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조님과 프랑스의 첫 만남" 포럼 참관 소감
李建榮(대종회 이사)
○ 서양 배를 만나다
조선시대 말에 우리나라 근해에는 이양선 (樣船)이 자주 출몰했는데 이양선은 말 그대로 이상하게 생긴 배라는 뜻이다. 돛단배나 아니면 노를 저어 다니던 시절에 서양의 범선은 모양부터 달랐으니 이상하게 비친 것도 당연하다할 것이다.
이양선이 표류하자 이들을 인도적으로 대우하고 보호하여 중국 상하이에 있던 프랑스 영사가 방문했을 때 안전하게 귀국하게 하여 현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더라도 인도주의의 귀감이 되는 처분을내린 조선 관리가 있었다. 바로 프랑스 포경선이 비금도에 표류했을 때 나주목사 겸 남평현감으로 계셨던 휘 정현 (諱正鉉, 32世,동부승지공파) 현조님이시다.
○ 현조님의 세계(世系)
현조님께서는 시조님으로부터 32세 손이시며 동부승지공 휘 사상(諱 士祥) 현조님의 8대 손이시다. 부친은 휘재원( 元)이시고, 조부는 휘 신호(諱) 이시며, 증조부는 휘 보행( 行)이시다. 증조부는 1771년(영조 47)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셨다. 정조대왕이 대향)을 지낼 때 예모관(官)을 지냈으며, 1776년 (영조 52) 승지로 재직하면서 국왕에게 궁실의 사치를 절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이후 대사성 대사간(大司諫)·동지경연대사헌(大司憲) 등을 지내셨다. 현조님은 1844년(헌종 10) 증광시 (增廣試)에서 진사에 올랐고 1856년(철종 7) 별시(別試)에서 병과(丙科)7위로 급제하셨다.
도사(都事) 장원(掌苑)을 시작으로 장악원 (掌樂院), 종친부(宗親府) 전부(典簿), 남평현감(南平縣監)을 지내고 문과 감제관을 거쳐사복시정(司僕寺正)과 평안도 암행어사를 역임하고 예조참의와 이조참의를 지내셨다. 이어 함평, 익산 두 고을의 안핵사(按歲使) 를 거쳐 좌승지, 공조참판, 의주부윤을 차례로 역임하고 한성우윤을역임하셨다.
○ 프랑스와의 인연과 국제 학술 포럼
역사적으로 보면 프랑스와의 첫 만남은 1866년 병인양요」로 알려져 있고, 공식적인 조약을 맺은 것은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1886년의 일이다. 프랑스의 한 교수에 의해 병인양요보다 15년, 조불수호통상조약보다 35년이나 앞선 1851년 한국 (조선)과 프랑스가 첫외교적 만남을 가졌다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가 됐는데, 지난 8월21일 나주에서 '나주와 프랑스의 첫 만남'이라는 주제로 한국과 프랑스의 외교사 재조명을 위한 학술포럼이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이자리에 윤병태 나주시장, 장헌법 전남도 행정부지사 직무대리, 박우량 신안군수, 이상만 나주시의회 의장, 김희중 전 천주교 광주대교구 대주교, 오영교 한불통신 대표, 김정희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임형택 미래문화교육연구소 이사장 등 주요 내빈과 문화단체, 국제교류기관 그리고 시민과 언론인 등 20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뤘다.
특히 주한프랑스대사관 요한 르 탈렉 문정관 (問情官), 프랑스 파리 시테 대학 피에르 엠마뉘엘 후 교수와 광주광역시와 전남지역의 중·고교 역사동아리 학생들이 함께 참석하여 의미를 더했는데, 본인도 대종회의 건규 회장, 무영 명예회장, 홍진 총무이사와 함께 현조님의 후손으로 이 자리에 참석하여 감회가 깊었다.
O「병인양요」와「조불수호통상조약」에 앞선 공식 만남
발표자인 엠마뉘엘 후 교수는 나르발호 표류 사건의 역사적인 의미에 대해 “서양 외교관이 조선 땅에 처음으로 방문했던 사건"이라며 " 이전에도 조선 땅에 들어간 프랑스인들이 있지만 외교관으로서는 처음이며 상하이 주재 몽티니 영사가 전라도 현지 관료를 만남으로써 공식적으로 양국 관료가 만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나주목사이신 현조님과 몽티니 영사는 조선의 전통술과 프랑스의 샴페인을 함께 나눠 마셨다고 한다. 아마도 서양인, 그중에도 프랑스를 대표하는 서양 외교관과 가진 최초의 연회가 아니었을까? 만찬 이후 몽티니 영사는 옹기 술병 3병을 가지고 프랑스로 돌아가 세브르 국립도자기박물관에 기증하였고, 이 옹기 술병은 현재 해당 박물관에 한국 유물 제1호로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엠마뉘엘 후 교수는 이어 “대부분 한·불 첫 만남을 선교사 박해, 병인양요와 같은 갈등으로만 생각하지만, 나르발호 비금도 표류 사건을 보면 갈등이 아닌 인도주의적 만남이었고 음식과 술이 있는 문화교류였다"고 덧붙이고 있다.
또한 주한 프랑스대사관 요한 르 탈렉 문정관은 축사를 통해 “한·불 양국의 공식적인 교류를 가능케 한 역사적 배경을 새롭게 조명하고 당시 상인들과 외교관을 기릴 것"이라며 "나주에서 열린 한·불외교사 학술포럼이 양국의 미래 협력에 영감을 줄 수 있는 풍부한 포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외교관이며 평화주의자이신 현조님
현조님께서 프랑스 영사를 만난 것은 나주목사 겸 남평현감으로 계실 때인데 당시로서는 처음 보는 서양 사람들이 매우 이상하고 괴이한 오랑캐로 보였을 것인데도 인도적으로 대우하고 보호하여 돌려보낸 것을 보면 현조님의 인품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면서 우리 용인이씨 문중의 자랑거리가 또 하나 늘었다는 것에 다시 한번 훌륭한 조상님을 모신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용인이씨 후손으로 어디서나 항상 모범이 되는 몸가짐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현조님께서 남기신 자취가 우리나라와 프랑스 교류 역사를 새로 쓰게 하고 양국의 우의가 더욱 깊어지는 확고한 역사적 사실로 확인되어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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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용인이씨종보 제149호 2023년 11월 1일
필자 소개
이건영( 李建榮 ) >>용인시 기초의원 선거벽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