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파리한 눈빛을 한 괴물. 사람의 마음을 먹이로 삼되 먹기 전에 마냥 조롱하는 그런 놈.
오셀로에서 이야고가 하는 말
***이글은 '뇌에 관해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란 책에 있는 내용이며 글쓴이 김종성 박사님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아산병원 신경과 과장으로 계십니다.
질투는 인간의 특징이지만 질투심의 흔적은 새나 원숭이에서도 간혹 볼수 있다. 자신의 암컷이 다른 수컷과 교미하는 것을 보면
수컷은 다른 수컷을 열심히 쫒아낸후 매우 화났다는 표정으로 얼른 자신이 교미하는 것을 볼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행위는 우리 인간의 심각한 질투와는 역시 차이가 있다.
우리의 질투는 이들보다 직접적이지 않으며 훨씬 복잡한 감정이다. 왜 우리 인간은 이렇게 질투심이많은 걸까?
내 생각에는 우리의 질투심은 자신의 유전자를 보전하고 퍼뜨리려는 본증적 이기심에서출발하는 것 같다.
그런데 여자와 남자의 질투는 그 유래가 조금 다르다.
우선 여자의 질투를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포유류는 일부다처제이다. 일부일처제에 익숙해진 우리의생각과는
달리 일부다처제에서는 질투가 생각보다 덜하며 오히려 이것을 하나의 규칙으로 받아들인다.
예컨데 사자 사회를 보면 한 무리 안의 여러 암컷들은 모두 자매, 친척이므로 유전자적 공유를 갖는다.
그리고 하렘(이슬람 사회에서 여자들을 가두어 두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선 사자나 물개처럼 일부다처제를 갖는
동물 세계에서 함께 살아가는 한 집단의 단위를 말한다) 안의 수컷은 다른 무리의 암컷을 넘보거나 하지 않는다.
따라서 암컷은 특별히 질투할 필요가 없다.
인간의 경우 진화 과정에서 여성은 길고 힘든 임신과 육아를 떠 맡기 때문에 자신과 아이를 도와 주고남으로부터
보호해 줄 헌신적인 남자를 필요로 했다. 물론 여성은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과 아이에게만 신경을 쓰기 바란다.
그것이 자신과 자신의 아이의 유전자에 이롭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남성이 자기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게 하기 위해
여성이 발달시킨 특별한 전략 중 하나는 배란 은폐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앞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여성은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원시 시대의 남자들은 사냥하러 돌아다녔고 지금 남자들은 회사 일로 일찍 나가 늦은 밤에나 돌아온다.
그들은 그 동안 여러 젊은 여자들의 유혹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성은 강렬한 질투심으로
자기 자신을 무장하기 시작했다. 즉 자신과 자식들에게 남편을 꽉 붙잡아 두려는 의도로 발달한 여성의 무기,
이것이 바로 여자의 질투이다. 물론 질투심이 강한 여성 쪽이 더 쉽게 남성을 붙잡아 두어 자신과 아이의 유전자 증식에
성공했기 때문에 질투심 유전자는 여성의 유전자 풀 속에서 증가하였다.
그렇다면 남자의 질투는 어떤가? 사실은 남자의 질투도 여자 못지않게 대단하다. 가정 폭력, 그리고 아내를 살해하는
원인의 대부분은 남성의 질투에서 비롯한다.
남을 살해할 만큼이나 정도가 심한 남자의 질투, 이것은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남자의 질투의 근원은 여자와는 달리 여자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아이임을 확신할수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렇게 아내를 믿지 못하는 것은 남자가 바보라서 그런게 아니라 충분히 그럴만한 근거가 있다.
외국의 통계이긴 하지만 혈액형, 유전자 감식 등으로 조사해 보면 병원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5~30퍼센트는
법적인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라고 밝혀졌다.
그러니 남편으로서는 호시탐탐 아내를 감시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에너지를 남의 유전자를 위해 투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 역시 강력한 질투로 자신을 무장하고 있는 것이다.
세익스피어의 비극<오셀로>의 주인공은 질투심에 빠진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아, 평온한마음과는 영원한 작별이구나.
만족할 줄 아는 마음도 안녕." 정숙한 아내 데스데모나의 정절을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오셀로가 내뱉는 말이다.
오셀로는 간사한 이야고의 간계에 빠져 이렇게 되었지만 확실한 이유가 없는 지나치게 심한 질투,
특히 망상에 가까운 질투는 일종의 정신병으로 봐야 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뇌 손상이 생긴 뒤부터 특별히 심한 질투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보고되기도 한다.
이를"오셀로 증후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1999년 로드 아일랜드 대학의 웨스트레이크Westlake 교수는
바로 그런 환자에 대해 쓰고 있다.
환자는 스무 살쯤 된 여자인데 갑자기 왼쪽 팔과 다리에 마비가 왔다. 이러한 증세는 오른쪽 전두엽및 두정엽에 발생한
뇌졸증 때문이었다.
그녀의 증세는 점차 좋아졌으나 퇴원하면서 남자 친구에 대한 병적인 질투심이 점점 심해졌다.
그녀의 남자 친구가 그녀의 친구 혹은 이웃에 사는 여자들과 성 관계를 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고 이런 믿음은 그가 아무리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도 풀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남자 친구와 함께 영화도 보러 가지 않았는데 이유는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 에게 남자 친구가 관심을
가질것 같아서였다. 이런 정도니 당연히 남자 친구와의 관계가 유지될 수가 없었다.
여자는 자살 미수로 입원까지 했지만 다행히 생명은 건졌고, 세로토닌 계열 항우울제 복용으로 치료되었다.
그러나 남자 친구와는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한다.
이여자 환자는 오른쪽 전두엽에 뇌졸증이 있었다. 웨스트레이크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오른쪽 뇌는 정상적으로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며 조금이라도 그 느낌이 이상하면 이를 교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여자 환자의 경우는 뇌의 손상에 따른 상황 판단 오류에다가 자신의 성격에 기인한 지나친 질투심이 더해져 결국
자살 미수에 이르는 심한 질투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뇌졸증 후 이처럼 심한 질투심이 생기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리고 질투심을 일으킨 환자에서 뇌에 발생한 뇌졸증의
위치는 보고자마다 많이 다르다.
예컨데 오른쪽시상, 왼쪽 전두엽, 그리고 오른쪽 소뇌에 뇌졸증이 생긴후 심한 질투심이 생긴 증레들이 각각 보고 되고 있다.
따라서 과연 질투심을 느끼게 하는 뇌의 부분이 따로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 많다.
나는 후두엽에 뇌졸증이 생긴 후 아내의 정절을 몹시 의심하고 집 밖에 낙지도 못하게 하는 남자 환자를 몇 명 본 적 있다.
이환자들은 모두 심각한 시야 장애(후두엽 손상의 증상으로 세상의 왼쪽 혹은 오른쪽 반이 안 보인다)를 가지고 있다.
내 생각에는 이처럼 세상이 반쪽밖에 안 보이는 상태에서 이들이 세상 만사를 의심하게 된 것 같다.
마치 세상의 반쪽을 누군가가 일부러 가려서 자신이 꼭 봐야 할 것을 못 보게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나는 이런 환자에서 뇌졸증이 직접 질투심을
일으켰다기보다는 원래 망상적 질투심을 가질수 있는 정신적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 뇌졸증으로 인한 신체적 결손이 생기면서
심한 질투심이 유발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질투의 화신 오셀로는 결국 자살하고 만다. 그는 씩씩한 장군이었지만 이야고의 말만 믿고 감정적으로 금방 격분해 버렸던 것이다.
만일 그에게 질투심을 제어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전두엽이 발달해 있었더라면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비유하자면 오셀로 증후군을 겪은
환자의 경우 뇌졸증은 그 자체가 질투심을 일으켰다기 보다는 이야고의 간교한 말 정도의 효과를 낸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