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불교생태학에서 존재 평등의 근거 / 안 옥선(순천대 교수)

[향나무]

불교생태학에서 존재 평등의 근거

안 옥선(순천대 교수)

I. 머리말

생태학’(ecology)에 대한 서로 다른 개념적 정의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생물학자들에 의해 수용되고 있는 기본적인 정의가 있다. 생태학은 ‘생존경쟁과 같은 상황에서의 복잡한 모든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핵켈(Haeckel)의 정의가 그것이다. 생태학에 대한 핵켈의 정의는 생태학의 주제가 존재들 간 상관관계 혹은 관계성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불교의 관점에서 ‘생태학’이 가능한 것은 불교의 핵심이 존재들 간 관계성에 대한 인식에 있기 때문이다. 생태학의 핵심이 ‘관계성’의 파악에 있는 것처럼 불교의 핵심 또한 그러하다. 불교의 중심 개념인 ‘연기’(paṭiccasa-

muppāda)에 의하면, 모든 존재는 서로 연관․의존하면서 하나의 유기적(organic)/전일적(holistic) 생명(현상)을 이루고 있다. 생물과 무생물을 망라하는 모든 존재가 경계 없이 상호 연관적이면서도 통일적인 하나의 생명(현상)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존재들 간 상관관계학으로서 ‘생태학’은 한 가지로서 동일한 것이 아니어서, 경관생태학, 생리생태학, 행동생태학, 사회생태학, 심층생태학 등의 다양한 이름의 다양한 생태학이 있다. 생태학은 ‘상관관계’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하여 기본적 정의를 공유하면서도 다양한 정의를 발전시켜 왔으며, 이에 따라 다양한 생태학으로 세분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여러 이름하의 생태학들은 하나의 공통성을 가지면서도 각각의 독특성을 갖는다. 불교생태학 또한 마찬가지이다.

불교생태학이 갖는 생태학 일반의 공통성을 ‘연기’ 개념에서 찾는다면, 불교생태학만의 독특성을 우리는 ‘무아’(혹은 ‘공’)의 개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연기와 무아는 그 의미가 서로 다른 것은 아니지만, ‘연기’ 개념이 존재의 ‘관계성’을 강조함으로써 존재를 긍정하고자 한다면 ‘무아’(anattan)의 개념은 존재의 ‘무실체성’을 강조함으로써 존재를 무화시키고자 하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연기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관계성에 의해서 모든 생명체의 유기적 존재성이라는 생태학적 의미가 지금까지 강조되어 온 것과는 달리, 무아설에 내포된 생태학적 의미는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왔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무아가 내포하고 있는 생태학적 의미는 －그것이 불교생태학의 독특성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연기의 생태학적 의미보다도 더 중요하다.

초기불교의 무아설에 의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속성은 오온 내지는 지수화풍 사대로서 무상･고･무아이며, 나의 것이 아니며 내가 아니며 나의 자아가 아니다. 어떤 존재도 영속적이지 않으며 ‘나’라고 동일시할 만한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무아설은 존재에 대한 무아성의 인식에 그치지 않고 무아라는 윤리적 태도를 무아인식의 결과로서 ‘직접적으로’ 요구한다. 무아설은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 모든 존재에 대해서도 환락하는 태도, 탐진치의 태도, 혹은 자아 만들기의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무아설은 무아적 실상의 귀결로서 자아중심적인 탐진치에서 탐진치를 버리는 ‘마음의 전환’을 요청한다.

불교에 의하면 세계는 마음의 전개이며 업(kamma)의 전개이므로 생태학적 위기에 직면하여 마음을 문제삼고, 그 핵심으로서 마음의 전환―보다 구체적으로는 심청정―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온당할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전환 혹은 심청정의 태도가 무아인식의 귀결로서 ‘직접적으로’ 요청된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무아인식의 결과로서 직접적으로 요구되는 이러한 윤리적인 태도가 바로 불교생태학의 독특성을 이룬다는 점이다. 생태학적인 위기와 그 해결에 있어서 불교는 그 무엇보다도 인간의 ‘마음’을 문제삼고 마음전환에 의한 신구의 행위내지는 삶의 변혁을 강조하는 특성을 갖는다.

그런데 생태학 일반의 공통성을 가지면서도 불교생태학 특유의 독특성을 갖는 ‘불교생태학’이 사실 ‘불교’와 구별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불교 자체가 생태학이라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혹자는 우리가 불교에서 자연과 생태학에 대한 특정의 구별된 입장을 발전시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일면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불교생태학을 위한 어떠한 작업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혀져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생태학적 관점에서 불교에 요청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생태학적 관점에서 불교에 요청되고 있는 것을 불교에 대한 생태학적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생태학적 맥락에서 불교의 개념들에 대하여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어떠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검토가 요청되는 것이다. 이는 생태학적 관점에서 불교를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 필자가 의도하고 있는 것 또한 이러한 작업의 일환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불교생태학의 공통성과 독특성을 나타내는 연기와 무아의 개념을 검토함으로써 이 두 개념이 불교생태학에 있어서 존재평등의 근거가 된다고 주장코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인식적 관점에서 연기와 무아는 상환적이다. 모든 존재가 연기적 존재이기 때문에 무아적 존재이고, 무아적 존재이기 때문에 연기적 존재이다. 존재의 상호관계성과 무아성을 나타내는 연기와 무아는 그 어떤 존재에 대해서도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 어떤 존재도 자기 원인적이거나 독존적 존재일 수 없으며 오온 무아적 속성을 떠나 있지 않다. 관계성과 무아성으로부터 예외가 되는 존재는 없다. 모든 존재가 연기적 존재로서 상호의존적으로 하나의 생명(현상)을 이루고 있지만 그것들은 동시에 오온무아로 무화되는 존재들이다. 모든 존재는 연기라는 동일한 존재구조와 무아라는 동일한 속성 속에서 평등하다고 볼 수 있다. 상호의존적인 유기적 생명(과정) 속에서 모든 존재가 고유의 위치와 역할을 맡아 그 과정에 기여한다고 이해될 때, 그것들은 예외 없이 평등한 존재가 된다. 모든 존재가 하나의 유기적 생명과정에 기여한다고 이해될 때 모든 존재들은 동등한 가치를 갖는 평등한 존재일 것이다. 또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공통적으로 오온무아의 속성을 갖는 존재로서 무상･고･무아이며, 나의 것이 아니며 내가 아니며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이해될 때 그것들은 본원적으로 평등한 존재로 취급받게 될 것이다. 필자가 이 글에서 주장코자 하는 바는 바로 이와 같이 이해되는 연기와 무아가 존재평등의 근거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입장에서 이 논문에서 필자가 밝히려는 것은 모든 존재에게 동일한 존재구조로서 ‘연기의 상호의존성’과 모든 존재에게 동일한 속성으로서 ‘무아의 오온무아성’이다. 필자는 첫째로 초기불교에서의 연기공식과 12연기는 존재들 간 상호의존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함을 밝힐 것이다. 초기불교의 연기공식이 상호의존성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해석될 수 없다는 입장은 이러한 입장에서 비판될 것이다. 둘째로, 필자는 초기불교에서의 무아의 개념이 모든 존재들을 오온무아로 분석하여 그들의 속성을 오온무아성이라는 공통속성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밝힐 것이다. 이와 같이 이해되는 연기개념의 상호의존성과 무아개념의 오온무아성이 불교생태학에 있어서 존재평등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 필자가 주장하는 바이다.

II. 존재 평등의 근거로서 연기와 무아



주지하다시피 붓다가 문제 삼는 세계는 인간에 의해 지각되고 인식된 세계(loka)이다. 즉 주객/심신, 명색(nāmarūpa), 혹은 명색과 식(viññāṇa)이 하나인 구조 속에서 발생된 세계이다. 세계는 마음에 의해 투사되고,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로서 6입처(saḷāyatana) 혹은 12입처의 세계이다. 그래서 붓다는 “세계는 여섯 가지―6입처―에 의해 생겨난다”고도 하고, “일체(sabba)는 12입처다”라고도 한다.

중요한 것은 6입처의 세계든지 12입처의 세계든지 모두 인간 주관/마음과의 상호작용으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이다. 세계는 주관/마음과 관계하고 마음으로부터 발생하고 있는 주객불이의 세계이다. 이렇게 보면 요한슨(Johansson)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붓다에 의하면) 세계는 하나의 역동적인 과정 그 자체이며, 지속적으로 형성되며, 인간의 감각과 생각과 욕망으로 만들어지는 세계이다.’ 붓다가 문제삼고 있는 세계는 주관으로부터 분리된 객관의 세계가 아니며, 인간(주관/마음)과 관련된 마음 속에서 창발하고 있는 세계라는 것이다. 환언하면 세계는 마음을 가진 우리 몸 안의 세계이기도 하다.

법우들이여, 지각할 수 있고,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두 팔을 벌려 잴 수 있는 길이의 이 몸 안에 세계, 세계의 일어남, 세계의 소멸, 세계의 소멸로 이르는 길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그런데 이상과 같이 붓다가 문제삼고 있는 세계―인간에 의해 지각되고 생각되는 세계―는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탐진치의 욕망에 의해서 생성되고 소멸되는 세계이다. 그래서 세계는 소멸/지멸(nirodha)되어야 하는 세계이며, 마음 혹은 마음을 가진 몸의 인식에 의해 지멸되어야 하는 세계이다. 탐진치의 욕망에 의한 세계, 탐진치를 전제하고 있는 육입처나 12입처의 세계는 마음변혁에 의해 지멸되어야 하는 세계인 것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생이 세계와 관계하는 데 있어서 지멸되어야 하는 것은 탐진치인 것이다.

마음변혁에 의한 탐진치의 세계 혹은 탐진치의 지멸은 성품의 변혁, 삶의 변혁, 사람의 변혁으로 귀착되지만 그 근본이 되는 것은 연기, 공, 무아의 올바른 인식(sammadiṭṭhi)이다. 특히 연기와 무아는 초기불교에서 시종일관 강조되는 올바른 인식으로서 모든 존재의 실상을 설명하고 있다.

연기와 무아는 실상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지만 그 차이는 있다. 연기가 종합적, 거시적, 구성적 방법으로 존재를 보아 모든 존재가 함께 하나로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는 실상을 강조한다면, 무아는 분석적, 미시적, 해체적 방법으로 존재를 보아 고정적 실체나 주체를 부정하는 존재실상을 강조한다. 연기가 존재들 간 상호관계성을 들어 존재들의 동등한 가치를 말한다면, 무아는 존재 속성의 근본적 동일성을 들어 같음―더 나아가서는 평등―을 말한다. 연기가 관계성을 통해 모든 존재의 유기적 단일성을 강조한다면, 무아는 개체적 존재의 해체를 통해 해체적 동일성을 강조한다. 연기가 관계성을 통해 시스템으로서 하나의 생명을 강조한다면, 무아는 변화성을 통해 항상적 개체 없음을 강조한다.

필자는 이상과 같은 연기와 무아가 모든 존재들 각각에 대하여 갖는 의미를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특정 개체는 ‘연기’에 따라 다른 모든 존재들과 상호의존적으로만 존재할 수 있기에 자신과 모든 존재들은 동등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 평등한 존재여야 하며, 마찬가지로 그것은 ‘무아’에 따라 모두 함께 똑같이 무아의 속성으로 해체되기에 모든 존재들과 평등한 존재이다. 연기와 무아가 함축하고 있는 이러한 ‘평등’은 상호의존성과 무아의 동일속성성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 연기가 의미하는 상호의존성과 무아가 함축하고 있는 존재의 동일 속성에 대하여 검토해 볼 것이다.



1. 연기



주지하다시피 연기법을 나타내는 연기(paṭiccasamuppāda) 공식은 불특칭 대명사 ‘이것’(imasmiṁ)과 ‘저것’(idaṁ)으로 모든 존재의 유무생멸을 설명한다. 하나의 개체의 있음과 없음, 그리고 생겨남과 사라짐은 관계 속의 다른 개체의 있음과 없음, 그리고 생겨남과 사라짐을 전제한다. 이처럼 독립적이거나 관계단절적인 유무생멸을 허용하지 않는 연기법은 다음과 같은 연기공식으로 표현된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①유), 이것이 생할 때 저것이 생하며(②생),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③무), 이것이 멸할 때 저것이 멸한다(④멸)(imasmiṁ sati idaṁ hoti, imassuppādā idaṁ upppajjati. imasmim asati idaṁ na hoti, imassa nirodhā idaṁ nirujjhati).

연기공식에서 ‘이것’의 유무생멸은 반드시 ‘저것’과 함께 한다. ‘저것’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것’과 ‘저것’의 관계는 ①③유무에서 정적인(static) 관계로 표현된 것과는 달리, ②④생멸에서 동적인(dynamic) 상호작용으로 표현된다. 또한 ②④생멸 구절에서 ‘생함으로’(uppādā)와 ‘멸함으로’(nirodhā)는 각각 ‘생함으로부터’와 ‘멸함으로부터’라고도 해석될 수 있으므로, 이 구절은 ‘이것’과 ‘저것’ 사이의 보다 긴밀하고도 역동적인 관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연기공식에 나타난 ‘이것’과 ‘저것’의 관계는 어느 하나가 주가 되고 다른 하나가 종이 되는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관계이다. 이는 ‘(상호) 의존하여/조건적으로(paṭicca) 함께(sam) 나타남/일어남(uppāda)’을 의미하는 ‘paṭiccasa-

muppāda’(연기)라는 말이 관계된 것들의 동등한 상호적 관계성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붓다가 자신이 출현하든지 출현하지 않든지 연기법은 상주해 왔으며 상주할 것이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연기공식은 시대, 상황, 대상에 상관없이 모든 존재(현상)에 적용된다. 어떠한 존재, 어떠한 현상도 연기공식의 예외가 될 수 없다. 더구나 ‘이것’과 ‘저것’의 불특칭성으로 인하여 ‘이것’과 ‘저것’에는 어떠한 존재라도 대입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연기공식은 모든 존재들 혹은 모든 현상들의 상호적인 무한 관계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연기공식의 한 가지 설명 형태인 업(과 윤회) 개념은 연기공식의 적용에 있어서 시간의 양방향적(과거와 미래로의) 무한 소급성을 전제하고 있어서, 존재들 간 중첩적인 무한 관계성까지 함축한다. 연기공식 자체가 통시적인 전 역사를 함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화엄불교에서처럼 ‘일즉다다즉일’(一卽多多卽一)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연기공식은 무한 시간에 걸친 뭇 존재들의 상호의존적인 유무생멸 과정으로 뿐만 아니라, 일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단일한 하나의 생명(과정)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어느 한 개체는 ‘바로 이 순간에’ 여타의 모든 개체들과 관계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초기불교의 연기공식을 이와 같이 상호의존성(혹은 상의상관성)으로 이해하는 것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예컨대 박경준은 초기불교의 연기공식이 존재들 간 상의상관적 관계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고 본다. 그는 ‘연기법을 상호의존성이나 상의상관성으로 이해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상호의존성이라는 의미로서 연기법의 경전적 근거로 연기공식의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의 ‘此有故彼有’(imasmiṃ sati idaṃ hoti) 구절을 인용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그 까닭은 이 구절이 12연기의 구체적 지분들에 대한 공식적 표현일 뿐이며 12연기 중에서 상호적 의존성으로 맺어진 관계는 식(viññāṅa)과 명색(nāmarūpa)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초기경전에서 보통 연기공식과 12연기가 함께 말해지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고, 또 이 양자를 연결시켜주는 ‘yadidaṃ’의 의미―앞뒤를 동격으로 연결시켜주는 ‘즉’(that is) 혹은 ‘바꾸어 말하자면’(in other words)의 의미―를 고려한다면 박경준의 주장은 일면 타당하다. ‘yadidaṃ’은 연기공식과 12연기를 동격으로 간주하는 접속사이므로, 연기공식은 12연기에 국한되며 그 이외의 경우에는 적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경준의 주장대로 12연기의 각 지분(aṇga)들 중에서 상호적 관계가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는 경우는 식과 명색뿐이다. 즉 저 유명한 두 개의 갈대단의 비유를 통해서 붓다는 식과 명색이 ‘서로서로/상호적으로’(aññam aññam) 기대어 서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상호수반성은 다른 지분들의 경우에서는 명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에서의 연기공식에 대한 해석에도 함축되어 있지만, 필자는 이상과 같은 이의 제기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의 제기에 대해 필자는 두 가지 의견을 제시해 본다. 첫째, 12연기는 연기공식의 유일한(only) 적용 예이기보다는 연기공식의 ‘한’(one) 적용일 뿐이다. 둘째, 다른 지분들의 상호의존성은 식과 명색의 상호성처럼 분명하게 명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상호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비록 연기공식과 12연기를 연결시키고 있는 접속사 ‘yadidaṃ’이, 12연기가 연기공식의 ‘유일한’ 적용이라는 것을 함축할지라도 12연기만이 연기공식의 유일한 적용일 수는 없다. 초기경전에서 연기공식과 12연기는 같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12연기는 연기공식에 대한 언급 없이 독립적으로 설해지는 경우가 많다. 12연기가 최종적인 완성형태라고 이해되고 있지만, 주지하다시피 10지, 9지, 6지 등의 다양한 지분의 연기 형태가 있다. 그것들이 연기공식과 함께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형태의 연기 또한 연기공식의 적용 예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상주론(sassatavāda)과 허무론(ucchedavāda)의 중도, 유무중도, 존재 유지 조건으로서의 음식(kabalimkāra), 접촉(passa), 마음의 의지(manosañcetanā), 의식(viññāṅa)이라는 네 가지 자양분 등에 관한 교설도 연기공식의 적용이거나 변형이다. 자야틸레케(Jayatilleke)는 연기공식이 인과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하게 적용된다고 보고 초기불교에서 수많은 연기공식의 적용 예들을 찾아내고 있다. 사실 모든 현상과 존재에 대한 설명은 연기(공식)을 벗어날 수 없으며, 이는 연기공식이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사례들에 무한히 적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12연기는 연기공식의 유일한/배타적 적용 예가 아닌 것이다.

다음으로 필자가 박경준과 달리 12연기의 각 지분들의 쌍(예컨대, 무명과 행, 행과 식, 식과 명색 등등) 모두가 상호적이라고 보는 까닭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우선 필자는 초기경전에서 12연기를 설명함에 있어서 식과 명색의 두 지분 쌍은 물론 모든 지분 쌍들이 쌍방향적/상호적 표현방식이 아니라 일방향적 표현방식으로 설명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즉 12연기를 설명할 때는 식과 명색의 경우에서조차 ‘식에 의존하여 명색이 있다’라고 말할 뿐, 갈대단의 비유에서처럼 상호적으로 말하여 ‘명색에 의존하여 식이 있다’라고 하지 않는다. 12연기를 설명할 때는 식과 명색의 상호성조차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신에 각 지분 쌍들은 상호성을 인정하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사유되고 있다. 마지막 11과 12지를 예로 들어보자.

12연기의 유전문인 ‘생에 의존하여 노사가 있다’(jāti paccayā jarāmaraṇaṃ)는 것은, 연기공식에서 ①③의 유․생의 사유방식으로서 ‘무엇이 있을 때 노사가 있는가’(kimhi nu kho sati jarāmaraṇaṃ hoti)와 ‘무엇에 의존하여 노사가 있게 되는가’(kimpaccayā jarāmaraṇanti)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서, ‘무엇’(생)과 ‘노사’가 ‘함께’ 일어남을 말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12연기의 환멸문인 ‘생이 멸하므로 노사가 멸한다’(jātinirodhā jarāmaraṇaṃ nirujjahanti)는 것은, ②④무․멸의 사유방식으로서 ‘무엇이 없을 때 노사가 없는가’(kimhi nu kho asati jarāmaraṇaṃ na hoti)와 ‘무엇이 멸할 때 노사의 멸이 있게 되는가’(kissa nirodhā jarāmaraṇa nirodhoti)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무엇’(생)과 ‘노사’가 ‘함께’ 멸함을 말한 것이다. 요컨대 식과 명색은 물론 12연기의 다른 모든 지분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사유된 것이다. 모두 상호성을 묻는 방식으로 물음이 제기되고 답변 또한 그러한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는 연기공식에서 ‘이것’과 ‘저것’의 상호관계성에 의한 사유방식과 동일하다.

12연기의 각 지분 쌍에 대한 이상과 같은 이해는 명색과 식 뿐만 아니라 12지의 모든 개념 쌍들이 상호성을 함축하고 있다는 야마다(Yamada)의 이해와 합치한다.

야마다는 식과 명색을 포함한 12연기의 각 지분 쌍들 간의 관계를 시간 개념을 배제시킨 ‘논리적인’ 개념으로 읽을 것을 제안한다. 예컨대 생과 노사를 시간적 순서(temporal sequence)의 관점에서 보면 생이 노사에 선행하므로 생이 노사의 원인이다. 그러나 시간개념이 배제된 논리적 관계의 관점에서 보면 존재(유)의 과정은 생과 노사를 포함하므로 생과 노사의 관계는 동시적이다.

보통, 시간을 포함하지 않는 ‘무시간적’(akālika) 관계는 논리적이고 개념적이다. 그래서 무시간적 관계에서는 ‘x가 있을 때 y가 있다’는, 동시에 ‘y가 있을 때 x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없다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x와 y가 상호적이기 때문에 시간차가 없다. 이러한 무시간적 관계의 경전적 근거로서 야마다는 ‘sandiṭṭhiko akāliko ehipassiko opanayiko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i’(실제적이며, 무시간적이며, 와서 보라는 것으로서의, (열반으로) 이끄는 (가르침))이라는 구문에서의 ‘akāliko’(무시간적이며)를 지적한다. 그는 이 말을 ‘시간을 수반/포함하지 않는’, 즉 ‘동시적인’의 의미로 해석한다.

필자의 이해 또한 12연기의 각 지분 쌍들이 시간적 관계로서가 아니라 논리적 관계로 이해될 수 있으며, 논리적 관계로 이해될 때 각 쌍들은 상호적이라는 야마다의 이해와 같다. 그러나 필자는 ‘akālika’라는 말에 대한 야마다의 해석에는 공감하지 못하며, 반드시 이렇게 해석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각 쌍들이 상호적이라는 것은 연기공식 자체나 12연기의 표현방식 속에 이미 잘 나타나 있다. 경전적 근거를 찾기 위해 야마다처럼 ‘akālika’에 대해서 특이한 해석을 붙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12연기 각 쌍들의 해석―각 지분의 쌍들을 시간적 관계로서가 아니라 논리적 관계로 보아 각 쌍들이 항상 ‘동시적’으로 나타나고 사라진다고 보는 해석― 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식과 명색은 물론 12연기의 다른 지분 쌍들도 상호적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상호성은 붓다가 ‘연기’(paṭiccasamuppāda)를 설명하면서 쓰고 있는 단어 ‘(이) 조건성’(idappaccayatā/conditionality)이라는 말에도 함축되어 있다. ‘조건성’(의존하여)이라는 말은 연기적 존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 존재를 가능케 하는 ‘조건’(paccaya)에 대한 파악을 의미한다. 그 존재는 그 존재를 가능케 한 ‘조건’과 동시적이어야 한다. 12연기의 각 지분 쌍들 또한 그러하기 때문에 ‘조건성’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12연기의 각 지분들은 조건의 의미로서 ‘paccaya’라는 말을 포함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제기될 수 있는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즉 비록 12연기를 설명하는 맥락에서는 아니지만 왜 붓다는 특별하게 식과 명색의 상호성(만)을 명시적으로 강조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붓다가 식과 명색의 상호성을 강조한 것은 의식의 실체성을 부정하고 그 조건성을 명백히 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다른 지분 쌍들의 상호성은 상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했을 것이며 12연기 외의 맥락에서 그 상호성을 특별하게 강조해야 할 필요성이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식과 명색은 물론 12연기의 각 지분 쌍들 모두가 상호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12연기의 각 지분 쌍들이 상호적이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12연기의 모든 지분이 ‘동시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모든 지분이 동시적으로 상호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붓다고사(Buddhagosha) 이후 12연기설을 주로 삼세에 걸친 두 번의 인과(삼세양중인과설)로 이해하고 있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해석일 수는 없을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이해되어야 할 필연성은 없다. 특히 붓다고사는 12연기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과거와 미래의 시간개념을 도입하거나 적용해야 하는 어떤 필연적 이유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12연기를 이해함에 있어서 시간적 인과를 전제해야 하고 삼세에 걸친 윤회의 과정으로 보아야 하는 필연적 이유는 없는 것이다.

삼세양중인과설에서는 ‘시간적’ 인과를 전제하지만, 12연기 각 지분들은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우리 마음의 현상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각 지분들 모두가 동시적이면서 상호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의존하여’(paccaya)는 시간적 인과보다는 논리적 인과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12연기는 삼세양중인과설보다는 논리적 인과를 전제하는 마음의 구조로 이해된다. 현재의 이러한 마음의 구조로 인하여 또한 윤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윤회의 유전문적 구조로서 12연기는 또한 환멸문적 마음구조를 보여주고 있기에 12연기는 열반의 마음구조이기도 하다.

요컨대 12연기는 연기공식의 한 적용 예이며, 12연기의 각 지분의 쌍들은 연기공식과 마찬가지로 상호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12연기든지 연기공식이든지 그 핵심은 존재들의 상호관계성에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12연기 각 지분 쌍들을 논리적 인과로 이해하여 12지 모두를 동시적 상호관계성을 나타내는 마음의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상호관계성으로 이해되는 연기 개념은―그것이 특히 업의 개념과 함께 이해될 때 관계의 무한소급성을 전제하여― 각각의 개별 존재가 다른 존재들을 존재 가능케 하는 조건이면서 동시에 각각의 존재가 다른 존재들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한다. 하나의 존재는 자기 이외의 모든 존재들의 조건이며, 다른 모든 존재들은 그 하나의 존재의 조건이다. 따라서 하나의 존재는 모든 존재들에 의존해 있고 모든 존재들은 하나의 존재에 의존해 있으며, 어느 개체도 자기만의 것일 수 없다. 이는 연기 개념이 의미하는 상호관계성의 형태에는 ‘하나 대 하나’의 형태뿐만 아니라 ‘하나 대 다수’의 형태가 있으며, 불교적 상호관계성의 진수가 후자에서 찾아져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불교생태학에서의 상호관계성의 특성이다.

이러한 상호관계성의 관점에서 보면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들은 평등해야 한다. 하나의 유기적 생명(현상) 속에서 모든 존재가 각각의 고유한 위치에서 고유한 역할을 담당한다. 어느 하나도 생명과정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있음과 없음, 생겨남과 소멸함으로 이루어지는 생명과정에서 모든 존재는 평등하다. 동일한 위치와 역할이 아니라 서로 상이한 위치와 역할로 인하여 평등하다. 모든 존재가 동등한 가치를 갖게 된다.



2. 무아



불교생태학에서 연기가 함축하고 있는 존재평등이 고유의 위치와 역할을 갖는 각 존재들의 상호의존성에서 찾아질 수 있다면, 무아가 함축하고 있는 존재평등은 모든 존재들의 속성의 공통성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동물, 생물, 무생물 등 모든 존재는 모두 무아를 속성으로 한다는 점에서 같다. 이들은 서로 상이한 속성을 갖지만 동시에 모두가 공통적으로 ‘무아’라는 속성을 가지며, 이 속성에 의해서 평등하다고 볼 수 있다.

초기불교에 의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정신적 존재이든지 물질적 존재이든지―형상(rūpa/色), 감각/느낌(vedanā/受), 생각(saññā/想), 의지/업형성(saṅkhāra/行), 의식(viññāṇa/識)이라는 오온(pañcakkhandhā/五蘊)으로 분석된다. 오온은 흔히 인간 자아의 비실체적 속성으로만 강조되고 있으나 인간 이외의 모든 물질적 혹은 관념적 존재의 공통된 속성이다. 물질적 존재이든지 정신적 존재이든지, 혹은 개체이든지 합체이든지 이 다섯 가지의 표상인 것이다. 그래서 오온으로부터 예외가 되는 존재는 없으며, 인간뿐만 아니라 세계 내의 모든 존재가 공통적으로 오온으로 분석된다.

오온의 이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니야나틸로카(Nyanatiloka)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오온은 추상적인 분류개념이지 실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모든 존재가 오온이라는 분류개념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며, 실재존재가 오온을 떠나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언하면 오온은 존재를 인식하고 설명하는 ‘개념’이면서 인간에 의해 지각된 현상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생이 생각하는 자아와 그 밖의 모든 존재는 오온인 것이다.

오온의 한 특징은 주객(명색, 또는 명색과 식) 불이의 구조를 갖는다는 점이다. 물질적 존재로서 첫 번째 오온인 색은 정신적 작용으로서의 나머지 네 가지 오온인 수상행식을 전제하고, 정신적 존재로서 수상행식은 색을 전제한다. 오온으로 분석된 모든 존재가 그 실체가 없으며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이 무아(anattan)인 것은 바로 이러한 주객 불이의 구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존재의 공통속성으로서 오온, 혹은 중생에게 지각된 모든 존재의 실상으로서의 오온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아’를 속성으로 한다. 즉 모든 존재의 속성은 오온무아이다. 아래의 논의에서 상세히 검토되겠지만, 초기경전에서 오온무아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1)과 (2)로 요약될 수 있다.

(1) 오온으로서의 모든 존재―정신적, 물질적 존재 혹은 인간, 동물, 무생물 등의 모든 존재―는 ‘무상, 고, 무아이다’.

(2) 오온으로서의 모든 존재는 ‘나의 것도 아니며, 나도 아니며, 나의 자아도 아니다’(etam mama, eso hamasmi, eso me attāti의 부정).

(3) 특히 오온의 첫째 구성요소인 형상(색)은 다시 지수화풍 사대(mahā-bhūta, dhātu)로 분석되고, 사대 또한 (1)과 (2)의 속성을 갖는다고 강조된다. 즉 지수화풍으로도 분석되는 인간과 세계는 모두 (1)과 (2)의 속성을 갖는다 는 것이다.

(1)과 (2)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오온은 무상․고․무아이며, 나의 것, 나, 나의 자아도 아니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구들이여, 형상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고이다. 고인 것은 무아이다. 그러므로 무아인 것을 올바른 지혜로서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실히 보아야 한다. 올바른 지혜로서 이것을 여실히 볼 때, 마음은 집착을 떠나고 집착에 의한 번뇌로부터 해탈 된다.

오온이 무아라는 말은 오온이 무상하다는 말에서부터 시작하여 오온이 나에게 속한 것도, 나와 동일시되는 것도, 나의 자아인 것도 아니라는 말로 귀착된다. 즉 오온무아는 ‘무상-> 무아->고-> 나의 것이 아니며, 내가 아니며,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말로 풀이된다. 이러한 오온의 속성은 ‘언제든지, 몸 안의 것이든지 밖의 것이든지, 거칠든지 미세하든지, 열등하든지 수승하든지, 멀리 있든지 가까이 있든지’를 막론하고 적용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어떠한 형상/물질(색)이든지,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지 미래의 것이든지 현재의 것이든지, 안의 것이든지 밖의 것이든지, 거친 것이든지 미세한 것이든지, 열등한 것이든지 수승한 것이든지, 먼 것이든지 가까운 것이든지, 모든 형상을 올바른 지혜로서 여실히 보아야 한다. 즉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보아야 한다(다른 네 가지 수상행식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함).

더 나아가서 붓다는 오온에서도 첫 번째 형상/물질(색)을 지수화풍으로 분석하여 지수화풍이 무아라고 한다. 즉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형상/물질의 속성은 지수화풍(의 속성)으로 분석되며, 지수화풍을 속성으로 하는 존재는 무아라고 한다. ‘고를 간단히 말할 때 오온에 대한 집착, 즉 오취온’이라고 말하는 한 경전에서는 오취온 중에서 그 첫째인 형상에 집착하는 색취온(rūpudānakkhandhā)을 ‘지수화풍 사대와 사대로부터 파생된 형상(rūpa)’이라고 규정하고 이것들이 무아라고 한다.

법우들이여, 지계(paṭhavī-dhātu)는 어떠한 것입니까? 지계는 (몸) 안의 것이거나 (몸) 밖의 것일 것입니다......(이러한 지계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올바른 지혜로써 여실히 보아야합니다”(수화풍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함).

나타난 바와 같이 여기에서는 지수화풍으로서의 인간과 세계를 각각 몸 안의 것(ajjatika)과 밖의 것(bāhira)으로 지칭하고 이것들에 대해 ‘나의 것이다, 나다, 나의 자아이다’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수화풍 사대 혹은 이 사대로부터 파생된 형상으로서 색온이 모두 무아라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존재의 오온 무아 내지는 색온/사대 무아는 인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존재에 대한 윤리적 요청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붓다는 색온 무아를 속성으로 하는 모든 존재들에 대하여 ‘환락하지 말라’고도 하고 ‘탐진치를 버리라’고도 한다.

비구들이여, 번뇌를 지멸시키고, 청정한/완성된 삶을 살고(vusitavā), 해야 할 바를 다 하였고, 짐을 내려놓고, 목표에 도달하였으며, 존재의 속박을 완전히 지멸시켰으며, 올바른 지혜로 해탈한 아라한 비구가 있다. 그는 땅(지)이 땅임을 온전히 안다(abhijānāti). 그는 땅이 땅임을 온전히 알아 땅을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paṭhaviṁ na maññati)①, 땅에서 (자신을) 생각지 않으며(paṭhaviyā na maññti)②, 땅으로부터 (자신을) 생각지 않으며(paṭhavito na maññati)③, 땅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paṭhavim me ti na maññati)④, 땅을 환락하지 않는다.⑤ 무슨 이유에서 그러한가? 왜냐하면 그는 탐욕(rāga)을 지멸시켜 탐욕을 떠났기 때문이다.(수화풍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하고, 탐욕(탐)뿐만 아니라 진(dosa)과 치(moha)도 떠났다고 말한다.)

밑줄 친 부분은 특히 난해한 구절로 간주되고 있으나, ‘내 것이 아니며, 내가 아니며,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무아를 말한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여기에서 주목되는 첫째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공통적으로 지수화풍이라는 색온/사대를 속성으로 하여 사대무아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러한 속성을 가진 색온/사대에 대하여 환락하거나 탐진치를 갖지 말라는 것이다. 이를 보다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초기불교의 언어로 환언하여 말하자면, 무아의 존재들에 대하여 ‘나 만들기’(ahaṁkāra)나 ‘나의 것 만들기’(mamaṁkāra) 태도를 갖지 말라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오온무아 내지는 색온무아의 공통속성을 공유한다. 오온의 무아 속성은 한편으로는 무상, 고, 무아의 표현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것이 아니며, 내가 아니며, 나의 자아가 아니라는 표현으로 나타나며, 궁극적으로는 무아의 윤리적 태도로 귀결된다.

초기경전에서는 계(dhātu), 촉(phassa), 수(vedanā) 등도 무아라고 말하는데, 이 또한 오온무아성의 다른 표현이다. 붓다는 ‘18계․6촉․3수가 무아이다’라고도 한다. 즉 여섯 감각(육근), 여섯 감각대상(육경), 이 양자를 조건으로 하여 생기는 여섯 의식(육식), 이 삼자의 접촉(촉), 이 삼자의 접촉으로 인해 생기는 세 가지 종류의 쾌감각, 고감각, 쾌도 고도 아닌 감각(수)이 무상․고․무아라고 한다. 이러한 까닭에 무상하고(anicca), 고통스러우며(dukkha), 변화하는(vipariṅāma)것을 가지고 ‘이것은 내 것이다, 나이다, 나의 자아이다’라고 여기지 말라고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무아’를 ‘공’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18계․6촉․3수가 공하다.

아난다: 세존이시여, ‘세상(loka)이 공하다(suñña) 세상이 공하다’라고 하는데, 왜 세상이 공하다고 말해집니까?

붓다: 아난다여, 자아와 자아에 속한 것이 공하므로 ‘세상이 공하다’고 말해진다. 그러면 ‘자아와 자아에 속한 것이 공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난다여, 시각(안)은 자아와 자아에 속한 것이 공하다. 형상(색)은 자아와 자아에 속한 것이 공하다. 시각의식(안식)은 자아와 자아에 속한 것이 공하다. 시각접촉도 자아와 자아에 속한 것이 공하다. 시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생겨나는 쾌감각, 고감각, 쾌도 고도 아닌 감각도 자아와 자아에 속한 것이 없다(청각, 후각, 미각, 촉각, 마음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함).

오온의 구조가 주객 혹은 명색 불이의 구조를 전제하고 있으며 또한 그래서 무아/공이듯이, 18계-6촉-3수 또한 주객불이의 구조 속에서 무아/공이다. 오온이나 18계-6촉-3수가 모든 존재의 무상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오온무아, 특히 색온/사대 무아는 인간 또한 여타의 모든 존재처럼 지수화풍 사대로 해체되는 무아의 존재라는 분석은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분석은 인간이 여타의 존재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는 ‘같은 속성’을 지닌 존재로서 ‘그들과 같다/평등하다’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과 지수화풍 사이의 모든 존재들 또한 궁극적으로 지수화풍의 속성을 갖는 무아의 존재들이다. 모든 존재가 그 동일 속성으로 인하여 본질적으로 평등한 것이다. 더 나아가서 무아성에 근거한 이러한 인식적 평등은 윤리적 요청으로 귀결된다. 즉 어떤 것에 대해서도 환락하지 않고, 탐진치를 버리며, 자기(혹은 자기 것) 만들기의 태도를 버리는 윤리적 평등의 실천을 요청한다. 인간이 자기자신에 대해 그러하듯이 그 밖의 모든 존재에 대하여 그리하라는 것이다.

오온의 무아성, 특히 색온/사대의 무아성이라는 공통 속성에 근거한 존재평등은 존재의 상호의존성에 근거한 존재평등과 달리 존재를 극점까지 무화시키는 해체적 방법에 의한 것이다. 모든 존재를 긍정하는 연기의 구성적 전략과는 다르다. 연기가 모든 존재가 나 아닌 것이 없기 때문에 나와 평등하다고 말한다면, 무아는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평등하다고 말할 것이다. 연기가 존재들의 ‘일체적’ 평등을 말하고자 한다면, 무아는 해체적 평등을 말하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무아와 연기, 해체적 방법과 구성적 방법, 부정논법과 긍정논법, 혹은 해체적 평등과 일체적 평등이 말하는 윤리적 메시지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존재를 ‘나와 같이 존중해 주는 평등’이다.

III. 맺음말



이 글에서 필자는 불교생태학에 있어서 존재평등의 근거를 초기불교에 나타난 연기와 무아의 개념에서 찾아보았다. 필자는 생태학 일반의 공통성으로서 불교생태학에서의 ‘관계성’을 나타내는 연기의 개념과 불교생태학만의 독특성으로서의 무아의 개념이 존재평등의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보았다. 연기의 상호의존성과 무아의 오온무아성이 인간과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는 메시지로 읽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때의 ‘평등’은 무구별적으로 똑같은 대우로서의 평등이 아니라 각 존재의 차이를 고려하는 ‘존중’으로서의 평등이다. 이러한 주장은 초기불교에 나타난 연기공식, 12연기, 무아의 개념에 대한 검토에 근거한 것이었다.

연기공식은 특히 업과 윤회개념과 함께 이해될 때 존재들 간 무한 관계성을 함축한다고 이해되었다. 연기공식의 한 적용인 12연기 또한 각 지분 쌍들 간 상호의존적 관계로 이해되었다. 각 지분 쌍들 간 사유방식은 연기공식의 ‘이것’과 ‘저것’의 관계에서처럼 쌍들이 동시에 고려되는 상호성에 근거한 사유방식이라는 것이다. 12연기에 대한 이러한 해석을 통해서 필자는 상호의존성이 식과 명색의 관계에만 국한된다는 해석을 비판하고, 양자간 상호성이 그 밖의 지분들의 쌍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은 각 지분 쌍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시간개념을 배제한 것이다. 즉 각 지분 쌍을 ‘논리적인’ 개념으로 보아 동시적인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상호성은 연기법의 특성인 ‘조건성’의 의미와도 같다고 이해되었다. 더 나아가서 필자는 12연기를 마음의 구조로 보아 모든 지분들을 동시적 상호성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이해되는 연기의 상호의존성은 모든 존재들이 자기 고유의 위치에서 고유의 역할을 하면서 하나의 유기적 생명(과정)에 참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나의 유기적 생명과정에서는 이 과정에 참여하는 존재들이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갖는 평등한 존재들로 간주된다. 이때의 평등은 모든 존재가 무구별적으로 똑같이 대우받아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평등이 아니라 존재의 차이들이 고려되는 ‘존중’으로서의 평등이다.

무아의 개념에 의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오온 무아 내지는 색온/사대 무아로 분석되어 오온무아성을 공통된 속성으로 한다. 이 때 오온무아성은 존재들이 무상․고․무아이며, 나의 것도 아니며 나도 아니며 나의 자아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과 동물, 혹은 생물과 무생물 등 모든 존재에 대하여 적용되는 ‘공통 속성’이 이러한 오온무아라는 점에서 이들은 서로 다르지 않다. 인간 자신을 포함한 어떠한 존재도 예외 없이 최종적으로는 이러한 오온무아로 해체되는 것이다.

그런데 존재의 이러한 오온무아성에 대한 인식은 인식에 그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윤리적 태도로 귀결된다. 초기경전은 오온 혹은 지수화풍 사대에 대해서 환락하지 말아야 하며, 탐진치를 버려야 하며, 자기 만들기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무아를 직접적으로 윤리적 태도로 귀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오온무아를 속성으로 하는 모든 존재들을 이러한 오온무아적 태도로 대하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상과 같은 오온무아라는 존재의 공통속성이 존재평등의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보았다. ‘오온무아성’이라는 존재 속성의 근원적 동일성에 근거하여 우리는 ‘모든 존재는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모든 존재에 대한 이러한 인식적 평등에 근거하여 모든 존재에 대한 윤리적 평등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연기와 무아, 혹은 상호의존성과 오온무아성이 ‘존재평등’의 근거라는 주장은 평등을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 더 나아가서는 모든 존재에게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급진적이다. 혹자는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혹은 생명중심적 관점에서 이러한 입장에 대하여 비판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며, 인간과 동물, 혹은 생물과 무생물을 똑같이 대우해주는 것이 온당하냐는 물음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질 때 이러한 비판이나 물음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평등이든지 존재평등이든지 평등의 진정한 의미는 산술적인 동등대우가 아니라 ‘존중’에서 찾아진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존중으로서의 평등의 핵심은 무구별적 대우에 있지 않고 차이를 고려하는 존중에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평등이 바로 생태중심적 관점에서 추구되어야 할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생태학은 이러한 평등 이념을 제시하고 있다. 연기와 무아의 개념, 혹은 상호의존성과 오온무아성은 이러한 평등의 인식적인 근거를 밝히면서 윤리적으로는 이러한 평등을 지향할 것을 요청한다.

주제어

불교생태학(Buddhist Ecology), 연기(paṭiccasamuppāda),

오온(pañcakkhandhā), 무아(anattan), 평등(Equality)



The Foundation of Equality of Beings

in Buddhist Ecology



An Ok-Sun

This paper aims at interpreting the theory of dependent-arising and non-self as the foundation of equality of beings from the perspective of Buddhist ecology. All beings including humans are epistemologically equal because they are mutually interrelated and they consist of only five aggregates without the self. Here equality does not mean to treat all beings without considering their distinctiveness. It is equality as “respect” considering their distinctiveness. In order to argue this, this paper examines the formula of dependent-arising, the 12 chains, and the theory of non-self in early Buddhist texts.

The author sees that the 12 chains as an application of the formula of dependent-arising present mutually dependent interrelatedness of all beings. She sees that all pairs of the 12 chains including the pair of consciousness and name-form should be understood in terms of mutual relatedness. This interpretation is possible when the pairs are understood not in terms of time but of logic. According to this understanding, mutual dependence of dependent-arising means that all beings are equal because each being takes their own places and plays their own unique roles in one holistic life process.

Humans and all beings equally consist of mere five aggregates or four elements and have no self. They all together have the nature of impermanence, suffering, and non-self. They are not mine, not I, and not my self. This common nature of all beings says that all existences in the world are equal because they have the same nature of five aggregates and non-self. This nature is not only a matter of understanding but also a matter of an ethical practice with regard to equ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