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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화왕산 가는 길
전 상 열
화왕산은 불타서는 안 되는 것인데.
등산화 끈을 질끈 졸라매고 남도 길에 올랐습니다. 내게는 마누라 곁에 가는 일은 한동안 건너뛰어도 살 수 있지만, 단 한 주라도 산길을 걷지 않으면 발바닥에 가시가 돋친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에게 지나가는 말로 산행 계획을 내비쳤더니, 억새 춤의 물결이 눈에 삼삼하던 참인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고 하면서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는 것이었습니다.
뒤이어 그는 벽에 걸린 달력을 쳐다보더니, 자신이 가이드를 맡고 있는 산악회의 산행 날짜와 겹친다고, 나중에 함께 가자고 하는 바람에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이미 몇몇 사람과 약속이 되어 있다고 둘러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게는 굳이 그러면서까지 길을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그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지요.
산꾼들이란 만나면 주로 산 이야기를 화제로 삼습니다. 마치 장사꾼이 이번 추석 대목에 한몫 잡았다던가, 농사꾼이 운임도 못 뽑을 판이어서 배추밭을 갈아엎었다던가, 도박꾼이 요즈음에 줄창 손속이 좋지 않아 마누라까지 팔아먹게 생겼다던가 하는 말을 주고받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늦깎이로 산을 시작한 나는 산행 경력이 일천할 밖에요. 그러다 보니 벙어리 아닌 벙어리가 되어 남의 입놀림이나 쳐다볼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부족한 산을 보충하려고 시간을 쪼개 나가고 있었습니다. 화왕산도 내게는 그런 산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그 산에서 억새 태우기 행사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광경을 곁에서 관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도 않고 왠지 그 산이 내 마음을 자꾸 당기기도 하는 것이었지요.
나는 김태정 박사의『쉽게 찾는 우리꽃』을 챙겼습니다. 그 꽃책은 봄, 여름, 가을․겨울의 3권으로 되어 있는데, 백팩의 사이드 포켓에 품이 맞아 풀꽃을 익히려는 사람들에게는 여간 요긴하게 쓰이는 게 아닙니다. 꽃철도 아닌 한겨울에 무슨 꽃책이냐구요? 그 동안 익힌 꽃 이름을 겨울의 고개를 넘는 동안에 반납해 버릴까 봐 수시로 뒤적거리려는 것이지요.
백운역에서 성북행 전철을 타고 가다가 신도림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했습니다. 남부고속터미널까지 꼭 한 시간이 걸리더군요. 그곳에서 17,500원을 주고 창녕행 승차권을 한 장 구했습니다. 혼자 여행을 할 때면 늘상 겪는 일인데 나의 옆자리에 어떤 사람이 앉을 것인가 자못 신경이 쓰여집니다.
몇 년 전에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고 고향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하얀 소복을 입고 오열하는 친구의 아내와 넷이나 되는 자녀들을 뒤로 하고 장지에서 무거운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직행 버스가 지나가는 길가의 가로수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습니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내려 숨죽이고 있는 가랑잎처럼 이승의 모든 인연을 단절한 친구를 생각하면서, 나는 한 사람의 허무한 인생에 대해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내가 결혼식 사회를 보아 주었던 딱 한 명의 친구인데, 술독에 빠져 살아가더니 결국 세상을 마감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친구의 무절제했던 음주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한 인생의 여정과 죽음의 그림자를 돌아다보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고향 땅으로 나를 불러 내리게 한 그의 죽음은 나를 화나게 하였습니다. 화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인생의 괴로움을 술의 힘을 빌려서 해결하려고 했던 그의 나약함에 대한 미움 때문일 것입니다.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상념들로 나는 내 옆자리의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환갑쯤 되어 보이는 옆자리의 남자는 자꾸만 내게 말을 걸었습니다. 나의 바닥을 친 기분을 눈치 챘다면 나를 가만둘 만도 한데, 신경이 두꺼운 사람인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썩은 새끼가 끊어지지 않을 만큼의 응대를 하면서 그렇게 인제에서 서울까지 올라왔습니다.
대화를 거절하지 그랬냐구요. 그럴 수가 없는 게 나의 성격인 걸 어떻게 합니까. 뿐만 아니라 나는 타인의 부탁이나 요구에도 약한 편입니다. 빚보증을 섰다가 혼쭐난 적도 여러 번 되는데, 그런 내게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지요.
이번 길에는 내 옆자리에 중년 여자가 앉았습니다. 하루에 차편이 다섯 번뿐이어서 그런지 좌석은 빈자리가 없이 서울을 출발하였습니다. 그 중년 여자는 내게 밀감을 건네 주었습니다.
“드시겠어요?”
아, 그 순간 번쩍 하고 점등되는 스무 해 전의 그녀. 내 먼 기억의 저쪽에서 영혼의 모습처럼 둥둥 걸어 나오는 여자. 아픈 인연의 업과를 쌓았던 그녀의 곡두가 살아났던 것이지요.
나는 그 중년 여자를 흘끔거리면서, 인연의 정체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인연의 굴레를 두려워한 것입니다. 인연의 굴레.
나는 불교도들의 노래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서정주 작사에 김동진 작곡인 그 노래는, 내가 불법을 기웃거리기 위해 찾아가곤 하는 양평의 큰절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도솔천의 정토에 든 듯 안온해지고 인연의 쓰라린 업을 다신 쌓지 않으리라는 스스로의 다짐을 하게 됩니다. 나는 2절이 더 마음에 들지요.
―인연의 쓰고도 아리는 사슬 윤회의 고달픈 머나먼 길을 풀려서 진여의 꽃동산이라 향기여 천지에 넘쳐 나가라 우리는 감로로 공양하나니 우리에게 죽음도 이미 없도다.
이 노래에서의 인연이란 인과 연을 말하는 것이지요. 바꿔 말하면 인연이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과, 그 원인과 협동하여 결과를 만드는 간접적인 힘이 되는 연줄인 것이지요. 그러니까 모든 사물은 이 인연의 사슬에 의해서 생하고 멸한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부모와 자식 사이도 인연이고, 아내와 남편 사이도 인연이고, 형제 자매 사이도 인연이고, 앞집과 옆집 사이도 인연이고, 나라와 백성 사이도 인연이고, 회사와 사원 사이도 인연이고, 나아가 산과 꽃과 별과 나 사이도 인연이고, 구름과 바람과 안개와 나 사이도 인연이고, 생로병사와 나 사이도 인연이라는 것이지요. 원의 중심에 내가 있고,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유형 무형의 것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사슬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상태가 바로 인연이라는 것이지요. 인연으로부터 업이 생겨나고 업으로부터 윤회가 생겨남으로 인연을 소중하게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불교도들의 노래처럼 인연이 풀려 나가기를 기도하는 마음을 초발심처럼 한다면, 도로나 만사 휴의가 되지 않고 불과가 이루어지겠지요. 물론 입술 만으로서가 아니고 마음속의 정진이 뒤따를 때 그리 될 것이라는 말이지요.
도량석. 새벽을 부르는 오전 3시의 목탁 소리. 또르락 딱딱, 또르락 딱딱, 또르락 딱딱. 그 시간까지 사색의 난바다를 헤맬 때가 더러 있는데, 그 목탁 소리는 육신도 깨어나고 불성도 깨어나라는 법어에 다름 아닐 터입니다. 나는 왜 이 심심 산중의 절에 들어와서 밤을 지새는 것인가.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인연이라는 불법이 아니고는 해석할 수 없는 이치가 신기하고 또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중년의 여자가 건네주는 밀감을 받으면서, 스무 해 전의 그녀를 금세 떠올린 것은 그렇게 가능성이 희박한 일은 아니었지요. 비록 시간상의 거리는 있지만, 버스 여행 중에 같은 종류의 과일을 두 번씩이나 여자로부터 건네받는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닐 터이니까요. 그리고 전날밤의 불꿈에서 만난 그녀로 인해 더욱 그녀로의 접속이 용이했겠지요.
그날, 대전으로 가는 차창 밖의 세상에는 황량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거꾸로 세운 우산살처럼 잎새를 털어버린 나무들의 까치집이 스산했습니다. 덩달아 내 마음의 틈새에도 스산한 바람이 드나들었을 것입니다. 겨울산에는 생명의 빛이 뒷걸음질 치고 소멸의 빛이 도래해 있었습니다. 거부할 수도, 중단시킬 수도 없는 윤회의 장면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옆자리에 동행하는 사람과 의외의 관계로 진도가 나갈 때가 있지요. 그 여자와의 만남이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그녀를 만난 것은 지방 점포에서 근무할 때였는데, 서울에 있는 본사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날 나는 연말 마감실적 평가회의에 참석하고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좋게 표현해서 회의이지 그것은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언어의 폭력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젖으며 나는 차창 밖에 흘러가는 풍경에 눈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차내 라디오에서는 수상한 멘트가 흘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갑순이와 갑돌이가 보리밭 속에서 어쩌구 저쩌구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흘깃 둘러보았더니 남자 승객들만 아니라 여자 승객들도 미소를 먹음고 있더군요. 하지만 내 옆자리의 여자는 잔잔한 호수처럼 감정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그 여자에게서는 어딘지 모르게 우수의 안개 세상을 걸어온 듯한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습니다.
고속 버스가 천안 부근을 지나갈 때였습니다. 궁둥이 내외를 하듯 비스듬한 자세로 차창 밖을 내다보던 옆자리의 여자가 내 쪽으로 방향을 고쳐 앉았습니다. 그 여자는 종이 가방을 뒤적거려 이번 길의 중년 여자처럼 내게 밀감을 내밀었습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슬프도록 하얬습니다.
드시겠어요.
나는 엉겹결에 밀감을 받아들고 그 여자를 바라보았습니다. 옆에서 잔기침만 해도 떼구르르 굴러내릴 것만 같은 그렁거리는 사슴 같은 눈동자가 거기 있었습니다. 그때였을 겁니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의 수평이 기우뚱해진 것은. 막연하게나마 어떤 사연으로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부시시 머리를 들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나는 그 예감을 실현시키려는 어떠한 의도적인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나는 옆자리의 여자에게 관심을 보일 만큼 편안한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에서의 일로 한껏 가라앉은 상태였거든요. 다른 때 같았으면 나는, 내가 먼저 무언가를 말밥에 올려 대화를 시도하려고 했을지도 모르지요.
그저 여자와 뚜벅뚜벅 대화를 나눈 것은 예의이고 나의 성격 탓이었습니다. 여자는 신탄진까지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가벼운 목례로 떠나보내면 그뿐일 여자인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그 여자가 행선지를 수정하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대전에 볼일이 생각났어요.”
그날 그 여자는 자신의 말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대전역에 내렸을 때 거리에는 어둠이 덮여 있었습니다. 그녀는 내게 나이트 클럽으로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아까 자신이 말했던 볼일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지요.
그 여자와 나는 요란한 조명 아래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었습니다. 나는 술과 춤의 힘을 빌어 서울에서부터 끈덕지게 따라붙은 우울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이 멎고 테이블로 돌아오면 그녀는 원샷을 외치며 맥주잔을 머리 높이 쳐들곤 하였습니다. 마치 그 모습은 가슴속에 가로 걸친 불순물을 단번에 쓸어 내리려는 행동 같았지요. 그녀는 이따금 이 세상은 모두 불타 버려야 한다고 횡설 수설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녀의 흐트러진 듯한 언행에 그녀와 내가 뜨겁게 불타 오르는 엉뚱한 장면을 상상하며 가슴을 두근거렸습니다
내 마음의 수평을 기우뚱하게 한 예감은 사연을 만들어 서로를 아프게 했고, 나는 오랜 세월 뒤에까지 이처럼 그녀의 곡두를 붙잡고 여행길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고속 버스는 남으로 남으로 달리면서 창녕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습니다.
“달고 시원하군요.”
중년의 여자가 건네 준 밀감에 대한 인사치례를 하자,
“어데 산을 가시는데예?”
등산복 차림을 읽은 여자가 물었습니다.
“화왕산으로 갑니다.”
“창녕예? 억새가 억수로 안 좋심니꺼.”
“그곳이 집인가요?”
“어데예. 서울 안 삼니꺼. 친정이 그 옆 부곡이라예”
중년 여자는 말문을 트기가 무서웠는데 나의 사색을 염두에 두었던 여행길은 밀감을 받는 그 순간 깨진 것이었습니다.
“참말로 멋있게 사시네예. 혼자서 여행도 다니시구. 그런데예. 우얜동 우리집 양반은예. 산토끼 같심니더. 집에서 회사 사이로 뚫린 길만 길인 줄 안다 아임니꺼. 저하고는예, 맞는 게 없는 사람인기라예.”
아마 그날 귓속이 가려운 사람 많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나 같았습니다. 남편에게로 튀었다가 아들에게로. 시누이에게로 튀었다가 시동생에게로. 시어머니도 시숙도 그 누구도 그녀의 말타박으로부터 예외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언행이 되양되양하긴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녀가 자신의 말조심 없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이에게 수다를 너무 떨어 피곤하시겠다고도 하고, 중대가리처럼 배코를 치고 들어온 아들 때문에 쓰러져 뇌수술을 받았다고도 하고, 그 뒤부터 말이 많아졌다고 짐짓 변명도 했습니다.
마치 그녀는 파크톨로스 강기슭에서 비밀을 털어놓던 미다스 왕의 이발사와 같았습니다. 그녀는 그런 식으로라도 의초가 좋지 못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는다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살 수가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녀가 토해 놓는 말들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너무나 잘못 살아온 인생이었습니다. 그녀에 대해 고마워하기는커녕 더 많은 것을 희생하라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이 그녀의 가족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 의해서 육신이 파괴되고 영혼마저 불구가 된 여자였습니다. 그들은 전생의 악업끼리 이승에서 만난 사람들일까. 나는 그들이 내생에서도 다시 인연의 사슬로 엮어지는 것이 아닐까 적잖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나는 중년 여자와 인사를 나누고 창녕 터미널에 내렸습니다. 그녀는 고속 버스의 종착점인 부곡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시계는 밤 9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곧바로 터미널 부근의 식당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한 다음 그곳의 K시인에게 전화를 넣었습니다. 그 고을의 역사가 들어 있는 자료를 부탁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이 고향인데 일 때문에 잠시 귀향해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창녕에 내려와 있다는 사실과 용건만을 간결하게 말하고 먼저 전화를 끊었습니다. 10시 반도 넘은 밤 늦은 시간인데다 조용히 여독을 풀고 싶었던 것이지요.
나는 밖으로 나와서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밤의 창녕 시가지는 생각보다 어둡고 초라하기까지 했습니다. 억새 태우기라는 행사로 유명해진 창녕읍 소재지. 드넓은 비사벌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을 치고는 기대 이하의 썰렁한 밤 분위기였습니다. 소한 ․ 대한뿐만 아니라 입춘까지 지났다고는 해도, 바람은 아직 날카로운 이빨로 이방인을 집적거렸습니다.
이곳이, 그 옛날 대가야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고을이란 말인가. 시가지의 불빛들이 빈약하다거나 거리가 조용하다는 것만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어딘지 분위기가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찬바람이 몰려다니는 위축의 계절인지라 그렇게 느껴진 게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면서 나는 괜히 적막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었지요.
여행지에서의 잠자리만큼은 좀 고급스러워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입니다. 싸구려 여인숙 특유의 역한 냄새에 골머리를 흔들어 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 예외가 아니더군요. 시선을 잡아당기는 밤거리의 불빛은 장급 여관이 아니면 모텔의 간판이었으니까요. 터미널에서 사거리로 나오자 건너편의 모텔이 껌뻑껌뻑 눈짓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승강기의 도움을 받아 객실이 있는 그곳의 오 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카운터엔 밤 화장이 요란한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지요.
“숙박하시게요?”
“…….”
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그녀는 숙박비를 계산해 받고 방 열쇠를 내주면서 호실을 일러주었습니다.
나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배낭과 옷을 벗어 놓고 욕조에 물을 받았습니다. 허물을 벗기듯 따뜻한 물로 하루의 여독을 벗겨 냈습니다. 날아갈 것 같더군요. 그런데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덜렁 누워 있자니 외로움이 밀물처럼 차올랐습니다.
여행은 홀가분하게 떠나는 것이 제 맛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데 나는 좀 다릅니다. 떠들썩하게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서 그런 가 봅니다. 어쩌면 나는, 내 전생이 산중에 묻혀 살았던 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 보곤 합니다. 이따금 나는 아까 말했던 양평의 절에 한 이레쯤 머물 작정으로 가곤 하는데 사흘을 못 넘기고 요사채를 비우곤 하지요. 그 새를 못 참고 아이들과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지거든요. 그런 사람이 산에 미치니까 혼자서도 이렇게 먼 거리 여행을 떠나온 걸 보면, 산이 끌어당기는 흡인력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지요.
그런데 나는 막상 집에 돌아와도 여전히 무덤덤한 남자 그대로입니다. 애정 표현에 서투른 탓이지요. 아내는 이따금 씨 도둑질은 못 한다는 말로 우리 집의 내력을 들먹거립니다. 어머니에게 무뚝뚝했던 돌아가신 아버지를 빗대서 하는 말이지요.
내력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즈음에는 이따금 섬뜩할 때가 있습니다. 과학자들의 손에 의해 인간의 유전자가 판독되어 인류의 광범한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었다더군요. 개인의 유전자 지도를 들여다보면 신체의 미래를 손금을 보듯 꿰뚫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전자 지도란 신의 지문인데 인간이 천기를 누설시킨 것이지요. 일생의 어느 시기에 간장에 이상이 온다든가, 위암에 걸린다든가 하는 신체의 정확한 토정비결이 그 지도 안에 깨알같이 적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내력이란 것이 대물림을 한다는데 심각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고를 비약하면, 신체의 내적인 유전자 지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신체의 외적인 유전자, 곧 인생살이의 유전자 지도도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너는 어느 날 어느 시 어느 장소에서 차에 받쳐 불구가 되고, 너는 백화점이 무너져 죽고, 너는 다리가 주저앉아 죽고, 너는 탁 치니 억 하고 죽고, 너는 불에 타 죽고, 너는 천수를 누린다. 섬뜩한 도를 넘어서 허무감에 빠져 들게 하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나 죄업과는 무관하게 전개되는, 운명이라는 프라이 팬에 의해서 요리되는 것이 인생이라면 말입니다. 사실 참된 속죄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하고 안 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고 모든 것이 신의 뜻에 따라 조종되고 운명 지어 진다는 교리를 내세우는 종교도 있지요.
그렇다고 하면 아내와 나의 인연도 언제 어떻게 단절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 짧다고 생텍쥐페리가 말했지요. 회심곡에는 또 이런 구절이 들어 있더군요. 옛 늙은이 말 들으니 저승길이 멀다드니 대문 밖이 저승이라. 그래서 이번에 돌아가면 아내를 보자마자 진하게 사랑의 표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사람은 오래 살고 보아야 한다고 말하겠지요. 아니면 왜 안 하던 짓을 하느냐고 눈 꼬리를 말아 올릴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침대에 누워 외로움을 느끼다가 나는 나를 바라보는 눈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이었지요. 한쪽 벽이 온통 거울을 뒤집어쓰고 있더군요. 그 거울의 벽에 침대 모서리가 마주 닿아 있었는데 나는 또 하나의 나와 동침을 하는 꼴이었지요. 아마도 그 대형 거울은 손님들에 대한 업주 측의 눈물겨운 배려인지도 모릅니다. 항상 거울처럼 자신을 맑게 비추어 보면서 살아가라는.
그런 분위기에서 그 여자와의 밤이 떠오른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터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곳으로 오면서 그녀의 생각을 죽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날 저녁 그녀와 나는 나이트 클럽을 나와 여관에 들었지요. 그렇게 발전한 단초를 제공한 건 그녀였지요.
“오늘 밤에 안 보내 줄 수도 있어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안 보내 주면 안 갈 수도 있지.”
라고 내가 응수했던 것 같습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내 속마음과는 전혀 동떨어진 대답이 나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미리 그렇게 대답하려고 혀끝에 할 말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요. 그것은 아마 내 마음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원초적인 본능이 무의식 중에 그렇게 조종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애벌레가 우화 등선을 하듯 허물을 벗어 던지고 나의 몸에 부딛쳐 왔는데 나의 몸이 움직이지 않자 혼란에 빠졌을 터이지요. 그때 나는 몽롱한 술기운 속에서도 무모한 행동의 그녀를 어떻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었지요. 서울에서부터 동행한 우울 때문에 함께 어울리며 취하긴 했지만, 나는 그렇게 막갈 수는 없었지요. 그보다 나는 여자로 인해 고전을 치른 적이 있는 경험 때문에 지레 겁을 먹었는지도 모르지요. 나의 진심은 어떻든 겉으로는 의기 상투해서 여관에 든 상태에서의 거부를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추측이 되겠지요. 그날 밤 그녀와 나는 그냥 잤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사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삐죽이 고개를 내미는 욕심을 가까스로 다독거렸습니다. 나는 취중에서도 파에톤과 불의 심판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일탈을 경계했습니다. 그 비극은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지요. 아버지인 아폴론의 태양마차를 몰고 싶은 욕심이 화근이었지요. 아폴론을 못 살게 졸라 허락을 받은 파에톤이 태양마차를 끌자 말들이 정기 항로를 벗어나 마구잡이로 달렸지요. 태양마차의 접근에 따라 별들이 불타고 지구가 화염에 휩싸였지요. 파에톤의 욕심이 저지른 지상에 대한 불의 심판이었지요. 나중에는 제우스의 지팡이에 의해 파에톤 자신까지 불길에 타 버리지요.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들, 그래서 태양마차를 몰지 않았던들, 그런 불의 심판은 일어나지 않았을 터이지요.
그렇게 욕심을 화두로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데 머리맡의 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나는 윗몸을 일으키고 나서 의아한 눈으로 전화기를 바라보았지요. 고립 무원의 섬이나 마찬가지인 남도 땅의 모텔 방에 된장에 풋고추 박히듯 틀어박혀 있는 내게 전화를 걸어올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카운터의 여자가 불량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은 아닐까. 요즈음의 세태는 몇 곱절 더하다지만 예전에도 그런 삼류의 뚜쟁이 여관이 있었거든요. 혼자 투숙한 손님을 꼬드겨 여자를 들여보내 객고를 풀어 주고 뒷돈을 챙기는 여관들이지요. 실로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손님의 행복지수를 높여 주기 위해 노력하는 갸륵한 사람들이 아닐는지요.
아무튼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역시 벨을 울린 사람은 카운터의 여자더군요. 어떤 남자가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었지요. 숙박계를 받지 않더니 나의 신분을 알 수 없어서 전화를 넣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나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지요.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나를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K시인이었으니 말입니다. 투숙한 여관을 일러 주지 않아서 터미널 부근을 다 뒤졌다고 말하며 그가 사람 좋은 웃음을 웃더군요. 신기했지요. 이 먼 남도의 고을에서 나를 찾아 주는 사람이 다 있다니. 인연의 불가사의!
언젠가 국어사전을 뒤적거리다가 불가사의(不可思議)란 낱말에 눈길이 멈추었습니다. 두 가지의 풀이가 있었지요. 20세기의 불가사의와 같이 쓰이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이 이상야릇함이라는 풀이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가사의가 수(數)를 표시하는 단위로도 쓰이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무량수(無量數)의 아랫자리의 수가 불가사의인데, 이것은 나유타의 억 배이지요. 다시 나유타는 아승기의 억 배이고, 아승기는 항하사의 억 배이고, 항하사는 극의 억 배이지요. 그 아래로 극, 재, 정, 간, 구, 양, 자, 해, 경, 조, 억이 각각 아랫자리의 만 배이지요. 그 아래에 또 만, 천, 백, 열 ,하나가 있지요.
그때까지 나의 머리 속에 저장된 가장 큰 수는 경이란 수였지요. 호기심이 발동한 내가 국어사전을 뒤져 수의 위계 질서를 일목 요연하게 정리했을 때, 나는 그 수의 어마어마함에 한동안 질려 버렸지요. 그런데 우리가 흔히 인연의 불가사의라고 말하는 그 불가사의가 셈의 우두머리의 수라니요. 그 무량수에 가까운 수량 중에서 맺어지는 것이 우리가 맺고 있는 하나하나의 인연이라니요.
그 인연의 불가사의로 맺어진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지요. 산과 강과 꽃을 말하고 소로우와 자연과 시를 말하고 고려와 불교와 신돈을 말했지요. 이야기 도중에 서울에서부터 동행한 중년 여자에 대해서 말했더니 글쎄 그가 이러는 것이었습니다.
“저런, 여기까지 동행해 즐거운 시간을 가질 걸 그랬군요.”
그의 말은 예상 밖이었는데,
“습격이 있을 줄 알고 미리 포기했지요.”
내가 그렇게 대답함으로 해서 우리는 한바탕 소리를 내어 웃었지요. 그러나 가슴 한구석이 뜨끔했지요. 만약 내 본능의 고삐가 풀려 엉뚱한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면 꼼짝없이 나의 참따랗지 못한 장면이 노출되고 말았을 터이니까요.
그날 내가 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그가 인간적인 유머를 구사했다는 것이지요. 평소의 그와는 다른 면을 보여준 것이지요. 사실 그 동안 그는 삶의 자세가 반듯하고 쓸 말만 하는 때문에 공자의 수제자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거든요. 조선의 성리학자인 퇴계 선생이 존경을 받는 것은 내면의 부끄러운 심성까지도 숨기지 않고 밖으로 드러냈던 데 있지요. 그는 기생에게로 마음이 쏠리는 것을 솔직히 털어놓고,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되는 이유를 술회했지요. 그처럼 누구나의 마음속에는 욕망이란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밖으로 밀고 나오려는 욕망을 슬기롭게 다스리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면을 느끼게 되고 군자의 면모도 읽게 되는 것이지요.
K시인이 돌아간 뒤 나는 무심코 텔레비전 채널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또 무슨 일입니까. 전라의 남녀가 얽혀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닙니까. 그림이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물고 핥고 빨고 뉘였다 엎었다 섰다 앉았다 별의별 그림이 다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늑대 두 마리에 고양이 한 마리의 싸움이 벌어지는가 하면 그 반대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제 이 땅의 숙박 업소는 도농의 구분이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 땅은 어디를 가나 말법이 판을 치는 세상이었습니다. 숙박 문화의 전국구화라고 할까요.
나는 모든 전원을 내리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런데 이 만뢰 구적의 시간에 또 무슨 일입니까. 어디선가 여자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말초 신경을 곤두세우는 소리였지요. 아아, 아아아. 나 어떡해. 아악 아악. 편안하게 잠들기는 애초에 틀린 노릇이었습니다. 어쩌면 등하색의 생 비디오가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여자는 옆방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배려를 하지 않았습니다. 배려는커녕 우리는 지금 이처럼 황홀한 살품앗이를 한다고 내놓고 광고를 하는 것이었지요. 아마도 그 여자는 팔순의 노인이 코앞에 서 있어도 경로석을 끝까지 고수할 그런 여자일 것입니다. 왜 어떤 여자들은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지 모르겠습니다. 환희의 극치를 위한 교성 자체를 나무라려는 것은 아니지요. 무슨 권한으로 그러겠어요. 역지 사지하자는 것이지요. 그녀가 자신의 교성에 고조되어 무아경을 헤매는 동안, 청음(聽音)으로 인해 종애 곯림을 당하는 이웃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 달라는 것이지요.
여관 잠을 자면서 무얼 그리 까다롭게 구냐구요. 대충 넘어가지 않구. 글쎄요. 출산의 고통 소리 같기도 하고 죽음의 고통 소리 같기도 한 소리에 뒤척거리다가 나는 엎드려 잠이 들었습니다.
해가 중천에 떠서야 방에서 나와 아침을 먹고 만 원을 주고 택시를 잡아 탔습니다. 나는 이 고을에 가는 김에 둘러보기로 작정했던 우포늪을 가려는 것이었습니다. 메타기를 꺾으면 그만한 요금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곧바로 되짚어 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달라는 대로 주고 갔지요.
그곳으로 가다 보니 파릇파릇 흙을 밀어올리고 있는 것들이 온통 들판을 덮고 있었습니다. 나는 택시 운전사에게 저것들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반백의 택시 운전사는 어딘지 볼멘소리로 이렇게 말했지요.
“다마내기와 마늘 아임니꺼.”
“온 들이 다 파랗군요.”
“그렇심더. 다마내길 젤 먼첨 일본서 들여온 게 창녕 사람 성재경임더. 한땐 여기 다마내기가 전국을 안 휩쓸었슴니꺼. 이전 다 옛날 얘기 돼뿌렸지만서두.”
그는 자꾸 다마내기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런 그의 말에서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홍의 장군(곽재우)이 왜군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낸 이 호국의 땅에서, 일본의 양파를 맨 처음 들여온 것도 그러려니와, 아직도 양파가 이곳에서 다마내기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불려진다는 사실을요.
“대개 이모작을 하겠네요?”
“나락 농사와 뒤끝을 서로 바싹 물고 돌아가는 농사 아임니꺼. 잇속도 없이 매양 바쁨더. 중국에서 안 들어오는 게 있는 줄 아능교. 말로만 신토 불이지, 땅 파먹고 사는 사람들 다 죽슴더. 창녕이 언젯적 창녕임니꺼. 여긴 지대가 높아서 물이 적고, 그래 발전이 더딘 기라요.”
택시 운전사는 무언가 이 고장에 관하여 할 말이 많은 사람 같았습니다. 어쩌면 역사 속에서만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가야시대의 영광과 현재의 농촌의 현실을 비교하며 한탄을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그 운전수는 손톱에 흙때를 묻히고 살던 사람 같았습니다.
우포늪에 거반 다다른 곳에는 넓은 광장이 닦아지고 굴삭기가 배수로 작업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길을 넓히고 주차장을 지어서 외지 사람들을 보다 더 많이 불러들일 모양이었습니다. 새들의 천국을 구경시키고, 그 대가로 이 땅에 몇 푼씩 떨어뜨리고 가게 하고, 늪의 오염을 앞당길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령 잔데, 왜 의령은 령으로 부르고 창녕은 녕으로 부를까요?”
“부르기 쉬운 대로 그래 부르지 않았겠슴니꺼.”
“그렇겠군요. 의녕, 창령은… 혀가 잘 돌지 않네요. 양궁 선수 김수녕도 창녕 녕 자 같은데요?”
“그럴 검더. 허허허. 김수령이라고 부른다면 정말로 곤란하겠심더.”
그는 이십 분도 채 안 되어 나를 새들의 세상에 내려놓았습니다. 우포늪은 약 1억4천만 년 전에 형성된 저층늪입니다. 눈이 모자라는 물밭에는 온통 새들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왜가리 청둥오리 큰기러기도 있고 삼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노랑부리저어새도 보였습니다. 이 새는 전세계에 300여 마리뿐이라는데 13마리나 이곳에 날아왔다고 택시 운전사가 말했지요.
나는 바다 같은 늪가에 서 있었습니다. 어마어마한 물밭에 의지하여 숱한 새들과 물고기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한 장의 아름다운 그림이었습니다. 늪의 건너편에 고깃배 같은 작은 배 하나가 떠 있었는데 나는 그 쪽으로 자꾸 마음이 쏠렸습니다. 한낮의 햇빛을 쪼이고 있는 그 배에서 왠지 나는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배는 어쩌면 고깃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건이나 사람을 운반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배인지도 모르겠지요. 그 배는 닻을 내리고 출항을 기다리느라고 정박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출항 날짜가 되면 기적을 울리고 멀리멀리 떠나갈 것입니다.
하얀 날개의 새들이 그 위를 날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는 그 배의 위를 날고 있는 새들이 바닷가의 갈매기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움찔했습니다.
“아”
나는 삼십삼 년이나 되는 세월의 주름을 단숨에 뛰어 넘었습니다. 부산항의 삽화를 떠올린 것이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그곳을 다녀갔습니다.
진달래의 꽃물이 온 세상을 핏빛으로 물들이던 그때, 어머니는 전쟁터로 떠나는 아들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강원도 땅에서 그 먼 걸음을 했던 것입니다. 나는 병력 수송선의 갑판 위에서, 저 아래 사람들 틈에 섞여 피켓을 어깨 위로 쳐들고 있는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까마득하게 올려다보이는 갑판 위에서 얼른 알아볼 수 있도록 고딕체의 검정 글씨로 쓰여진 피켓과 태극기를 손에손에 들고 이 땅의 어버이들은 아들의 이름을 목터지게 불러 대고 있었습니다.
수송선의 미군 호송 장교들과 한국군 장교들이 병사들에게 선실로 내려가도록 명령을 했습니다. 한꺼번에 병력이 부두 쪽으로 몰리면 배가 전복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명령에 따르는 병사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었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체험한 세대인 우리의 어버이들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자식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가슴에 담아 가려고 환송식장으로 달려온 것이었습니다.
내가 탄 수송선은 부두에서 자취를 감추고 어머니는 오래도록 그곳을 떠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열차를 타고 고향집으로 되짚어 가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서로의 명줄에 방아쇠를 당기는 전쟁터를 당신의 아들이 왜 자원해서 갔는가 하는 의문점이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멀어져 가는 파월 수송선을 바라보면서, 죽고 죽이는 인연의 늪을 우회하게 해 달라고 삼신 할머니를 찾다가, 마침내 눈물을 소매끝으로 훔쳤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들을 뒤에 숨긴 수평선을 원망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문득 끼룩끼룩 부둣가를 날고 있는 갈매기들에게 눈길을 주면서 나의 어머니는, 갈매기처럼 날개를 달고 아들을 따라가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큰놈의 입영 날짜가 잡혔는데, 그 말만 듣고도 가슴이 짠한 걸 보면 그때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을는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그때의 어머니의 나이는 마흔둘이었습니다. 그 나이는 현재의 내 나이보다 열셋이나 아래인데,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생사의 갈림길로 아들이 떠나갔으니 그 속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늪가는 얼어 붙었지만 늪의 가운데와 그 위의 하늘은 푸르고 맑았습니다. 나는 그 물밭을 뒤로 하고 화왕산으로 향했습니다.
조금 오르다 보니 잘 생긴 바윗돌에 창녕 향토가가 암각되어 있었습니다. 향선생의 작품인가 본데 내용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나의 눈을 안타깝게 하는 글자가 있었습니다. 比斯伐의 伐 자 말입니다. 그것은 들이란 뜻의 순수한 우리글이어야 하는데, 무슨 뜻으로 칠 伐 자를 썼는지 나로서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밭을 大田으로, 샘밭을 泉田으로 바꾸는 사람들은 그래도 낫습니다. 정확한 의미는 짚어 낸 것이니깐요.
화왕산으로 오르는 산길은 겨우내 얼어 붙고 목말라 있었습니다. 벌거벗은 나무들은 턱없이 움츠려 보였습니다. 오른쪽에는 암벽으로 이루어진 자하곡의 주름진 산줄기들이 있었습니다. 그 주름진 형상 때문일까. 그런 산을 대할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끌고 온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때로는 에돌고 베돌아야 하는 삶의 다른 이름인 산길,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도 여전히 앞을 가로막을 것 같은 산길. 이리 부딪히고 저리 채이면서 이젠 여길 떠나야하는구나, 눈물로 한 굽이 또 한 굽이 산모롱이를 돌았을 때, 연신 나타나 우리들을 지치게 했던 저 굴곡진 산줄기. 그 산줄기의 가슴에 골을 파며 먼길을 떠나는 강물이기나 한 듯 자꾸만 막막해지던 저편의 기억. 그때는 모든 것이 왜 그렇게 두렵기만 했었는지.
산림욕장을 지나 등산로를 따라 올라갔습니다. 창녕 향토가로 인하여 잠시 언짢았던 것이며 내 지나간 날의 삽화들로 어둡던 나의 마음은 차츰 밝아지고 있었습니다. 신선한 공기로 목욕을 하고 산새 소리를 행진곡으로 삼아 오르다 보니 발걸음도 차츰 가벼워졌습니다. 참을 수 없는 이 가벼움, 뭐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내가 그런 상태에 있었던 것이지요.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세상 속으로 나는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지요. 나는 힘들면 쉬고 목마르면 물 마시고 그러다 보니 벌써 환장고개였습니다. 산행은 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곳이 호흡의 클라이맥스였지요.
“불길 한 번 대단할걸.”
억새를 불태우는 장면을 구경하려고 몰려가는 사람들. 나는 불타 오르는 억새밭을 생각하다가 또다시 그녀를 떠올렸습니다. 이 세상은 모두 불타 버려야 한다고 횡설 수설하던 그녀.
그녀가 잘못 된 뒤에야 안 일이지만 그녀는 가정이 있는 여자였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그녀는 폭력을 휘두르는 등 대책이 없는 남편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려고 피신중이었습니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그 때문에 그녀가 호된 몸살을 앓고 있을 때였습니다. 나는 질곡의 수렁에서 헤매던 그녀에게 동정의 싹이 텄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사랑은 동정으로부터 시작했고 서서히 영혼을 빼앗긴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그녀의 상처는 조금씩 다림질되어 차츰 웃음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나의 곁을 떠나가 버렸지요.
드디어 나는 화왕산의 고개턱을 밟았습니다. 출발로부터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더군요.『창녕군 지명사』에 보면『대동여지도』와『해동여지도』에는「火王山」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나『영남지도』와『경상도현읍지』의 지도에는「火旺山」으로 표시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후자를 쓰지요. 火旺山. 불 화. 일 왕. 불이 일어나는 산이라니. 그래서 이 산은 제 이름값을 톡톡히 치르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화왕산 정상에서 성곽을 따라 걸어내려갔습니다. 억새풀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것은 얼마 뒤에 달겨들 화마(火魔)를 두려워하고 원망하는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이, 우리의 운명을 마음대로 요리하는 하늘에 대해서 가지는 마음처럼 말입니다. 칼날을 잡은 자의 비애라고 할까요.
억새. 억새는 그 이름에서 풍기는 어감 때문인지 내게 퍽이나 인상적으로 다가섭니다. 얼마나 억세고 검질긴 의미로 지어진 이름입니까.
나는 이따금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억새밭의 저편에서 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오래 전 내 곁을 떠나간 그녀입니다. 억새밭을 뚫고 나가면 그녀를 만날 것입니다. 나는 억새밭을 뚫고 나갑니다. 그런데 이번엔 엄청난 불길이 앞길을 가로막고 시뻘건 혓바닥을 널름거립니다. 어쩌면 그 불길은 팔열 지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팔열 지옥이라고 말해도 되는 것은 그 불길이 너무 거대해서 쉽사리 헤치고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 때문입니다. 비록 소나기가 내린다고 해도 너무 뜨거운 화염에 불길이 꺼지기는커녕 순식간에 빗물이 기화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 불길 앞에 서 있으면 나는 차츰 차분해지는데, 그것은 그 불길의 열기가 꽃의 향기로 느껴지는 때문이었습니다. 그 널름거리는 불길은 하나하나가 꽃이파리 같고 나는 그것들을 더듬기도 하는데, 어느새 꽃이파리들은 그녀의 몸뚱이로 변신을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집을 떠나기 전날 밤에 그 불길을 꿈에서 보았습니다. 그 불길은 그녀가 서 있는 곳과 내가 서 있는 곳을 가로질러 타오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불길을 꿈 속에서 볼 때마다 나는 뜨거운 가슴으로 타오르는 불길 속을 바라다봅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거대하고 현란한 한 송이의 꽃이 피어 있고 그것은 이내 슬픈 눈망울의 그녀로 변신을 합니다.
나는 그런 꿈을 이따금 꾸었지만 그 정체를 알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 정체를, 그녀에 대한 오랜 집착으로 인한 잠재 의식의 발동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한참 내려가다 보니 성곽을 벗어난 지점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내친 김에 더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아래로 내려가다가 나는 오석 바탕에 흰 글씨로 암각되어 있는 자그마한 비문을 만났습니다. 그것은 한 편의 단시였습니다.
―그대여/하늘에/별이 되소서. 홍이를 보내며 친구가.
그 글을 읽는 순간 나는 떠나감과 보냄의 아픔과 아름다움을 함께 읽었지요. 이제 한 사람은 별이 되어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별을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을 터입니다. 그들에게는 횡포라든가 원망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없겠지요. 죽음이 이토록 간절한 표현으로 승화되다니. 하지만 이승을 살아가면서 그런 아름다움 한 번 가꾸지 못하고 적멸의 문앞에 당도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요.
나는 그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 열한 자뿐이 안 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비를 만나려고 여기까지 힘들게 찾아왔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동문을 통해 성벽 안으로 들어서자 창녕 조(曺)씨 득성지비가 있고 산성의 안부에는 3개의 용지(龍池)가 보였습니다. 거기서 정상 쪽을 바라보았더니 산성은 마치 벌거벗은 임부가 양 무릎을 세운 자세로 해산을 하고 있는 형국이어서, 득성지지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습니다. 화왕산 못이 영험하다는 말에, 찾아와 목욕을 하고 기도하여 병도 낫고 아들을 얻었으니, 이 아이가 창녕 조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전설이, 그 비를 읽지 않아도 빤히 알 수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어쩌면 용지는, 창녕의 진산인 화왕산의 화기를 잠재우는 음수를 항시 분출하여 이 고을을 지켜주고 있다는, 공개되지 않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나는 여자의 옥문에 해당하는 용지와 산성의 형국을 바라보며 슬픔의 파도를 타고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그녀가 내 곁을 떠나가게 되었던 사연을 꺼내 보며 때늦은 염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으니 살아만 있어 주면 좋겠다고 말이지요. 내가 그녀를 원한 것은 완전한 사랑을 바랐던 것이지요. 완전한 사랑이란 영혼과 육체의 교환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녀의 상처가 어느 만큼 다림질되어 웃음이 살아났을 때 내가 요구했습니다.
“당신을 가지고 싶어.”
이 즈음처럼 휘영청 달 밝은 밤이었습니다.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는 나의 얼굴에 그녀의 입술이 포개져 왔습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간질렀습니다. 우리의 시작은 맹랑하였으나 진지함으로 되돌아와 마침내 사랑을 완성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삶의 유전자 지도이기도 한, 신의 지문을 읽는 하늘눈을 뜨는 데는 무력했습니다.
산성 안은 이제 사람멀미가 날 정도로 붐볐습니다. 환장고개의 고개턱 쪽으로 좌판을 벌인 곳에는 사람들이 뺑 둘러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더운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어묵과 막걸리로 떨어진 체온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홍동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기우제를 지내면 그냥 지내면 되는 거지. 멀쩡한 억새밭에다 불은 왜 지른다는 게야.”
“모르는 소리. 불을 놔야 억새가 더 실한 거야.”
“이 억새밭을 다 불태운답니까?”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기우제에 사물놀이가 당키나 한겨?”
불똥을 다른 데로 튀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윽고 해는 저 멀리 가야산 너머로 뉘엿뉘엿 떨어지고 있는데, 정말로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나타나더니 달집 주위에서 놀이판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말처럼 기우제와는 도무지 궁합이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성벽의 돌맹이 하나하나마다 임진왜란의 피눈물이 묻어 있는 역사적인 장소에서 걸판진 놀이판이라니.
어쨌든 널따란 억새밭의 하늘에는 365개의 나래연과 헬리콥터가 날고 있었고, 사물놀이패는 신명을 내고 있었고, 덩달아 사람들은 얼싸절싸 어깨춤을 추썩거리고 있었습니다. 산성은 바야흐로 기우제라는 신성한 의식과는 딴판인 축제의 한마당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3천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사이에 섞여서, 주과포와 통돼지를 비롯한 제수 일체를 차려 놓은 제단 앞에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걸음걸이로 나타나는 이 고을의 수령과 유지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잠시 뒤의 어느 순간, 문득 황당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수천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삼도농악에 지신밟기와 비나리의 질펀함을 들으면서도, 달집을 태우는 것을 보면서도, 사뭇 의구심이 일었지만 그냥 접수하려던 마음이었는데, 이 고을 수령의 기복 벽사의 축문에서 터져 나온, 왜적을 무찌른 영혼의 넋이 살아 있는 이곳에서 이렇게 한마당의 군민 행사를 치르게 되어 감개 무량하고 신명 나는 전국적인 축제로 발전하도록 역량을 모으자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과 함께 나도 모르게 당치도 않은 들러리를 서는 기분이었던 것이지요.
대의 명분으로 내세운 기우제에도, 왜적에 대한 항전의 혼이 살아 숨쉬는 장소에도 어울리지 않게 각본이 짜여진 획시대적이지 못한 행사에, 무턱대고 추종하는 군민들 중에 섞여 있는 나 또한 이 축제의 도도한 물결에 떠밀려 가는 일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게 아니오, 소리를 친다 한들 폭풍우 속에서의 고함처럼 공허할 뿐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소 흥분되고 외곬인 군중 심리의 조성은 이 땅의 칼자루를 쥔 사람들이 이지 기사를 위해 밀어붙일 때, 그럴듯한 구실과 명분을 붙여 집단 최면이나 히스테리로 몰아가는 지극히 상투적인 수법일 터이지요. 하지만 군중들의 들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그런 기분을 느끼는 사람은 이방인인 나 하나뿐이 아닐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이 뜬다!”
때를 맞추어 본부석에서 불을 붙이라는 방송이 나가고 억새밭은 팔열 지옥의 아비 규환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번져나가는 불길. 그것은 요원의 불길과 같았습니다. 한겨울의 산성을 휩쓰는 바람은 용의 혓바닥 같은 불길을 십여 미터도 넘게 피워 올렸고 연기는 먹장구름처럼 하늘을 덮었습니다.
“맞불 놓았다!”
“와!”
3천여 명의 함성이 억새 평전에 울려 퍼졌습니다. 불길은 혓바닥을 낼름거리는 요염한 뱀처럼 몸을 비틀며 솟아올랐습니다. 아아, 아아아. 나 어떡해. 아악 아악. 억새풀들이 지난밤의 어떤 여자처럼 산지 사방으로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습니다. 그 처절한 울부짖음과 불길에 사람들은 혼이 빠져 있었습니다. 불길은 어이없게도 황홀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어이없는 아름다움. 불길의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녀와의 사랑이 불타 오를수록 나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녀의 아픔까지도 아름다워 보이는 마음, 그 어이없던 사랑의 변주곡.
그러나 그녀는 그녀의 뒤를 밟은 사람에 의해 모진 린치를 당했습니다. 그녀는 그날부터 말이 없어지고 식음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녀는 자동차 사고로 인해 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습니다. 그녀의 영혼은 이미 그녀의 업 많은 육신을 떠나간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불태워지고 한 줌의 뼛가루로 부서져 금강에 뿌려졌습니다.
그랬습니다. 불길이란 그것이 타오를 때는 아름다움이지만, 그 끝은 없을 무 자가 스무 번 이상이나 나오는 반야심경의 구절처럼 무(無)로 가는 지름길이었습니다.
살자 살자 살자 살자 살자 살자 살자 살자…….
형사가 보여주는 그녀의 수첩을 빼곡하게 채운 글자. 경찰은 수집한 그 글자를 증거로 반어법의 실체를 증명해 보였습니다. 이렇게 그 글자들을 읽었던 것이지요.
자살 자살 자살 자살 자살 자살 자살 자살…….
하지만 나의 독법은 또 달랐습니다. 나는 그 글자들을 이렇게 읽었던 것이지요.
아아, 아아아. 나 어떡해 아악 아악……
나는 그 글자들을 바라보면서 그녀의 가슴을 저미는 고민을 읽었습니다. 바로 읽으면서, 거꾸로 읽으면서 한없이 고뇌했을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불 속에 여자가 있다!”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나는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과연 배바우 쪽으로 올라가는 억새밭의 한가운데에 한 여자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불길은 이게 웬 먹이감이냐는 듯 시뻘건 입을 벌리고 곧장 그 여자에게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아, 처음에 나는 꿈 속에서 만나곤 하던 옛사랑 그녀인 줄만 알았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이 산에서 보았던 것처럼 짧은 비문 하나 세워주지 못한 그녀의 곡두일망정 만나게 되어 반가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잠시 얼보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어디서 본 듯한 모습이었는데, 이를 가능케 한 것은 휘황한 달빛과 타오르는 불길이었습니다. 내가 그녀를 확실히 알아본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저 여자가 어떻게…… 나는 득달같이 그 여자를 향해 치달려 올라갔지요.
탄성과 신음도 잠시, 억새밭은 검은 재만 남기고 모두 없어져 버렸습니다. 화왕산성 위에는 대보름의 둥근 달이 하얀 웃음으로 떠 있었습니다. 불씨마저 깨끗이 사그라진 광경은 그로테스크한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매복 작전에 투입되던 베트남전의 병사들처럼 한 줄로 조심조심 환장고개를 내려갔습니다. 나는 그녀를 앞세우고 그들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녀는 어둠을 더듬더듬 밟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음니더.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마저 들려 드리고 싶어 이래 찾아오지 않았심니꺼. 마, 제 이야기도 책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겠심니더. 선생님이 작가시라는 거는 말씀 가운데서 알았지예. 그런데예, 선생님을 다시 만날 방법이 없다 아입니꺼. 우얩니꺼. 머릴 좀 굴려 충격 요법을 썼지예. 여기에 와 계시는 거는 틀림없을 기고.
그것은 또 하나의 시작일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인연의 쓰고도 아리는 사슬, 윤회의 고달픈 머나먼 길일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중년 여자의 출현에 매우 혼란스러운 나머지 두 다리가 허전허전했습니다. 나는 속으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지요.
산을 내려와 창녕 향토가가 세워져 있는 데서 뒤돌아보니, 화왕산은 시커먼 윤곽만 보일 뿐 그 얼안의 것들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화왕산은 불타서는 안 되는 것인데, 나는 다시 인연을 엮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화왕산은 여전히 얼안을 가리고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도 불타는 火旺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빛나는 華旺으로서의 나이어야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닫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