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오픈 재패한 ‘흑진주’ 비제이 싱(Vijay Singh), 그를 말하다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긴 44살의 비제이 싱. 까만 피부에 대비되는 새하얀 눈동자는 그를 더욱 더 강하게 부각시키며 다른 골퍼에게 강인한 모습으로 뇌리를 강타한다. 이런 그의 외모는 뛰어난 실력만큼이나 상대 선수를 제압하는 커다란 강점 중에 하나다. 최정상의 자리를 고수하는 타이거 우즈를 노리는 비제이 싱, 골프 인생에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그의 저력은 어디까지 일까?
올 해로 50회를 맞는 한국오픈에 출전해 12년 만에 국내에 모습을 선보인 비제이 싱이 대회 마지막 날인 지난 10월 7일, 천안우정힐스의 마지막 홀 그린위에 올라서자 모든 갤러리들은 숨을 죽였다.
무서운 기세로 뒤쫓고 있는 국내파 선수들을 따돌리고 우승컵을 거머쥘 수 있을지 모든 갤러리와 언론은 그에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선수의 기에 눌린 탓일까? 1타차로 바짝 추격하던 강경남은 마지막 홀에서 무릎을 꿇어야만 했고 양용은, 김경태 마저 비제이 싱을 따라 잡지 못하고 우승컵을 양보해야했다.
우승컵을 안은 그는 출국하기 전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연습하는 방법밖에 없다.”라는 말은 남겼다. PGA에서 일명 ‘연습벌레’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그의 골프 인생을 되짚어 본다. ‘
연습벌레’ 비제이 싱의 특별함
비제이 싱은 ‘흑진주’라는 수식어와 항상 함께한다. 그러나 그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면 내로라하는 이력이 엿보인다. 그것은 바로 역대 최연소 나이로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WGHF)에 올린 것이다.
모든 골퍼들이 그렇듯 비제이 싱 또한 세계적인 선수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한 계단 한 계단 끊임없는 연습과 의지를 바탕으로 실력을 쌓아나갔다.
첫 우승은 84년 말레이시아 PGA챔피언십 이후 유럽투어에서 경험을 착실히 쌓으며 삶의 목표이자 꿈꾸었던 PGA에 진출하게 된다. 데뷔 첫해 뷰익 클래식에 우승을 차지하는 놀라운 기량을 보이며 신인왕에 올랐으나 남태평양 작은 섬 피지 출신인 그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과 냉대에 따른 많은 시련을 견뎌내야 했다.
약소국가의 설움은 세계 골프계에서도 별반 다르게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 투어를 전전하며 이른바 ‘눈물 젖은 빵’을 수없이 먹어본 그에게는 그러한 차별은 더욱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뿐 시련이 되지 않았다.
주위의 따돌림과 인종차별은 2000년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즈에서 우승할 때까지 계속되었지만 해가 질 때까지 연습레인지에서 살다시피 한 비제이 싱은 마침내 2004년에는 타이거 우즈가 굳건히 지키고 있던 세계랭킹 1위 자리를 빼앗으며 명실상부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았다.
한국과 공통점이 많은 PGA선수
항공기 정비사인 부친을 통해 처음 골프채를 잡은 그는 성적이 저조할 때는 정글로 들어가 연습을 하는 버릇 때문에 아직도 그는 PGA에서 최고의 연습벌레로 통한다.
또한 그를 진정한 세계적인 선수로 꼽는 이유 중 하나로 매일 엄청난 시간을 훈련에 투자하면서도 자신의 성공에 우쭐해 하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그에게 넘어야할 산은 정상의 자리의 ‘타이거 우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 탄탄대로를 달려온 성공자 보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상에 오른 사람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은 큰 감동과 경이를 느끼기 마련이다. 이처럼 비제이 싱에게도 인간적인 면모를 찾을 수 있기에 많은 팬들이 그를 격려해 주고 세계적인 선수로 자리매김 한 점을 축하해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비제이 싱에게는 많은 한국 팬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한국의 간판골프스타인 최경주와 많은 부분에서 닮은 꼴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절친한 투어 친구로 알려져 있는 두 선수는 먼저 ‘연습 벌레’ 순위(?) 1위, 2위를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뿐 아니라 투어 때에도 연습레인지에 가장 오래 남아있는 선수는 비제이 싱이고 그 다음으로는 최경주 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여기에 두 선수 모두 골프 변방이나 다름없는 피지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셀 수 없는 연습과 시련을 딛고 당당하게 스타 반열에 올라섰다는 점은 가장 큰 공통점이다.
비제이 싱에 관한 몇가지 편견
비제이 싱은 골프 인생에 있어 탄탄대로를 걸어 온 선수는 아니다. 일부에서는 비제이 싱이 타이거 우즈와 앙숙관계에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한다. 이는 비제이 싱의 저돌적인 도전 정신 때문이 아닐까 라는 조심스런 추측이 제기 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비제이 싱 뿐 만아니라 PGA의 모든 선수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골프 황제로 군림하고 있는 타이거 우즈에게 도전정신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여기에 비제이 싱은 일반 미국, 유럽 선수들 보다 더욱더 뜨거운 집념을 보일 수 밖에 없는 골프변방 출신이라는 환경들이 그를 이러한 구설수에 휘말리게 한건 아닌지 한편으로는 씁쓸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타이거 우즈 또한 이러한 많은 PGA투어 선수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랭킹 1위 자리를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지만 골프 천재에게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비제이 싱이 12년 만에 국내 선수들이 모두 목표로 하는 한국오픈에 출전해 우승컵을 거머쥔 일은 분명 국내 골프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에서 일명 ‘신예돌풍’을 몰고 다니며 활약하는 선수들은 선두에 있는 비제이 싱을 막판까지 추격을 했지만 결국 세계적인 선수의 아성에 고배를 마셔야 했다.
또한 해외파인 양용은 선수 또한 2위에 등극하며 자존심 회복은 했지만 비제이 싱이 100%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되는 대회에서 그에게 우승컵은 내어준 것은 분명 국내 선수들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갤러리의 매너 문제와 대회진행에 있어 매끄럽지 못한 대회 운영은 골프 강국으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서는 진지하게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골프먼스리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