정은 어떤지요?
배성희 : 세상에 유일한 나만의 책을 펴낸다는 기대도 있지만, 두려움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제 진술은 대부분 어두운 분위기인데 그 속에 깃든 사연들을 발견하고 공감해주는 독자가 단 한 분이라도 있다면, 정말 고맙고 소중할 것 같아요.
맹문재 : 선생님의 약력을 보니 생물학을 전공했고 현재의 직장도 과학 교사여서 흥미롭네요. 우문이지만 전공이 다른데 왜 시를 쓰고 싶어 하는지요? 물론 국문학이나 문예창작을 전공한 사람만이 시를 쓰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시인들이 보다 뛰어난 작품을 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궁금하네요.
배성희 : 문학에 대한 애착이 많았어요. 사춘기에 접한 전혜린과 토마스만의 작품들이 저의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했어요. 중고등학교 때 주로 문예반에 들었고, 백일장에서 상을 받으면 어머님이 특히 기뻐하시고 그 글을 가족들 앞에서 낭송하시곤 해서 자신감도 생겼지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 권유에 따라 약대 진학을 목표로 이과 계열을 선택해서 공부를 했는데, 성적도 부진하고 약사 일이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아 입학이 쉬운 생물과로 진학했어요. 다행스럽게 생물학은 호기심과 더불어 세밀한 탐구심이 필요한 학문이라서 시 쓰기에도 많은 도움을 받아요. 시는 저의 갑갑증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방식입니다. 글쓰기의 초심은 “자유여 왜 너는 나에게로 오지 않는가, 그 탄식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준다”라고 하신 김춘수 선생님과 일치해요.
맹문재 : 등단작 중 「환승역」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가을비가 내리는 장면을 천 개의 눈을 가진 유리창에 수두 자국을 남긴다거나 보도블록에 낙엽 냄새가 스며든다고 비유한 면이 아주 감각적인데,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좌판을 차린 사내의 상황과 직조되면서 서사성도 돋보입니다. 그 사내가 화자인 “내”와 관계된 인물로 유추되기도 합니다. 묘사와 서사가 잘 교합된 이 작품을 쓰신 동기를 듣고 싶네요.
배성희 : 한동안 집에 있기가 싫어 휴일마다 인사동, 대학로, 광화문 등을 돌아다닌 적이 있어요, 귀가공포증처럼. 그 당시 저에게 집이란 쉬는 공간이 아니고 가족에 대한 의무만 있는 공간이어서 저녁 시간이면 밥하러 가야 했지요. 좌판의 사내는 장애가 있어도 생계를 위해 장사를 하는데,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래도 집으로 가야 하는 제 현실이 서글퍼서, 내가 차라리 유령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으로 쓰게 되었어요.
맹문재 : 설명을 들으니 좀 더 이해가 되네요. 또 다른 등단작인 「팥빙수 먹기」도 관심이 갑니다. “젖은 발가락”이며 “벌레 먹은 방” 등의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풍요롭거나 넉넉하지는 않는 상황에 놓인 인물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독 오른 도마뱀 한 쌍”이 그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역시 작품을 쓴 동기가 궁금하네요.
배성희 : 타인에게 나의 고단한 삶을 구체적으로 하소연하는 것은 자존심 때문에 어려웠어요. 귀 없는 시체라도 깨워서 시원하게 말하고 싶은 절박한 마음을 담아서 시적인 형상화를 하는 과정에, 마지막이 미진해서 고민을 참 오래 했는데 “벌레 먹은 방 갈아 마시러”라는 문장이 스쳤을 때 짜릿했어요. 탁! 쓰니까 통쾌하더군요.
맹문재 : 잠시 다른 얘기로 돌려볼까요. 배 선생님의 습작기에 대해서 듣고 싶네요.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하셨는지요? 특별히 영향 받은 선생님이나 서적이 있으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배성희 : 본격적인 습작은 일주일에 하루 나가는 시창작 아카데미에서 체계적인 도움을 받았어요. 피폐한 삶을 재산으로 인정해주는 이상한 세계였지요. 그때부터 추천 받은 시집이나 관심 있는 작가의 책들을 정기적으로 읽고, 매주 1편 이상 써갔어요. 창작을 통해서 모순투성이 인간을 고민하는 소통의 어법을 배워간다고 생각했어요. 느낌이 좋은 작품은 부지런히 필사했고, 저의 작품에 대한 합평시간에는 그 어떤 쓴 소리에도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어요. 그 모두가 저에게 약이 되는 유익한 자극이었으니까요. 학교에서 해방된 휴일은 집안일을 외면하고 졸더라도 도서관에 앉아 있거나 한적한 아트영화관을 찾아다니며 혼자 보냈어요. 현실적으로 살짝 맛이 간 상태였어요. 특히 최하림 선생님께 1년 정도 배웠는데, 마지막 수업시간에 “배성희는 꼭 시인이 될 사람이다”라고 용기를 주셨어요. 지금도 선생님의 다정한 얼굴과 음성이 선명합니다. 첫 시집을 들고 가서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서적이나 문인들에게서 구체적인 영향을 받기보다는 스스로 시를 쓴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제가 접한 다양한 문화들이 양분으로 변해서 혈관을 돌아 나의 언어로 써지는 것 같아요. 훌륭한 시들이 너무 많지만 특히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김수영의 「눈」, 기형도의 「식목제」 등은 그 감동이 깊어서 좋아합니다.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본질적인 고독과 고뇌, 번민, 슬픔이 아름답게 담겨 있다고 봐요.
맹문재 : 최하림 선생님은 제가 등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분입니다. 편찮으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렇게 일찍 세상을 뜨실 줄을 몰랐습니다. 감사하고 삼가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저도 김수영의 「눈」을 좋아합니다. 그 사연에 대해서는 몇 해 전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에서 밝힌 적이 있어요.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보지요. 대학 시절에 문학회 활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함께 활동했던 회원들 소개며 재미있는 일화를 좀 들려주시지요.
배성희 : 문집을 만들거나 가을에 시화전을 했어요. 선배님이 초대해서 이웃 학교의 남학생들이 대여섯 명이 왔는데, 먼발치에서 본 사람 중에 먹색 바지를 입고 머리가 부스스한 사람의 눈빛이 유난히 번뜩여서 인상이 강했어요, 혹시 기형도가 아닌가~ 지금 막연히 생각합니다. 그 당시엔 얌전빼느라고 뒤풀이 술자리엔 어울리지 않았어요. 어리석게 지내서 후회스럽죠. 대학의 낭만을 모르고 산 것 같아요. 가까운 선후배들은 문단 진출은 안하고 언론사 쪽의 일이나 번역 등을 하고 대부분 가정에 충실하게 살아요. 정현종 선생님, 신경림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 들었던 추억도 있어요.
맹문재 : 다시 작품 얘기를 해볼까요. 이번에 발표하는 작품 중 「니트의 딸」을 읽어보니 “아버지” “어머니”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배 선생님의 가족 상황을 듣고 싶네요. 작품들을 보면 어린 시절의 가족 상황이 시의 배경 혹은 소재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네요.
배성희 : 작품 속의 아버지, 어머니는 장치적 설정이랍니다. 제가 실업여고에 근무하다 보니까 결손가정이 거의 30%이상에요. 아버지의 주사, 폭력 등을 피해서 엄마는 가출하거나 애들을 데리고 피해 살거나 하는 경우도 많고요. 대체로 생활력이 강한 모성의 보호 아래 아이들은 독특한 개성이 있어요. 저의 현실적 체험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폭력에 감정이입을 해서 현대 가정의 심리적 불화가 대물림되는 인간의 씁쓸한 내면 이야기를 만들어 봤어요.
사실, 저의 친정아버님은 자상하고 다정다감하세요. 12월 31일 밤이면 온가족이 조촐한 다과상에 둘러앉아서, 겨울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매화에 대한 교훈과 덕담을 아버지로부터 듣고 감동을 받고 자랐어요. 지금은 안성 미리내 전원주택에서 5년째 살고 계신데 꽃모종을 나눠주실 때, 터전을 옮기는 어린 생명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애지중지 감싸서 주신답니다. 3남매가 어렸을 때는 그림책을 직접 그려서 이야기를 지어 주시곤 했어요, 어머니는 맏며느리의 통솔력을 야무지고 시원하게 갖추신 분이구요. 충무 근처 시골마을에서 네다섯 살 때 잠깐 지낸 적이 있는데 미발표작, 「코의 전성기」에 그 푸근하고 정겨운 추억을 묘사했어요.
부모님과 오빠의 과보호를 받고 자라면서 유독 감수성이 예민하고 여린 심성이 형성된 것 같아요. 5살 어린 남동생은 자립심이 강한 편이구요. 사업의 굴곡으로 부유한 살림은 아니지만 사이좋은 부모님 슬하에서 화목하게 자란 아름다운 추억과 그렇지 못한 지금을 무의식적으로 비교하면서, 현실적인 저의 고통을 더 견디기 힘들게 느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비슷한 경험으로 내성을 갖춘 사람보다 두 세계의 간격을 극복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그래서 아직도 저는 부모님께 유일한 걱정거리랍니다. 작년 5월 8일 ‘서정시학’의 축하 전보를 받고 들떠서 전화를 드렸을 때 “시인의 엄마가 되었다”고 울먹이며 기뻐하셨어요.
맹문재 : 어머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좀 더 작품 얘기를 해보지요. 배 선생님의 대부분 작품에는 “나(내)”가 주어이자 화자의 역할자로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나(내)”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자아 인식이 강하다고 볼 수 있지요. 자아의 어떤 면을 인식하는지 궁금하네요.
배성희 : 과거의 어떤 시련을 견디면서, 의식적으로 “나는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는 착한 여자다”라는 자기암시를 계속 하면서 살았어요. 그 한계를 깨닫는데 세월이 길었지요. 갈등과 고민으로 지쳐갈 즈음, 멀 쉐인의 문장이 제 머리를 치더군요, “삶에 대한 접근 방법은 희생자의 길과 용감한 투사의 길 두 가지뿐이다. 당신은 행동할 것인지 반응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열악한 환경에 휘둘리는 수동적인 존재를 깨고 나와서, 자아를 진심으로 돌보는 주체적인 행위로 저의 유일한 선택은, 바로 시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신화적 모성의 실천은 저에게 불가능한 것이었지요. 자아 발견과 쓰기가 함께 출발한 것입니다.
시에서 화자가 되거나, 내가 창조한 화자와 교감을 하기도 하고, 어느 경우에 화자는 현실의 나보다 당연히 더 드라마틱하게 시세계에서 분열하고 자유스럽지요. 애초의 의도대로 써내려갈 때도 있지만, 시가 시를 끌고 가는 야릇한 체험도 종종 합니다. 나와 시 속의 화자를 교환하고 투사해서 자의식을 확립해 가는 이 작업이 흥미진진한데, 어려운 문제는 바로 외부와의 소통이지요.
맹문재 : 뿐만 아니라 배 선생님의 작품에는 “너”라는 호칭이 “그”를 비롯한 다른 호칭보다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작품마다 “너”라고 호칭되는 대상은 다를 수 있지만, 중복되기에 궁금한 것도 사실입니다. 시 쓰기에서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인지요?
배성희 : 각각의 작품마다 경우가 다른데요. 해설이 되면 곤란하지만, 「니트의 딸」에서 고단한 삶의 와중에 우연히 의지하고 싶은 대상을 만났는데, 그 “너”마저 어느 순간 도망치려는 존재로 그렸어요. 너도 나도 결국은 나약한 인간이니까요.
「리듬의 발견」에서는 이성적이고 유순해 보이는 나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성급한 야성성을 “너”로 놓고 묘사했어요. 독자가 순수하게 작품만을 읽고 스스로 개인적인 고유한 느낌을 가지고 음미하면 좋은데, 시인의 의도가 오히려 걸림돌이 될까봐 조심스럽네요. 다른 작품에서는 제가 갈망하는 예술적인 완성도가 있는 품격을 갖춘 시를 “너” 아니면 “그”라고 설정해서 연시 같은 분위기도 나지요.
맹문재 : 배 선생님의 작품들은 상상력을 통해 뛰어난 이미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는 면도 있습니다. 시를 쓰는 데 주안점을 두는 면이 있는지요?
배성희 : 모순투성이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그럴듯한 포장 아래 미추의 양면을 끌어안고 몸부림치며 사는 인간은 여러 가면을 감추고 있으면서 자기 필요에 따라 극단적인 이기심을 드러냅니다. 그런 경우는 특수할 때도 있지만 놀랍게도 일상적으로도 많아요. 어떤 위기에 부딪쳤을 때 적응하거나 좌절하거나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 삶은 대부분 너절하고 어둡고 절망스러운데, 기묘하게 약자를 괴롭히는 가해자의 심리도 알고 보면 불쌍해요. 이러한 측은지심이 생명을 옹호하는 시정신과 근본적으로 이어진다고 봐요. 인간의 삶은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해서 DNA라는 물질의 이기적인 흐름이라고 보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그런 단순 논리에 동의하지 않고 개개인의 경우, 경우마다 시시각각 상대적이라고 봐요. 탐구하면 할수록 무궁무진한 것이 사람이라는 수수께끼 같아요.
맹문재 :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시단에는 소위 ‘미래파’라고 지칭되는 젊은 시인이 대거 등장해서 활동했습니다. 배 선생님의 작품도 주관적인 상상력 혹은 상징성, 문장 간의 유기적 관계 부족, 외국어의 빈번한 사용 등 그와 같은 성향을 띠는 면이 있습니다. 새로운 시 경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배성희 : 다양한 시 경향에 대해 긍정적입니다. 문화적 정보가 매우 다채로운 현실을 볼 때 신세대 특유의 유연함으로 소화시켜서 개성적인 발성을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니까요. 어떤 영역으로 제한해서 경계선을 긋지 않고, 한 권의 시집에서 저의 통점을 자극하는 몇 편의 시가 있으면 오래 붙들고, 음미하는 그 순간을 소중하게 느끼는 것이 저의 독법입니다. 생김새가 다른 새들이 제각기 서로 다른 소리로 노래하는 것이 이상적인 생태평형인 것처럼 다채로운 표현 방식을 서로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바람직한 것 같아요.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어차피 조금씩 변화해가는 움직임이 역동적으로 살아 있는 사회의 특징 아닌가요. 세대를 넘나드는 시인의 본질적인 고민거리를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니까, 제가 낯선 방식으로 내면의 움직임을 표현하는데 다소 모험적일 수 있는 언어 사용이 유기적 관계의 부족으로 보일 수 있겠네요. 독특한 이미지만큼 작품 전체를 짜임새 있게 통어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맹문재 : 배 선생님의 작품에서는 “리듬”이라는 시어가 주목됩니다. 이번에 발표하는 「리듬의 발견」이란 작품의 제목도 있고, 「댄싱 하트」에서는 “헤비메탈 리듬”이란 구절도 있습니다. 이밖에도 「토파즈」에서는 “토파즈의 힘, 달이 차오르고 기우는/리듬에 따라 생겼다는데”, 「코러스」에서는 “높고 낮은 음표와/강약의 리듬으로 호응한다” 등의 구절이 보입니다. 리듬에 대한 특별한 의도가 있는지요?
배성희 : 저에게 리듬은 불완전한 생명체의 에너지입니다. 다이아몬드처럼 완벽한 고체는 너무 경직된 것이고, 완전한 해체는 멍하고 지루한 상태지요. 자연스러운 조화를 향해 가면서 사람이라는 신비로운 우주 내부의 입자가 이리저리 부딪히는 리듬, 또는 그런 사람끼리 자극과 반응을 주고받을 때 느끼는 긴장감, 생동감 넘치는 리듬이 발생하니까요. 인공낙원처럼 평화로운 수도원에서 근심 걱정 없이 사는 것은 얼마나 무료할까요. 고통을 잉크 삼아 창작하는 일에 의미를 두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못난 인간끼리 상처를 주고받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과정을 무시할 수 없어서 리듬이라는 단어나 리듬의 본질을 애용합니다.
맹문재 : 배 선생님의 작품들은 “울다” “상처” “깨부수다” “부러지다” 등의 시어들에서 보듯이 다소 어두운 배경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와 같은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항 내지 극복하려는 면도 보이고 있습니다. 추구하는 시세계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배 선생님께 시는 어떠한 가치를 갖는 것인지요?
배성희 : 이야기가 연결되는데요. 미완의 아름다움에 의미부여를 하고 싶어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서 “어떤 종류의 완전함이란 불완전함의 한없는 축적이 아니고서는 실현할 수 없다”라는 문장에 공감합니다. 불완전함에서도 치밀하게 질을 높이려고 애쓰는 정신을 시에서 추구합니다. 「잠수종」에 등장한 산세베리아는 음지에서도 광합성을 하지요. 그 식물의 의지력이 시를 쓰고 사는 저의 모습이고 쓸쓸한 현실에서 단순히 상처만 받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더 나아가서 풍요로운 내일을 희망하는 가느다란 싹을 키우니까요. 독서나 여행이나 저의 모든 심신의 활동이 시 창작에 연결되어야 비로소 진정하게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맹문재 : 조금은 어려운 질문일 수 있는데, 어떤 작품을 좋은 시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좋은 시에 대한 기준이 있는지요?
배성희 : 좋은 시에 대한 이상적 기준이 있어요. 늘 곁에 두고 영감을 받는 책 『영혼의 자서전』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로 대신할게요. “예술은 육체가 아니라 육체를 창조한 힘의 재현이다.” 그 힘을 재현하는 능력을 키우고 싶어요. 이 문장에 공감하는 사람에게서 사람들에게로 시사랑이 이어진다고 봐요. 반면에, 누군가의 절실한 고통을 섣불리 위로하면서 이겨내라고 충고하는 방식은 공허하고 설득력이 다소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이것은 너무 관념적인 대답일까요. 좀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우리 사회를 통제하기 편리하게 조직적으로 움직이게 하려는 윤리 도덕의 영역과, 근본적으로 생명체의 다양한 본질을 존중하는 심성 사이에 생기는 미묘한 갈등이나 긴장감이 있는데, 그 문제를 감각적으로 형상화해보고, 그 간격을 어루만지는 손길을 독자가 시에서 느낄 수 있다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맹문재 : 어떤 취미 활동을 하시는지요?
배성희 : 현실 도피 수단으로 한동안 영화에 미쳐 다녔는데, 돈이 궁할 때 혼수로 마련한 은수저를 들고 금은방까지 간 적이 있어요. 팔면 얼마 안 되지만, 칠보장식이 귀한 물건이니까 대를 물려 쓰라는 충고를 듣고, 정신 차리고 되돌아오긴 했는데 생각하면 참 재미있어요. 비밀 카페에 영화 감상을 짧게 남겼는데 그 1년 동안 100번까지 일련번호가 있어요. 공허한 마음을 그런 식으로 보충했어요. 다른 취미로는 악보만 있으면 피아노 연주를 좀 해요. 대중 팝송부터 쇼팽이나 모차르트의 쉬운 소품도 종종 즐겨 하지요, 물론 자랑할 수준은 아니구요.
맹문재 : 요즘 관심 있게 읽은 책이나 관람한 영화나 공연 등이 있으면 소개해주실까요?
배성희 : 카뮈의 『작가 수첩』을 다시 읽고 있어요. 참 쫀쫀하고 매력적인 문장이 많아서 밑줄을 그으며 봐요. 최근 소설로는 헤르타 뮐러의 시적인 산문 『저지대』,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의 『여명』도 질투하면서 읽었어요. 유려한 번역이 원작을 잘 살린 듯해서 좋아요. 가장 여성적인 것이 가장 인간적인 감정을 대변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영화로는 미카엘 하네케의 작품 「하얀 리본」을 감상했어요. 그 감독의 예전 영화 「피아니스트」도 감동적인데, 억압 받는 인격체의 심리가 저의 현실과 겹쳐지면서 생생하게 와 닿았어요. 저의 가장 큰 관심사인 억압과 폭력이라는 공포, 그토록 다루기 어려운 주제를 흑백의 건조한 영상으로 음악도 거의 없이 섬세하게 다루는 솜씨에서 시적인 영감을 받았어요.
맹문재 : 여러 가지로 소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좋은 시를 많이 쓰시길 거듭 기대합니다. 언제 또 남은 얘기들을 나누어보지요.
맹문재
(시인, 안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