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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건형씨가 대학과 관련된 글을 올리기도 했지만, 제가 묵묵히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근거가 되는 에피소드들이 몇 있습니다. 사회학과의 수업을 들으면서 썼던 레포트들도 나름 많은 열정을 써서 했었지만, 국문학 속에서 내가 의미를 찾고 싶었던 장면들도 몇 있습니다.
그 중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아마도 모두의 쉐프인 성현이와 함께 저의 시 성현이는 소설을 묶어 21살 입대 전에 책으로 만들어본 경험일 것입니다. 두 번째로 꼽으라면 아마도 23살 정도에 썼던 '임동확'에 대한 작가론입니다. 80년 광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인 임동확. 80년 광주에 대한 수기를 읽었던 친구녀석 때문인지 왜 내가 이 작가에 주목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애를 많이 쓰면서 글을 썼던 거 같아요.
긴 글이고 난해한 표현도 있겠지만 예쁜 시가 아니라 시의 처절함에 대한 나름의 깨달음이 있던 소중했던 저의 경험과 인식이 담긴 글이라서 올려봅니다. 학부의 졸업논문이기도 했는데요 조만간 임동학의 시집들을 전부 통에 가져다 놓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시집들을 통에 가져다 놓았는데 임동확의 시 만큼은 집에 두었습니다. 자주 읽어서도 아니고, 정말 좋은 시라서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것들은 제가 가지고 있고 싶었거든요. 오늘 이 글을 기점으로 제가 가진 모든 시집은 통으로 가게 되겠네요.
생활이 바빠서 그 순간 놓치고 갈 수는 있어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쯤은 마련해야 할 거 같아서 괜히 감상적인 밤입니다. 그리고 23살의 박진명에게 박수를 보내는 밤이기도 합니다.
80년 광주에 대한 구심적 기억과 원심적 작용
Ⅰ. 서론
세계는 점점 빠른 패턴으로 흘러가고 있다. 어제의 화두가 더 이상 오늘의 것이 되지 못하고 어제의 방법으로 오늘의 속도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중요하고 사소한 정보들이 뒤섞이는 홍수 속에서 어떻게 중요한 정보를 찾아내는가도 중요해지지만, 그 중요성을 떠나 수시로 정보의 업데이트가 이뤄지는가 이뤄지지 않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얼핏 부질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과거를 이야기하는, 아니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작가 임동확을 살펴보는 것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미래의 열쇠는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고 현재에 적용하느냐에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문학의 한 축이 인간의 정서를 감동시킨다면 한 축은 과거와 현실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근현대사에 있어서 애써 묻어두려고 했고, 너무 빨리 회상의 대상이 되어버려 제대로 재조명되지 못한 80년 광주를 끊임없이 자신의 작품 속에서 형상화 하고 있는 임동확의 시들을 살펴보는 일 또한 시대의 과제이다.
시집코너가 나날이 줄어가던 2000년 즈음 우연히 읽게 된 임동확의 『운주사 가는 길』은 아련한 관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 속에는 내가 모르는 세상, 혹은 이야기의 단서들을 풀어놓고 있었다. 이해하지도 못 한 채 시를 좋아하게 된 경우라 하겠는데, 그의 나머지 시집들을 병영에서 읽으면서 그 단서가 인도하는 세계가 얼마나 쓰라린 기억에 기댄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 기억은 선명하고 끔찍한 핏빛으로, 시인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 기억에 기대어 이야기하고 있지만 태도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를 다룬 문학기행에서 시인은 “나는 세상의 모든 것에서 80년 오월을 본다. 등나무에 기대 부신 하늘을 훔쳐볼 때도 도시를 떠다니는 사람들의 어두운 얼굴과 대면할 때도 그 봄날이 뇌리에 박힌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임동확의 시들에서 한 나약한 인간의 몸부림을 본다. 현대사의 비극이라고 할 만한 80년 광주 속에서 시민군이었다가 투항한 자의 이십 년 넘는 언어에 기댄 고백, 증언, 희망은 나약하지만 가장 인간적인 싸움일 것이다. 그 몸부림은 끊임없이 80년 광주로 향하지만 세월은 80년 광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80년 광주에 대한 끊임없는 천착과, 90년대를 넘겨버린 시인의 새로운 가치관 발견의 몸부림은 동일한 경험에 대한 다른 작용이라는 점에서 ‘원심’, ‘구심’과 닮아 있다. 하나는 끊임없이 80년 광주로 향하고 있고, 하나는 그것이 이미 기억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괴로워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싶어 한다.
Ⅱ.구심에로의 기억
1. 살아있음의 죄의식
시인은 대학 2학년으로 80년 광주의 5월을 겪었다. 그는 시민군에 가담했다가 “나는 솔직히 비겁자였다 부어오른 편도선과//발목의 부상을 핑계삼아 전선을 벗어났다”고 첫 시집의[나는 보았다, 알았다, 그리고 생각했다]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 시뿐만 아니라 『매장시편』에 실린 많은 시들은 희랍 신화를 빌거나 예언, 증언, 회고하는 어투로 80년 광주의 5월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래도 그 동산에 잠입한 뱀의 머리와
뱀의 혀는 인간들의 행복과 동산의 평온을 시기했을 뿐
탱자나무 울타리가 무너지고, 망루처럼 우뚝 솟은 감시탑이
쓰러지고, 여기저기서 스스로를 태우는 화염이 치솟았다
벌과 꽃향기, 젖과 꿀이 휩쓸려간 언덕은
야만과 살육, 살과 피의 훈향이 공존했다
최초에 일어난 일이
최후에도 일어났음을 선연히 기억하라
[최초에 일어난 일이 최후에도 일어났다]의 Ⅰ, Ⅱ, Ⅳ의 부분들이다. 같은 시 안에서 Ⅰ에서는 신화적인 이야기를 쓰고 있고, Ⅱ는 증언의 형식으로, Ⅳ는 예언자적인 어조로 씌어있다. 80년 광주를 노래한 많은 시들이 단순한 고발에 머물러 상투화시키고 말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음을 상기해보면 이와 같은 방식은 그 순간의 현실을 보편적 경험으로 환기하여 전달하는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한편으로 신화적 이야기와 예언자적 어조 등은 작가가 선택한 방법이라기보다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방법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끔찍한 현실을 바탕으로 한 기억에 대해 어떻게 객관적이거나 상세한 서술이 가능할 것인가. 따라서 증언의 형식으로 된 Ⅱ의 “벌과 꽃향기, 젖과 꿀 ”에 대비되는 “야만과 살육, 살과 피의 훈향” 또한 세밀하고 사실적인 증언이 아니라 관념화된 증언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역사적인 사건에서 출발한 시인의 경험이 시로 형상화 되는 데는 자기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먼저 죽어간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신의 죄의식에까지 이른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나는 보았다, 알았다, 그리고 생각했다]의 부분을 좀 더 살펴보자.
나는 황공하게도 용맹한 부족의 전사로 칭송되고 있었다
나는 어처구니 없게도 자랑스런 가문의 후예로 기록되고 있었다
나는 우습게도 끝까지 진지를 사수한 생존자로 알려졌다
(생략)
이제 나는 고발하고 싶어진다.
그대들이여, 수 많았던 또다른 나에게 침을 뱉고
해맑은 거리의 법정에 서게 하라
때마침 흐려 오는 밤하늘 아래
별빛으로 거리에서 물러서라
그 거리에 서면,
나는 다시 용서 받고 싶어진다
끝까지 믿음을 고수했던 사람은 살아남지 못 했다.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전사”, “가문의 후예”, “진지를 사수한 생존자”로 불리는 자신에 대한 반성과 부끄러움을 “용서 받고 싶어진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3장의 제목은 “그대에게 이 말 전해 주게”인데 다음 시들과 같이 편지형식이나 고백형식으로 죄의식과 부끄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편지 한 장
못 부친 무성의함만 탓해 주세요
吊鐘 한 번 크게
울리지 못했음을 용서해 주세요
[유배지에서 보낸 내 마음의 편지Ⅰ] 부분
모질고 잔인한 악마의 장난 같은 나날
그후 몇 해가 지나도록
그대가 그 광장을 배회하며 남아 있었음을
내 이제야 안다
잠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늘 그 모습대로 약속 시간을 연장하며 두리번거리는 그대여
[그때 그 자리] 부분
이러한 고백은 끝까지 진지를 사수한 그들이 옳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은 살고 싶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임동확 시들의 울림은 그것이 진위를 밝히고 있는데서가 아니라 옳은 것이었지만 살고 싶었다는 연약한 인간 죄의식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그것은 미학적 울림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몸부림 자체가 가지는 울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2. 광장으로 복류하는 꿈
앞서 살펴본 첫 번째 시집의 경향은 두 번째 시집 『살아있는 날들의 비망록』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시집에서도 [라자로]나 [눈밭을 걸어가는 오이디푸스왕]에서 광주의 경험을 보편적인 정서로 환기시키고 [파, 파, 파 헤쳐라 - 기종도 씨의 유언문], [검정고무신 - 박관현을 추모하면서], [비둘기는 그 어디에 숨어 새끼를 치는가 - 故 이철규 군 변사에 부쳐]에서 먼저 떠난 이들을 추모하고 있다. 이러한 추모와 살아남은 죄의식은 구심작용의 가장 큰 줄기이다.
두 번째 시집에서의 변화는 상징, 서사형식의 시가 줄었다는 것과 현실을 살아가는 자아에 대한 목소리가 늘었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날들의 비망록』의 그다지 상징적이지 않고 시인의 목소리가 쉽게 포착되는 시들은 독자를 주목하게 하는 힘이 떨어진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여기는 팔십년대 내 고향 광주
끝까지 파헤치면 그리움의 뼈무덤, 그 참담함과 살을 섞는 분신들
그리고 무너진 전선마다 영원히 푸른 상록수 그늘
[다시 부르는 노래] 부분
끝내 닿아야 할 세상은 아득하고
더욱 멀어져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데
어이 난 물그림자나 던지며 가는
소금쟁이 시인이 되었는가
[거울을 보며] 부분
[다시 부르는 노래]에서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나 “뼈무덤”, “참담함”, “무너진 전선” 등이 “푸른 상록수 그늘”과 대비되지만 큰 공감을 자아내지는 못한다. 또 [거울을 보며]에서 시인의 반성이 “소금쟁이 시인”으로 나타나는데 그 의미가 화자에 머물 뿐 독자에게 전이되지는 못한다.
이와 같이 상징이 줄고 서정적 단형시가 늘어난 것은 80년 광주에 대한 시인의 거리감에 의한 것이라 여겨진다. 두 번째 시집이 출간 된 것은 1990년으로 87년 첫 시집 이후 삼 년 만에 나온 것이다. 80년 광주에서 십 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것이다. 자서에서 밝히는 “모든 이가 광장으로 복류하는 시간”을 꿈꾸었다는 말은 그 만큼 80년 광주의 광장으로부터 멀리 와 있다는 현실 깨달음에 바탕한 “꿈”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이 꿈은 “모든 이가 광장으로 복류하는” 일이 어렵다는 현실적 깨달음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겠는가.
Ⅲ. 원심적인 희망 찾기
1. 소박한 가치들의 재발견
마지막 시집 『처음 사랑을 느꼈다』에도 저변에 광주에 대한 기억이 깔려 있다. 그래서 임동확을 하나의 사건에 순정을 다하는 순수한 시인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임동확 시의 호소력은 일련의 시 속에 여린 한 인간을 만나기 때문에 얻어지는 것이다. 각 시집에 있는 서문을 보면 어느 정도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 첫 시집에서는 “살아있음의 죄의식”을 인식했고 두 번째 시집에서는 “모든 이가 광장으로 복류하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앞에서 지적한 약간의 차이를 제외하면 두 시집은 거의 비슷한 의식 아례 광주를 화두로 삼고 있다. 하지만 세 번째 시집인 『운주사 가는 길』에서는 앞의 두 시집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만나게 된다. 그의 자서 첫 부분에 “광장으로의 복류하는 시간을 꿈꾸어온 지난 세월이 내게 준 가장 소중한 깨달음의 선물은, 거의 드러나지 않게 우리들의 중심을 관통해온 소박한 가치들의 재발견이다.”라고 썼다. 임동확은 다양한 것들을 끌어안고 있다. 80년 광주, 먼저 떠난 이들에 대한 죄스러움,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 부조리한 현실, 다시 희망…….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녹아서 임동확의 시가 빚어진다. 임동확의 시가 때로는 형이상학적으로, 때로는 적나라한 현실 고발로, 때로는 연약한 한 인간의 몸부림으로 읽힐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운주사 가는 길』에서는 그의 자서에서 말했던 것처럼 일상적인 가치의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아주 끔찍했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한 인간이 90년대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써 당대의 사회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앞의 두 시집에서 체제의 부조리, 억압, 피, 죽음, 살아남은 죄의식이 모두 광주로 향했던 데 반해 세 번째 시집에서는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많이 기울이고 있다.
세월이 세월인지라
모든 게 물 속의 잉크가 풀리듯
무엇이든 자꾸 묽어가는 게
탈이라면 탈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방어할 수 없는 부재] 부분
견디기 힘든 그리움 같은 거
노여움 같은 거, 그만 잊으라는 듯
새마을호는 건성으로 세상 속을 가로지르며
낡고 초라한 기억의 驛舍들을
빠르게 후진시킨다.
[만경평야] 부분
십년이 넘게 지난 시간의 영향도 있겠지만, 나약한 인간의 끈질긴 화두와의 싸움 뒤에 태어나는 시는 언뜻 잠언처럼 느껴진다. [방어할 수 없는 부재]에서의 “무엇이든 자꾸 묽어가는 게 / 탈이라면 탈이다.”나 [만경평야]의 “견디기 힘든 그리움 같은 거 / 노여움 같은 거, 그만 잊으라는 듯”은 큰 상처에 세월이 덧 씌어지고서야 나올 수 있는 시어들이다. 그것은 이전과 같이 80년 광주를 보편화 시켜 형상하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아픈 기억을 오래 삭이는 과정에 있는 개인 자체에 주목하고 불완전한 현실이기는 하지만 화해의 몸짓을 취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가을산]의 “한 번 날기 위해 / 아니 두 번 죽지 않기 위해 천년을 / 저렇듯 자세조차 틀지 않은 채 / 돌처럼 견딜 수도 있겠구나 / 그러다가 절박하면 제 안 깊숙이 / 파고들어 거기 그대로 / 順命해갈 수도 있겠구나”와 [가을과 달과]의 “아무리 아팠고 곤궁했어도 사랑은 / 어쩔 수 없이 계속되고 있었기에 / 비록 불태워 없어진 시간이었다 해도 / 바로 그것만이 삶이었기에”의 시어들을 통해 새로운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우린 죽음에 이르기까지
결코 그 궁극을 가늠하지 못한다
어둠이 가을강처럼 아늑해진 후에야
겨우 불빛이 그 근원의 반경을 드러내듯
어찌하여 나를 버리느냐고
비탄의 피울림을 울던 극치에서야
그가 한 인간이었음을 증거하듯
이곳에서 완전을 꿈꾸는 자
사랑의 완성을 노래하는 자
내가 보기엔 가짜다
그리하여 늘 분명한 태도를 강요하는 자도
이미 체제의 편이다
자본이 물염치를 화폐처럼 찍어내고
이념이 절망의 광기를 부도내듯
흠결 없는 자아란, 그래서 참회가 허용되지 않는 내부란,
얼마나 지루하고 끔찍한 학대인가
그렇다. 막장에서 돌아서는 것도
우리에겐 하나의 출구였듯
이제 오류는 나의 스승
그토록 깊은 나락의 미궁조차
내겐 공포라기보다 차라리 거대한 통로
그 거대한 종말론의 대지를 상속받고자 한다
오, 살아 있음의 이 태연한 흔적들이여
정말이지 잊고 싶은 것을 잊어버리며
아무래도 난 이곳에서 늙어가야겠다
잔정 많은 느티나무 뿌리처럼 얽힌 채
누군가 가던 그 길로 합류해야겠다
[오류는 나의 스승]에서는 특히 기억, 패배, 죄의식, 체제의 부조리 등을 삭여 가는 당대의 한 인간으로써의 방황과 화해, 새로운 희망에 대한 욕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 결코 그 궁극을 가늠하지 못”하고 “이 곳에서 완전을 꿈꾸는 자 / 사랑의완성을 노래하는 자”는 가짜이다. 인간이란 나약하고 궁극은 알기 아렵다는 말을 하고 있다. “늘 분명한 태도를 강요하는 자도 / 이미 체제의 편이다”와 “막장에서 돌아서는 것도” “하나의 출구이다.”라는 말에서 한 연약한 인간으로써 여전히 부조리한 세계 속일지라도 화해의 지점을 찾고자 하는 희망이 드러난다. 그래서 “오류는 나의 스승”이 되고 “깊은 나락의 미궁”조차 시인에겐 “거대한 통로”가 된다. 그래서 여전히 “살아 있음의 태연한 흔적”과 “잊고 싶은 것을 잊어버리며” 이 세계에서 “늙어가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잔정 많은 느티나무의 뿌리처럼 얽힌” “합류”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나약한 인간의 화해의 제스춰는 “잔정 많은 느티나무”로 구체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세 번째 시집에서 주목할 부분은 운주사라고 하는 공간과 지병을 앓아오던 아버지의 죽음이다.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운주사를 생각할 때마다 “서울, 바뀌지 않는 중심을 기다리기에 지쳐 미르기의 코를 갉아먹으며 떡두꺼비 같은 아들 낳기를 소원했을 아낙들의 긴 기다림을 떠올렸다. 채 피냄새가 가시지 않은 무너진 열망을, 무장 해제당한 욕망의 전선을 대신하려 악착스레 서로의 목을 끌어안고 등짝이 파이도록 칠성석 위를 나뒹굴었을 청춘의 시간들과 마주쳐야 했다.”고 이야기한다. 또 “하루 낯과 밤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우려 돌을 쪼개고 힘든 목도질에 나선 사람들의 환영을 보았다. 허나 원수 같은 첫닭우는 소리에 제 어미 품에 미처 깃들지 못한 축생들의 얼굴이 으깨어지고 심장이 터져 무더기로 떼죽음을 당하는 장면이 연이어 떠올랐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아낙”들과 “목도질에 나선” 사람은 소외된 이들, 절망 위에 선 사람들에 대한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시집 앞에 “나를 그 불 속에서 지켜내시고//늘 침묵으로 나무라고 또 끌어안으시며//내게 活人의 정을 쏟으시다//영면하신 아버님 영전에”라고 새겨 놓았고 [활로를 찾아서], [기억 속으로], [그리운 아버지]에서 직접 아버지를 회상하거나 추모하고 있다. 이렇듯 현실의 구체적인 모순에 의해 생겨났던 쓰라린 기억은 그러한 모순이 일어났던 현실의 논리로써 치유되는 것이 아니며 “침묵으로 나무라는 부성”을 통해, 그리고 중생들의 열망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형상화되면서 한 인간의 - 한 사회의 상처를 쓰다듬는다.
2. 淨土 모색
『운주사 가는 길』의 “일상적 가치의 재발견”은 네 번째 시집인 『벽을 문으로』에서는 “추하고 더러운 기억들을 거름삼아 더욱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淨土를 모색”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물론 그러한 발길은 “지난 시대가 남겨놓은, 너무 많은 상처난 마음의 그림자들. 그러나 모두들 갑자기 행복해져버린 당대” 탓으로 “진흙 수렁 같은 現世의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자서에서 이야기한다.
이리저리 꿰맨 남루한 희망의 행간들;
그러기에 또다시 죄다 더렵혀진 말들에
모욕받은 시대 속에서, 절망을 절망이라고
상처를 상처라고 말하기 위한 너의 순교 -
그리고 문득 90년대가 우리 곁에 왔었다
그러나 지극히 개인적인 불행이었노라고,
지금껏 살아온 것조차 기적이었노라고
지난 추억들을 경멸하며 천천히 부패해가는
네 거친 내면의 항변들을 묵살하면서
[고의적 형벌 - 心經8] 부분
복개해버린 세기말의 하수로가 닿아 있는
저 하류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물고기가
여전히 죽음으로 삶을 항거할 수 있을 만한
역설의 생태계가 남아 있음을 증거하는
속수무책의 세월 속에서,
[희망의 증거 -心經11] 부분
[고의적 형벌]에서는 역사적인 아픔을 지극히 개인적인 불행으로 돌리는 “90년대” [희망의 증거]에서는 “복개해버린 세기말의 하수로”가 자서에서 이야기하는 “現世의 언저리”쯤일 것이다. 하지만 부패해가는 “내면의 항변들을 묵살”하며 “역설의 생태계”의 가능성이 있는 “속수무책의 세월 속”은 그 언저리에서도 끊임없이 정토를 향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다. 정토를 향한 열망과 현세의 언저리의 갈등은 다음 시에서 더 잘 드러난다.
끝내 지워지지 않을 가슴속의 앙금일랑
점점 파고드는 옹이와 함께 성장해온
저 늙은 솔을 보며 내버려두라
어설픈 화해는 더 큰 불화로 이어지고
잘못 건드린 상처는 더 큰 아픔을 부르나니
[음지 식물 - 心經 15] 부분
갈등은 “끝내 지워지지 않을 가슴속의 앙금”이고 “어설픈 화해는 더 큰 불화로 어어지”기 때문에 옹이와 함께 성장한 “늙은 솔”을 보며 두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내버려둠은 방관이 아니라 새로운 화해를 모색하기 위한 인내의 발로이다. [벽을 문으로]에서는 생을 곱씹으며 면벽한 끝에 오래 지워지지 않은 기억, 모순을 안고 살아왔던 기억을 문으로 삼고자 한다.
연민도 공개적인 비판 대상이 되던 시절,
그렇기에 혼자서만 오랜 망각의 술을 마셔왔다
변명할수록 더 구차스럽던 치욕의 세월이었으므로
퍽이나 오래 잘못 살아버린 삶의 기억을
이제 벽을 문삼아 한꺼번에 토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토록 옥죄인 마음의 빗장을 열려 하니
여기저기 아파온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슬픔의 독이 한꺼번에 목구멍으로 치밀어오른다
그 과정은 물론 순조로울 리 없다. 끊임없는 기억에 대한 반추와 스스로에 대한 반성 행위에서 나온 “벽을 문으로”만드는 과정은 아픈 상처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래서 “슬픔의 독이 한꺼번에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른다”
『벽을 문으로』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운주사 가는 길』에서 발견된 일상적인 가치의 확장이 아픈 기억에 대한 화해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운주사 가는 길』에서도 화해의 탐색은 보였지만 『벽을 문으로』에서는 적극적으로 淨土를 모색하고 있다. 물론 그 화해는 체제에 대한 화해가 아니다. 하나의 잊기 힘든 사건을 오래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연약한 인간 스스로에게 청하는 화해이다. 여전히 [여백을 위하여]에서는 “지난 5共 시절 순리니 정의 구현이니 잘도 지껄여대던 입들의 진저리치는 웅변 속에 숨어 있던 동어 반복”에 지치기도 하고, [자료실]에서는 “허접쓰레기 같은 말의 무덤”, “객관의 냉동실”, “폐기 처분당하지 않는 이 긴 회랑의 자료실”이라고 체제에 대한 거부를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체제로의 편입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시인은 [光松間 도로]에서처럼 탱크가 막아서던 거리를 손수 운전해가는 자신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마지막 시집 『처음 사랑을 느꼈다』는 시간에 관한 인식이 더욱 빈번하게 드러난다. 동년배의 김용락 시인이 이야기하듯 이 시집은 광주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현재 시인의 삶의 풍경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것 같다. 물론 광주가 저변에 흐르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매장시편』이나 『운주사 가는 길』에서의 광주보다는 멀리 와 있다.[모래시계 1]에서의 광주는 “광주에서 마지막 남은 주막집이라는, 술꾼들 사이엔 실비집으로 통하는 어느 주차장 한켠의 두어 평 남짓한 단골 술집”으로 역사적 체험으로서의 광주가 아니라 일상의 광주에 더 가깝다.
시간상의 거리도 거리일 것이지만 역사적인 체험이 아닌 한 개인으로써의 체험이 시 속에 많이 나타난다. T.V에서 본 장면이라든과 딸과의 대화를 시에서 도입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희망, 꿈길밖에 길이 없는 세계 앞에서 또다시 기댈 곳이라곤 그 희미한 희망의 언덕이 아닐 것인가”라는 말 뒤의 “그러니 늙은 자궁의 세계여, 그 몸을 활짝 열어 그 치부를 밑바닥까지 보여다오.”라는 자서의 이야기는 공허하게 느껴진다.
첫 번째에서 네 번째 시집은 80년 광주를 향한 구심적, 80년 광주로부터의 원심적 작용이 긴장을 형성하지만 다섯 번째 시집의 “희망”은 두 가지 힘의 작용점에서 너무 멀리 있는 것 같다. 따라서 비평가들의 이야기처럼 새로운 시적 방향을 모색하려는 의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발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Ⅳ. 결론
앞에서 끊임없이 80년 광주의 광장으로 복류를 꿈꾸며 죄의식을 토로하는 몸부림과 그 사건을 겪고 다시 세계를 살게 된 인간이 자신과 세계에 대한 화해를 해 가는 원심적인 몸부림을 시집 순서로 살펴보았다.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폭력, 피, 수많은 죽음이라는 기억을 겪고 살아남은 한 인간이 그것을 잊지도, 도피할 수도 없어서 끊임없이 반추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언어의 미적 승화이다. 죽음의 기억으로부터 문을 발견하는 과정에서의 인간적인 고뇌이다.
기억은 언제까지 기억으로 남을 수는 있다. 하지만 기억이 언제나 같은 기억으로 남기는 힘들다. 임동확 시인에게 80년 광주는 언제까지나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기도 할 것이고, 잊기 위해 몸부림을 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속도 빠른 세계는 당시의 과거로 기억하게 한 개인을 가만 두지 않는다. 임동확 시인의 일련의 시집들은 하나의 기억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한 개인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불가항력적으로 화해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 세계가 그러한 화해를 부추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광주민주화 운동”이라는 명명을 공식적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일부에서는 광주사태니 폭도니 하면서 그릇된 편견을 가지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는 그것이 “광주사태”든 “민주화 운동”이든 상관없이 이 세계의 빠른 물살 속에서 살아남기 급급하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임동확 시인은 광장으로 복류하던 꿈을 버리고 정토를 찾게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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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번오월엔 꼭 레드페스타를 가고야 말거라는!
당신이 진정한 챔피언!
역시 진명샘 글솜씨는 알아줘야해요~ 아침에 바빠서 다 못읽고 출력해서 들고 나가려고 해요~ 임동확시집, 저도 꼭 읽어 볼게요~ㅎㅎ
다른 시집보다는 "운주사 가는 길"이 저는 제일 좋았습니다
박수는 넘이 쳐줘야죠! 잘 읽겠습니다 또 새로운 시인을 알게되네요 ^_^
낙천적인 사람은 지가 박수 치고 지가 좋아라 하면서 웃기도 한답니다
한글 파일로 올려주심..이.. ㅋㅋㅋㅋ
한글에는 각주와 참고문헌이 있어서, 예의없이 사용될 몇 가능성을 생각하야 일부러 안 올렸어요