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루이 13세의 주치의였던 에로아르가 기록한 일기에는 루이13세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이 기록되어 있다.
태어난 지 1년 5개월이 되었을 때 바이올린을 켰으며, 딸랑이, 목마, 풍차, 인형 등의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또 네다섯 살 때에는 활과 화살을, 여섯 살에는 카드와 장기놀이를 즐겼다. 나이 일곱이 되자 궁정에서는 어린이의 복장을 벗기고 루이를 성인남자 세계의 일원으로 대우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비로소 말도 타고, 무기도 익히며, 심지어 도박까지도 즐길 수 있었다.
'중세의 놀이' 하면 흔히들 기사들의 마상시합이나 장기놀이 정도를 연상하기 쉽지만 위에서 언급한 놀이들도 대체로 중세 후기에 일부 귀족들 사이에서 행해졌을 것으로 유추되는 것들이다.
중세의 놀이들 가운데 가장 품위있다고 간주되었던 것은 단연 장기놀이였다.
장기놀이가 얻고 있던 명성은 지혜와 전략을 갖춘 자만이 놀이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점에 근거하였다.
시장터 주변에서는 광대와 악사가 동원된 써커스가 흥을 돋구었고, 통 속에 인식표들을 넣어두고 행운을 낚는 일종의 즉석복권이 15세기에, 룰렛놀이는 16세기에 사료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밖에 지역마다 독특하고 다양한 놀이들이 사료에 언급되지만 실제로 어떤 것이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한 예로 15세기 괴팅엔의 사료는 칼을 이용한 놀이를 언급하고 있다.
상당히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놀이에 대해 1419년의 사료에 "현재 여러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칼을 이용한 놀이가 많은 이들에게 불행을 가져왔고, 또 손해를 끼쳤으므로 금지한다"고 기록하였고, 1425년에 같은 내용을 한 번 더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기록들에도 활쏘기를 비롯하여 방패놀이, 칼놀이 등 살상용무기가 놀이에 빈번히 등장한다.
이러한 놀이들은 사실상 전쟁이나 폭력이 일상화되었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도시에서는 귀족이나 기사들의 문화를 모방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로 인해 비록 도시에서는 마상시합이 드물게 열렸을지라도 사내아이들이 기사모형이나 목마를 갖고 놀았다.
동물의 뼈나 대리석조각으로 만든 구슬을 이용한 놀이도 있었다.
"글로비"라고 불리던 일종의 구슬놀이는 주로 아이들 사이에 유행했지만 일부 성인들도 꽤 즐겼다.
중세유럽에 가장 널리 전파되었고, 일반 민중들이 가장 즐겼던 대중적인 놀이는 다름 아닌 주사위놀이였다. 이 놀이는 주사위 자체만 갖고 하는 놀이와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만큼 말판을 움직여 목적지에 도달하는 놀이로 나눌 수 있다. 시기적으로 말판을 사용하던 놀이가 먼저 등장하였는데 이는 일종의 전략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일명 "12줄 놀이"(duodecim scripta)로도 불리는 이 놀이는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주사위놀이는 장기나 카드놀이와 비교할 때 훨씬 단순하여 치밀한 사고력이나 식자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장소의 구애를 덜 받았으므로 몇 개의 주사위만 있으면 시장, 거리, 선술집, 여관 등에서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농민들과 여자들도 즐기게 되었다.
출처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