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색(脚色)이란 시, 소설등 문예물을 영상물로 변환 하는 작업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각색의 대상이 되는 문예물에는 수필이나 수기, 칼럼등도 포함되며, 만화나 신문의 사건보고 기사등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영상물로 변환한다는 것은 작가의 창조적 능력으로 원작이 영상물로 재구성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각색을 제2의 창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각색이 창작이 되는 것은 표현형식을 바꾸는 작업이 인정되는 것이며, 이것은 서사적, 서술적 형태의 문학적 글이 극적인 형태라는 또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것에 대한 당연한 인정이다.
그러나, 일종의 변환 작업인 각색에 대하여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찬반의 결과야 어떻든 각색자에게는 창작자로서의 동등한 대우가 주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먼저 각색 찬,반에 걸친 대립적인 시각을 살펴보기로 하자.
2, 각색에 대한 대립적 시각
각색에 대한 찬성적 입장은 ‘원작에는 스토리,구성,대사,주제등이 갖추어져 있기에 크게 무리없이 또는 고민을 덜 하고 극본으로 옮겨놓을 수 있다.’(이환경. ‘TV드라마 작법’ 청하, 1996, p102) 그러므로 작가는 일단은 쉽게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는 계산이 서기도 한다. 아울러 작가 지망생에게는 원작을 각색해 보는 공부법이 일반적으로 초기에 좋은 작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각색에 의한 드라마는 오리지널 극본의 빈곤이라는 입장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작가는 자신만의 세계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로인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했을 때 비로소 작가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다.’(장기오. TV드라마 바로보기,바로쓰기. 커뮤니케이션북스, 1997. p385) 그렇다고, 각색이 전적으로 배척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각색에 의한 작품이 드라마 전체에서 우위를 차지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지난 90년대까지의 드라마는 원작을 각색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소설로 많이 읽힌 작품들은 거의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었다. 그리하여 각색된 원작의 작품을 드라마로 보고 ‘원작을 꼭 읽어 보고 싶었다’라는 찬성의 시각과 ‘원작을 망쳤다’라는 반대적 시각이 대립하기에 이르렀다.
찬성과 반대의 시각을 무릅쓰고, 일단 좋은 원작이 있고, 드라마로 보여지기에 필요충분한 이유가 있다면, 각색은 되는 것이 좋다. 문화는 대중이 공유할 때 가치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TV드라마에 결핍되어 있다고 지적받는 문학성에 대한 보완도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각색작업에 대하여 세밀하게 알아보자.
3, 각색자의 권리
각색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각색이 어려운 이유를 통하여, 원작의 문학과 영상화를 목적으로한 드라마 극본의 차이를 구별해 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서사적인 것과 극적인 것의 차이로 장르의 대립이다. 거기에다 표현법이 다르며, 문학이 예술지향이라면 드라마가 대중지향성을 띄고 있으므로 그 지향점이 다르다. 또한 시간,공간의 구성등이 다르다는 어려움등이 있다.
이것은 모두 근본적으로 문장과 영상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차이와 대립을 극복하는 것은 각색자가 충분히 익히고 있는 드라마트루기에 의해서만이 가능할 것이다. 거기에 작가정신 또한 가미해야 함은 당연하다. 드라마트루기에 능하여 완숙하게 원작을 드라마화 했다면, 그것은 작가의 기술적인 능력이라기 보다는 창조적 작가로의 능력으로 인정 받는다. 그러므로, 좋은 원작을 선별하여 각색작업에 들어가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좋게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먼저 압박감 때문이다. 이 압박감은 원작에 대한 압박으로부터 시작된다.
“원작의 정신을 부각시키야 한다.” “원작에서의 기본 의도는 손상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주문들이 압박감으로 작용한다. 또한 원작의 주제와 기본 골격을 지켜야 한다는 방법론적 압박감까지 가세할 것이다. 그러나 각색자에게는 각색을 위한 세 가지 권리가 있다. 이 권리에 대하여 ‘텔레비젼 드라마 예술론’의 오명환 씨는 선택의 권리, 변조의 권리, 재편성의 권리로 설명하고 있다.(오명환 저 ‘同’ 나남출판, 1994. p228)
① 선택의 권리다. 원작의 내용을 선택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선택되고 남은 부분에 대하여는 생략할 수 있다는 생략의 권리이며 반대로 확대할 수 도 있기에 확대의 권리이다.
② 변조의 권리다. 제목에서부터 구성이나 형식등을 각색자가 전환할 수 있다는 전환의 권리이다. 각색은 또 다른 형태의 창작이며, 각색자의 해석으로 작품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③ 재편성의 권리로 기존 작품을 해체,분석하여, 드라마로 종합할 수 있는 권리다.
이상의 권리는 각색자가 원작을 각색하는 기본 입장이기도 하며, 각색에 의한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권리에는 반드시 의무가 따르는 법이다. 앞서 말한 압박감이 의무가 될 것이다. 원작을 손상하지 않는다는 것 등은 권리에 주어진 의무라 간주해야 한다.
4, 각색의 절차
각색의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작에 대한 충분한 이해일 것이다. 원작에 대한 설익은 이해는 자칫 원작의 의도를 망칠 수 있다. 이 충분한 이해는 원작에 대하여 비판적인 해석도 곁들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원작의 주제, 줄거리를 극으로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원작을 완전하게 이해 했다면, 내용의 첨삭에 관해서도 나름대로 입장이 설 것이다.
그러므로 절차에는 여러 방법들이 있을 것이며, 각색자가 원작에 대하여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느냐의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대게 아래의 절차대로 진행이 될 것이다.
1) 원작 1차 읽기를 통하여, 작품 전체를 내용면에서 파악해 본다.
2) 원작 2차 읽기를 통하여, 작품의 성격과 원작자의 숨은 의도등을 파악해 본다.
3) 원작 3차 읽기를 통하여, 대사와 상황과 드라마로의 형상화 부분등을 체크해 둔다.
4) 원작을 덮고, 원작의 내용을 드라마로 구성해 본다.
5) 구성된 극본과 3차 읽기에서 체크한 부분들과 대조해 본다.
6) 대조의 결과를 분석하여, 생략과 확대를 다시 한번 고민해 본다.
7) 각색을 완성한다.
이 절차내내, 각색자는 문장과 영상 사이를 오가며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문장에서는 쉽게도 표현되는 ‘드디어’ ‘몇 년 후’등은 영상에서는 어떤 식으로 시간경과를 줄 것인가. 상당한 분량으로 채워져 있는 문장의 심리묘사는 또 어떻게 영상으로 풀어 낼 것인가. 대사로 풀어낼 것인가. 아니면, 상황이나 셔레이드등을 활용할 것인가. 또 형용사적 표현의 문구들은 문학의 절대적인 표현이기도 한데, 과연 어떻게 영상화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역시 창작의 고통이 따를 것이다. 이 점은 <드라마 작법>을 참조하기 바란다.
5. 각색의 문제점.
각색에 관하여 가장 확연히 드러나는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드라마가 성공을 거두면, 원작의 가치와 연출자의 영상미학에 그 이유를 둔다. 그러나 실패를 하면, 모두가 각색자의 잘못으로 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드라마 제작의 형태에도 문제가 있다. 특집극으로 편성되는 작품성 드라마는 원작에서 찾고, 오락성 일회성 드라마는 드라마 작가의 창작에 맡기는 경우가 그 문제점이다.
그러나 가장 우려되는 바는 현대문학의 위기에 있는 것 같다. 90년대 이후 소설을 중심으로 한 문학의 위기는 영상표현에 그 한 원인이 있다고 한다. 현대문학이 영상문체화 되고 있는 것이다. 탁월한 심리묘사와 내면의 갈등구조를 그려내던 문학이 영상언의 기법을 뒤쫒아 가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살아 남은 자의 슬픔><아담이 눈뜰 때>등 9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들을 읽어보면, 영상적인 서술방법으로 쓰여져 있어서,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글읽기를 시도한다면,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본 듯 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은 과연 무엇 때문에 초래된 것일까?
문자세대에서 영상세대로의 교체기의 현상이며, 읽혀져야 할 문학이 보여진다는 것은 그 문학작품은 탄생의 순간부터 영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의미도 숨어 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문학을 각색해야 할 이유가 상실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상실의 이유는 문학의 원작자가 그려낸 세계를 그대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각색자는 작가가 아니라 하나의 기술자에 불과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우려는 계속되고 있으며, 갈수록 심화 되고 있다. 그러면서 문학의 정신을 드라마에 차용할 소지는 점점 엷어져 가고 있다. 이것이 문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