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의 신
고대신화로 보는 우주의 근원
-생명나무 사상을 중심으로-
2003. 11. 15. 문성호
* [우주와 생명나무]에서 발췌하여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우주목 신화“나무는 사실상 전 우주적 몽상의 가장 적합한 기반인 것 같다. 왜냐하면 나무는 인간의 의식을 포착할 수 있는 길이요, 우주에 생기를 부여하는 생명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대립되는 두 개의 무한을 서로 연결시키는 동시에 상반되는 의미를 갖는 대칭적인 두 심연인,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어두운 지하의 물질과 접근할 수 없을 만큼 빛나는 에테르가 서로 결합하는 나무 앞에서 인간은 꿈을 꾼다. 묵묵히 서 있는 나무 줄기에 몸을 기대면 인간은 나무에 동화되어 그 내적인 움직임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이는 프랑스의 수목학자 자크 브로스가 그의 저서 「나무의 신화」에서 한 말이다. 브로스는 이 책에서 세계의 여러 우주목(宇宙木) 사상을 바탕으로 해서 나무와 연관된 여러 신화와 다양한 나무 제의(祭儀)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가 지적했듯이 우주목은 우주의 구성체와 인간이 이 우주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설명하고 있는 신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고 풍부하며 보편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아마도 세계 전역의 우주목 신화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또 풍부한 신화적 요소와 서사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북유럽의 ‘이그드라실’일 것이다. 이그드라실은 온 우주와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물푸레나무이다. 이 거대한 물푸레나무 아래 아홉 개의 세상이 존재하고, 그곳에 신과 인간, 거인과 난쟁이들이 살고 있다. 그 가지들은 온 세상 위로 뻗어 나가 하늘을 덮었으며, 나무의 꼭대기는 신들의 천상 거주지인 아스가르드에 가 닿았다. 줄기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중간계인 미드가르드를 가로지르며, 바로 이곳에 인간들이 산다. 또 이 물푸레나무에는 세계를 떠받치는 엄청나게 큰 뿌리가 셋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신들의 세계인 아스가르드(아스가르드는 나무 꼭대기와 이곳 두 곳에 있다), 또 하나는 선사시대 거인들의 영역인 요툰하임, 나머지 세 번째 뿌리는 죽은 자가 머무르는 니플하임이라는 곳에 닿아 있다. 신들의 지하 세계와 천상 거주지는 무지개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신들은 물푸레나무의 첫 번째 뿌리가 닿은 곳에 존재하는 샘 주변에 모여서 회의를 하곤 한다. 요툰하임과 니플하임으로 뻗은 나머지 두 개의 뿌리 끝에도 샘이 있다. 이중 니플하임의 샘은 거대한 뱀 니드호그가 지키고 있다. 반면 요툰하임의 샘은 현자 미미르가 지키고 있는데, 여기에는 온갖 지혜와 신비로운 지식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이그드라실 - 「모든 세기의 신비」xciii>
최초의 신이자 모든 신들의 아버지인 오딘은 미미르의 샘물을 마시기 위해 그의 한쪽 눈을 바쳐야 했다. 오딘(Odin)의 어원을 추적해보면 보딘(Woden), 보단(Wodan), 보탄(Wotan), 부탄(Wuotan)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나무(wood)나 바람(wind)을 의미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정설이다. 히긴스(Godfrey Higgins)의 끈질긴 추론에 따르면 오딘 혹은 보딘(Woden)은 나무 이외에도 ‘지혜’의 뜻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한다. 오딘은 한쪽 눈을 잃은 것 이외에도 9일 밤낮을 이그드라실에 매달려 고통을 받은 후, 신들의 멸망(라그나뢰크)을 포함한 최고의 지식과 또 다른 세계의 신비한 언어인 룬 문자를 얻어 완전한 신이 된다. 이그드라실이라는 이름 역시 오딘과 관계가 깊은데, 그것은 ‘이그의 준마(駿馬)’라는 뜻으로 이그는 오딘의 여러 이름들 중 하나이다.
북유럽인들에게 물푸레나무가 오딘에게 바쳐진 나무였다면, 참나무는 제우스에게 바쳐진 나무였다. 로마 사람들도 제우스를 참나무의 신으로 숭배했다. 켈트족에게도 제우스의 이미지는 거대한 참나무였는데, 켈트족 사제계급의 명칭인 드루이드도 “떡갈나무(참나무)의 현자들”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참나무와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를 더없이 신성한 것으로 여겼다.
인도에도 ‘아스바타’라고 하는 오래 된 우주목 신화가 있는데, 이는 일명 피팔(피쿠스 렐리기오사)이라고 부르는 신성한 무화과나무이다. 고타마 붓다가 그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가 바로 이 나무이다. 히긴스는 오딘의 어원을 붓다에까지 연관지었는데, 붓다의 타밀어 발음은 보딘(Woden)과 같다. 타밀종족은 현재 스리랑카 북부에 거주하지만, 그 원종(原種)은 아르메노이드와 지중해 인종의 혼혈이라고 한다. (나무의 상징에서 반복적으로 지혜의 코드가 나타나는 것을 유의해 보라)
이밖에도 나무를 우주의 상징이나 세계의 중심축으로 보는 우주목 사상은 세계 여러 곳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티벳의 잠푼과 호주 원주민, 멕시코 유물의 코덱스 보르기아에 나타난 우주목, 이집트의 타마리스크, 메소포타미아의 생명나무 키스카누, 시베리아 샤먼의 자작나무, 그리고 우리나라 신시(神市)에 있었다고 하는 신단수(神檀樹)와 이를 본 따 소도(蘇塗)에 세운 솟대 역시 우주목 사상의 좋은 본보기들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선악의 지식나무와 생명나무 또한 우주목 사상의 한 예인데, 많은 이들은 에덴동산의 이 두 나무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우주목은 다른 말로 세계수(世界樹), 지혜의 나무, 생명나무 등으로 불린다. 메소포타미아와 에덴동산의 두 나무는 본래 하나의 생명나무가 분리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거꾸로 선 나무이렇듯 세계에는 많은 우주목 신화가 있지만 그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보다 정확한 형태는 거꾸로 선 나무의 모습일 것이다. 인류의 가장 오래 된 문헌 중 하나인 「우파니샤드」에서는 우주가 “하늘에 뿌리를 박고 온 땅위에 가지를 드리운 거꾸로 선 나무”라고 말한다. 「리그베다」에도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가지는 아래를 향하여 뻗어 있고 뿌리는 위쪽에 위치해 있으니 저 높은 곳에서 빛이 우리에게 내려오도다.”
인도의 우주목 아스바타가 바로 이 거꾸로 선 나무이다. 주 크리슈나는 「바가바드기타」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아스바타는 불멸이며, 뿌리는 위에, 가지는 아래에 있다. 잎들은 베다의 찬가이다. 이 나무를 아는 자가 베다를 아는 자이다.” 여기서 베다는 힌두의 신성한 고대 문헌집을 가리키며 문자적으로는 ‘지혜’를 의미한다. 결국 ‘신성한 지혜’라는 뜻이다. 근대 신지학(神智學)의 창설자인 블라바츠키 여사 또한 “아스바타는 거꾸로 된 상태로 자라난다. 가지는 아래로 퍼지며 뿌리는 위를 향해 뻗어 있다. 전자는 감각의 외부 세계 즉 질서정연한 현상세계의 우주를 상징하며, 후자인 뿌리는 보이지 않는 영(靈)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언급하였다. 블라바츠키 여사에 따르면 이집트의 피라미드 또한 상징적으로 이 거꾸로 된 나무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피라미드의 꼭짓점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비적인 고리이며, 우주목의 뿌리에 해당된다. 반면 피라미드의 기저(基底)부는 넓게 펼쳐진 나무 가지를 상징하며, 네 개의 빗면은 자연을 지배하는 테트라드의 원리(4의 원리), 또는 우주의 4계(四界)를 상징한다.
아스바타는 창조의 신 브라만의 발현을 나타내며, 하강 움직임으로서의 창조 활동 속에서 구체화된다.
“위로는 뿌리를, 아래로는 잎사귀를 갖는 것은 불멸의 무화과나무이다. 바로 이 나무가 순수한 브라만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 나무를 불사의 존재라고 부르며, 모든 이들이 이 나무에 몸을 의지한다.” (「카타 우파니샤드」)
아스바타의 뿌리가 저 위에 있다는 것은 우주창조의 근원이 어디인가를 비유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브라만이 신적인 존재이든 아니면 단지 자연의 법칙을 신격화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수사(修辭)적 개념에 지나지 않던, 브라만은 우주창조의 지고(至高)한 첫 번째 동인(動因)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최초의 동기로부터 줄기와 가지들이 자라나며, 그 결과물은 다양한 세계와 그 세계에 존재하는 생명들이다. 그러므로 창조는 천상의 뿌리에서 지상으로, 즉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길을 따르게 된다.
세피로트의 나무이런 창조의 과정을 보다 체계적이고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 바로 카발라의 생명나무다. (카발라는 오랜 옛날부터 유대를 중심으로, 중동과 유럽 등지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비밀리에 전해내려 온 신비주의 전통이다) 여기에는 무화과나무라든가 올리브나무 따위의 어떤 지상대응물이 없다. 상징은 최대한 추상적으로 기호화되며, 그러나 상징을 구성하는 기호들 간의 함수관계는 놀라울 만치 아주 구체적으로 된다.
카발라의 생명나무를 구성하는 중심기호는 열 개의 세피로트이다. 세피로트는 우주창조 과정에 쏟아져 내린 신성한 빛의 천구(天球)로서, 신의 속성이 이 우주에 표현된 것을 상징한다. 세피로트는 창조의 빛을 담는 그릇으로 비유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 하나의 그릇이 차서 넘치면 그 다음 그릇에 창조의 빛이 폭포수처럼 흘러들게 된다.
세피로트를 이어주는 것은 22개의 ‘길’이다. 이 길은 세피로트 간의 상호 관계와 영향력을 나타낸다. 전체적으로 이 22개의 길과 10개의 세피로트가 하나의 체계를 이루어 생명나무의 형상을 완성한다. 22개의 길은 가지와 같고, 10개의 세피로트는 열매나 잎, 또는 뿌리에 해당된다. 뿌리는 맨 위에 있는 첫 번째 세피로트로, 나머지 9개 세피로트의 발원지가 된다. 그리고 가운데 일렬로 늘어선 4개의 세피로트를 연결하는 수직의 길과 양 옆 3개씩의 세피로트를 연결하는 수직의 길은 나무의 기둥이 된다. 따라서 모두 3개의 기둥이 있는 셈이다.
바로 이렇게 세피로트의 생명나무는 거꾸로 뒤집힌 나무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상징에서, 맨 아래에 있는 열 번째 세피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인 물질우주를 나타낸다. 물질우주는 육체적인 감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보통 우리들이 알고 있는 세계이다. 이 작은 도형 속에, 최초의 원인에서 물질우주의 발현(發顯)에 이르기까지, 우주창조의 모든 과정과 원리가 함축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아인 소프세피로트의 생명나무가 다른 우주목과 크게 차별화되는 부분은 그것이 고도의 수비학(數秘學)적 상징체계라는 점이다. 그 암호를 풀면 이 우주의 창조원리가 살며시 나신(裸身)을 드러내는데, 여기서는 지면관계상 그 내용을 자세히 다룰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쨌든 생명나무는 우주의 표상이자, 삼라만상이 그 본을 따라 이루어진 우주의 청사진, 만물의 설계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명나무가 진정한 우주의 원초적 근원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주의 참된 근원은 무엇인가? 또 만일 생명나무가 우주 그 자체의 대응물이거나 우주의 설계도에 불과한 것이라면, 도대체 누가 그 청사진을 기획하고 만들었을까? 이러한 질문이 타당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고 접촉하는 인공물들을 둘러 볼 때, 거의 모든 경우 그 물건을 최초로 제안하고 설계한 설계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무형의 컴퓨터 소프트웨어도 그 설계자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연의 경우는 좀 다르다. 어떤 이는 자연의 오묘한 질서와 생명력을 보고 배후의 신적인 존재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우연히 부여된 초기의 물리적인 조건에 의해 자동적으로 운행을 해나가는 기계적이고 무신론적인 우주를 상상한다. 과연 우주에는 최초의 설계자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는 어디에 모습을 감추고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설계도로서의 생명나무는 매우 놀라운 특성들을 지니고 있다. 마치 DNA가 생체의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어 하나의 완벽한 생명체를 만들어내듯이, 생명나무는 물질계와 초물질계를 아우르는 존재계 전체에 대한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어 삼라만상의 원형이자 씨앗이 된다. 그렇다면 이 씨앗은 어디서 날아왔는가? 또는, 생명나무가 자라난 뿌리의 근원을 알면 설계자에 대한 정보를 단편적으로나마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생명나무의 뿌리를 브라만에 비유했던 앞에서의 구절을 떠올려보자. 그곳에서 필자는 생명나무를 창조신 브라만의 발현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사실, 브라만의 연꽃이 비슈누의 배꼽에서 자라난다는 우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브라만이 이 우주의 최종적인 궁극은 아니다. 「바가바드기타」에서 아르쥬나는 크리슈나와 하나로 결합하기 위해서는 아스바타의 그 뿌리마저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아스바타는 생명나무를 말하고 크리슈나는 비슈누신의 화신(化身)이다. 그런 브라만을 넘어서는 오컬트 개념으로 ‘파라브라만’이 있다. ‘파라’는 초월한다는 뜻이다.
<힌두 신화의 한 장면을 묘사한 이 그림에서 우주는 비슈누신의 꿈으로 표현된다. 비슈누신이 잠들어 꿈을 꾸게 되면 그의 배꼽에서는 한 송이 연꽃이 피어오르고, 이 연꽃은 브라마(브라만이나 브라마는 그리스어의 ‘로고스’에 해당된다. 브라만은 현현되지 않은 로고스, 브라마는 현현된 로고스를 말한다는 정도만 알아두자)를 낳게 되는데 브라마는 다름 아닌 이 우주의 창조자이다. 브라마의 세월이 지난 후, 비슈누신이 꿈을 거두어들이면 연꽃은 다시 그의 몸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언젠가 비슈누신이 다시 꿈을 꾸게 되면 연꽃은 또 한번 피어오르고 또 다른 우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한편 혼돈의 바다 위에는 머리가 일곱 개 달린 심연의 우주뱀 아난타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비슈누신은 그 위에 누워 잠을 자고 있으며, 창조의 꿈을 지속할 수 있도록 락슈미 여신이 옆에서 자극을 가하는 모습도 보인다. 브라마의 네 얼굴은 우주의 4계(四界), 또는 우주의 네 방향을 나타낸다.>
한편 블라바츠키 여사는 아스바타의 몸체가 '한사(Hansa)'라고 하는 거룩한 백조의 어두운 두 날개 사이로부터 자라나 하강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아스바타는 신성한 무화과나무가 아닌 또 하나의 다른 상징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지혜의 신 헤르메스의 지팡이라 일컫는 ‘캐듀서스’이다.
“매 태초마다(새로운 우주의 활동기가 시작될 때마다) 아스바타의 몸체는 위대한 생명(Life)의 백조(한사)의 어두운 두 날개로부터 자라나 하강한다. 두 날개 사이에 있는 하나의 머리에서 자라난 두 개의 머리는 두 마리의 뱀이다. 두 마리의 뱀, 즉 영원한 생명과 그 환영은 서로 껴안듯이 교차하면서 몸체를 따라 하강하여, 두 개의 꼬리는 지상(현현한 우주)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이것은 위대한 환영이다, 오 라누여!” (「The Secret Doctrine」)
이것도 결국 거꾸로 선 나무와 같은 상징이다. 거룩한 백조의 두 날개 사이에 있는 하나의 머리는 아스바타의 뿌리이다. 두 마리의 뱀 역시 매우 의미심장한 상징이지만, 우선 세계의 여러 우주목 신화에 뱀이 함께 등장한다는 사실만 알아도 캐듀서스가 우주목의 한 변형임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헤르메스는, 비록 그리스 신화에서는 신으로 나타나지만 이집트의 ‘토트’나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와 동일시되는 인물로 모든 고대 비학(秘學, 오컬트)체계의 시조로 추앙받는 존재이다.
한사는 중세의 비밀결사단체인 장미십자단의 펠리컨에 해당하는 신비한 새이며, 무한한 시간을 뜻하는 ‘칼라’가 앞에 붙으면 ‘칼라한사’라는 신성하고 신비한 이름이 된다. 그런데 이는 다름 아닌 파라브라만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 이름은 “공간과 시간을 벗어난 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하면 브라마는 인간의 개념으로 감히 측량할 수도 없는 이 신비한 새의 탈 것 즉 수용체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브라마는 한사의 수용체를 의미하는 ‘한사 바하나’라고도 부른다. 카발라의 성전 「조하르(빛의 서)」에서도 이와 동일한 아이디어를 볼 수 있는데, 아인 소프는 현현의 목적을 가지고 아담 카드몬(아담의 원형, 또는 천상의 아담으로 불리며 생명나무를 닮았다)을 그 탈 것, 또는 수용체로 삼아 우주로 강하했다고 말해진다. 아인 소프는 파라브라만, 또는 칼라한사의 카발라 버전인 셈이다.
파라브라만이나 아인 소프, 칼라한사, 시공간 너머의 무한을 상징하는 영원의 뱀 아난타는 사실상 이름붙이거나 묘사를 하여 한계를 지을 수 없는, 우주와 우주의 창조주마저 초월한 개념에 대한 비유적 명칭이다. 많은 이들이 왜 이런 개념이 필요한지 의아해 할지 모르겠다. 특히 우주의 창조주를 지고(至高)의 최고신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브라만과 파라브라만 사이의 개념 차이를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뒤에서 차차 살펴보기로 하겠다.
결론적으로 카발라의 우주론은 아인 소프와 세피로트로 설명이 되며, 세피로트의 체계는 다시 생명의 나무로 상징된다. 아인 소프는 창조 이전의 우주의 본체에 해당하는 개념으로써, 세피로트는 우주의 본체인 아인 소프와 창조의 결과 생겨난 물질 우주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라 할 수 있다. 세피로트는 아인 소프로부터 발출되어 나온 빛의 광구(光球)로 표현된다. 그럼 우주의 본체인 아인 소프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아인 소프는 ‘한계가 없음’, 곧 무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카발라에서는 아인 소프를 세분하여 아인, 아인 소프, 아인 소프 아우르의 세 단계가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때 아인은 ‘무(無)’, 아인 소프는 ‘무한’, 아인 소프 아우르는 ‘무한한 빛’으로 번역할 수 있다. 히브리인들은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심오한 무엇에 부정을 뜻하는 ‘아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대공허시공간을 초월한 무한의 개념, 아인 소프는 인간의 인식 능력으로는 인식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측정할 수도 없으며, 크기와 역사를 논할 수도 없고, 어떤 언어와 표현으로도 규정할 수 없다. 아인 소프는 결코 인간적 경험의 일부분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의 존재에 대한 논의를 시도조차 할 수 없고, 그런 면에서 보자면 아인 소프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인식되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카발라에서는 우주를 4개의 존재계(원형계, 창조계, 형성계, 물질계)로 나누고 있는데, 하위의 존재계에서 보면 상위의 존재계는 인식 불가능하므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물질계에서 볼 때 상위에 위치한 형성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때 형성계는 물질계에 대하여 ‘무(無)’ 또는 ‘공(空)’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이 ‘무’의 개념은 상대적이다. 형성계는 물질계에 대해서 ‘무’라고 이해될 수 있지만, 창조계나 원형계와의 관계에서는 그 자신이 ‘유(有)’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상대적인 ‘무’들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리거나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데, 이런 무의 단계가 궁극에 이른 것이 바로 아인 소프, 즉 무한(無限)인 것이고, 존재를 넘어선 존재, 존재 이전의 존재, 또는 비존재의 존재라고 역설적으로 일컬을만한 것이다.
사실 아인 소프는 존재를 초월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그냥 아무 것도 아닌 것(nothing), ‘절대무’, ‘절대공’인 것이다. 하지만 이 무는 모든 유한한 존재들의 뿌리이자 우주탄생의 모태가 된다. 우주는 이로부터 현현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현현의 상태인 아인 소프를 카발리스트들은 음존재(Negative Existence)라고도 부른다. 현현한 우주를 상징하는 생명나무는 양존재라 할 수 있다. 한편 파라브라만의 예가 시사하듯이, 우주의 근원을 ‘무’ 혹은 ‘공’으로 보는 것은 거의 모든 종교의 우주론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 민족 고대의 경전인 「천부경」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천부경」에선 무에서 하나가 시작되었으며(一始無), 하나가 쌓여서 열이 되며(一積十鉅) 이 열은 무를 다듬어서 형태를 빚은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무의 속성이 열로 분화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바로 아인 소프에서 10개의 빛의 연장이 발출되었다는 카발라의 생명나무 사상과 동일하다. 천부경의 사상과 카발라의 사상을 비교분석한 조하선씨의 「베일 벗은 천부경」을 읽어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천부경」의 ‘천부(天符)’는 하늘의 상서로운 그림(상징)이란 뜻이고, 그것은 곧 생명나무를 일컫는다.
천부경과 마찬가지로 단군을 국조(國祖)로 숭상하는 대종교(大倧敎)의 「삼일신고(三一神誥)」 ‘허공(虛空)’편에는 “파란 것이 하늘이 아니요, 까만 것도 하늘이 아니다. 하늘은 형(形)도 질(質)도 없으며 시작도 끝도 없으며 상하사방도 없이 허허공공하다.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으며 감싸지 않는 것이 없다.”는 글이 있다. 여기서 하늘은 아인 소프를 말한다. 유한계의 원천인 무 또는 공의 상태인 무한계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 안에는 어떠한 형상도 실질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어디에나 편재하고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반면 「소도경전본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허공이 하늘의 질과 양이 되었다.” “하늘의 근원은 일대 허무공이다.” 이때의 하늘은 유한계 우주를 말한다.
아인 소프는 또 동양철학의 ‘무극(無極)’과 같은 개념이다. 태극(太極)이 우주만물의 기본이 되는 음양의 대대성(代對性)을 통합하고 있다면, 무극은 그 태극마저 초월해 있다.
불교식의 표현을 따른다면 아인 소프는 ‘공(空)’이다. 불교 공(空) 사상의 절정은 반야심경으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경구에서 보듯이 만유(萬有)를 공과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았다. “일체개공(一切皆空)”. 공은 우주의 바탕일 뿐만 아니라, 만물 그 자체가 곧 공이다. 그러나 이 공은 ‘진공묘유(眞空妙有)’란 말이 있듯이 텅 비어있는 진공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빈틈없이 꽉 찬 그 무엇을 말하는데, 공교롭게도 과학에서도 점차 이러한 충만한 공간의 개념을 입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물질과 힘, 에너지, 시공간을 포함한 우주의 본질이 공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깨달아가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충만한 공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공을 ‘플레로마’라고 불렀다. 플레로마는 그 단어 자체가 ‘꽉 차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물론 이때 ‘차 있다’는 개념을 물질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도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다. 오컬트에서는 도덕경을 중국의 카발라 경전이라고도 말한다. 천지의 시초로서 무(명)를, 만물의 근원으로서 유(명)를 말하지만, 무와 유의 근원은 동일하다고 한다. 양자의 근원이 동일하다는 것은 바로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경지에서 볼 때는 공이라는 공통인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근원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뿐이다.
“혼돈하면서도 이루어지는 무엇인가가 천지보다도 먼저 있었다.” (「도덕경」)
혼돈이 혼돈의 이미지 역시 세계 여러 곳의 신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중국 신화에서 무, 공, 아인 소프의 개념은 ‘혼돈’으로 나타난다. 「장자」에 보면, 남해 천제 숙(儵), 북해 천제 홀(忽), 중앙 천제 혼돈(混沌)이 살았는데 혼돈이 숙과 홀에게 매우 잘 대접해주었기 때문에 그 은덕에 보답키 위해 숙과 홀이 혼돈에게 사람처럼 일곱 개의 구멍(양눈, 양귀, 양콧구멍, 입)을 하루에 하나씩 뚫어주었다. 그러자 혼돈이 죽어버렸다고 한다.” (「베일 벗은 천부경」)
“아툼은 눈(Nun)에서 태어났는데, 눈은 모든 물질이 생겨나는 원시의 바다 혹은 혼돈을 의미한다. 이집트인들은 눈을 무한(Infinity), 무(Nothingness), 무소(Nowhere)로 여겼다.” (「세계신화사전」)
혼돈은 또 뱀의 형태를 하고 신화 속에 나타난다. 우주가 탄생하기 이전의 혼돈에서 우주알을 품고 부화시킨 것은 다름 아닌 뱀이었다. 바빌로니아의 신화에서 혼돈의 상징인 거대한 뱀 티아마트는 태양신 마르두크에 의해 살해된다.
“티아마트는 바빌로니아의 암룡(暗龍)이다. 그 기원은 엔릴에 의해서 태어나고 파멸된 수메르의 괴물 라부에 있다. 「에누마 엘리시」에는 마르두크에 의해서 새로운 세계 질서가 만들어지게 되기 이전의 우주의 모습이 있다. 최초에는 담수의 심연인 아브주(Ab Soo)의 혼돈된 물과 염수의 바다 티아마트와 그것들의 표면위로 흐르는 안개 뭄무가 있을 뿐이었다. 아브주와 티아마트는 최초의 신들인 라무와 라하무의 부모였다. 라무와 라하무의 아이들은 안샤르와 키샤르였고, 손자는 아누와 에아였다. 그 젊은 신들이 우주에 소동을 일으켰으며, 그 소동에 성이 난 아브주와 티아마트는 뭄무의 충고에 따라 그들의 자손을 멸망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을 알게 된 에아는 마력으로 아브주와 티아마트의 공격을 방해했으며, 아마도 아브주를 죽이기조차 했을 것이다. 에아의 아들로서 담수 속에서 태어난 마르두크가 마지막으로 자손들을 구원했다.
티아마트가 전쟁을 하기 위해서 가공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신들은 놀라고 절망했다. 신들의 어머니인 티아마트는 두 번째 남편 킹구와 괴물적인 용과 뱀의 모습을 한 생물들로 구성된 군대와 함께 우주를 파괴하려고 했다. 혼돈이 세계를 위협했다. 그래서 안샤르는 마르두크를 신들의 대표로 지명하고, 가공할 전투에 대비하여 그를 ‘무적의 무기’로 무장시킬 것을 제안했다. 신들은 그 제안에 동의했으며, 또 동시에 마르두크의 주장대로 그가 신들 가운에 으뜸임을 인정했다. 마르두크는 전차를 타고, 활과 삼지창과 곤봉과 그물과 바람의 무기를 가지고 싸우러 나갔다. 티아마트가 마르두크를 집어삼키려고 턱을 열자, 그는 티아마트의 입속에 곧바로 휘몰아치는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래서 티아마트는 입을 닫을 수 없게 되었고, 마르두크는 티아마트의 배에 화살을 쏘아 그녀를 죽였다. 마르두크는 티아마트의 추종자들을 포로로 잡고 나자, 운명의 문자판(티아마트가 킹구에게 준 결혼선물)을 그의 가슴에 단단히 걸었다. 그리고는 티아마트의 시체를 두 갈래로 찢었다. 그리고 한 갈래를 위로 밀어올려 하늘을 만들고, 또 한 갈래로는 심연 위에 바닥을 놓았다. 그리고 마르두크는 그 중간의 세계에서 킹구의 피로 인간을 창조한 후에, 바빌론에 있는 자신의 신전으로 은퇴했다.” (「세계신화사전」)
이 신화를 두고 같은 책에서는 “원초의 물질인 혼돈은 창조된 질서와는 언제나 불화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서아시아의 용의 신화는 마르두크와, 아마도 사탄의 원형이라고 할 티아마트 사이의 투쟁에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고 평가한다. 티아마트는 이집트 신화에서 아포피스로 변신한다.
“아툼의 적의 우두머리는 아포피스 뱀이었다. 그 뱀은 태양신 마르두크에 의해서 살해된 바빌로니아의 암룡 티아마트에 대응된다.” (「세계신화사전」)
힌두 신화에 나오는 뱀 아난타 역시 혼돈과 무를 상징한다.
“아난타는 본래 ‘무궁하다’는 의미로, 무한, 풍요의 상징이며, 우주축의 기저를 감싸고서 똬리를 틀고 있다.” (「세계문화상징사전」)
이처럼 고대 신화들의 우주론에서 뱀은 만물이 나와서 다시 회귀하는 대해(大海), 태고의 미분화한 혼돈을 나타낸다. 또한 이들 신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대결의 구조, 즉 우주의 창조신이 어둠의 뱀(때로는 용의 형태로 나타난다)과 사투를 벌여 승리한다는 것은 무질서한 혼돈 속에서 질서 있는 우주가 탄생하는 과정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주의 기원은 혼돈, 즉 아인 소프에 있다.
혼돈 속의 질서이 혼돈은 오컬트적으로 말하면 카오스이다. 현대 카오스 이론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인 랠프 애이브러햄은 카오스를 “창조적 공간으로서 모든 형태의 근원”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카오스라는 단어가 고대 그리스의 시인인 헤시오도스의 책 「신통기」에서 처음 등장했음을 발견했다. 그의 시는 신들의 기원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즉 창조신화이다. 여기에서의 카오스는 무질서를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카오스는 모든 창조의 근원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으로 우주의 원리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개념이었다. 그리고 카오스는 또 다른 두 개의 아주 기본적인 개념, 즉 가이아(창조된 우주)와 에로스(창조의 충동)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 종교(오르피즘)의 만신전(萬神殿) 안에 있는 남신들과 여신들이 창조되기 이전에 이미 삼위일체라는 개념이 있었다는 말이다.” (「카오스 가이아 에로스」)
그러나 후대에 카오스는 일반적으로 하늘과 땅의 구별이 없고 혼돈과 무질서 그 자체인 최초의 우주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변질되었다. 즉 카오스는 우주의 모태이긴 하지만 그저 형태도 없고 질서도 없는 하나의 혼란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무질서하기만한 개념의 카오스가 새롭게 조명을 받고 원래의 카오스 개념에 보다 가깝게 재탄생하게 된 것은 카오스이론이라는 새로운 과학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카오스이론은 무질서하고 불규칙한 것처럼 보이는 자연현상을 그대로 두지 않고 그 속에서 새로운 질서와 규칙성을 찾아내려고 애를 쓴다. 그러므로 카오스에서 코스모스(우주)가 탄생한 것은, 다시 말하면 혼돈에서 질서가 나타난 것은 일견 무질서해보이지만 혼돈 그 자체에 이미 질서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혼돈과 혼돈에 내재된 질서는 잠재적인 상태에 있으므로 겉으로 표출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혼돈을 ‘도(道)’라고 불렀는데, 이 ‘도’라는 용어에서 우리는 어떤 절대적인 무질서함만을 연상하지는 않는다.
“무질서하지만 그래도 온전한 어떤 것이 있었다. 이것은 하늘과 땅이 창조되기 이전에 있었다. 소리도 없고 형태도 없는 이것은 혼자이며 변하지 않는다. 이것은 만물에 퍼져 있으나 위험하지 않다. 이것은 그때 세계의 어머니로 생각될 수 있다. 나는 그것의 이름을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도(道)라고 부를 수 있다.” (「도덕경」)
무극(아인 소프)의 도, 그것은 현상계를 초월하여 있는, 현현되지 않은 카오스의 숨겨진 질서가 있음을 암시한다.
신의 뒷모습존 브리그스와 데이비드 피트는 「혼돈의 과학」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바빌로니아의 창조 설화에서는, 혼돈은 티아마트라 불렸다. 그녀와 다른 작은 신들은 혼돈의 갖가지 얼굴을 형상화하였다. 예를 들자면, 이들 작은 신들 중에는 무형의 가없는 것을 상징한 것이 있고, 혼돈 속에 가끔 나타나는, 파악하거나 인식할 수 없는 성질을 나타내는 ‘숨어 있는 분’이라고 불리는 신이 있다. 무형의 혼돈이 실제 수없이 많은 다른 얼굴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어떤 내재적인 질서가 혼돈 속에 있다는 바빌로니아인들의 직관이 현대 과학에 의해 발견되기까지 수천 년을 기다려 왔다.” (「혼돈의 과학」)
<아인 소프의 18개 베일>
바빌로니아인들의 직관은 카발라에 보다 구체적인 양상으로 드러나 있다. 바로 아인 소프의 베일들이 그것인데, 이 다소 생경 맞은 상징을 통해서 우리는 혼돈 속에 내재한 잠재적인 질서의 자취를 보게 된다. 아인(무), 아인 소프(무한), 아인 소프 아우르(무한한 빛), 이 3단계를 무의 3가지 베일이라 부르는데, 맥그리거 매터즈는 「베일 벗은 카발라」에서 생명나무를 탄생시킨 무한자의 상태를 옆의 그림과 같이 묘사하고 이 ‘숨어있는 분’의 얼굴이 세 개의 베일로 가려져 있다고 했다.
그림을 보면 세 개의 베일이 각각 3, 6, 9개의 꽃잎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꽃잎들은 아인(AIN), 아인 소프(AIN SOP), 아인 소프 아우르(AIN SOP AVR)의 글자수와 일치하는데, 3+6+9=18개의 2차 베일들을 통틀어 ‘음의 18베일’이라 부른다. 이 18개의 베일은 실은 생명나무의 숨겨진 원형이다.
“아인은 음적으로 존재하는 자, 무, 공 등을 의미하며 이 단어를 구성하고 있는 세 문자는 처음의 세 세피로트의 원형(베일)을 이룬다. 음존재의 두 번째 단계는 아인 소프이다. 아인 소프는 무한을 뜻하며 이 단어를 구성하고 있는 여섯 개의 문자는 처음부터 여섯 번째까지의 세피로트의 원형(베일)을 이룬다. 음존재의 세 번째 단계는 아인 소프 아우르이다. 아인 소프 아우르는 무한광을 뜻하며 이 단어를 구성하고 있는 아홉 개의 문자는 처음부터 아홉 개까지의 세피로트의 원형을 이룬다.” (「베일 벗은 천부경」)
한편 9까지 전개된 이 과정은 더 이상 밖으로 확장되지 않고 다시 1로 되돌아오게 된다. 왜냐하면 10은 다름 아닌 음(무 또는 공)으로부터 새롭게 생겨난 1이 되기 때문이다. 아라비아 숫자에서 10은 1과 0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0은 바로 음(또는 무)을 상징하며 1은 단일자인 1(생명나무의 첫 번째 세피로트인 케텔)을 상징한다. 달리 말해서 일정한 중심으로부터 발생되지도 않았고 어떠한 중심도 갖고 있지 않은 음광의 무한한 대양으로부터 하나의 중심이 응고(집중, 결정화)되어 탄생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현현된 최초의 세피라, 케텔인 것이다. 따라서 상징적으로 말한다면 음존재의 3단계는 숫자 0에서 1이 탄생하는 과정인 셈이다. 즉 케텔은 음존재의 말쿠트(생명나무의 마지막 10번째 세피라)에 해당되는 것이다. “케텔은 말쿠트 안에 있고 말쿠트는 케텔 안에 있다.”
그러므로 이 비현현의 잠재적 존재 상태는 케텔로부터 시작하여 말쿠트로 끝나는 생명나무의 청사진 상태라 할 수 있다. 생명나무가 물질우주를 포함한 현현계의 설계도라면, 그 설계도에 대한 원형이 상상을 초월하는 무 또는 무한의 영역 속에 음의 18베일 상태로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질서정연한 코스모스의 우주알을 낳은 카오스의 숨어있는 질서이고, 생명나무의 씨앗이며, DNA에 새겨져 있는 유전정보의 숨겨진 출처이다. 올바른 비유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창조주는 생명나무의 설계도에 따라 우주를 건설했을 뿐, 그 설계도의 진정한 설계자는 우주와 현현계의 장막 너머에 있는 얼굴 없는 무한의 신인 것이다.
세피로트 나무의 숨겨진 원형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다시 한 번 단계별로 나누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비현현의 존재의 첫 번째 베일은 아인이라고 하는 비현현성이다. 이것은 세 개의 문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첫 3개의 세피로트와 숫자를 상징한다. 두 번째 베일은 아인 소프라고 하는 무한이다. 이것은 여섯 문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첫 6개의 세피로트와 숫자를 나타낸다.
세 번째 베일은 아인 소프 아우르라고 하는 무한한 빛이다. 이것은 9개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첫 아홉 개의 세피로트를 상징하지만 숨겨진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카발라의 설명을 보면, 신은 자기 자신을 보기 위해 그의 모습을 외부에 투영시켰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외부라는 것은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다. 무 또는 공으로서의 신은 물질우주와 떨어진 별개의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그 자체로서 완벽한 하나의 전체이고 따라서 물질우주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물질우주는 단지 차원과 공간의 상전이(相轉移)가 일어난 결과 존재의 다른 상태에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세피로트의 과정은 차원과 공간의 상전이와도 관련이 있다. (「오컬트 다이제스트」 제5호 참조)
생명나무와 우주는 신의 감추어진 속성이 표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생명나무가 아인 소프에서 발출된 빛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생명나무를 구성하는 세피로트와 길들은 아인 소프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즉 찰스 폰스가 이야기했듯이, 세피로트 체계는 항상 근원과 분리되어진 하나의 별도 단위로 그려진다. 그러나 찰스 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독자들이 아인 소프의 방출물들인 세피로트가 사실상 아인 소프 자신 안에 포함되어지는 단계 또는 작용이라는 가능성도 고려하기 바란다.” 또 그는 이어서, “아인 소프와 그것의 발출들인 세피로트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세피로트는 신의 내적인 영혼의 기관들이다. 일단 세피로트가 생겨나면, 그것은 신과 분리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의 말대로, 생명나무는 혼돈의 신이 창조의 거울을 통해 들여다 본 자신의 또 다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무(아인)에서 케텔에 이르는 10수의 과정이 생명나무 10개 세피로트의 발출이 되고, 이것은 또 피라고라스학파의 우주도형 테트락티스 10개 점들로 화하였으며, 초끈이론이라고 불리는 현대과학의 유력한 양자중력이론이 지닌 시공간의 10개 차원과, 신지학에서 밝히는 궁극원자 아누(원자를 구성하는 최소의 단위이며, 초끈이론의 초끈에 해당될 것으로 추정됨)의 10개 나선으로 물질우주에 현현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우주는 아인 소프의 형상 없는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신의 그림자이고, 우리는 이들 그림자 속에서 신의 이미지를 본다.
모든 것의 근원이렇게 여러 가지 사물이나 자연현상 속에서 유사한 속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상응의 법칙이라고 한다. 상응의 법칙은 카발라를 비롯한 거의 모든 신비주의 전통의 기본 명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상응의 법칙 이면에는 보다 근본적인 원리가 작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창조주와 피조물이 별개가 아닌 하나이며, 피조물은 단순히 창조주의 반영일 뿐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잠시 초끈이론의 한 성질을 원용해보자. 놀랍게도 초끈이론에서는 플랑크길이의 내부와 외부가 동일하다고 한다. 이는 어떤 물리과정이 플랑크길이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인지, 그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다음과 같이 비유해서 해석하는 것은 좀 섣부른 비약임에 틀림없지만, 이는 의식의 내부와 외부가 같으며, 의식의 내부에서 겪는 일을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거대한 공간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이 우주의 모든 일은, 실은 소립자보다도 더 작은 초물리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어떤 내부적 현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가정은 “모든 것은 내부에 있다”는 또 다른 카발라의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근원에서 하나인 창조주와 피조물은 서로 닮았다기보다는, 반영 혹은 외부적 표현이라고 보아야 마땅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카오스의 신, 아인 소프야말로 모든 것의 근원이다. 창조주조차도 이들의 대리인에 지나지 않는다. 이른바 만물의 수장(首將)인 로고스, 또는 케텔은 영원히 드러나지 않는 아인 소프 즉 카오스의 드러난 옆얼굴이다. 그리고 생명나무는 바로 이 무의 바다에 그 뿌리를 깊숙이 박고, 그 무한한 생명력과 창조의 숨결을 퍼 올려 화려한 우주의 꽃을 피운다.
“더 나아가 아인 소프는 창조에 내재한 의미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우리의 과학자들이 우주의 기원을 밝히려는 노력을 통해 발견하고자 하는 무한의 의미인 것이다. 아인 소프야말로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이다.” (「카발라」)
참고문헌「나무의 신화」 (자크 브로스, 주향은 옮김, 이학사, 1989/2000)
「베일 벗은 천부경」 (조하선, 물병자리, 1998)
「카발라」 (찰스 폰스, 조하선 옮김, 물병자리, 1997)
「세계신화사전」 (아서 코트렐, 까치, 1986/1996)
「세계문화상징사전」 (진 쿠퍼, 이윤기 옮김, 까치, 1978/1994)
「오컬트 다이제스트」 제5호 (시타출판사, 1998)
「카오스 가이아 에로스」 (랠프 에이브러햄, 김중순 옮김, 두산동아, 1994/1997)
「혼돈의 과학」 (존 브리그스/데이비드 피트, 김광태/조혁 옮김, 범양사출판부, 1989/1990)
「모든 세기의 신비」 (The Secret Teachings of All Ages, Manly P. Hall, The Philosophical Research Society, Inc. 1989)
「베일 벗은 카발라」 (The Kabbalah Unveiled, S. L. MacGregor Mathers, Weiser, 1970/1993)
「秘經」 (The Secret Doctrine, H. P. Blavatsky, Theosophical Publishing House, 7th Adyar Ed., 1979, 1st Reprint: 1987)
<생명의 나무 - 마그렛 헤이싱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