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부모들이 직접 나섰다. 학부모들이 만든 '학교폭력예방학부모운동본부' 가 활동을 시작하자, 서울 동대문구의 성일 중학교는 '학교폭력실태조사' 결과 '학교 폭력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 고 응답한 학생이 75명에서 이듬해에 11명으로 줄었다. 이 운동본부의 김병국 회장을 만나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한 그동안의 노력과 성과에 대해 들어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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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교문에 들어선 학생들이 선생님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어떤 학생은 배꼽 인사도 자연스럽다. "○○야! 오늘 치마가 조금 짧은 것 같다? 날도 추워지니까 좀 길게 입자!" "오늘 ○○는 컨디션이 안 좋니? 엄마한테 혼났어?" "○○는 요즘도 ○○랑만 친하니?" 인사를 받은 선생님은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보인다. 서울 동대문구의 성일 중학교의 등굣길 풍경이다. 이곳에서 만난 학교폭력예방학부모운동본부 김병국(47) 회장. 김 회장은 불과 2년 전만 해도 지금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학교 주변은 담배꽁초가 즐비했고, 학생들이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단다. 이 학교에 찾아온 변화의 힘은 무엇일까. |
내 아이도 '왕따' 를 당하더라 |
"첫째 아이가 청소년기에 반항을 많이 했어요. 아이가 학업에 집중하길 바랐지만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요. 그런 과정에서 아이와 마찰이 계속 되었죠. 부모의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는 친구나 이성 교제에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 정도만 돼도 사춘기 트러블 정도로 넘길 수 있다는 김병국 회장은 지난 일이 떠오르는 듯 쉽게 말을 잇지 못한다.
첫째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왕따' 를 당했다는 것. 아이는 부모에게 어떤 표현도, 내색도 안 했다. 감당 못 할 상황에 치달아서야 부모들이 만나서 해결을 봤지만 김 회장 본인이 당해보니 왕따에 대한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저는 그저 장사만 하던 사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내 딸도 왕따를 당할 수 있구나 인식하면서 학교 폭력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님을 절감했지요." 김 회장은 서울 동대문구에서 태어나고 자라 경동시장에서 건재상을 하는 동대문구 토박이다. 학교 폭력의 심각함을 인지한 어느 날, 동네 토박이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대통령도 해결 못 한다는 '학교 폭력' 을 '학부모' 라는 이름으로 해결해보자' 고 제안했다. 그 결과 2012년 6월 동네 학부모 50여 명과 함께 '학교폭력예방학부모운동본부' 를 만들었다. 그리고 운동본부 회원들은 이른바 '일진', 즉 위기 학생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
학교 폭력 예방도 step by step |
"원칙적으로 학교에는 학부모 및 졸업생 외에는 들어갈 수 없어요. 들어가려면 용무를 적고 허락 절차를 밟는 등 복잡합니다. 그래서 운동본부 회원들은 각자 자신이 졸업한 학교를 담당했습니다. 일반 학생들을 관리할 일은 없으니까 위기 학생과 부적응 학생을 파악했고, 그 학생들의 등교 상황, 복장 상태 등 기초적인 선도부터 시작했습니다." 학교 폭력을 없애는 시스템의 첫 번째 과정은 위기 학생들을 섭외하는 것. 김 회장은 아이들을 만나러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저도 담력 하나는 알아주는 사람인데 처음엔 아이들을 만나기가 무섭더라고요. 제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다반사, 꼰대냐 짭새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하고요. 순간 화가 치밀지만 내 자신이 그곳에 왜 있는지를 생각해보고 용기를 냈습니다."
김 회장은 위기 학생들이 마음을 열 때까지 함께 어울렸다. 학생들과 함께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당구장에서 당구봉을 잡고, 노래방에서는 탬버린을 잡았다. 심지어 새벽에는 한강 고수부지에서 오토바이도 같이 탔다. 배고프면 편의점에서 라면도 먹었다. 운동본부가 생길 당시 만난 학생들은 40여 명. 2년이 지난 지금은 동대문구를 넘어 성북구, 중랑구, 인천까지 3백 여 명의 학생들이 운동본부를 거쳐 갔다. 김 회장이 얻은 결론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는 것. 위기 학생들의 생각과 마음을 알아야 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가정환경 파악이다. 집 안의 문제를 들여다보니 아이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부모와의 교류도 활발해져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았다. 세 번째는 위기 학생들을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것이다. 사회복지관에서 이뤄지는 헬스나 수영 등을 이용해 제대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알려준다. 1년에 한 번씩은 가까운 곳으로 워크숍도 떠났다.
"아이들이 하는 일탈 행위는 그만큼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과 직접 어울려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했죠." 네 번째는 위기 학생 스스로가 후배들을 선도하게 하는것. 선배들이 후배를 만나 자신의 변화를 몸소 보여주며 '할 수 있다' 는 자신감을 준다. 선배들이 바뀐 모습을 보고 후배들이 다시 그 밑의 후배를 선도하면서 급기야 학교 폭력의 악순환도 끊긴다. |
나를 모르면 학교 폭력이 없다는 증거? |
김 회장은 전국 어디서나 도움이 필요한 학생이 있다면 언제나 달려가 손을 내밀 계획이다. 그렇다면 삼남매의 아버지이기도 한 김 회장이 다른 아이들을 위해 자비를 털면서까지 학교 폭력 예방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충분한 기회만 만들어주면 위기 학생들도 모두 행복해지는 것을 제 눈으로 봤어요.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학교 폭력에 대한 처벌도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위기 학생들이 처한 상황을 직접 보고 느끼고 공감하면서 아이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먼저입니다."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해서는 아이들 편에서 생각할 수 있는 뜻 있는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그는 전한다. |
아이들과 블라맘들이 만드는 열기가 뜨겁다. 아이들과 눈 맞춰주는 엄마들의 정성은 아이들을 힘나게 한다. 충분한 기회만 만들어주면 위기 학생들도 모두 행복해지는 것을 제 눈으로 봤어요.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학교 폭력에 대한 처벌도 분명히필요합니다. 그러나 그전에 위기 학생들이 처한 상황을 직접 보고 느끼고 공감하면서 아이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먼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