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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현스님 걸망 속으로 원문보기 글쓴이: 광현스님
안녕하십니까?
금년도 벌써 시월이 시작되는 1일입니다.
없이 사는 사람에게는 차라리 여름 살기가 더 낫다는데 이제 연료비를 걱정하게 되는 계절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에서는 빈부 격차를 해소하고 서민들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모두에게 열린 정치를 하다고 열린 우리당이라고 하더니 경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서민들 살기는 각박해져 오고 있으니 이를 어쩌나 싶기만 합니다.
그런데, 중생들의 사는 세계는 예나 지금이나, 부처님 살아계시던 재세시나, 예수님 당시에도 중생들의 삶은 생노병사와 희노애락 우비고뇌로 뒤범벅된 천층만층의 다양한 삶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전, 싯달타 태자였을 때를 우리가 유추해본다면 당신이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는 출산으로 인해 세상을 하직하셨고, 비록 이모일지라도 의붓어미의 손에서 자라나는 과정에서 어찌 사춘기의 방황과 고뇌가 없었겠습니까?
이로 인해 싯달타 태자는 산다는 것, 존재한다는 모든 것들에 대한 회의와 불확실성들로부터 정체성을 찾기 위해 온갖 수행을 다해보고 온갖 스승을 다 찾아다녔지만, 올바른 가르침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고오타마 수행자가 시행착오에 가까웠을 지라도 그동안의 절치부심의 수행과 간절한 원력으로 일체개고 아당안착이라는 깨달음의 도를 성취하시여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근본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생노병사의 근본을 꿰뚫고 이를 진리의 말씀으로 남기시어 고구정녕 구구절절하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참다운 삶을 위한 지혜의 메세지를 전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끼리도 스스로 과거 생에 지은 바 업이 다른지라 생각도 다르고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도 다릅니다.
이 도리를 어찌 받아들이실 겁니까?
잘난 사람도, 잘나지 못한 사람도 눈 귀 코 입은 다 달렸고, 손과 발은 멀쩡하건만, 한번 뿐인 인생들을 살아가는 데는 왜 그리도 여러 가지로 삶을 살아가는 가에 대해서도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헌데, 이렇게 살아가던 이들도 마지막 가는 길엔 “공수래 공수거”라 죽은 다음에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몸뚱이를 찾아주는 이가 있든 없던, 영결식을 거창하게 하든 말든 결국에는 북쪽에 있다는 망산을 가는 것은 차별이 없는데, 그 몸뚱이의 소식은 마치 휘발유 가득 찬 자동차도 운전수 내려버리고 나니 주차위반으로 한강변 둔치로 끌려가 처박히듯, 이 몸 또한 그리도 무상하건만, 차에서 내린 기사는 자기 차가 어디 처박힌 지도 모르고 동서남북 헤매다가 통장에 예치금이 많으면 다음 생에 더 좋은 차를 탈 수도 있을 것이요, 통장에 잔고가 없이 마냥 쓰기만 했다면 자가용은커녕, 버스타기도 힘들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이 이 꼴은 아닌지를 자문자답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부모형제를 원망하고 환경을 한탄하기보다는 싯달타 태자가 그러한 자신만의 고뇌 속에서 껍질을 깨버리듯 자신의 삶에 대한 치열한 도전이 없이 주변 탓만을 한다면 우리에게는 또 다른 다음생마저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화엄경을 보게 되면 아주 재미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심여공화사 능화제세간이라, 오온실종생이니 무법이부조라”(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이라, 五蘊實從生이니 無法而不造라) 이와 같습니다.
“이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세상의 온갖 것들을 다 그려낸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실로 이 마음 따라 생겨나니 그 무엇도 만들지 못할 것이 없다.” 하는 말입니다.
이 지구촌에서 누리고 있는 첨단문명의 이기가 만들어진 근본 에너지는 발명이라 부르는 중생들의 마음이 빗어낸 작품들인 것입니다.
“심생즉 종종법생이요. 심멸즉 종종법멸이라”
(心生則 種種法生이요. 心滅則 種種法滅이라)
이 한마음이 동하여 일어나니 갖가지 법이 생겨남이요.
이 한마음이 동하여 스러지니 갖가지 법이 멸하드라 하는 뜻인데, 이를 풀어서 의역을 하자면,
“내 주변의 가족과 인관관계, 그 모든 삶의 조건들을 내 마음에서 좋게만 생각하고 이 보다 못했을 때를 생각하며 지금 만큼에도 만족할 줄 안다면 눈에 보이고 내 몸에 스치는 모든 것들에게 좋은 감정만 일어날 것이나,
지금 내 마음이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해 나는 왜 저놈 보다 못한가라는 어리석은 이기심으로 꽉 차있다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불평과 불만으로 내 곁을 무언가 조금만 스치기라도 할 량이면, 일어나는 것은 시비와 성냄 뿐 이다” 는 뜻입니다.
자작자수라 제가 짓고 제가 받는 것이니, 지금의 나의 삶이 어떨지는 저는 매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여러분들이 기도 때마다 독송하시는 “지장본원경약찬게”를 한번 들여다보세요.
이 모든 게 다 인과의 도리인지라, 지금 나의 삶이 여기의 어디에 해당되는지를 살펴본다면 내가 과거 생에 생각과 말과 행동이라는 신구의 삼업으로 어떤 업의 씨앗을 뿌려 박복의 농사를 지었는가를 아실 것입니다.
이제 지장보살 본원경의 약찬게를 마음의 눈으로 보시고 각자 자신의 현실의 업이 어디에 해당되는가를 살펴 보시길 바랍니다.
“지장보살본원경 서구중생약찬게”
사랑으로 선을 쌓고 중생구제 서원하사 어두운길 밝히시고 죄의 뿌리 아주 끊어 부처님이 아니 계신 악도 중에 대신하여 중생교화 하옵시는 지장보살 마하살님!
이제오늘 저희들이 조촐한 맘 기울여서 향 사르고 불 밝히고 공양물을 준비하여 보살님께 올리옵고 오체투지 절하오니 저희들의 간절한 맘 굽어 살펴 주옵소서.
지장보살 본원 경을 열세품에 갈무리니 도리천궁 신통 품이 첫머리를 장엄하고 둘째로는 분신집회 셋째품은 관연이며 지옥명호 네 번째요 업감품은 다섯째라,
여섯째는 여래찬탄 일곱째는 이익존망 염라왕궁 찬탄품은 여덟 번째 품이로다.
칭불명호 아홉째요 공덕연품 열 번째며 열한 번째 지신호법 열두 번째 견문이익 촉루인천 열셋째로 십삼 품이 완연해라.
어머니를 위하시어 도리천서 설법할 때 동서남북 사유상하 한량없는 모든 세계 너무나도 많이 모여 설명할 수 없는 청중 광명구름 놓으시고 미묘 음성 내시오니 하늘과용 귀신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사왕천과 도리천과 야마천을 비롯하여 도솔천과 화락천과 자재천중 모여들며 범중천과 범보천과 대범천이 함께하고 소광천과 무량광천 광음천이 손을 잡고 소정천과 무량정천 변정천이 들어오고 복생천과 복애천과 광과천이 자리 앉네.
엄식천과 무량엄식 엄식과실 천중들과 무상천과 무번천과 무열천이 미소 짓고 선견천과 선현천과 색구경천 어깨하고 마혜수라 비상천과 비비상처 함께 했네.
바다신과 강물의신 하천신과 나무신과 산신지신 곡식신과 냇물신과 수렁신과 하늘허공 낮과 밤신 음식신과 초목신이 서로서로 손을 잡고 설법도량 모여들고 악한 눈에 피를 먹고 정기 먹는 귀신들과 자심귀왕 복리귀왕 애경귀왕 갖가지 신 이들 모든 청중들이 지장보살 분신이라 백천문수 대보살도 헤아릴 수 바이없네.
천만억년 헤아려도 알 수없는 서원이여 사자분신 부처님과 각화자재 여래 시에 어머니의 온갖 고를 구원하는 딸이 되고 일체성취 여래 시와 청정연화 부처님 때 국왕되고 광목되어 죄고중생 구제하되 지옥만일 아니 비면 성불하지 않으리라.
널리 법계 모든 중생 제도하는 인연으로 부처님의 크신 은혜 갚으리라 생각하고 오무간옥 아비지옥 자진해서 들어가니 불화살이 날아오고 산과창이 좁혀들고 무쇠수레 무쇠평상 무쇠 옷과 칼날이며 무쇠 말에 멍에 메워 구리 밭을 갈게하고 불 던지고 목을 꺾고 다리 태워 씹어먹고 달군철환 철주들을 안 먹는다 부라리고 아비규환 혀를 뽑고 똥오줌을 먹게 하고 불덩어리 코끼리와 미친 불개 소와 말과 불타는 산 타는 돌과 활활타는 독수리가 톱날같은 부리로써 가죽벗겨 쪼아먹고 팔과다리 불에지져 이리저리 난자하다 활활타는 이리에게 던져주어 먹게하네.
팔만사천 지옥문을 한번열고 들어가면 하루 낮과 하룻밤에 일만번을 죽여살려 잠시라도 쉴새없이 티끌겁을 지내가되 벗어났다 싶은 중에 다시 그속 들어가네.
만일 선을 지은이는 경계따라 천당가고 성품의식 흔들리면 악한갈래 떨어지고 살생하면 단명하여 횡사보를 받게되고 사음한자 음란하여 원앙참새 몸을받고 악담하면 권속들이 서로서로 투쟁하고 비방하고 헐뜯는자 혀없거나 언청이고 성질내면 추루하고 독사피부 받아나고 인색하고 탐욕하면 음식기갈 보를받고 사냥하고 방자하면 결국미쳐 가게되고 부모에게 패역하면 천재지변 목숨잃고 산림초목 불태우면갈곳없이 죽어지고 낳은부모 기른부모 악독하게 내버리면 다음 생에 부모되어 오늘앙화 되받으리.
그물던져 생포하면 골육들이 흩어지고 삼보비방 하게되면 눈귀멀고 벙어리고 부처님법 업신여겨 교만하면 악도로세.
비리로써 옳지않게 상주물을 받아쓰고 스님네를 꼬드겨서 파계하게 하는 자는 지옥축생 돌고돌며 그치기만 기다리네.
삶고볶고 불태우고 칼로베고 자르는자 나고죽음 바뀌면서 그과보를 모두받고 재와계율 깨트린자 새와짐승 몸을받아 언젠가는 굶주리고 비천한보 받게되고 아만심에 이간질에 제잘난체 하는이는 혀없거나 백개혀로 변두리에 태어나니 가지가지 인연이며 가지가지 인과설로 짧은순간 본성열어 깨우치게 하느라고 가이없는 모든여래 찬탄하고 계심이라.
유명세계 교주있어 그이름이 지장이요 남섬부주 교화주로 위대하신 보살이라 만월처럼 참한용모 맑은강물 눈동자여 ,
손바닥의 마니구슬 부처과위 보임이라 염라대왕 대전뜰의 업경대에 나타난이 하나하나 증명하여 공덕주가 되옵시는 크신사랑 크신원력 크신성자 지장보살 거룩하신 분이시여.
지옥부처 님이시여.
누가만일 이와같은 지장보살 본원경을 베껴쓰고 읽고외고 널리유포 하는이는 세세생생 인간천상 태어날일 잃지않고 부모자식 서로서로 화합하고 수순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고 부부간에 화목하고 약한자는 건강하고 수명날로 늘어나고 가난한자 복을얻고 눈먼자는 눈을뜨고 이와같이 가이없는 무량공덕 얻게되네.
지장보살 크신성자 뛰어나신 위신력은 항하사겁 설하여도 다하기가 어려워라 보고듣고 우러르고 예경하는 일념간에 인간천상 이익된일 헤아릴수 전혀없네.
하늘과용 귀신들이 서로서로 옹호하고 성인경지 뛰어올라 온갖악업 소멸하며 부처님이 보호하사 깨달음을 증득하고 본원력을 늘리우고 숙명통을 얻으리라.
의식주가 넉넉하고 역병감히 오지않고 수재화재 풍재없고 도적난도 일체없고 남이보면 공경하기 왕과재상 딸과같고 단정해라 그모습은 제왕과도 다름없네.
손바닥위 밝은구슬 너무맑아 싸늘한데 제스스로 색을따라 여러모양 나타내네.
몇번이나 타이르고 몸소분부 하건마는 어두운방 아이들은 노는데만 정신없네.
본래면목 청정하신 마음지닌 지장보살 무궁무진 부처님의 대자비의 존자시여 남방세계 피어오른 무량무수 향기구름 향기비와 꽃구름과 꽃비내려 적셔주고 보배비와 보배구름 셀수없는 보배꽃과 부사의한 길상으로 두루두루 장엄하매 하늘인간 그원인을 부처님께 질문하니 부처님이 말씀하되 지장보살 왔느니라.
삼세간의 부처님이 한가지로 찬탄하고 시방세계 보살들이 모두함께 귀의하니 나도어쩜 지난생에 선근인연 심었는가 지장보살 참된공덕 칭찬하고 찬양하네.
마하반야 바라밀로 마하반야 바라밀로 마하반야 바라밀로 모두회향 하오리다.
이와 같습니다.
뿌리면 거두고 심으며 나는 것은 아무리 하찮다고 여기는 풀 한포기라도 자연의 섭리와 우주의 질서인 것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짓밟게 되는 어린 묘목들은 지극히 보잘것 없어 보일지라도 세월이 갈수록 웅장한 아름드리가 되어 여름되면 길 가던 이들이 그늘에 쉬어가도록 공덕을 짓건만,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며 다들 잘났다고 너스레를 떨던 사람들도 세월이 가면 갈수록 쪼그라 들고 볼 품 없어지는 이 도리를 깨달아 진실로 겸허하게 일상의 발걸음을 헛디디면 안 되실 것입니다.
약찬게에 나오는 지옥의 일상이 별개 아닙니다.
우리가 죽어 다음 생에 누굴 보고 저, 개새끼 하거나 듣거나 하게 되면 결국에는 다음 생에 구업으로 인하여 그 몸을 한번 받을 것이니 이 얼마나 황당한 인과의 도리입니까?
그래서 전생의 빚을 갚고자 후생에 축생의 몸을 받아 후세 중생들의 식탁에 오르기 까지 받는 고초가 바로 지옥고인 것이지 달리 지옥고가 아닙니다.
길가다 엄청 많이 눈에 띄는 무슨 숯불구이다, 양념갈비다 하는 모든 간판 걸린 집들이 사실은 지옥입니다.
불판에 올려지면 화탕지옥이요, 뜨거운 튀김국물에 들어가면 열탕지옥인 게고, 냉동실에 들어가면 한빙지옥이요, 칼로 저미고 다지면 도산지옥이며, 푸줏간에 거꾸로 매달리고 팔 다로 다리 따로 팔려가니 모든 것이 중생들의 현실 속에서 지옥이 연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중생들은 남의 살은 불구덩이에 올려서 맛있게 입맛 다시면서도 타는 고깃점에서 뜨거운 기름 한방울 자기 살점에 닿기라도 할라치면 기겁을 하는 이 우스운 중생들의 놀음이 참 가관인 것입니다.
남에게 빚을 졌으면 갚아야 되는 것이듯, 금생에 내가 남의 살을 먹었으면 나도 다음 생에 그 몸 한번 받아서 먹혀줘야 할 것이니 이를 어쩐답니까?
그러나 즉심시불이라, 심외무법이라, 심불급중생이 시삼무차별이라 했듯이, 이 마음이 바로 부처요. 마음 밖에 다른 법이 없고,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차별이 없다 했습니다.
마음이 부처라면 몸은 법당인 것입니다.
법당이 부실하면 불상이 비바람에 내동댕이쳐지듯, 이 몸이 부실해지면 마음 부처 또한 도를 이루기도 전에 동전의 뒷모습만으로 살다가 앞모습을 보기도 전에 끝없는 윤회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니, 부처님께서도 수행자가 병이 들어 회복하고자 할 때는 육식을 하되 조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직접 죽이지 말고, 죽이는 것을 시키지도 말며, 죽이는 것을 보지도 말며, 수명이 다해서 죽은 축생의 몸만을 약으로 삼되 맛으로 먹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자의는 전혀 없이 타의에 의해 죽어 원하지 않는 공덕을 짓게 되는 축생의 몸을 탐욕과 어리석은 사람이 먹게되면 그 몸과 한 몸이 되어 어리석음의 구렁텅이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요, 수행 잘하는 이가 한 점을 먹으면서도 진실로 원이차 공덕을 발원해주고 먹게 된다면 축생은 한 젓가락의 육신공양으로 선업을 짓고 천상계에 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의 삶이 축생의 몸을 약으로 먹을 정도로 당당한가에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작자수라 제가 짓고 제가 받기에 지금 우리 살아가는 삶이 바로 그 답일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화가와 같다고 말씀드렸듯이 이제 당당한 그림들을 그리시길 삼보 전에 축원드리겠습니다.
모두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