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경주 고성 고창 공주 광주 군위 금산 금성 김해 나주 낙안 남양 남원 낭산 능성 대구 대전 덕미 동래 동복 동부 두원 밀양 보령 보성 삼가 서산 성산 성주 수원 순흥 안동 안성 여주 연안 연일 연주 영광 영월 예안 온양 울산 의성 장흥 전남 전주 제주 진원 진주 창원 청주 충주 파주 평산 평택 평해 함안 함양 함영 함평 함흥 해남 해주 혜명 혜조 화순 황해 흥양 총 69개의 본관과 147,127명이 있다.(1985년)
오씨는 문헌에 164~210본이 있으나 16본을 제외한 나머지의 유래와 시조는 알 수가 없다.
오씨 성의 기원은 고대 중국 양자강 부근 오나라에 차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손자 류양이 천자로 부터 오씨성을 하사 받고 오나라의 왕이 되어 이때부터 오씨가 생겼다
우리나라 모든 오씨의 도시조는 류양의 46세손이며 500년(신라 지증왕 1년)에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온 오첨(吳瞻)으로서 그는 함양에서 22년간 살다가 다시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 때 두아들 중에 둘째 아들 오응이 그대로 함양에 남아서 살았다고 한다.
그 후 오응의 12대손 오광우가 다시 중국에 들어가 살았는데 후손 오연총(吳延寵, 오첨의 18세손)이 고려 문종 30년에 다시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하여 살면서 우리나라 오씨의 중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오연총의 6세손 오수권(吳守權)이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1216년(고려 고종 3년) 거란을 토평한 공으로
큰아들 오현보(吳賢輔)는 해주군에 봉해져서 해주 오씨의 시조가 되고, - 나주, 울산, 락안, 고창, 함평, 평해로 분관
둘째 아들 오현좌(吳賢佐)는 동복군에 봉해져서 동복 오씨의 시조가 되고, - 군위로 분관
셋째 아들 오현필(吳賢弼)은 보성군에 봉해져서 보성 오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 화순, 함양, 장흥, 흥양로 분관
고창 오씨(高敞 吳氏)
시조 오학인의 선계는 고증이 없어 상고할 수 없다.
그는 최충 문하에서 수학한 문헌공도의 1인으로 시문에 정통하고 벼슬은 한림학사에 이르렀다.
오학인은 1035년(고려 정종 1년) 문과에 급제하고 1057년(고려 문종 11년)에 사목으로 압강에서 북쪽 오랑케를 토평한 공으로 고창을 식읍으로 하사 받았다.
문장과 덕행으로 당시의 사표가 되었고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의 손자 세문 세제가 학덕으로 고명했고 6세손 이수가 충열왕 때 공을 세워 고창군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고창으로 하였다.
시조의 묘소는 실전되었으므로 고양군 벽제면 선유리에 제단을 만들었다.
고창의 향현사, 평산의 죽림사에서 제향한다.
27,770명이 있다.(1985년)
군위 오씨(軍威 吳氏)
시조 오숙귀는 도시조 오첨의 24세손 오현좌(동복 오씨의 시조)의 둘째 아들로서 고려 때에 벼슬을 하면서 비안군에 봉해졌고 그후 6세손인 오인철이 고려 때에 사복을 지냈다.
후손들이 군위에 대대로 살면서 동복 오씨에서 분관하여 오숙귀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군위로 하였다.
21,717명이 있다.(1985년)
항렬표 14세 시(時)/ 15세 록(祿)/ 16세 정(廷)/ 17세 관(觀)/ 18세 계(季)/ 19세 재(在)/ 20세 승(昇)/ 21세 표(杓)/ 22세 태(太)
나주 오씨(羅州 吳氏)
나주 오씨는 500년(신라 지증왕1년)에 동래한 선조 첨의 24세손 현보의 아들 5형제가 각각 분적할 때 제5자 숙규가 분적한 것이 확실하나 그 후 3세의 세계가 분명하지 않고 연대에 차이가 있다
시조 오숙규(吳淑珪)는 고려 중엽 진사를 지냈다.
오숙규를 시조로 하고 오숙규의 5세손 오언(吳偃)을 1세 조상으로 하였다.
오언은 고려 때 중랑장을 지내고 그의 5세손 오자치(吳自治)가 조선 세조 때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나주군에 봉해지자 본관을 나주로 하였다.
26,244명이 있다.(1985년)
항렬표 13세 시(時)/ 14세 원(源)/ 15세 상(相)/ 16세 환(煥)/ 17세 규(圭)/ 18세 선(善)/ 19세 수(洙)/ 20세 근(根)/ 21세 열(烈)섭(燮)/ 22세 교(敎)균(均)/ 23세 종(鍾)/ 24세 영(泳)/ 25세 병(秉)/ 26세 희(熙)/ 27세 균(均)/ 28세 호(鎬)/ 29세 순(淳)
낙안 오씨(樂安 吳氏)
시조 오사룡은 도시조 오첨의 32세손이다.
오사룡은 고려 때에 북쪽의 합단과 일본의 침입을 토벌할 때 김방겸과 함께 참전하고 이 때의 포로를 원제에게 돌려보내고 금비옥대를 받았으며 왕으로부터 자금어의를 하사 받고 낙안군에 봉해져서 본관을 낙안으로 하였다.
묘소는 전북 완주군 완주 봉림산에 있다.
7,410명이 있다.(1985년)
항렬표 15세 한(漢)/ 16세 표(標)림(林)/ 17세 환(煥)/ 18세 수(壽)/ 19세 흠(欽)/ 20세 동(東)/ 21세 휴(休)/ 22세 희(熙)/ 23세 목(睦)/ 24세 현(鉉)/ 25세 택(澤)호(浩)/ 26세 상(相)수(秀)/ 27세 찬(燦)열(烈)
동복 오씨(同福 吳氏)
시조 오령은 신라 경명왕때 우리나라에 들어온 오첨의 18세손으로 1107년 여진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운 연총의 7세손 현좌의 장남이다.
오씨족보에 따르면 1216년 군후원으로 거란토평에 참가 구주에서 공훈을 세운 오현좌의 장남 영이 동복군에 봉해져서 동복 오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였으며 첫째 아들 오령도 동복군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동복으로 하였다.
둘째 아들 오숙귀는 군위 오씨로 분관하였다.
3세 대승이 동복에 있을 때 큰 돌에 48등을 조각하여 밤마다 하늘에 기도드려 자손이 번창했다고 한다.
50,648명이 있다.(1985년)
항렬표 23세 상(相)/ 24세 연(然)병(炳)/ 25세 재(在)/ 26세 탁(鐸)용(鏞)/ 27세 록(祿)/ 28세 병(秉)근(根)/ 29세 묵(默)/ 30세 치(致)/ 31세 일(鎰)/ 32세 원(源)/ 33세 동(東)/ 34세 응(應)/ 35세 균(均)/ 36세 종(鍾)용(鏞)/ 37세 해(海)
보성 오씨(寶城 吳氏)
아득한 상고시대에 중국 양자강 부근에 오왕 부차가 있었고 그의 손자 누양이 천자로부터 오씨성을 하사받았으며 오왕이 되어 오나라를 디스렸다.
이 때부터 오씨가 시작되었다.
시조 오현필(자는 응남, 호는 성제)는 도시조 오첨의 24세손이다.
그는 1216년(고려 고종 3년)에 계단을 토평한 공으로 보성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본관을 보성으로 하였다.
보성 오씨에서 분관된 오씨는 4개의 본이 있는데 첫째 아들 오숙부와 둘째 아들 오양의 후손은 보성 오씨를 계승했으며, 셋째 아들 오원은 화순 오씨로, 넷째 아들 오광휘는 함양 오씨로 분관 했으며, 오현필의 둘째 아들 오양의 6세손 중권은 흥양 오씨로, 오현필의 6세손 오사염의 둘째 아들 오천우는 장흥으로 각각 분관하였다.
오현필의 묘소는 충남 공주군 장기면 신관리 취리산에 간좌로 있다.
매년 음력 3월 6일에 향사하고 있다.
52,543명이 있다.(1985년)
부위공파 항렬표 21세 상(相)응(應)환(煥)종(宗)/ 22세 선(先)재(在)형(亨)/ 23세 계(啓)현(鉉)석(錫)/ 24세 호(鎬)준(俊)영(永)연(淵)/ 25세 영(永)식(植)수(秀)/ 26세 세(世)병(炳)희(熙)/ 27세 균(均)/ 28세 진(鎭)/ 29세 영(泳)/ 30세 근(根)/ 31세 훈(勳)/ 32세 중(重)/ 33세 선(善)/ 34세 원(源)/ 35세 래(來)/ 36세 열(烈)/ 37세 달(達)/ 38세 종(鍾)
연일 오씨(延日 吳氏)
시조 오흡의 선세계는 알 수 없으나 연일지방에 대대로 살아오던 사족 집안이다.
그는 고려에서 전서를 역임했으며 조선 중종 때 형조판서를 지낸 오준은 그의 5세손이다.
1,166명이 있다.(1985년)
울산 오씨(蔚山 吳氏)
시조 오연지(시호는 문충)는 도시조 오첨의 24세손 오현보(해주 오씨의 시조)의 8세 차손이다.
오연지가 고려말에 평장사로 학성(울산)군에 봉해졌으므로 해주에서 분관하여 연지를 시조로 본관을 울산으로 하였다.
2,696명이 있다.(1985년)
항렬표 12세 유(有)우(羽)/ 13세 필(泌)세(世)/ 14세 종(宗)봉(鳳)/ 15세 동(東)근(根)/ 16세 광(光)하(河)/ 17세 규(奎)일(一)/ 18세 석(錫)헌(憲)/ 19세 영(永)석(奭)/ 20세 병(秉)기(基)/ 21세 섭(燮)종(鍾)/ 22세 정(廷)수(洙)/ 23세 병(秉)탁(鐸)/ 24세 태(泰)/ 25세 빈(彬)/ 26세 사(思)/ 27세 징(徵)/ 28세 진(鎭)
장흥 오씨(長興 吳氏)
시조 오천우는 도시조 오첨의 24세손 오현필(보성 오씨의 시조)의 6세손 오사염의 둘째 아들이다.
오천우가 조선시대에 병마절도사를 지냈는데 그의 후손들이 장흥에 대대로 살면서 천우를 시조로 하고 보성 오씨에서 분관하여 장흥을 본관으로 하였다.
3,897명이 있다.(1985년)
항렬표 46세 언(彦)환(煥)/ 47세 식(植)지(志)/ 48세 병(炳)진(鎭)/ 49세 기(基)숙(淑)/ 50세 석(錫)근(根)/ 51세 수(洙)병(炳)/ 52세 상(相)철(喆)/ 53세 섭(燮)/
전주 오씨(全州 吳氏)
시조 오준민은 도시조 오첨의 24세손 보성 오씨의 시조 오현필(보성 오씨의 시조)의 9세손이다.
그는 고려 때 병부상서로 공을 세워 완산(전주)백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전주를 본관으로 했다.
1,997명이 있다.(1985년)
항렬표 40세 석(錫)기(起)근(近)/ 41세 건(鍵)지(志)억(億)/ 42세 연(淵)국(國)수(守)/ 43세 동(東)명(命)운(雲)/ 44세 형(炯)태(泰)흥(興)
평해 오씨(平海 吳氏)
시조 오극중은 도시조 오첨의 24세손 오현보(해주 오씨의 시조)의 후손이라고 하나 그 중간의 기록이 없어 확실하지는 않다.
오극중은 고려 때에 문하시중을 지내고 동지추밀원사에 추증 되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평해로 했다.
1,264명이 있다.(1985년)
항렬표 26세 원(元)/ 27세 용(鎔)/ 28세 호(浩)/ 29세 근(根)/ 30세 열(烈)/ 31세 재(在)/ 32세 현(鉉)/ 33세 태(泰)/ 34세 주(柱)/ 35세 병(炳)/ 36세 기(基)
함양 오씨(咸陽 吳氏)
시조 오광휘는 도시조 오첨의 24세손 오현필(보성 오씨의 시조)의 6세손이다.
오광휘는 고려말에 문과에 장원하고 상서성 좌복야를 거쳐 흥위위상장군으로 삼척 울진에 출몰했던 외적을 토평한 공으로 추충정난광국공신에 서훈되고 함양부원군에봉해 졌으므로 보성 오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함양으로 하였다.
22,158명이 있다.(1985년)
항렬표 13세 이(以)/ 14세 삼(三)/ 15세 학(學)/ 16세 명(命)/ 17세 호(浩)/ 18세 상(相)/ 19세 찬(燦)/ 20세 곤(坤)/ 21세 석(錫)/ 22세 식(植)/ 23세 세(世)
함평 오씨(咸平 吳氏)
시조 오잠(吳岑)은 도시조 오첨의 24세손 오현보(해주 오씨의 시조)의 넷째 아들이다.
오잠은 고려 원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문하시중 평장사, 태자태사 등을 역임하고 좌명공신으로 함풍(함평)군에 봉해져서 해주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함평으로 하였다
오잠의 묘소는 충남 공주군 공주읍 태진동에 있고 음력 10월 초丁일에 향사한다.
3,282명이 있다.(1985년)
항렬표 25세 진(鎭)/ 26세 원(源)/ 27세 병(秉)동(東)/ 28세 영(榮)경(炅)/ 29세 재(在)/ 30세 석(錫)호(鎬)/ 31세 택(澤)/ 32세 식(植)/ 33세 병(炳)/ 34세 기(基)/ 35세 종(鍾)/ 36세 태(泰)/ 37세 주(柱)/ 38세 열(烈)/ 39세 균(均)
해주 오씨(海州 吳氏)
시조 오현보는 도시조 오첨의 24세손이다.
서기 500년(신라 지증왕1년) 첨이 중국에서 동래하여 함양에 살면서 오씨의 연원을이루었고 그의 자손이 신라 때에 벼슬했으며 11세 희는 고려 태고의 국구였다
오현보는 1216년(고려 고종 3년)에거란을 토평한 공으로 해주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본관을 해주으로 하고 오현보를 시조로 하였다.
그러나 고려 때에 검교군기감을 지낸 오인유를 1세조상으로 하고 있다.
377,005명이 있다.(1985년)
항렬표 24세 영(泳)/ 25세 근(根)/ 26세 환(煥)/ 27세 세(世)/ 28세 석(錫)/ 29세 택(澤)/ 30세 식(植)/ 31세 병(炳)/ 32세 기(基)/ 33세 진(鎭)/ 34세 원(源)/ 35세 주(柱)/ 36세 열(烈)/ 37세 균(均)/ 38세 종(鍾)
화순 오씨(和順 吳氏)
시조 오원은 도시조 오첨의 24세손 오현필(보성 오씨의 시조)의 셋째 아들이다.
오원의 후손들이 화순에서 대를 이어 살면서 본관을 화순으로 하였다.
오현필의 첫째 아들 오숙부와 둘째 아들 오양은 보성 오씨를 계승했으며, 넷째 아들 오광휘는 함양 오씨로 분관 했다.
2,888명이 있다.(1985년)
항렬표 25세 경(敬)/ 26세 병(秉)/ 27세 현(炫)/ 28세 재(在)/ 29세 종(鍾)/ 30세 영(永)/ 31세 식(植)/ 32세 형(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