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15권에서 얘기하는 논조가 유스티니아누스의 동로마 제국이 무척이나 경제가 피폐했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과 굉장한 거리가 있습니다.
동로마 제국 경제는 감세 정책을 시행했던 발렌스, 그리고 부패 척결과 시스템 관리에 상당한 공을 들인 테오도시우스 시대부터 회복세를 타서, 역시 시오노도 인정하는 풀케리아 시대에도 그건
여전했습니다.
서구 사학자들인 워랜 트렌드골드, 오스트로고르스키에 의하면, 이미 유스티니아누스의 전전임자인 아나스타시우스 때부터 제국 재정 상태는 굉장한 호조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의 동로마 제국은 그 많은 전투 비용을 커버하고도 국고가 남을 정도였다는 것이죠.
유스티니아누스가 단순히 프라퍼갠다에 미쳐서 결정한 게 아니라, 사전에 들어가는 비용과 회수하는 비용을 계산해서 군대를 축차적으로 투입을 했었습니다.
실상 유스티니아누스의 제국 재건책을 망쳐놓은 것은 전염병으로 인한 급격한 세수 감소지, 무리한 착취가 원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유스티누스 2세 (어이쿠..이것도 "유스티니아누스 2세"라고 책에선 적어놓고 있습니다만.
엄청난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유스티니아누스 2세 황제는 그보다도 100년 훨씬 후에 등장하는 황제입니다. )
때 국가 재정이 완전 앵꼬난 것처럼 쓰고 있지만, 그 뒤 제정신 박힌 티베리우스 2세가 제위에 오르면, 몇 가지 조치를 해서 어느 정도는 복구시켜놓습니다.
마우리키우스 때 또 다시 앵꼬가 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동로마 제국 체제 자체의
비효율성이나, 과중한 세금 등등의 그런 본질적인 현상이 아닌, 국가 재정의 일시적인 운영상의
모순 문제였습니다.
이는 헤라클리우스가 해결하면서 다시 증명됩니다.
2. 시오노 나나미는 이탈리아와 카르타고의 경제력이 반달 왕국 그리고 뒤를 이은 동로마 제국 때문에 나빠졌다고 악담을 퍼붓던데, 그것도 사실과 매우 다릅니다.
카르타고 지역은 상당한 경제력을 이후 회복했었고, 위기의 시대가 되면 아예 헤라클리우스가 수도를 카르타고로 천도하는 것까지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난장판 되었다는 이탈리아 지역도 생각 외로는 경제적 역량을 어느 정도 보존하고 있었고,
롬바르드 족 또한 깽판만 마구 쳐댄 게 아니라 사방에 프랑크와 동로마가 버티고 있어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통치를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카르타고 지역이 또 반달 족 지배하에 들어가서 피폐했다고 쓰시는 데,
조지프 테인터에 의하면 경제적 발전 지표는 오히려 그 시대에서 가장 월등했다 합니다.
그 할머니 생각으론 도나투스 파하고 정통파가 머리 끄댕이 잡고 싸우기만 하면
경제가 발전 안되리라 생각하시는 듯 하지만, 반달족 통치자들도 바보 멍청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만 놔두면 종말이 다가온다는 것 정돈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들 역시 생각 외로 경제 부흥과 학술 진흥에 힘을 쏟았고, 결국은 이들 역시도 가톨릭파로
개종을 합니다. 이들 역시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계속 아리우스 주의, 도나투스 주의로만
놀면 언젠가는 동로마 제국에게 생트집을 잡혀 당하고야 말리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유스티니아누스도 동고트 왕국에 대해서는 "척결해야 할 이단"운운의 여론 플레이에서
상당한 재미를 보았으나, 반달 왕국에 대해서는 그 수법을 써먹을 수가 없어서 아주 고민했었습니다.
때문에 반달 왕국은 그냥 조공 받아먹는 수준에서 끝마치려고 했으나....
그에겐 생각지 않는 횡재, 반달 왕국에게는 뜻하지 않은 대재앙이 발생했었습니다.
반달 왕국이 꽤 오랜 기간 잘 버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너진 것은,
벨리사리우스 정복 직전에 기존의 가톨릭 정통 반달 왕을, 반역자 아리우스파 반달 장군이 찬탈해서 잔인하게 죽였기 때문에 이 친구에 대해서 반달 왕국 내부에서도 안티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입니다.
잔인하고 무능한 찬탈자가 간혹 외적보다 더 증오를 받는 건 어디서나 공통 현상이지요. 근데 요것도 시오노 님께서는 생략~ 뭐, 특정 결론을 위해서겠지요.
3. 시오노 나나미는 유스티니아누스가 학문과 거리가 먼 무식쟁이였다고 하면서 역사의 미스테리라고 하는데, 여기서 역사의 미스테리는 오히려 사실을 정반대로 기술하는 시오노 나나미입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동시대에서 가장 뛰어난 교양인이었다는 게 학자들의 중론입니다.
그는 뛰어난 신학자, 법학자였던 동시에 뛰어난 작곡자였고, 시인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네로 황제가 되고 싶었던 모습이죠.)
유스티니아누스에 대해 온갖 저주와 욕설을 퍼부었던 프로코피우스마저도, 유스티니아누스가 현신한 아크데빌이라고는 할 수 있었으나 아는 게 없었고 시와 노래도 형편없었다는 소리는 감히 적어놓질 못했습니다. 여하튼 유스티니아누스가 당대 최고의 교양인이자 음악가였다는 건 그조차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왜 이 사람을 시오노 나나미는 무식쟁이로 몰 수 밖에는 없었는가....
그거야, 뭐, 뻔할 뻔자. 유스티니아누스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입니다. -_-
로마에 기독교가 퍼지면서 무식쟁이들만 대거 지도층에 들어가서 양산되었으니, 유스티니아누스도
무식해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4. 아카데미의 폐쇄로 학문적 수준이 대폭 낮아졌다?
워랜 교수에 의하면, 율리아누스의 시대에서 이미 이백년이 지나 헬레니즘 철학과 교육이 기독교에 대폭 침투한 그 당시에는 훌륭한 역량을 가진 기독교 학자들이 많았기에,
아카데미의 폐쇄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수준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고 합니다.
즉 기독교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거리낌이나 주저없이 그리스 신화나 일리아드를 줄줄줄 읊어대는 자들이 많았다는 얘기죠. 시오노 나나미는 그런 사람들이 없었다고(혹은 르네상스 이후에나 등장한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만, 아쉽게도 아니었습니다.
학술 전통이 대폭 죽어버린 서로마 지역에서도 그리스-로마 학문을 수도사들이 보존했었는데,
대규모 교육 기관을 유지했던 동로마 제국에선 어땠을 지 그건 너무 뻔한 것입니다.
중세는 광신도들이 지배한 무식한 시대였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이리 하신 듯.
동로마 제국의 학술 수준이 대폭 다운이 된 것은 헤라클리우스가 아랍에게 패배를 당하면서 이집트와 시리아, 아나톨리아를 잃어 경제가 피폐한 나머지 교육 부문에 국고 보조가 끊긴 것이 원인이지,
유스티니아누스의 아카데미 폐쇄가 원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도 계속해서 제국은 가능한한 필수 학술 분야에 국고 보조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
5. 로마법 대전을 활용 못했다?
......물론 라틴어로 씌어졌지만, 그 시대의 판관들은 충분히 라틴어판 로마법 대전을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의 기량이 있었습니다. 로마인이 없어졌으니 로마법 대전도 활용못했다. 이건 소설 용어로는 훌륭해도, 역사적 사실과는 영 거리가 멉니다.
로마법 대전이 활용이 잘 안되는 것은 역시 아랍의 돌진 시대 이후고, 이것도 경제 수준의 저하로 교육이 퇴보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법전이 그리스어 버전으로 개정판, 요약판, 다이제스트, 판례집, 계속해서 나왔던 것은 일언반구 언급이 없습니다.
6. 4~6세기, 8~12세기의 동로마 제국 경제-학술 부흥에 대해선 말이 없다.
기독교 제국은 교리 싸움하느라 나날을 지새우므로 경제 부흥하면 안되는 모양입니다. 요즘 극우 목사님들 입에서 나오는 "예수님 믿어서 미국이 잘산다"는 굉장한 오버지만, 그 반대도 이렇게 문제가 심각 합니다.
실상은 그 교리 싸움 덕택에 제국의 학술 수준은 아니러니하게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습니다. 헤라클리우스 왕조 시대가 지나면 제국이 살아남는데만 급급하면서 교육 분야에 대한 지출을 대폭 줄여버려 관리들의 질이 대폭 다운이 되었는데, 이것이 성상 파괴 - 성상 숭배 및 단의론 및 단의론 단죄, 단성론 비판 등등등을 거치며 학술적 지식에 대한 요구가 국가적 요구로 급부상합니다.
성서를 뒤져보고, 옛 그리스 성현들의 저작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학문의 부흥이 이어졌고, 이것이 훗날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세웠고 헤라클리우스가 대대적으로 보수한 행정 - 세금 징수 체제의 합리화로 이어집니다.
근데 시오노 할머니께선 교리 싸움하면서 광신도들이 생겨나 이 친구들이 학문하는 이교도들을 탄압하는 찌질한 시대가 이어져 다들 전반적으로 머리들이 나빠졌다고만 쓰려고 하시더군요.
7. 뻑하면 등장하는 게 그 대책없는 "파밀리아 개념"입니다만, 2~3세기의 제국이 그 고생을 했던
것은 그런 "선 방어 전략"이 시대에 맞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전방 생활을 안해봐서 물러터져서, 그리고 이후 황제들이 "로마다운 것"을 버려서가 아닙니다. 종심 방어 전략을 채택하면 제국 안이 전장이 된다고 하는데,
그나마도 그렇게나 하니까 적군 격퇴가 가능한 것입니다.
선 방어 전략을 채택하면 아예 제국 안에서도 밖에서도 늘상 털리는 꼴이 일어나지요.
3세기때의 군사 전문가 로마 황제들이 바보 멍청이라 종심 방어 전략으로 선회한 것이 아닙니다.
8. 로마는 "민족"이 아닙니다. 그리고, "영토 국가"에서 "수도"를 이전한다고 국가가 아니게
된다는 논리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시오노 나나미 본인이 2~3권에서 줄기차게 얘기했던 걸
왜 뒤집는 지 정말 모를 일입니다.
그리스어를 쓴다고 또 아니라고 하는데, 그리스어 자체가 로마 제국 공용어였다는 논조는
또한 어찌되는 지 그것도 궁금합니다.
라틴어를 쓰는 게 제국 정체성이라면, 그 라틴어도 그리스어 영향이 아주 컸고,
그리스어 또한 라틴어 영향으로 많이 바뀌었던 것도 언급이 없으십니다.
9. 고트 족 토틸라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던 건 어디까지나 나르세스의 천재적인 지휘 때문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아주 많이 생략하십니다.
카이사르, 스피키오에 대해선 아주 자세히 세세히 묘사했던 그 역량은 다 어디 갔는지 궁금하지요.
10. 로마에는 장군 황제가 테오도시우스 이후 없었다는 엉터리 주장은 아예 언급할 가치도
없습니다. -_-
마르키아누스는 놀고 있었나? 제노는? 그리고 서로마 제국 말기 황제들도 몇명 빼놓곤 전부 장군 황제였는데?
그리고 로마 제국 전성기에도 장군 황제가 아닌 황제가 없었던 게 아닙니다.
드물어서 그랬느냐고 할 지도 모르겠으나, 오히려 후기 로마, 그리고 비잔틴 로마 시대에도
장군 황제가 아닌 황제가 예외적입니다.
* 관련 출처 문헌
로마인 이야기 15권 (시오노 나나미 저)
로마 제국 쇠망사 3,4,5권 (에드워드 기번 저)
비잔티움 연대기 (존 노리치 저)
비잔티움 제국사 (게오르그 오스트로고르스키 저)
비잔틴 제국 (워랜 트레드골드 저)
고대 전쟁사 이야기 (존 워리 저)
사생활의 역사 1권 (조르주 뒤비에 저)
문명의 붕괴 (조지프 테인터 저)
첫댓글 나나미옹의 저술은 개인적으로 [로마쵝오하악하악]이 역겨워서 5현제 이후로 끊었는데-.-;; 갈 수록 가관인가 보네요
로마제국의 성쇄와 작품의 질이 비례한다고 보면 정확합니다. 로마제국이 잘나가면 그 부분 서술은 훌륭하고, 로마제국이 자기가 싫어하는 방향으로 가면 그부분 서술은 전체적인 삭제와 폄하가 진행돼죠. 막판 동로마제국 지도만 놓고 보면 그야말로 쇠락의 역사 비슷한 식... 거기다가 막판에는 몸도 안좋아져서(카이사르 부분 집필 완료후 칩거+몸 상태 약화가 있었던 적도 있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 지병이 당뇨던가...) 대충대충한 티가 납니다. 씁. 지금은 괜찮으실려나...
로마제국이 잘나가면 그 부분 서술은 훌륭하고 /// 괜히 "이런 로마 동인녀 같으니!!"란 소릴 듣는게 아닙죠~ ,~
세레나와의 가족관계도 있죠. 죽을때까지 잉꼬부부였던 관계였는데, 대체 스틸리코에게 뭔 흑심이 있었는지 둘 사이를 떼어놓았습니다. 물론 막판엔 둘이 부부싸움할때도 많았지만, 그 원인이 아들 장래문제(스틸리코-문관, 세레나-무관... 세레나가 더 야심이 있었던 게 아닐런지...)였는데.
시오노 나나미여사의 팬으로서 읽을때 좋은 지침으로 생각됩니다 ㅎㅎ 저런 점만 조심해서 읽으면 되겠군요. 그런데 확실히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책은 로마인이야기는 12권까지, 그리고 바다의 도시 이야기 요정도가 가장 좋은거 같습니다. 너무 초기 작품은 문체가 딱딱해서...덧붙이면 전쟁 3부작과 세도시이야기도 책값은 아깝지 않을 작품이죠 ㅎ
딴건 잘 모르겠고, 전쟁 3부작의 첫 작품은 스티븐 런치만경의 책 덕택에 돈이 좀 아까웠습... orz
그건 사실입니다. 첫 부작은 이것저것 허튼 얘기가 너무 많아서 좀..
오 그랬군요..동로마제국상태가 은근히 당시상황으론 커버하고도 국고가남았다...그럼왜 이탈리아를 수복하지않았을까요....동로마 황제로서 서로마의 로마인들을 구해주지않은 이유는뭘까요...벨사리우스에게 코딱지만한 병력줘보내놓고 로마수복했는데 결국 포기하게만든...흠 의심이가는군요
1)나르세스가 가서 다시 회복합니다. 2)전염병 크리+사산조와 투닥투닥이 점점 거세지고+북방민족들이 집적거리다보니 다시 이탈리아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롬바르드족이 그렇게 만만한 상대도 아니지요.
소설가에게 역사서를 쓰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죠. 시오노 할머니는 소설가이지 역사가가 아니잖습니까?
그래도 단순한 공부 부족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대로 역사를 마구 곡해하면 곤란합죠 ㅠ
적어도 유스티아누스가 부시 못지않은 뻘짓을 한 것은 인정할만한 부분이라 생각되는데요... 전쟁이 뭐 돈 대충 드는 사업도 아니고 국고가 정상수준이다란거랑 전쟁치고도 남을지경이란거랑은 천지차이겠죠. 뭐 클린턴행정부도 상당한 재정건전성을 유지한채로 정권을 물려준 것으로 알고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국고가 정상 수준이다"가 아니라, "국고가 전쟁 사업해도 될 만큼 탄탄했고, 정복지에서 벌어오는 소득이 투자를 상회했다"가 진상입니다. 부시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유스티니아누스의 계획을 망친 건 전염병으로 인한 세수 감소며, 그것마저도 알려진 것보다는 타격이 과장되었습니다. 경제의 기본 자체가 무너진 건 아닙니다. 그게 무너진 건 오히려 헤라클리우스 땐데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는 자는 없다는 게 더 의아한 마활입니다.
그렇군요. 역시나 공부를....ㅠ
시오노 나나미가 곡해한거 아니고 글쓴이가 시오노의 글을 오해한것 같습니다만. 제 기억으로 시오노가 유수티아누스를 무식쟁이라고 한 기억도 없고,(경험과 교육이 부족했던 유수티아누스가 시기적절한 판단이나 로마법대전같은 사업을 추진했던게 불가사의한 일이다 라는 표현은 있었죠) .8번 자체는 님이 시오노의 뜻을 이해못한것 같군요. 9번도 이상합니다. 나르세스는 로마인이야기에서 카이사르나 스키피오와 견줄필요도없고 그럴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15권의 시대는 로마인 이야기의 종착지로서 로마역사를 광의적으로 이해하면서 봐야 오해가 없을듯 싶네요.
로마인 이야기 15권의 그 부분을 다시 읽어주십시오. (경험과 교육이 부족했다라는 식으로 안 썼습니다. 대놓고 그 부분 제가 제시하면 인상여님을 깎아내리는 꼴 밖엔 안되니 그렇겐 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8번에서 제가 이해하지 못한 게 대체 무엇입니까? 인상여님이 이해하시는 "로마역사를 광의적으로 이해"하신다는 건 또 무엇입니까? 그게 그냥 다른 서적은 참고도 하지 않은 채 시오노 나나미 견해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시는 거면 그건 광의적으로 이해하시는 게 아닙니다.
9번이 이상하다니요. 나르세스는 당대에서 보기 합동 전술 및 다양한 복합 병종 전술 운용 그리고 상황 판단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명장 중의 명장입니다. 인상여님이야말로 제 글을 이해 못하신 듯 합니다. <카이사르, 스피키오에 대해선 아주 자세히 세세히 묘사했던 그 역량은 다 어디 갔는지 궁금하지요.>이건 나르세스가 그들과 견줄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하곤 전혀 관련없습니다. 그들의 전투에 대해 상세묘사했던 것을 왜 명장 나르세스한테는 적용안했는가가 초점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위대한 로마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기술했는데, 거기서 그걸 언급하면 앞뒤 얘기가 이상해지기 때문입니다.)
님이야 말로 15권의 그 부분을 다시 읽어주십시요. 시오노가 유수티아누스를 '무식쟁이'라 표현해놓은 구절이 있습니까? 그리고 알다시피 로마인 이야기는 로마와 로마인에 대한 역사입니다. 15권에서 시오노는 서로마와 로마라는 도시가 멸망할때 로마역사도 종언을 고했다고 했습니다. 왜 나르세스에 대해 카이사르나 스키피오만큼의 의미부여를 해야하겠습니까. 주관적인 감상이지만, 님이 쓴글은 비잔틴 역사를 애호한 나머지 그것에 대해 부정적인 부분을 기술한 로마인이야기와 시오노에 대해 그저 음해성으로 곡해한것 같은 느낌이네요.
"시오노가 유스티아누스를 '무식쟁이'라 표현해놓은 구절이 있습니까? " .....인상여님. "교양이 없다"를 두고 "무식하다" 라는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까? 꼭 찝어서 그렇게 말한 부분이 없다고 아니게 되는 게 아닙니다. 문맥과 문장 뜻의 해석에서 뭔가를 도출하는 건 문장 해석의 기본입니다. 님처럼 질낮게 "자기 기분 나쁜 거"나 끌어대고, 남을 두고 무슨 "애호했네"하면서 "비열한 음해"나 일삼는 것하곤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인상여님은 아직까지도 제 글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반복합니다. <카이사르, 스피키오에 대해선 아주 자세히 세세히 묘사했던 그 역량은 다 어디 갔는지 궁금하지요.>이건 나르세스가 그들과 견줄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하곤 전혀 관련없습니다. 그들의 전투에 대해 상세묘사했던 것을 왜 명장 나르세스한테는 적용안했는가가 초점입니다. 이건 "의미부여"와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세세한 전투 전술 경과를 묘사하는 것하고 의미 부여가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애초에 "주관적인 감상"만 쓸거면, 님 일기장에 쓰실 일이지 학술 게시판 댓글에 다실 게 아닙니다. "....같네요, 아니면 말고" 이것이야 말로 질낮은 "음해"성 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대체 누굴 위해 저를 그렇게 음해하시는 지, 알 것같지만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저도 님하고 똑같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글이 정말로 "음해와 곡해"라면, 제가 든 내용에 대해 학문적 FACT를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비잔틴 빠든 말든,그것 자체는 FACT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실상은 그렇지도 않지만 말이지요. 저를 님 수준으로 끌어내리지 마십시오. 제가 무어 볼 게 있다고 그런거에 빠를 합니까?)
적어도 타기나에와 카실리눔에서 나르세스가 보여준 보기 합동전술의 수준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저 틸리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 없는 수준입니다. 결과론적으로 봐도 수만의 군대를 80명의 사망자만 내고 5명만 살려보낸 카실리눔 전투는 초기 비잔티움-후기 로마 전술의 완성형으로 보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시오노 나나미의 묘사는... "병사들 앞에 보화를 가득 실은 수레를 보여주었다-"로 끝나지요. 시오노 나나미가 타기나에와 카실리눔에서 나르세스가 보여준 현란한 전술과 로마군이 보여준 투지를 몰랐을 수는 없을텐데 그렇게 묘사한 것은 동로마를 "인정하기 싫었다"라는 느낌이 들기에 충분하지요.
결국 [로마를 잃은 로마는 로마가 아니다]라는 명제를 위해서 로마적 특성이라는 독창성, 유연성, 합리성등등을 인정하면 안되는데, 나르세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위의 "로마적인" 것들을 빼버리고 "동방적인" "보물수레"를 등장시키지요. 이런 점은 특히 마지막 동로마 제국의 지도가 사정없이 줄어드는 장면만 봐도 눈에 뻔히 들어옵니다. 9~11c 비잔티움의 성장과 확대를 권 말미에 실어놓으면 로마적 전통에 그리스-중세적 새로운 체계의 성과를 혼합한 새로운 동로마식 체계가 성공적으로 작동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로마를 잃은 로마는 더이상 로마가 아니다]라는 명제를 이어가기 어렵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로마인 이야기 15권의 이후 세계에도 기존의 "로마"라는 이름의 도로는 꾸준히 이어집니다. 단지 시오노 나나미가 사견으로 그걸 인위적으로 끊어버리기 위해-적어도 오스트로고르스키 이후로는 모두가 인정하는 로마의 연속성을-476년 이후는 로마적인 인물인 "벨리사리우스"를 제외하고는 철저히 긍정적인 서술을 삼갔다는 점에서는 명백한 흠이지요. 위 마활님 글이 지적하는걸 종합해보면 시오노 나나미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뻔히 드러나고, 결국 로마인 이야기는 엄밀한 의미의 역사서라기보다는 초 하이 퀄리티의 역사 동인지라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게 되지요.
덧붙여 님이 쓴 -"로마역사를 광의적으로 이해"하신다는 건 또 무엇입니까? 그게 그냥 다른 서적은 참고도 하지 않은 채 시오노 나나미 견해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시는 거면 그건 광의적으로 이해하시는 게 아닙니다.- 남이 쓴 문장하나 가지고 시오노 추종자에다 자신보다 책도 덜 읽고 식견도 낮을거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단정해 버리는 무개념 리플을 보니 더더욱 님의 쓴 글에 대해 신뢰가 가지 않는군요. 자기마음대로의 곡해와 확대해석은 본문이나 리플이나 매한가지라서요.
그런 "뉘앙스"를 느끼시는 건 인상여님 감성의 문제에 불과합니다. 그런 "자기 느낌"만을 두고 그런 말씀 하시는 거야 말로 "곡해와 확대해석"입니다. 그리고 님이 신뢰하거나 말거나, 님께서 전혀 학문적인 내용에 대해선 말씀하지 못하신 건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런 내용은 님 일기장에나 쓰실 내용들입니다.
학문적이라 했는데 님이 쓴 글의 어디가 대체 학문적이고 학술적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글에 대한 감상을 적는게 대부분인 댓글에 '학문적인 댓글'은 또 무어란 말인지요 ㅎㅎ 어이가 없군요. 그리고 반복하지만 시오노는 로마의 역사가 로마라는 도시의 멸망에서 종언을 고했다고 했습니다. 15권 중반이후의 비잔틴에 대한 설명은 에필로그에 불과합니다. 왜 나르세스에 대한 묘사를 로마제국의 건설자라고 할수 있는 카이사르나 스키피오에 견줄만큼 분석해야 합니까.
적어도 마활님께서 지적하시는 내용은 시오노 나나미가 묘사한 글보다는, 훨씬 더 "현대적인" 연구결과들이 반영된 글입니다. 그걸가지고 "시오노 나나미를 오해했다"라고 태클을 걸어놓고 "난 그냥 감상이었어"-> 적어도 남에게 싸움을 걸었고 남이 Fact를 가지고 대답을 했다면 응당 이쪽도 Fact를 가지고 대답을 해야하지, 그걸 못하면 보통 "털렸다"라고 표현하지요.
로마인 이야기는 역사 도큐멘터리로는 드물게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동양인으로서 로마역사에 대한 이정도의 대작을 저술한 사례가 없죠. 모든 작품에는 단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명작이 세상에 나오면 그 단점만 부각해서 파리떼처럼 비난하는 무리도 있지만, 어느덧 세월이 흐르면 명작의 명성만 남고 파리떼는 사라지게 마련이죠. 그렇게 아쉽다면 시오노 여사에게 이메일이라도 써서 나르세스와 비잔틴에 대한 역사라도 다루어달라고 떼라도 쓰심이 어떠실런지요?
그러니까 역사서가 아니라 동인지지요. 자기가 쓰고 싶은데로 쓰고, 자기 맘에 안드는건 '사실이더라도' 가지를 착착 쳐내서 마음에 맞게 예쁘장하게 깎아내면 대작일지는 몰라도 동인지입니다. 지금 마활님이 태클건건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잃어버렸다-인데, 뭐, 에필로그에서는 사실관계고 뭐고 마음대로 무시하고 써도 좋으시다면야 상관없겠습니다만, 보통 유종의 미라는 것도 중요하지 말입니다. 그리고 시오노 아줌마가 쓰는 동로마사는 별로 보고 싶지도 않네요. 로마인 이야기 15권에서 저지른 만행을 보면 어떤 내용이 나올지 뻔하니까.
글을 이해하는 것과 조크를 이해하는 뇌의 기관이 일치한다고 들었는데.. 그곳이 어딘지 혹시 아십니까? ^^
조크에도 조크 나름의 품격과 그에 맞는 답이 있기 마련이지요.
인상여님께서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들의 판매고가 대단하더라도, 그 "학문적인 오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님은 이게 불만이면 저 자신이 찌질하고 시오노 나나미는 위대하다고 선전 활동이나 하시기 전에, 학문적 내용을 들고 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판매 부수와 FACT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쓴 글 어디에 학문적 내용이 있냐고 하시길래, 참고 문헌을 본문에 추가하였습니다. 궁금하시면 저 책들 죽 읽어보시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계속 나르세스 건에 대해 얘기하시는데, 그건 본인이 답변한 바 있고, 게이볼그님께서 재차 위에 다신 댓글에서 또 답변되어 총 두 번 답변되었으니 그것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고대 그리스 동성애에 대한글은 왜 그리 빨리 지우셨습니까? 님이 쓴 매우 학문적인 주장에 심히 주관적인 댓글을 덧붙인 기억이 나는데 말이죠. ㅎㅎ
결코 님의 그런 "다른 데서 그럴 거니 그럴 것이다"따위의 허접한 감상 때문에 지운 건 아닙니다. 왜 지웠는 지는 다시 올린 해명 글에 올렸으니 참조하시지요. 함부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직설적이라 미안한 말이지만 님이 쓴 글의 학문적 내용이란게 대게 그와 같다는 인상입니다. 뭐 주관적 감상이라면 할 수 없지만, 잘못된 지식을 옳다고 받아들일수 있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주의좀 해주셨음 하네요. 학문적 어쩌고 하는 경솔한 발언도 자제하시구요.
"어디가 잘못 됐는지"에 대한 증명은 없군요. 논리적 사고를 하기위한 뇌의 기관은 필수적입니다.
아니, "그와 같다는 인상"을 토로하시기 전에, "학문적인 내용"을 말씀하셔야지요. "내 주관적 감상이 그래서 학문적인 내용이 아니고 잘못된 지식이다"라면, 그건 제가 아닌 그 누구더라도 도저히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잖습니까. 또한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님께선 11월 23일에 게이볼그님과 제가 답변드린 이후 아직까지 그에 대해 한번도 제대로 학문적인 내용(사실 그 전 내용도 그랬지만)에 대해 말씀을 못하고 계십니다.
인상여님. 학문적 내용에 대해 "주관적 감상"만 얘기하시면 그건 도저히 반박거리도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오노 나나미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하고, 그럼으로 인해 나온 내용의 "FACT의 진실 유무 = 학문적 시비"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외려 이에 대해 계속 인상여님이 자기 "감상"만 근거로 들이대는 행태야말로, "경솔한 발언"이고, 님 발언 내용의 설득력을 대폭 떨어뜨리는 "자제"해야 할 언행입니다. 이또한 알아두셔야 합니다.
역사 전반에 관해 광의적인 식견을 쌓아서 이런 지극히 상식적인 부분에 있어서 그와같은 황당한 주장은 할 수 없는 인상여님이, 좁은 부분의 저서만 조사하지 않고 역사전반의 총체적인 독서를 하시는 인상여님이, 어째서 이런 행태를 보여주시는 지 심히 무지한 천학인 저로써는 도저히 알 길이 없습니다. 이상한 외도는 그만하시고, 자타가 공인하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셨으면 합니다.
뒤늦게 댓글 달지만, 킴브리족과 테우토네스(튜턴)족의 남하 때 로마군이 무수한 연전연패를 당하고 심지어 BC 105년 10월 6일 아라우시오에서 무려 8만 명의 로마군이 전멸당한 일도 있었는데 같은 시대를 다룬 로마인 이야기 3권에서는 이런 사건들을 깨끗이 빼먹었더군요. 아라우시오라는 지명도 아예 안 나왔습니다. -_-;
인상여..
저도 그생각을.. 인상여..
ㄲㄲㄲㄲㄲㄲㄲ.
인상여... 과거의 향수를 느끼게 함....
와우~ 2년전 글이군요.. 잘 쓰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