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하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자(롬12:7-21)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17-18절)
본문은 성도가 모든 사람과 화목하기를 힘쓰라는 당부입니다. 화목한 사람은 상대방과의 대화나 인간관계에서 온유하여 다툼이 없으며,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하는 자세를 갖춘 좋은 성품의 사람입니다. 이러한 성도가 되려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본문을 통하여 은혜받고자 합니다.
첫째, 모든 사람과 화목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18절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각자의 역할에 대하여 성실하며, 상대방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하며, 존재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상대에게주는 인상이 불성실하며, 신뢰할 수 없거나,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게 느끼도록 한다면 인간관계에서 실패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성도가 세상에서의 역할에 대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 대하여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들에게 유익을 주고 즐거움을 선사하며 덕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 그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다만 완전을 향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 신앙인의 올바를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형제와 화목하는 것을 크게 여기시었습니다. 주님은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바울은 모든 사람과 화목하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14절)고 하셨습니다. 또한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평화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성도의 손은 부드럽고 따뜻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호감을 갖고 접근하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풀 때에 화합을 이루어 묵은 감정을 털어내어 진정한 화목을 이룰 수 있습니다.
둘째, 원수를 갚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19절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인간에게는 자신이 손해를 입은 만큼 보복하려는 심리가 있습니다. 원수를 반드시 갚겠다는 보복심리는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서 뿌리 내리고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준 만큼 돌려 받으려는 보상심리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원수를 갚다’는 ‘정의를 구하다’ 또는 ‘공의를 행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성경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 지니라”(출21:24-25)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것이 정의라고 생각했습 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것을 뛰어넘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심지어 그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에 맡기라”고 하십니다. 신명기 32장35절을 인용하여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동해동상원리에 따라 원수를 갚게 되면, 정확하게 동일한 보복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추가적인 해를 끼치게 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억울하다고 재차 보복을 가하게 됩니다. 이는 끝없는 보복의 반복이 이루어지게 되고, 심지어 대를 이어가며 보복을 반복함으로 서로가 망하게 됩니다.
이렇게되면 사회는 불안과 공포의 분위기가 쌓이게 되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교회에는 눈멀고 팔다리 잘린 장애인들의 집합소가 되고, 지하실은 공동묘지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한 상황을 아시고 이웃간에 해를 당한다 할지라도 네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고 명령하시면서 “내가 갚으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인간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 손에 한 대 맞으면 사망아니면 졸도 됩니다. 그런 힘 있는 손으로 원수를 보복하시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보며 통쾌하게 여기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눅20:18)는 말씀 처럼 힘있는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겔33:11)는 말씀을 통하여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천년을 하루 같이 기다리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십니다.
내 손에 피를 뭍히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부드럽고 따뜻한 손에 맡기면 원수였던 그 사람이 언젠가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와 사과하고 화목을 이루도록 하나님께서 역사 하십니디.
셋째,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실천해야 합니다.
17절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주님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악에게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셨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히려 선한 일을 도모하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주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마5:3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성도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도는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여기서 ‘도모하다’는 ‘미리 생각하다’라는 뜻입니다. 좋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나쁘게 하는 사람에게도 좋게 응대할 준비를 미리 해두라는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수 갚을 준비를 많이 합니다. 기회만 있으면 망신을 주려고 작심을 합니다. 적당한 기회에 망신을 주어 상대방이 창피를 당하게 되면 통쾌하게 여기면서 원수를 갚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마음이 황량한 벌판같이 황폐하게 되는 것은 느끼질 못합니다. 오히려 선한 일을 도모해야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본능은 악을 악으로 갚으려하지만,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악을 선으로 갚는 훈련을 계속해야 합니다. 이러한 자세로 생활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참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기쁘고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하면서 활기찬 생활을 하게 됩니다.
넷째, 선대한 성도에게 하나님이 보상해 주십니다,
20절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주님의 명령에는 보상이 따릅니다. 본문에 ‘도모하다’는 선한 일을 도모하면 자신에게 좋은 결과가 돌아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원수가 주리거나 목마를 때에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외면하거나 고소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숯불을 머리에 쌓는 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원수에게 회개하고 악을 버리는 기회를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제단의 숯불은 죄악을 제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원수에게 선대함으로 스스로 부끄럽게 만들고, 이를 통해 원수가 회개를 하게 되면 결국은 형제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머리에 숯불을 쌓는 것은 이차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회개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제단의 불로 심판하십니다.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계8:5)는 말씀처럼 회개하지 아니한 악인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성도가 당한 억울한 일은 하나님이 친히 원수를 갚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서서 원수 갚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성도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십니다.
악인으로 인해 피해를 당하여 가슴 아파하고, 힘들어 할 지라라도, 용서하고 인내하는 성도에게 하나님은 물질로 보상하시고, 건강으로 보상하시며, 영혼에 참된 평화를 주셔서 즐겁고 행복한 삶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화목하기를 힘쓰고 이웃에게 선을 베풀며 살아가는 당신은 우리교회의 자랑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입니다.
예수사랑선교회 임 웅 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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