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나무를 심다
긴 세월이 흘러도 꼭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옛 사람들은 나무를 심곤 했다. 대구 달성군의 도동서원(道東書院)에서 만날 수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도 누군가를 기리기 위해 심은 나무다.
이 나무를 심은 사람은 이 자리에 서원을 지은 정구(鄭逑, 1543~1620)이다. 그리고 그가 특별히 기억하려고 했던 사람은 김굉필 (金宏弼, 1454~1504)이다. 김굉필은 서울 정동에서 태어났지만, 청소년기를 대구의 현풍 지역에서 보냈다. 18세에 결혼을 한 그는 당시 함양군수였던 김종직 을 만나 성리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고려 말 정몽주에서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성리학의 맥을 잇게 된 그는 사림 세력의 뉴페이스로 부상했다. 그런데 훈구파는 이들 신흥 사림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연산군 4년(1498)에 무오사화를 일으킨다. 결국 그는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만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쫓겨나자 김굉필의 직계 제자였던 조광조가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해 그를 복권시켰다. 명예를 회복한 것은 물론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그는 동방오현(東方五賢)으로 추앙됐다.
해질녘 바라 본
도동서원의
서원목
그리고 대구 달성 현풍면 동쪽에 그를 배향하는 서원이 건립되었다. 바로 ‘쌍계서원’이다. 이 서원은 정유재란 때 왜병의 방화로 불타버렸지만, 전란이 끝난 뒤 현재의 위치인 달성구 구지면 도동리로 자리를 옮겨 서원을 중건했다. 당시 서원 중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그의 외증손이며 영남학파의 걸출한 예학자인 정구이다.
새로 건립한 서원의 이름은 도동서원이다. 1607년에 선조가 “성리학의 도道가 동東쪽으로 왔다”는 의미로 도동서원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정구가 서원 입구에 은행나무를 심은 것도 바로 그 무렵이다.
편안히 누워 있는 도인처럼
도동서원의 은행나무는 4백 년에 걸쳐 잘 자랐다. 아름답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크다. 웅장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커다란 나무이다. 이곳 사람들은 서원 입구에 서 있는 이 나무를 그냥 서원목이라고 부른다. 도동서원의 상징이라는 의미다.
이 은행나무는 키가 25미터를 훌쩍 넘는다. 줄기의 둘레도 8.7미터나 된다. 나뭇가지는 사방으로 넓게 퍼졌다. 동쪽의 가지는 무려 30미터나 되는 길이로 퍼져나갔고, 남쪽으로 난 가지도 28미터까지 펼쳤다.
남쪽으로 뻗은 가지는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아예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나무는 누워서도 의젓하다. 누운 가지에서는 오랜 세월이 읽힌다. 길게 뻗어나가는 가지를 부러뜨리지 않으려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낮추어간 시간이 생생하게 눈에 보인다.
이곳이라고 해서 큰 바람이 불지 않았을 리 없다. 거센 눈보라도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을 게다. 그러나 간단없이 다가오는 모든 시련에도 긴 가지 하나 부러뜨리지 않고 가만히 내려앉아 이제는 편안히 누웠다. 남쪽으로 뻗은 가지는 한없이 편안해 보인다.
그러나 북쪽의 가지는 이미 30년 전에 부러졌다. 나무의 전체적인 균형은 깨졌다. 북쪽의 가지도 원래는 다른 쪽 가지들과 마찬가지로 우람했을 것이다. 당시에 부러진 북쪽 나뭇가지를 잘라냈더니 8톤 트럭에 꽉 찼다는 말이 전한다. 그만큼 큰 나무다.
나무의 생김새는 불균형하지만 묘하게도 불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아마 나무의 크기 때문일 게다. 워낙 큰 나무라 가지가 하나 잘려나가도 도인처럼 넉넉해 보이는 것 같다. 이제 도동서원을 찾는 이들은 서원보다도 편안히 누워 있는 큰 나무를 보기 위해 이곳에 온다. 서원을 지은 사람도, 또 서원에 배향된 사람도 모두 가고 없지만 이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이곳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나무는 ‘김굉필 나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대구광역시 특유의 나무 이름 호명법이다. 나무를 심은 사람도 중요하지만, 나무를 통해 기억해야 할 사람을 우선한 것이다. 대구 지역 답사 때마다 이처럼 사람 이름이 붙어 있는 나무를 만나는 일은 몹시 반갑다. 나무와 함께 금방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어서 좋다.
땅바닥까지 축 늘어진 남쪽 가지들
그리움으로 남은 풍경
늘 그렇지만 도동서원의 은행나무도 한 번의 답사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게다가 첫 답사 때는 해가 떨어져 나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도 못했다.
도동서원은 독특하게도 북동쪽을 향하고 있다. 해질녘에 서원을 배경으로 나무를 바라보면 붉은 해 때문에 눈을 뜰 수조차 없다. 도동서원의 풍광을 멋지게 잡으려면 이른 아침에 찾아야 한다. 해가 동쪽에서 떠오를 때 봐야 비탈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서원의 단정한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수첩에 서원 건축물의 방위와 은행나무의 위치를 그려 넣고서 반드시 이른 아침에 다시 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게 벌써 2년 전이다. 그런데도 나는 동 트기 전에 찾아오겠다는 나무와의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다. 서원은 그 뒤로도 몇 번 더 찾았지만, 동트기 전은 아니었다. 게으른 탓도 있으나 인근에서 하룻밤 묵을 숙소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나무를 찾아 홀로 떠도는 여정에 익숙해지고 느긋해졌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마흔이 넘어 찾기 시작한 나무들인지라 한 그루라도 더 찾아보려고 시간과 거리를 가늠하며 빠른 길을 골라 험한 고갯길을 넘어다녔다. 과속 단속 카메라의 덫에 걸리는 건 거의 일상이었다. 너무 늦은 나이에 나무에게 다가갔다는 조바심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렇게 십 년 가까이 눈썹을 휘날리고 다니던 내게 어느 날 뒤늦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많은 나무들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무의 진정한 속내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다.
물론 나는 아직도 많은 나무를 보고 싶다는 조바심을 말끔히 덜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될 수 있으면 한 그루의 나무 앞에 오래 머무르며 그 나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려고 애쓴다. 십 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보낸 뒤에야 겨우 생긴 습관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도 생겼다. ‘나홀로 여행’ 중에 가장 까다로운 건 먹는 일과 자는 일이다. 지방마다 특색 있는 음식들이 있고, 그 음식을 잘 차려내는 유명한 음식점이 있다. 하지만 그런 번화한 음식점에 들어가 홀로 밥을 먹는 일은 나처럼 소심한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먹는 일만큼이나 쉽지 않은 게 자는 일이다. 호텔부터 모텔, 여관, 여인숙, 민박에 이르기까지 잠자리는 널렸다. 그러나 홀로 들기가 머쓱하다. 편안한 잠자리를 청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은데, 이리저리 골라서 들어갔다가 실망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고르지 않기로 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만날 나무가 있는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면 아무 곳에나 들기로 했다.
도동서원의 은행나무를 동트기 전에 만나려면 근처에서 마땅한 숙박지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런데 도동서원 인근에는 마땅히 묵을 곳이 없었다. 어쩌면 없는 게 아니라 못 찾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여러 번 도동서원 근처를 뒤졌으나 숙박지는 찾지 못했다. 결국 하룻밤 잠잘 곳을 찾다 보니 도동서원으로부터 한참 멀리 되짚어 나오게 됐다. 이튿날 새벽 다시 돌아가려고 눈을 떴지만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리게 된 것이다. 다음 코스로 떠날 수밖에 없었을 만큼.
아직도 내 마음속 그리움으로만 남아 있는 동틀 무렵 도동서원의 모습. 그러나 언젠가는 꼭 만나게 될 날이 있겠지.
은행나무는 어떤 나무인가
● 학명 Ginkgo biloba L.
● 분류 침엽수 > 은행나무과 > 은행나무속 >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지구에 살아남은 가장 오래 된 생명체 가운데 하나다. 3억 년 전의 은행나무 화석이 발견돼, 흔히 ‘화석나무’라고도 부른다. 은행나무는 잎이 넓게 펼쳐져 있지만, 바늘잎나무에 속한다. 여러 개의 바늘잎이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로 붙은 것이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따로 있는 암수딴그루의 나무로, 잘 자라면 키가 60미터까지 이르는 큰 나무다. 꽃은 4월경 잎겨드랑이에서 황록색으로 자잘하게 피고, 암나무의 열매는 가을에 맺힌다. 수나무 없이 암나무만 있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지만 주로 중국과 우리나라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잘 자란다. 옛날에는 절집이나 향교에서 많이 심었으나, 요즘에는 환경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는 특성 때문에 도시의 가로수로 심는다.
- 글·사진
- 고규홍/한림대, 인하대 겸임교수
- 호칭·직책
- 서강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2년 동안 중앙일보 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조인스닷컴, 미디어다음 등의 디지털 미디어, <이코노미스트>, <아이위클리> 등의 매체에 나무칼럼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이 땅의 큰 나무], [절집나무], [알면서도 모르는 나무 이야기] 등이 있다.
- 제공
- 옛집의 향기, 나무(들녘, 발행 2007년 4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