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진주(晉州). 자 언겸(彦謙). 호 양곡(陽谷) ·퇴재(退齋) ·퇴휴당(退休堂). 시호 문정(文靖). 1504년(연산군 10) 진사에 이어 1509년(중종 4)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했다. 정언(正言)을 거쳐 수찬(修撰) 때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복위를 건의, 현릉(顯陵)에 이장하게 했다.
1514년 사가독서(賜暇讀書) 후에 직제학(直提學) 등을 거쳐 사성(司成)이 되었다. 그후 왕자사부(王子師傅) 등에 이어 전라도관찰사로 나갔으나, 1530년 왜구에 대한 방비를 소홀히 했다 하여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기용되었다. 형조판서 등을 거쳐 1533년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 때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서 형조 ·호조병조 ·이조의 판서를 거쳐 우찬성(右贊成)이 되고, 1538년 성주사고(星州史庫)가 불타자 왕명에 따라 춘추관(春秋館)의 실록(實錄)을 등사, 봉안했다.
1545년(인종 1) 윤임(尹任) 일파의 탄핵으로 사직, 명종이 즉위한 뒤 을사사화로 윤임 등이 몰락하자 재기용되어 좌찬성(左贊成)을 지내다가 사직, 익산(益山)에 은퇴했다. 문명이 높고 율시(律詩)에 뛰어났으며, 글씨는 송설체(松雪體)를 잘 썼다. 익산 화암서원(華巖書院)에 제향되었다. 문집에 《양곡문집(陽谷文集)》, 글씨에 <임참찬권비(任參贊權碑)>(楊州) <소세량부인묘갈(蘇世良夫人墓碣)>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