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민일보=이석형 기자] 27일부터 29일까지 제주시 종합경기장 일원에서 '제24회 제주왕벚꽃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사진은 축제 첫 날, 왕벚나무들이 꽃망울을 채 터트리지 않은 모습이다. |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제주시 종합경기장 일원에서 펼쳐지고 있는 ‘제주왕벚꽃축제’가 먹거리 장터로 전락했다는 목소리가 올해도 어김없이 새어나왔다. 내년에는 차라리 ‘먹거리축제’를 개최하라는 식의 비아냥 거리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이번 축제는 공교롭게도 왕벚나무들이 꽃망울을 채 터트리기 전인 지난 27일 축제의 막을 올려야만 했다. 기상청이 예측한 봄꽃 개화시기와 제주4·3희생자추념일 등을 고려해 일정을 조율했지만, 꽃샘추위로 인해 축제의 주인공인 벚꽃이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축제 첫 날, 연인과 함께 온 윤초희(22·여)씨는 “활짝 핀 벚꽃을 기대하고 왔는데 아예 피지도 않았다”며 “축제 일정이 너무 빨랐던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날 윤씨 뿐만아니라 봄을 맞이하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축제장을 찾은 도민과 관광객들 대부분이 아직 피지 않은 벚꽃에 울상을 지어야만 했다.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축제 둘째날, 관람객들이 공원을 거닐고 있다. 북적북적한 먹거리장터에 비하면 확연히 한산한 풍경이다. |
시민들의 볼멘소리에 제주시 관계자는 “하늘이 하는 일이라 난감하다”며 “풍부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해 도민과 관광객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고했던 ‘볼거리’와 ‘즐길거리’는 활짝 핀 벚꽃을 찾는 것만큼이나 힘이 들었다. 인디밴드와 댄스 공연 등이 마련됐지만 사람들은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뿐만아니라 축제의 밤을 알리는 폭죽이 터졌지만 3분 가량에 그쳐 여기저기서 아쉬움이 터져나왔다.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벚꽃사진이 덩그러니 걸려있지만 관람객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고 있다. 10분 동안 지켜본 결과,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 본 사람은 2~3명에 불과했다. 적극적인 홍보 또는 해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
특히 벚꽃을 테마로 한 전시·체험 프로그램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본 무대 앞 쪽에 도내 곳곳에서 피는 벚꽃 사진을 걸어놓긴 했지만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 무대 옆에는 ‘제주소리체험길’이 조성돼 있었지만 너무나 허술해 ‘포토존’이라 부르는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
그나마 벚꽃을 이용한 비누만들기와 도자기 모빌에 그림 그리기(축제캐릭터 상품 만들기) 등이 체험프로그램 몫을 했다. 축제장을 찾은 아이들 대부분은 이곳에서 머물렀다.
▲ [제주도민일보=이석형 기자] 축제 첫 날 밤, 먹거리장터 천막 안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
‘즐길거리’와 ‘볼거리’의 빈 자리는 ‘먹거리’가 대신했다. 각 지역 자생단체들이 직접 준비한 먹거리 장터에서는 제주 향토음식부터 시작해 흑돼지, 해산물, 꼬치구이 등이 관람객들을 유혹했다. 왕벚꽃축제가 ‘문화축제’인지 ‘먹거리축제’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물론 축제에서 먹거리를 빼놓을 수는 없겠지만 주객(主客)이 전도됐다는 지적이다.
제주도민 송국현(22)씨는 “축제에 음식점만 난무한 것 같다”며 “오일장을 장소만 옮겨놓은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자녀들과 함께 축제장을 찾은 이승혜(47)씨 역시 “벚꽃보다는 먹거리 위주가 된 것 같아서 아쉽다”며 “벚꽃을 보러 왔는데 다음주쯤 다시 와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제주도민일보=이석형 기자] |
먹거리 장터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내와 함께 볕을 쬐고 있던 김재호(80)씨는 “작년이나 올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프로그램 중) ‘아, 이거 괜찮다’는 느낌이 오는 게 없다”며 “축제의 기본이 안된 것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조기열(31)씨는 제주왕벚꽃축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꼬집었다. 그는 “왕벚꽃 자생지가 제주인걸로 알고 있는데 이런 정보를 전달하는 게 부족하다”며 “천편일률적인 타 지역의 벚꽃축제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퀴즈 대회 등 이벤트를 만들어 관람객들의 참여도를 이끈다면 정보와 재미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관광홍보 및 행사안내' 천막이 자리잡고 있었다. 책자를 보급하는 유일한 곳이지만, 적극적인 홍보 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
사진을 찍기 위해 축제장을 찾은 김태홍(29)씨는 “벚꽃이 피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행사장에 들어오며 안내 팜플렛조차 나눠주지 않아 어디에 뭐가 있는 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축제장에서 안내 팜플렛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한 ‘관광홍보 및 행사안내’ 천막 한 곳 뿐이었다. 이마저도 적극적인 홍보 노력이 부족해 관람객들이 말을 걸어야만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만약의 사건사고를 대비해 자치경찰이 있는 천막 안에도 약간의 팜플렛이 구비돼 있었다. 그러나 자치경찰 관계자는 “시 측에서 따로 준 것은 아니고 관람객들이 찾아서 우리가 갖다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 [제주도민일보=이석형 기자] |
왕벚꽃축제의 막을 내리고 나면 해마다 프로그램의 부족, 정체성의 부재 등 수많은 지적이 쏟아져나온다. 하지만 해를 넘겨 진행되는 축제는 지난해와 별 반 다를 바 없다. 과연 내년에는 ‘문화’를 입힌 축제를 기대해도 되는걸까.
올해 처음 축제를 찾은 조기열씨는 “이대로라면 굳이 축제를 찾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며 “내년에는 제주대나 광령에서 벚꽃을 구경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제주도민일보=이석형 기자] 축제 첫 날, 왕벚나무들이 꽃망울을 채 터트리지 않은 모습. |
▲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축제 둘째날, 벚꽃이 피지 않아 공원에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드물었다. |
▲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본 무대 뒤, 도로 앞에 설치된 제주소리체험길. 도자기 모빌을 걸어놓은 것 외에 별다른 흥미거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
▲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유일하게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었던 '축제캐릭터 상품만들기' 프로그램. |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도자기 모빌에 그림을 그려넣고 있다. |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벚꽃을 주제로 한 '벚꽃 비누 만들기'. 그나마 왕벚꽃축제 취지에 걸맞는 프로그램이었다. |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제주지역 벚나무 종류를 설명하는 현수막이 육상보조트랙 철벽 펜스에 걸려있는 모습. |
▲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벚꽃도 피지 않은데다 마땅한 체험·전시프로그램이 없으니 관람객들은 먹거리 장터에 몰렸다. |
▲ [제주도민일보=이석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