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숙인 1세대
1세대라 하면 정착기에 온 전국족구판에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임원, 선수, 심판등을 지칭하는 것이다.
창세대 : 80년대( ~89년)
1세대 : "90년대(약90년~99년)
2세대 : "00년대(약00년~10년)
위를 기준하여
창세대의 임원중에 인지도가 있는 분들은?
고 정덕진. 고 원성익. 김성관. 김상균. 이용대. 정기헌. 편옥설. 박수환. 정병률. 이충환 등 그리고 기억과 이름이 가물한 10여분 등이 족구계의 임원으로 이끌었다.
1세대의 선수중에 인지도가 있는 분들은?
이찬호. 정청식. 오병관. 우덕식. 이태헌. 신경우. 곽춘선. 김해수. 허상천. 허재호. 김희삼, 박영수, 김현우(중2), 강신국 그리고 기억과 이름이 가물한 100여명의 선수들이 이끌었다.
1세대의 심판중에 인지도가 있는 분들은?
문헌민. 김창기. 윤명백. 박영대(女). 정찬마. 이성우, 류재영. 명흥연. 조규상. 이종훈. 김영문 그리고 기억과 이름이 가물한 20여명의 심판들이 이끌었다.
위에 나열된 그리고 이름을 생각 못하는 여러분 중에 현재 임원이나,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족구2세대에게 전성기 족구를 인계,수 하고 있는 그리고 더욱 계승 발전시키는데 전력을 쏟고 있는 임원이 얼마나 존재 하는지 되 짚어 보아야 한다.
그저 자리를 차지하고 보존하고 대우만 받으면서 족구계에 몸담고 있는것은 아닌지?
물론 아니다. 아직까지 남아서 자신의 경비를 쏟아가며 휴일을 모두 상납한채 전국에 돌며 후진양성에 힘쓰는 인원들이 더욱 많기에 족구판은 존속하는 것이다.
왜 이런 과거를 나열하며 이런 글을 쓰고 있는것인가?
1세대의 출중한 기량과 추진력을 버리지 말고 더욱 "업"시켜 후진에게 빛나는 유산을 물려 줘야 하는것이 권리이며 의무이다. 한간에 팀의 감독직만을 수행하며 안주하는 1세대가 많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큰 틀에서 족구발전은 되질 못한다.
기술과 테크닉은 전달되고 업 될 수 는 있겠지만 큰틀의 조직과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는것이다.
위의 모든이들이 조직과 시스템이 동반하여 뼈대를 만들고 1,5세가 살을 만들어 2세대가 활동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바라옵건데 족구1세대라 자칭하시는 분들은 이제는 누가 하겠지가 아니고,
우리가 해야 합니다. 다같이 동참해야 합니다.
임진년 설 연휴를 맞이하여!~~~
메이커의 동반성장
90년대 초 나이스, 낫소라는 곳에서 족구공을 만들어 전국과 군 부대에 납품을하였다 그러나 그때 공제작 기술이 상당히 바닥에 있던터라 짱구공, 바람세는공이 상당히 엉망이었다. 하여 공다운 공을 만들고 "족구전용공"을 만들자라는 붐이 95년 스포츠 TV방송을 타면서 급물살을 탔다.
그렇게 (주)신신상사 정필조 사장님의 혜안으로 전용족구공, 전용족구화가 드디어 97년 한강사랑 한마음대축제 때 공식적인 선을 보이게 되었다.
그 당시 어떤 메이커도 족구공이라는 품목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의 스타스포츠 당시에 신신상사 만이 관심을 갖어 주었다.
그러나 족구화는 그런대로 업 그레이드 되어 가고 있었지만 족구공만큼은 그대로이면서 수비수들의 머리에 충격이 너무 강하고 결국 2001년 한강에서 삼성전자 이종길 선수가 헤딩 후 기절하는 사건이 벌어 졌다. 또한 며칠간의 기억을 못하는 사안도 있었다.
하여 충격을 흡수 하고 현행 축구공보다는 1/2이하로 축소시켜야 하는 숙제가 잉태되었고 이에 (주)스타 스포츠 회사는 족구인의 언론을 그대로 받아드려 당시 월드컵 축구공 재질인 "피버노바" 재질도 격상 시켰다.
이때가 족구동호인, 선수들이 가장 선호 했던 공인족구공이었다.
이후 두, 세차례 족구공이 업그레이드 되면서 충격흡수장치인 엠보싱(공기층)천이 사라지고 충격이 가해지는 공으로 원위치 되었다.
이는 봄,여름,가을 에는 그런대로 적응 할 수 있으나 겨울에는 돌덩어리 같은 공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현재에 (주) 스타는 더욱 좋은 재질과 충격이 흡수되는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모든 면을 볼때 (주)스타는 족구발전의 정착기를 같이하고 있다고 역사에 글을 남겨도 무방 할 것이다. 과연 스타라는 화시가 동반 하지 않았다면 이만큼 발전하였을까 하는 의문을 남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주)스타는 영리업체로써 이익을 극대화 해야 하는 사업체이다, 즉 족구단체에 공식적인 제1의협찬사로 남아 스타공의 우수성을 알리고 소비자들의 마음을 이끌었어야 한다.
헌데 비영리 단체인 전국족구연합회 대표로 자리매김 하면서 족구인들로 부터 적잖은 반발에 부딛치기도 한다. 즉 족구단체는 비영리 단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제 의견을 내놓는다면.
(주)신신상사 현(주)스타 없이는 족구발전이 이만큼 오지는 않았다 그 공로는 족구역사에 반드시남기고 후세에 기려야 한다는것에 100% 찬동한다.
그러나 비영리와 영리가 공존한다는 것은 창과 방패(모순) 장사의 괴리가 생긴다. 하여 우려를 하였고 결과적으로 현재 그러한 반발이 전국적으로 잔재하고 있는것이다.
이러한 점을 잘 희석하고 해결한다면 이보다 나은 "유토피아" 는 없을것이다.
족구발전에 한획을 그은 (주)스타를 생각하면서!~~~
족구단체의 역사 및 회장
우리는 일본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왜곡한다고 외치면서 각자 스스로의 역사는 철저히 외면하고 방관하고 시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족구는 순수한 족구로써의 정통성이 있는데도 타 국가의 종목인 "세팍타크로" 의 역사에 묶어 두려하고 있다.
나는 "대한족구협회" 역대 회장과 임기를 나열한다.
*대한족구협회
제1대 박이성 1990년 4월 ~ 1991년 5월
제2대 한광수 1991년 5월 ~ 1992년 7월
제3대 전상수 1992년 7월 ~ 1994년 8월 *생활체육전국족구연합회
제4대 신경식 1994년 4월 ~ 1995년 5월 제1대 회장 차종태 취임
제5대 정덕진 1996년 2월 ~ 1998년 3월 제2대 회장 이대명 취임
or 통합 생체전국연합회 제3대 회장 정덕진 취임
제4대 회장 김성관 취임
제5대 회장 최경주 취임
제6대 회장 이정수 취임
제7대 회장 이정수 취임
제8대 회장 정원조 취임
제9대 회장 정원조 취임
1998년 부터 2005년 까지 생체 전족연에서 협회(엘리트) 통합운영
2003년 엘리트 단체 분리준비(대한족구연맹-방송홍보)
2005년 엘리트 담당단체 대한족구협회 MOU(라마다 르네상스 호텔)
제6대 김성범 2005년 8월 ~ 2007년 8월
제7대 이재윤 2007년 8월 ~ 2009년 2월
제8대 정도석 2009년 2월 ~ 2011년 5월
제9대 송영우 2011년 5월 ~ 현재
위와 같은 역사와 수많은 대한족구협회 동반자가 있었는데 왜 당시 세팍타크로 산하 한국족구연맹의 역사 속에 족구협회를 묶어 두려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족구는 대한민국 민속구기이며 대한민국의 종주국 종목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우리 스스로가 올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미주족구협회장과의 만남
어제는 참으로 뜻 깊은 하루였습니다.
10년전 내 모습을 보듯 족구열정에 혼신을 불사르고 족구를 세계로!~~ 추진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귀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실천 가능한 얘기를 나누면서 저도 오랜만에 정말 많은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속에 막혀있던 그 무엇이 뻥 뜷리는 듯한 느낌이었으며 너무 행복한 하루 였습니다.
여러 가지 현실과 족구와 선교를 접목하여 보급하는 내용. 등등
참으로 평온하고 한번도 깨지 않고 6년여 만에 정말 꿀잠을 잤습니다.
부디 족구종주국에 오셔서 해외에서 선전하는 방법도 알리시고 본국의 모든
족구1세대 에게도 각성되는 일정 되시길 바랍니다.
저도 이번 계기로 손을 놓았던 족구를 다시 붙잡아 동참 하겠다는 의지가
생깁니다. 아무쪼록 한국에 일정 실망보다는 희망과 기대를 안고 가시길 바랍니다.
다시 기회가 된다면 한번 더 뵙으면 합니다..
강신국님 과의 재만남
안녕 하십니까?
근 6년여 족구야인의 생활을 하고 있는 정찬마 인사 드립니다.
며칠전 "족구를 세계로" 홍보하고 계승 발전 시키고자 뜻이 맞아 10여년 같이 움직이던 매니아 강(강신국)님을 만났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5시간 이란 시간이 짧았습니다.
85년도 공군과의 족구 첫 시합이 지금에 족구판에 있게 한 계기이구요?
대한민국 민속구기 족구를 "전 세계로!~~ 그리고 미래로!~~" 라는 슬로건 아래 공무원이었던 저를 족구직업인으로 길을 걷게 하였던 것이 족구의 종주국이 대한민국 이었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하여 2000년도 족구에 인생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구요.
12년이 흐른 지금 족구종주국에서는 "족구를 세계로 " 라는 까페모임에서 움직이고 있고 저 멀리 미국 땅에서도 대한민국 족구종주국인 본국이 조속히 움직여 달라는 여망과 희망이 동시에 밀려옵니다.
참으로 부끄럽고 챙피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아니 하게 해 준다면!
인생의 정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열정 쏟아 붓고 싶습니다.
모두 행복한 설날 되십시오 /^^.
첫댓글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